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군

 

昌文君
(? ~ 기원전 224년 4월)
1. 소개
2. 대중매체에서
2.1. 킹덤
2.1.1. 개요
2.1.2. 작중 행적
2.1.3. 여담


1. 소개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문관. 기원전 238년에는 창평군(昌平君)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노애(嫪毐)를 공격하여 함양(咸陽)에서 수백 명의 머리를 베었다.
창평군과는 달리 성이 전해지지 않으며 창평군과 같이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사기 열전에서도 이 기록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기록도 찾을 수 없다. 한편 창문군과 관련된 진(秦)나라의 유물인 과(戈)에 새긴 명문에는 전(顛)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어서 그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연구로는, 창문군도 초나라 사람이 맞으며 초 경양왕의 아들이자 고열왕의 이복형제로, 고열왕과 춘신군이 진나라에 인질로 있다가 도망갈 때에 따라가지 않고 그냥 진나라에 남아 벼슬을 했다고 전한다. 사기에 昌文君死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비명에 죽은 것으로 보이는데, 초나라에서 창문군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는 보고서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그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2. 대중매체에서



2.1. 킹덤


[image]
'''공식능력치'''
'''시기'''
'''무력'''
'''지휘력'''
'''지력'''
'''정치'''
7권
82
85
86
90
가이드북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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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94
가이드북2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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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개요


애니판의 성우는 나카노 유타카, 게임판의 성우는 겐다 텟쇼.
여기서는 영정의 측근이자 후견인으로, 왕궁에서 유일하게 정을 위해 일하는 충신. 젊은 시절 왕의와도 어깨를 겨눌 정도의 무관이었으나 나이가 들고 해서 문관으로 전직, 승상을 목표로 고분분투한다. 왕의는 그를 '수수한 현자'라고 평하며 그에게 의 안위를 부탁할 정도였다.

2.1.2. 작중 행적


작품이 시작할 때 길을 지나다가 정과 똑같이 생긴 를 정의 대역으로 쓰기 위해 궁으로 데려온 본인이며 이후에는 성교의 반란 때는 추격대를 죽기 직전까지 유도하고 궁궐을 벗어나 정과 합류한다. 왕의에 의해서 평해지길 '''대왕 일파'''의 중축이 될 인물. 왕의와는 무척이나 친한 사이로 규의 정체를 알고 왕의와 규 사이의 약속과 인연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과거 이 두 사람과 함께 전장을 다닌 전우이기도 하다. 왕의의 사망소식이 당도하자 충격을 받아 비틀거리며 군의에서 빠졌고 이를 비난하는 여씨 파의 문관을 시끄럽다고 손으로 입을 잡아 버릴 정도다. 진시황에게 왕의의 유언을 듣고는 바보자식이라고 외치며 비통해하며 진심으로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힘 없는 왕을 보필하느라 여러 모로 고생하는 캐릭터라 꼭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안습해질 수 밖에 없는 인물인데, 역사에서는 나중에 승상이 되는 건 적대 세력인 여불위 일파의 이사이기 때문. 그러나 연재분 256화에서 성교 일파의 협력으로 여불위가 상국이 되면서 공석이 된 좌승상의 자리에 대신 임명된다.
그 직후 이목이 일으킨 합종군의 공격에서 창평군과 함게 전략을 논의하고, 함곡관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이목이 이끄는 별동대의 함양 급습에 대처하기 위해 출병한 정을 보필하며 최후의 보루가 된 '최'에 도착한다. 민병들을 격려하는 정의 모습을 보면서 소왕을 뛰어넘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인다. 이후 최의 서문을 지키면서 고군분투 하지만 정이 중상에 입어 최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에게 설득해달라고 하지만 정이 거절하여 마지막까지 최에서 사투를 벌인다. 마지막 7일째에 성문이 뚫려서 망연자실하다가 기사회생의 원군으로 와준 산민족들에게 고맙다며 눈물 섞인 인사를 보낸다.
그 후로는 여불위에 대항할 세력을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으로 최 공방전에서의 활약 때문에 세력을 키우기 쉬워졌지만, 막대한 재력을 자랑하는 여불위에게 대항하기에는 아직 벅찬 상태이다. 한편으로는 이목을 실각시키기 위해 조나라에 암자인 요가를 잠입시켜 곽개에게 모략을 알려줬다는 것이 드러난다.
가관의 식까지 정을 보좌하여 여불위를 견제한다. 그리고 가관의식 때 노애의 반란군이 함양을 공격하자 창평군과 함께 반란군을 진압한 뒤 수년간에 걸친 영정과 여불위의 정쟁이 영정의 승리로 끝났다는 걸 눈물을 흘리며 선언한다.
이후 업 공방전 당시에는 창평군, 몽의, 개억 등과 함께 전략을 논의할 뿐만 아니라 간간히 등장할 때마다 보고라던가 놀라 주저앉는 모습을 보이고, 641화에서는 개선하는 비신대를 영정과 함께 멀리서 격려하고, 이후 궁궐로 온 신과 하료초를 영정과 맞이하면서 영정이 신이 장군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할 때마다 곁에서 호응을 약간 해주면서 리엑션만 해 주는 역할로 전락했다.[1]

2.1.3. 여담


킹덤의 연재가 계속될수록 작가의 공식 능력치가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과거 소왕시절의 전직 무관이라는 설정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무력 수치가 줄어들고 있다. 물론 그에 비해 지력이 올라간다 하지만, 지력이 1씩 올라갈 때 무력이 2-3씩 빠져나가는 걸 보면 작중에서 이런저런 고생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듯...
킹덤의 흔한 리액션 캐릭터중 가장 대표격인 캐릭터가 되면서 초기와 달리 현재 시점에 와서는 영정이나 주위 인물들이 뭔가 할 때마다 땀을 흘리거나, 놀라거나, 입을 벌리는 건 흔한 일이다. 나중에 여불위는 가관의식에서 반란이 일어났음에도 너무나 태연한 정의 태도에 이상함을 느껴 창문군을 바라보고는 ''''평소 같으면 호들갑을 떨었을 창문군 마저 침착하다.'는 점'''을 들어 대왕 일파가 노애의 반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추론해낸다.
장수로서의 능력은 먼치킨들이 날아다니는 킹덤 세계관에서 정말 그저 그렇다. 육대장군들에게 컴플렉스를 품을 정도인 몽오보다도 스탯이 낮다. 하지만 나름대로 왕의와 동기동창일 정도로 오랜 군 경력이 있었는데다, 화려하고 번뜩이는 기지는 없어도 수수하게 할 일을 하는 별동대를 운용하면서 왕의와 규의 전투를 뒷받침했다고 한다. 오히려 문관으로 전향한 뒤에는 '''리액션 전문가''' 같은 역할이나 하고 있고, 이사에게도 '''전국을 다스릴 법 체계를 법가도 아닌 니 수준에서 설계할 수 있겠냐'''라고 디스를 당하는 등, 이렇다 할 행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2]
그래도 나름 영정 일파의 중심 인물로 묘사되지 않은 부분에서 활약을 많이 했을 거라고는 추측할 수 있다. 아마도 '''아직 어리고 젊은 신과 영정 일파에게'''는 벽과 함께 나름 뒤에서 받쳐주는 존재(일종의 고문 역할)라 할까나.
사실 자세히 보면 연출상 취급이 리액션 캐릭터라 그렇지, 실제 역할은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장군 시절에는 왕기로부터 '육장의 제멋대로인 전쟁에 따른 틈'을 보완해주는 수완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고 감사까지 받았으며, 이후 문관으로 전향한 뒤에는 치수공사 등에서 큰 성과를 내서 좌승상으로 승진했다.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치수공사는 미친 듯이 중요한 사업으로, 이 분야에서 공을 세운 것은 정치적으로 승상으로 승진하기에 충분한 명분이 될 정도다.[3] 무엇보다 외지인 출신에 아무 세력, 힘도 없었던 어린 영정을 보호해서 성교(실질적으로는 갈 승상), 여불위 등 모든 정치 싸움에서 승리하고 영정이 진 조정의 내부를 휘어잡는 것은 창문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최신화(646화)에서 작품 초기의 영정이 처한 상황보다 덜 나쁜 조나라의 정치 싸움에서 패한 이목조차 지처서 카이네 앞에서 약한 소리를 뱉을 정도라는 것을 볼 때, 무력, 지력, 정치력 모든 것이 최상급 인재는 아닐지라도, 일정 이상의 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 뚝심이 강해서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상황일지라도 견뎌내고 마지막에 서 있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창문군은 '''천재 타입은 아니지만 문무겸비에 양 쪽 다 경험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뚝심이 강하다.''' 일국의 승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인재이며,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결과긴 하지만 천재 타입에 경험치는 상대적으로 적은 창평군과 좌우승상을 나눠먹은 것이 결과적으로는 진에 큰 이익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창평군도 창문군을 존중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작품에서 창평군은 전략회의가 있을 때마다 창문군과 꼭 같이 한다. 창평군이 굳이 의미 없는 배려를 하는 타입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장 경험과 식견이란 게 천재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책략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 실제 이 부분에서 창문군의 역할은 영정의 말에 짧게 응답하거나 리액션이 전부. 특히 해당 화의 마지막 두 페이지는...[2]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여씨사주 중에서 군략의 천재라 할 수 있는 창평군이 우승상으로 건재하면서 군 총사령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있고, 법이나 행정능력에 있어서는 이사가 있으며, 작중 현 시점에서는 이미 사망해 퇴장 했지만, 외교 분야에서는 채택이 있는 점을 감안하자면... 그래도 17권의 진조동맹 체결 당시 신, 하료초와 나눈 영정의 대사를 통해 이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치수공사를 맡아 큰 성공을 거둬 공을 세웠다는 사실이 언급된다.[3] 아무리 창문군이 대왕 일파의 중심 인물이라도 그에 상응하는 명분 없이 승상으로 올린다면 정치 싸움에서는 오히려 불리해진다. 즉 여불위의 압도적인 세력과 정쟁 중이지만 창문군을 좌승상으로 꽂아넣는 데 공개적인 반박이 불가능할 만큼 치수 사업을 말끔하게 해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사조차 좌승상 자리를 놓친 것을 불쾌해하지만 대놓고 반박하지 못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