장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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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명칭
3. 역사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장강'''(長江)[中] 또는 '''양쯔 강'''(Yangtze River)은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여 중국 내륙을 거쳐 황해로 흐르는 이다. '양쯔 강'의 경우, 양자강(揚子江)의 영어 표기로, 본래는 장강의 하류 일대를 이르는 명칭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강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된 경우이다(하술 참조). 이 밖에 대강(大江)이라는 이름도 있다. 세계의 하천 가운데 길이로는 세 번째, 아시아에서는 가장 길다. 강의 길이는 6,300 km에 달하지만 유역 면적은 1,808,500 km²로 길이에 비하면 그리 넓지 않다. 해발 5,042 m인 겔라댄동산에서 발원해 티베트 고원윈난 고원을 지나 쓰촨 분지로 흘러가면서 삼협을 지나는데, 여기에 세계 최대인 삼협댐(싼샤 댐)이 있다. 싼샤 댐을 지나면 평야를 흐르는데 주위엔 둥팅 호나 포양호[1]처럼 큰 호수들이 여럿 존재한다. 장강은 상하이 북쪽에서 동중국해로 흘러들어간다.
'''원래 (강)이란 말 자체가 장강을 부르는 말'''이었으나, 한대에 이르면 일반 명사로 바뀌었고, 이를 다른 강과 구별하기 위해 육조 시대부턴 장강(긴 강)이라 부르며 강의 이름이 생긴 것이다. 산해경 등 고문서를 보면 '江(강)' 자만 써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장강을 뜻한다. '(하)' 역시 원래 황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강"의 경우에는 '수(水)'라고 불렀는데, '회수(淮水)'가 대표적인 사례. '(호)'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다양한 호수를 지칭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호남과 호북을 가르는 둥팅호를 의미했다.

2. 명칭


길이가 워낙 길어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최상류 지역은 티베트인들이 드리추라고 부르고 중국에선 통천하 / 퉁톈허(通天河)라고 하는데, 서유기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상류 지역은 금사강 / 진사강(金沙江)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유네스코 중국의 자연 유산으로 등록된 윈난 성을 흐르는 세 강 중 하나이다. 또한 쓰촨 지역을 흐르는 부분을 천강(川江), 후베이 / 후난 지역을 흐르는 부분을 형강(荊江)[2]이라 하기도 한다.
'''양자강 / 양쯔강(揚子江)이란 이름은 원래 장강의 최하류 300 km 정도를 부르는 말이었으나 와전되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즉 원래 사진에 나온 전체 강의 이름은 '''장강(長江)'''이고 양저우 ~ 쑤저우 ~ 상하이 인근의 '''장강 하류부를 그 지역 사람들만''' 양자강(揚子江)이라고 불렀는데, 그 지역에 파견나왔던 서유럽 선교사가 해당 강 전체를 양자강이란 명칭으로 서구에 알리면서 졸지에 장강의 일부를 의미하던 양자강이 장강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다. 양자강 지역에서 사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이 강을 양자강이라기 보단 장강으로 인식해왔지만, 서양에선 '양자강'의 인지도가 압도적인지라 그냥 그렇게 굳어버렸다.

3. 역사


수량이 많고 토지가 비옥해서 상고 시대로부터 황하와 다른 문명을 지녔으며[3] 이 당시 장강 유역에서 쓰였던 언어들도 타이카다이어족이나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몽몐어족 계통의 언어들이 쓰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들 언어는 중국 남부방언에 흔적이 남아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과 같은 국가가 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다. 한편으로는 황하 유역의 국가와 교류와 전쟁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중원과 문화적 통합이 가시화되고, 진나라중국을 통일하고 한나라가 통일왕조로 400년간 지속되면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중원과 정체성이 일체화되었다.[4] 꾸준히 개척되고 개간되었으며 송나라, 특히 남송 때에 이르러선 황하 유역의 경제력을 앞질렀다.
사실 양쯔강 유역의 경제력 융성을 따질 때는 보통 강남으로 불리는 난징 인근의 양쯔강 하류의 융성을 논하는 경우가 많지만, 명나라, 청나라를 거쳐 양쯔강 중류 쓰촨성, 후난성, 후베이성 지역이 개발되어 양쯔강 하류 삼각지를 능가하는 곡창지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원래부터 융성한 지역이었던 쓰촨은 차치하더라도 현대의 후베이, 후난 지역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두드러졌는데 호북성과 호남성에 해당하는 호광성[5]은 엄청난 곡창 지대로 발전해 호광숙 천하족(湖廣熟 天下足), 즉 호-광의 (농작물이) 익으면 천하가 풍족하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남송과 몽골의 전쟁, 그리고 원나라 말기 막장 상황으로 명대 초기에 호광성은 내지 변방에 해당할 정도로 피폐한 지역이었으나, 명 중기부터 정부 차원에서 호광성에 대한 개발을 장려하였다. 오늘날 이 지역이 중국의 대표적인 곡창이 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수량이 많고 중국 내륙의 각 지역을 연결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양쯔강을 이용한 수운이 활발하다. 철도나 도로가 발전한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싼샤 댐을 비롯해 양쯔강에 건설한 댐들은 갑문을 설치해서 선박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한다.

4. 기타


한때 황하와 장강 유역 일대에서는 코끼리, 코뿔소가 살았었으나, 토목 공사와 농경지 개척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 갑옷과 가죽 생산 및 농산물 피해 등으로 사냥당해 멸종되었다. 또한 과거 양쯔강돌고래라는 민물 돌고래가 살았는데 2007년 멸종되었다고 중국에서 공식 확인하였다. 모든 돌고래들이 그렇지만,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을 보면 다가오는 바람에 그물에 걸리거나 어선의 프로펠러에 걸려서 찢겨 죽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1950년대에만 하더라도 6천 마리에 달하던 개체수가 1990년대는 100여 마리 남짓 남은 걸로 팍 줄어들고, 2000년대에는 겨우 10마리 남짓이였다가 2005년 마지막 공식적으로 발견된 2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멸종. 그나마 그 2마리도 이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2007년 목격 제보가 들어왔고 수색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이외에도 양쯔강에 서식하던 주걱철갑상어가 멸종되었고, 양쯔강악어를 비롯해서 다른 양쯔강에 서식하던 동물도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장강을 따라 대도시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청두, 충칭, 창사, 우한, 난징, 상하이가 있다. 그만큼 생활하수 배출량이 엄청난 것은 당연한 결과. 농업도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어 농업용수 배출량도 엄청나고 각종 공장에서 불법적으로 흘러나오는 오폐수의 양도 만만한 것이 아닌지라 환경오염이 심각한 축에 든다.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환경피해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로도 여전해서 2019년 기준으로 언론에 따르면 장강에서만 쓰레기가 연 '''146만 톤'''이 발생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동아시아 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낸 침몰 사고인 둥팡즈싱 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다. 항목을 참고하자.
디시인사이드에선 중뽕 컨셉을 잡을 때 '장강은흐른다'라는 닉네임을 쓰고 글 아래쪽에 "끝없는 장강의 물결은 도도하게 흐른다.(부진장강곤곤래 不盡長江滾滾來/不尽长江滚滚来)[6]"를 적어놓는다. 중국의 행보에 따라서 못했다 싶으면 '장강은 말랐다', 잘한다 싶으면 '가끔 장강이 흐른다', '장강 범람' 등의 댓글이 달리곤 한다. 다른 나라한테도 똑같이 적용되어서 부진~~강곤곤래라는 식으로 미국은 미시시피 강[7] 한국은 한강 등 여러 바리에이션도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위상이 높다보니 법으로 따로 제정될 정도였다.#

5. 관련 문서



[中] /Chángjiāng/ (창장).[1] 삼국지연의에서 주유가 오나라 수군을 훈련시켰고 적벽대전의 모티브로 훗날 주원장진우량군대를 격파했던 파양호가 바로 여기다.[2] 후베이 / 후난 지역의 후한 시기 명칭인 형주에서 따온 이름으로, 형주의 남북을 가르며 흐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형주는 삼국지에서 유표의 근거지가 있었고 이후 유비익주와 함께 차지하고자 했던 그 형주 맞다.[3] 원래는 별개의 문명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농사 중심의 화북 지역과 달리 이 지역은 자포니카 농사가 중심인 독자적인 농경 문화를 발전시켰다. 고고학이 발달되기 이전에는 황하문명이 중국의 지배적인 문명으로 장강일대의 주민들도 황하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주된 견해였고, 이러한 설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정설이었지만 대규모 유적발굴을 통해 장강에도 황하문명과는 별개의 문명이 발전해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본래는 장강문명과 황하문명이 별개의 문명권이었지만 춘추전국시대 당시에 이루어진 오랜 교류와 전쟁, 진나라와 한나라의 통일 이후로 수백 년에 걸쳐 서로간 융합하면서 중국문명이 탄생했다는 것으로 관점이 수정되었다. 그래서 21세기 와서는 중국 문명이라는 포괄적인 범칭이 많이 쓰이는 편이다.[4] 그러나 무릉만 등 동화되지 않은 이들도 상당수 있었기는 했다.[5] 삼국지에서의 형주 지방, 청나라의 옹정제 시기 호북, 호남성으로 각각 분리된다.[6] 중국의 시인 두보의 등고(登高)의 한 구절이다.[7] 미시시피 강 말고도 허드슨 강도 가끔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