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이(동이)

 


[image]
[image]
어린시절의 동이
성인의 동이
1. 개요
2. 생애
3. 평가


1. 개요


MBC사극 동이의 주인공.
배우는 어린시절의 동이는 김유정이고 다 큰 동이는 한효주가 연기했다. 일본판 성우는 카토 시노부/아역은 야지마 아키코.
숙종후궁이자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그린 동이의 주인공.
하지만 숙빈 최씨에 대한 기록 자체가 적은 데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모습이 실존 인물 숙빈 최씨와는 많이 다르기에 숙빈 최씨를 모델로 한 '''별개의 인물로 생각해야 한다.''' 실제 역사와 다른 행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천한 출신에 내명부 정1품인 빈의 자리까지 올랐다는거나, 아들이 왕, 그것도 조선 역사상 손꼽히는 명군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까지는 실제 역사와 같지만, 캐릭터의 성격을 보면 실제 역사에선 비천한 신분과 궐내 입지가 적다는 점 때문에 극도로 말과 몸가짐을 조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과 달리 천비시절부터 숙빈 시절까지 여기저기 안 끼는 데가 없을 정도로 오지랖이 넓고, 성격뿐 아니라 실제 사건에서도 숙빈 최씨의 일대기와는 동떨어진 면을 많이 보인다.
또한 일각에서 오해하고 잘못 해석한 출궁설을 받아들여 숙빈 최씨가 이현궁으로 출궁하는 것으로 나오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숙빈이 인원왕후의 등장이후 궁 밖으로 나갔다는 역사적 근거는 전무하다. 숙빈 최씨가 궐을 나갔을 거라 추측하는 근거는 이현궁을 환수할 때 등장하는 숙빈방이라는 표현 때문인데 조선왕조실록 숙종편을 보면 장숙원방, 장귀인방, 숙의방이란 표현이 등장하며 비변사등록에도 영빈방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숙빈방이란 표현은 숙빈이 기거하는 곳이 아닌 숙빈의 창고 또는 재물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숙빈이 인원왕후 때문에 궐을 나갔다는 명확한 기록은 없는 반면 숙빈 최씨 신도비에 숙빈 최씨가 1716년에 병을 얻어 궐을 나갔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임방이 지은 숙빈 최씨 제문 역시 숙빈 최씨가 말년에 병을 얻어 궐을 나갔다고 기술하고 있다.

2. 생애


검계라는 천민들의 비밀 조직의 수장인 최효원의 여식으로 태어났다.[1] 남인들의 권력투쟁이 있을 때 검계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반역죄인으로 몰렸기에 아버지와 오빠를 잃었으며, 그 음모를 밝히고자 하는 마음에 궐에 들어가 "천동이"란 이름의 장악원의 여종으로 살게 되었다.
그렇게 여종으로 지내다가 장 상궁에 대한 모함을 밝히는 과정에 어쩌다가 말려들어 결과적으로 숙종 및 장 상궁과 안면을 트게 되고, 그 이후 이어진 장 상궁에 대한 모함까지 해결하면서 내명부궁녀로 신분 상승을 이룬다.
하필 내명부에서도 입지가 큰 감찰궁녀로 낙하산을 타는 바람에, 천비 주제에 쉽게 감찰궁녀가 된 동이를 질투하는 동료들과 그를 못마땅히 여기는 상궁들에 의해 궁녀가 되자마자 부당한 조건으로 시험을 치르게 되어 내쳐질 뻔 한다. 사실 그러한 반응들이 돌아오는 것도 당연한 것이, 여타 감찰궁녀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갖은 교육을 받고 시재를 통과하며 엄한 규율 속에서 지금의 신분을 이룬 것인데 동이는 장 상궁의 연줄로 특례 받고 들어온, 신분까지 천한 노비라서 동이가 감찰궁녀가 되는 것은 감찰부 모두가 천비와 같은 수준으로 격하되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동이를 작정하고 내치려는 유 상궁의 모략에 의해 위기를 겪게 되지만 그 비겁한 술수를 못마땅히 여긴 인현왕후가 도와줌으로써 이때 처음으로 인현왕후와 안면을 트게 된다. 이후 타고난 재주와 비상한 머리, 든든한 조력자들 덕분에 사실상 감찰부의 에이스로 성장하지만 그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장 희빈이 중전 인현왕후를 모해하려 한다는 정황을 표착하게 된다. 장 희빈을 마음으로부터 존경한 동이는 그럴 분이 아니라며 장 희빈의 무고함을 밝히려 애쓰나, 오히려 죄를 짓고도 뻔뻔스럽게 대응하는 장 희빈의 태도에 실망하여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면 '자비를 베풀어' 너를 다시 감싸주겠다"는 장 희빈의 손길마저 내치며 그녀와 적대 관계가 된다.
인현왕후가 폐비된 후에 장희빈의 음모를 밝혀내려고 조사하던 도중 표창에 맞고 온갖 고생을 한다. 자기를 구해준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도망치고 다시 궁에 들어가서 무수리로 지낸다. 그리고 마침내 31회에 승은상궁의 자리에 오르고 장희빈을 중전 자리에서 쫓아내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자신은 정식 후궁인 종4품 숙원 자리에 올라서 첫아들 영수를 낳고 승승장구하는듯 했지만 홍역으로 영수를 잃고 어렸을 적 검계의 수장인 최효원의 여식이라는게 밝혀져서 후궁(숙원)의 신분만 유지한 채로 모든 예우를 박탈당하고 사가로 쫒겨난다.(작중에선 안치후궁이란 표현을 썼다.) 이전 편집본에선 폐비라는 표현을 썼는데 폐출이 되었다면 동이가 양반을 훈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단 사가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리고 폐비는 폐출된 왕비를 뜻하므로 폐비란 표현보던 폐출되었다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
사가에서 금이를 낳은뒤 6년후, 동이의 아들 금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숙종은 이제 다시 동이를 재입궁시켜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다시 동이는 화재에 휘말려서 위기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어쨌든 다시 숙원으로 돌아오고 얼마 안되어서 종2품 숙의의 자리에 오른다. 계속 장희빈과 대적하다가 인현왕후가 죽고 동이는 마침내 정1품 숙빈의 자리에 오른다. 이때까지 중전의 자리는 어째서인지 계속 공석이다. 장희빈의 음모가 모두 밝혀지고 장희빈은 갈 데까지 가려는 심정으로 동이에게 자객을 보내고 궁 안의 경비가 어찌나 허술한지 동이의 아들을 보필하는 사람이 궁녀 2명밖에 없다. 금이가 칼에 맞을 위기에 처하자 동이가 감싸는데 이 과정에서 동이가 칼에 맞는다. 그런데 분명 동이는 등을 칼에 베였는데 상처를 치료할때는 가슴에서 피가 나온다.
장희빈은 마지막까지 고고함과 품위를 지키고자 사약을 청하고 마침내 길고 길었던 장희빈과의 싸움이 끝난다. 이후 동이는 중전이 될 자격이 충분했지만 장희빈이 후궁에서 중전 자리에 올라서 생긴 비극이 무엇인지 잘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후궁은 중전이 될 수 없다는 법을 만들기를 숙종에게 청한다. 그래서 새롭게 인원왕후가 중전으로 들어오고 인원왕후는 궁의 실세인 동이를 잡아보겠다고 동이와 척을 지게 된다. 그런데 중전이 후궁의 잘못을 지적하면 후궁은 잘못을 인정하고 더욱 노력하는 게 정상인데, 동이는 장희빈에게는 함부로 그러지도 못했으면서 인원왕후에게는 똑같이 대든다.
히든보스 장무열까지 축출하고 인원왕후와의 사이도 원만해진 동이는 숙종에게 옛날부터 자기는 꿈이 있었는데 천민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고 스스로 궁밖의 이현궁으로 나가 살겠다고 청한다. 이후 금이의 양육은 인원왕후가 맡게 되고 이현궁의 동이는 천민을 도와주는 것이 꿈인 자기의 꿈을 마음껏 이루고 살며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다.[2]
사는 것 자체가 정말 생존의 신이다. 갖은 협박과 납치를 당하고 고문까지 당할뻔하고 심지어 포구 물속에 수장 당하기도 하고, 표창에 맞고, 화재에 휘말리기도 하고 자객의 칼에 맞아 중태에 빠지기도 했으니...

3. 평가


전형적인 이병훈PD 사극 여주인공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 뼛속까지 선인,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 영민한 머리, 정의로움, 겸손함 등등... 한마디로 먼치킨 캐릭터. 대장금의 장금, 이산의 송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같은 주인공의 지나친 설정몰빵은 오히려 시청자들로 하여금 거부반응을 일으킨 측면이 있었고, 차라리 입체적 면모를 보이는 장희빈 캐릭터가 더 좋다고 하는 시청자들도 많았을 정도였다. 또한 연기력 측면에서도 최동이를 연기한 한효주보다 장희빈을 맡은 이소연의 연기 내공이 더 빛났기 때문에 더 그랬다.
지나치게 캐릭터 미화를 해버린 탓에 평면적으로 묘사되어버리고 말았는데, 후반부에 이르고 연잉군을 출산하게 되어 어머니가 되면서부터는 조금 더 강단있고 설득력있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차라리 연잉군의 어머니가 된 후로부터 장희빈과 대립하고 내적 갈등을 겪는 등 좀 더 캐릭터에 매력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1] 최효원은 실제로 숙빈 최씨의 아버지로 후에 영의정으로 추승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실제로 검계의 수장이었다는 말은 아니고''' 기록에 남은 최씨의 아버지에게 이름을 따온 것.[2] 이 때 동이가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왕위에 오른 연잉군이 숙빈의 묘를 찾는 것으로 드라마가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