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드라마)

 

'''동이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연기대상'''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드라마'''
선덕여왕
(2009년)

'''동이
(2010년)'''

최고의 사랑
(2011년)


이병훈 PD 사극 연출작
이산
(2007년 9월 17일 ~ 2008년 6월 16일)

''' 동이 '''
(2010년 3월 22일 ~ 2010년 10월 12일)

마의
(2012년 10월 1일 ~ 2013년 3월 25일)
'''MBC 창사 49주년 특별기획 : 동이'''
[image]
'''방송 시간'''
매주 월요일, 화요일 밤 9시 55분
'''방송 기간'''
2010년 3월 22일 ~ 2010년 10월 12일
'''방송 횟수'''
60부작[1]
'''채널'''

'''제작사'''
리더스콘텐츠컴패니, 이세중
'''연출'''
이병훈, 김상협
'''극본'''
김이영
'''시청률'''
최고 29.1%, 평균 '''23.0%'''
'''출연자'''
한효주, 지진희, 이소연, 배수빈, 정진영
'''링크'''
공식 홈페이지
'''국내등급'''
15세 관람가
1. 개요
2. 상세
3. 등장인물
4. 사실과 다른 점
5. 수상내역
6. 시청률
7. 평가


1. 개요



2010년 3월 22일부터 동년 10월 12일까지 방영한 대한민국사극. 방송사는 MBC.

2. 상세


허준, 대장금, 상도, 이산 등으로 유명한 이병훈의 신작.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일대기를 그린다.
장희빈인현왕후에 비해 제대로 알려진 것이 적어 매체마다 조연으로만 오르내렸던 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고, 이로 인한 새로운 해석이 기대 되었다. 실제로 장희빈은 비슷한 소재의 타 사극들과는 차별성을 띤 인물로 그려졌다.
초반의 장희빈, 장옥정(이소연 분)은 천한 신분에도 높은 뜻을 지닌 강하고 영리한 여성으로 그려졌으며 후에 그녀의 적이 되는 주인공 동이도 그녀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 숙종의 마음이 동이에게 가는 것을 바로 옆에서 실시간으로(...)[2] 보게 되고 중전이 되기 위해 손을 더럽힌 후 본격적으로 악역이 된다. 하지만 악역이 된 후에도 천박하고 패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도도한 포스를 뿜어내며 찬사를 받았다.
다만 장희재는 악랄함과 얌체스러움을 극대화하여 해당 배우인 김유석이 사람들에게 쓰레기같은 놈 취급을 받을 정도로 연출이 훌륭했다. 하지만 다른 장희빈 시리즈의 장희재들[3]에 비해 박력은 떨어졌다.
그 외에 장희빈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숙종이 아닌 능동적인 숙종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상하고 선량하며 영리한, 그야말로 훌륭한 왕으로 그려지기에 숙종 캐릭터가 의도치 않게 미화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사환국과 갑술환국이 단순한 당쟁의 결과물이 아닌, 숙종의 의도된 숙청이었다는 주류학설에 맞춰 작중에서의 숙종도 중신들 머리위에서 당쟁을 이용해 환국을 일으키는 정치꾼다운 모습도 보인다.
여담으로 같은 소속사 때문인지, 한효주배수빈찬란한 유산 이후 또 다시 만나게 되었다.[4] 거기다 극중 관계나 포지션도 비슷하다? (고은성-동이, 박준세-차천수) 원래 배수빈이 맡은 차천수 역은 숙종과 연적이 되는 서브남주였지만, 숙종과 동이의 멜로가 강조되면서 동이의 측근 1 정도로 전락했으니 안습. 이병훈 PD도 종영 후 검계 쪽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깨방정 숙종 캐릭터가 대박을 치면서 차천수의 비중이 줄어든 것 때문에 배수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이병훈 PD 작품인데 이산에서는 노론악의 축이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노론이 동이의 지원군 역할을 하는 입장이라는 거다. 물론 그다지 도움은 안 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드라마 속 정치 구도는 실제 숙종 시대 정치 구도와 많이 다르게 묘사된다.
또한 스리슬쩍 넘길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대궐에서 애지중지하던 숙빈 최씨의 옥가락지를 실제 소품으로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승은상궁이 된 이후부터 옥가락지를 끼기 시작하며, 이는 같은 이병훈 PD의 작품인 이산[5]과 시간선이 이어짐을 보여주는 장치.
동이와 이산의 포지션이 바뀔 경우 한 쪽이 극대화되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이보다 더 작아진다는 것도 흥미롭다. 게다가 동이에선 서인이 선역이었으나 이산에선 완전한 악역이니...
2010년 10월 12일, 60회로 종영하였는데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특히 해외에선 대장금과 함께 가장 많은 글로벌 팬을 거느린 양대사극으로 통한다. 최고시청률은 29%, 꾸준히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물론 이병훈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지만, 2010년 전후로 IPTV 등 다시보기 영역이 티비 시청률을 잠식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던 시기라 단순비교는 의미가 없다.
여담이지만, 동이에서 의금부 포졸의 옷은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호위무사의 옷을 그대로 입혔고 지방 관아 포졸의 옷 역시 선덕여왕에서 사량부 옷을 입혀 다른 사극의 복장과는 차별화를 뒀다. 적어도 다른 사극의 포졸복은 일명 '''국민 포졸복'''이라 하여 흰 한복 겉에 검은 조끼만 달랑 입고 신발도 짚신인 반면 MBC 사극의 포졸들은 이렇게 포졸인데도 비교적 화려한 옷을 입고 신발도 목화를 신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가 '외주제작사가 체불한 소속 연기자들의 출연료를 MBC가 대신 지급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MBC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2010년 9월 3일부터 한예조 소속 연기자들이 드라마 촬영거부에 들어갔다. 6일 오전 11시 30분 경 타결돼 촬영이 시작됐으나 당일 밤 10시에 방송까지는 약 10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용인 세트장에서 서울 방송국까지 테이프를 옮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생방송에서나 쓰던 '''위성중계차(SNG)를 동원했다.''' 그리고 정규방송에 성공했다. 녹화방송인 드라마를 송출하기 위해 중계차를 동원한 것은 국내에서 최초인듯.
여담으로 2010년 초에 MBC가 총 파업에 들어갔을 당시 이쪽에도 파급이 약간 있었던 것인지 12화부터 본편이 끝나고 다음회 예고로 넘어가기 전 붉은 꽃잎이 휘날린 뒤 배경이 바뀌는 효과가 사라지고 그냥 해당 회차의 마지막 장면[6]을 정지시켜 점점 클로즈업되게만 해놓고 이 뒤로 주역들의 사진이 나오는 장면을 그냥 잘라서 이어붙여놓아 상당히 어색한 상태로 한동안 방송이 되었었다. 직접 확인해보자. 이러한 문제는 총 파업이 끝난 뒤인 17화 방영분부터 원래의 연출로 돌아왔다. #
MBC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유튜브 채널에 전 편이 업로드 되어있다.

3. 등장인물




4. 사실과 다른 점


이병훈 PD의 허준, 대장금, 서동요 등은 기록이 많이 남지 않아 상상력이 동원되었지만 숙빈 최씨의 경우, 실록에 기록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사실과 다른 점이 상당하다. 또한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는 PD의 특성으로 인현왕후서인, 노론을 선으로 설정하여 엄청난 미화를 희빈 장씨남인을 악인으로 설정하여 매우 많은 가상범죄를 지어냈다.
  • 숙빈 최씨의 인품에 관한 지나친 미화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제외하면 숙빈은 여태 모든 미디어 매체에서 꽤 천연덕스럽고 중전 다음가는 현숙한 여자로 그려진다. 드라마 동이도 가끔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면모가 아예 없지 않으나 그 모든 게 계략적이기보단 그저 주변 인물들이 꾸려주는 서사에 맞춰 움직인다는 특성을 보인다. 숙빈이 숙종에게, '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고자질한 사실'은 무려 야사도 아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드라마에 나오지 않고 희빈 장씨의 암살미수로 인한 철저한 피해자로 그려진다. (후술하겠지만 희빈 장씨의 암살 미수 역시 사실이 아니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일을 고한 것으로 보아 실제 숙빈의 인성도 그리 좋지 못했다는 게 방증된다.
극중에서처럼 동이(숙빈)가 장악원의 노비 일을 하다가 감찰부의 궁인으로 승격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씨남정기(소설)에 의하면 숙빈이 어린 시절 인현왕후의 폐위를 안쓰러워하는 모습이 숙종의 눈에 밟혀 후궁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말 그대로 소설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니다. 실록에서는 그저 궐 내 무수리일을 하다가 숙종의 승은을 입은 것이 전부이다.
  • 명성왕후 승하 시기와 사인
명성왕후는 1683년 12월 5일(이하 모두 음력)에 승하했고[9] 장희빈은 명성왕후 사후 3년상이 끝나고 나서 재입궁하며 인현왕후는 장희빈이 원자(후일 경종)를 낳고 난 후 1689년 5월에 폐비된다. 헌데 드라마에서는 벌써 고인이 되신 대비가 멀쩡히 살아 있다. 또한 명성왕후는 숙종의 두창을 고치기위해 무당의 말을 듣고 치성드리고 한겨울에 찬물로 목욕한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되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장희재가 독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 가체문제
동이는 17~18세기 조선 숙종 시대가 배경인데 실제로는 첩지머리가 아닌 가체를 해야 맞다. 가체에서 첩지머리가 된것은 1756년(영조 32년)1월 16일이다[10]. 그러나 이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지금까지 여러 사극을 찍으면서 여성 출연진들이 가체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을 겪어온 이병훈 PD가 여성 출연자들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사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첩지머리를 한 것.# 사실 가체가 굉장히 무거워서 그 옛날 조선에서도 무거운 가체로 인해 목을 다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니 지금이라고 다르진 않을 거다. 게다가 이후의 사극들은 동이처럼 여성 출연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조선 전기 배경, 조선 후기 배경을 가리지 않고 가체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선 동이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 상황. 다만 최근 중국 사극에서는 속이 빈 가벼운 가체가 개발되어 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그런 빈 가체를 만들어 여성 출연진들도 배려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사실과 맞지 않은 점도 피할 필요가 있다.
  • 호칭문제
극중 연잉군을 나인들은 왕자마마, 숙빈최씨는 왕자라 하거나 휘를 막 부르는데 정말 그랬다간 큰 문제가 생긴다. 후궁은 자기 소생이라 해도 왕손에게 휘를 부르거나 하대를 할 수 없다. 일단 왕족이든 뭐든 휘를 함부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큰 실례였던 사회다. 왕손들은 나자마자 품계를 초월한 신분이지만, 후궁은 높아봐야 정 1품이다. 숙빈최씨도, 나인들도 왕자 아기씨라 불러야 한다.
  • 인현왕후의 죄목
인현왕후의 죄목은 칠거지악 중 희빈 장씨를 투기한 것, 아들이 없는 것, 시부모를 기만한 것, 왕에게 거짓을 고한 것, 궁인들에게 붕당을 일으켜 혼란을 야기한 것, 원자(경종)가 태어났을 때 노여워한 것, 영빈 김씨가 퇴궁당할 때 위로는커녕 재촉한 것 등이지, 희빈 장씨남인이 모함을 한 것이 아니다. 또한 남인 역시 인현왕후의 폐위에 반대하였다. 또한 인현왕후의 복위는 간신에게 모함당한 것이 아니라 조강지처에게 폐위라는 처분이 너무 가혹하다라는 동정으로 복위가 된 것이다.
  • 희빈 장씨의 죄목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모함하지 않았으며 명성왕후를 독살하려하지도 않았다. 또한 왕세자의 고명을 받으려 국가 기밀을 빼돌린 적도 없으며 숙빈 최씨나 연잉군을 죽이려고 든 적도 없었다. 이 드라마에서 장희빈의 대부분의 죄목은 허구이다. 또한 장희빈의 강등은 죄가 있어 폐위된 것이 아니라 전왕비인 인현왕후가 복위됨에 따라 국모가 둘일 수 없으므로 국법의 우선순위에 따라 후궁으로 밀려난 것이다. 또 희빈이 직접 나서 숙종에게 사약을 내려달라고 청한 적은 없으며 실제 죄목은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었다.
  • 장렬왕후와 영빈 김씨와 명빈 박씨의 부재
언제나 장옥정의 편이 되어준 숙종 대의 대왕대비 장렬왕후, 숙빈과 마찬가지로 인현왕후를 많이 돕던 영빈 김씨, 숙종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 연령군의 어머니인 명빈 박씨가 각종 주요 왕실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 조정 인물들의 변경
서인의 수장 송시열, 김수항, 남구만이나 남인의 수장 민암같은 인물들이 대다수 드라마상의 가상인물들로 변경되었다.
  • 숙빈 아버지 최효원 사망시기
검계의 수장이었던 숙빈의 아버지 최효원은 드라마내에서 동이가 10살 무렵에 죽는데 실제 숙빈의 아버지 최효원은 검계의 수장도 아닐 뿐더러 1672년 숙빈이 세 살 때 사망한다.[11] 그리고 검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검계는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천민들을 돕는 의적이 아닌 살인, 강도, 약탈, 부녀자 겁간 등 형사사건을 일으키는 요즘의 조직 폭력배나 다름없는 단순 악질 범죄집단이었고 영조 때까지 출몰해 영조의 어그로를 끌었다...
드라마에서 숙원 첩지를 내리는 사람이 인현왕후로 나오는데 역시 사실과 다르다. 실제 숙빈이 숙원이 된 시기는 1693년 4월 26일로 당시 중전은 인현왕후가 아닌 장희빈이었다. 인현왕후는 당시 폐비였고 중전으로 복위된 때는 1694년 6월 1일이다. 드라마에서 동이는 연잉군과 입궁 후 숙의로 책봉되고 인현왕후 사후에 숙빈으로 책봉되나, 실제 숙빈은 인현왕후 복위 다음날인 1694년 6월 2일 숙의에 책봉되고 1695년 6월 8일 귀인에 진봉되고 1699년 10월 25일 단종대왕 복위를 축하하는 기념으로 정1품 빈으로 책봉.

  • 숙빈의 첫 아들 영수(永壽) 사망 시기
숙빈의 첫 아들이자 숙종의 셋째 아들인 영수(永壽) 왕자는 1693년 10월 6일 태어나 1693년 12월 13일 두 달만에 사망한다.
  • 숙빈의 둘째 아들 영조 탄생과 입궁시기
숙빈의 둘째 아들 영조는 1694년 9월 13일 창덕궁 보경당에서 태어났다. 검계 문제로 쫓겨났던 동이가 사가에서 연잉군을 출산하는 장면이 오류로 지적받는 이유가 이것. 그리고 연잉군이 7~8살쯤 입궁하여 봉작받고 동이도 숙원에서 숙의로 책봉되는데 실제 영조는 보경당에서 태어나 1699년 12월 24일 연잉군으로 봉해지고 19살이던 1712년 2월 12일에야 출합한다.
  • 숙빈 최씨의 중전 추대
드라마에서 숙종은 인현왕후 사후 숙빈을 중전 추대할 생각이 있었고 동이의 요청으로 후궁이 중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선포하는데 실제로는 장희빈 사사 전날인 1701년 10월 7일 선포하였다. 또한 숙종은 숙빈을 중전에 올릴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희빈 사후 숙빈에 대한 견제책으로 1702년 인원왕후와 가례를 올렸으며 내명부를 진봉하며 일신했고 숙빈은 궁이 아닌 숙빈방 이현궁에서 지내게 된다.[12] 다만 숙종이 숙빈을 중전으로 책봉하겠다고 하자 숙빈이 그 말이 너무 황송하고 두려워 한겨울에 뜰에 엎드려 사양했다는 야사도 전해지고 있으므로 드라마는 이 야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두 여인 둘 다 노론의 지지를 받는 쪽인즉 같은 정치 성향의 기반으로 지지받고 있었기 때문에 후반부에 인원왕후와 숙빈 최씨가 대립하는 에피소드는 사실상 픽션 중에서도 배경조차 고려하지 않은 픽션에 가깝다.

5. 수상내역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수상자(작)'''
2010년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여자 주연 연기상
한효주
남자 조연 연기상
정동환
MBC 연기대상
대상, 인기상
한효주
남자 최우수상
지진희
깨방정상
지진희
여자 아역상
김유정
남자 아역상
이형석
남자 황금연기상
김유석
여자 우수상
이소연
여자 신인상
박하선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드라마


2011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한효주

6. 시청률


(이때 당시 월화드라마 중에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다.
'''회차'''
'''방영일'''
'''시청률'''
'''회차'''
'''방영일'''
'''시청률'''
'''1회'''
2010.03.22.
'''11.6%'''
'''31회'''
2010.07.05.
26.1%
'''2회'''
2010.03.23.
11.6%
'''32회'''
2010.07.06.
27.5%
'''3회'''
2010.03.29.
12.7%
'''33회'''
2010.07.12.
26.3%
'''4회'''
2010.03.30.
13.6%
'''34회'''
2010.07.13.
27.4%
'''5회'''
2010.04.05.
14.7%
'''35회'''
2010.07.19.
24.3%
'''6회'''
2010.04.06.
15.8%
'''36회'''
2010.07.20.
25.3%
'''7회'''
2010.04.12.
17.9%
'''37회'''
2010.07.26.
24.4%
'''8회'''
2010.04.13.
18.8%
'''38회'''
2010.07.27.
25.7%
'''9회'''
2010.04.19.
19.2%
'''39회'''
2010.08.02.
21.5%
'''10회'''
2010.04.20.
18.2%
'''40회'''
2010.08.03.
21.9%
'''11회'''
2010.04.26.
21.0%
'''41회'''
2010.08.09.
22.7%
'''12회'''
2010.04.27.
21.6%
'''42회'''
2010.08.10.
21.3%
'''13회'''
2010.05.03.
20.0%
'''43회'''
2010.08.16.
22.7%
'''14회'''
2010.05.04.
19.9%
'''44회'''
2010.08.17.
21.6%
'''15회'''
2010.05.10.
25.1%
'''45회'''
2010.08.23.
24.3%
'''16회'''
2010.05.11.
26.2%
'''46회'''
2010.08.24.
25.1%
'''17회'''
2010.05.17.
25.0%
'''47회'''
2010.08.30.
27.3%
'''18회'''
2010.05.18.
23.2%
'''48회'''
2010.08.31.
27.4%
'''19회'''
2010.05.24.
24.6%
'''49회'''
2010.09.06.
27.7%
'''20회'''
2010.05.25.
22.4%
'''50회'''
2010.09.07.
25.3%
'''21회'''
2010.05.31.
23.0%
'''51회'''
2010.09.13.
24.5%
'''22회'''
2010.06.01.
24.2%
'''52회'''
2010.09.14.
24.5%
'''23회'''
2010.06.07.
23.9%
'''53회'''
2010.09.20.
22.7%
'''24회'''
2010.06.08.
25.8%
'''54회'''
2010.09.21.
19.7%
'''25회'''
2010.06.14.
27.4%
'''55회'''
2010.09.27.
24.4%
'''26회'''
2010.06.15.
'''29.1%'''
'''56회'''
2010.09.28.
24.4%
'''27회'''
2010.06.20.
26.9%
'''57회'''
2010.10.04.
22.2%
'''28회'''
2010.06.21.
28.0%
'''58회'''
2010.10.05.
22.6%
'''29회'''
2010.06.27.
28.0%
'''59회'''
2010.10.11.
24.4%
'''30회'''
2010.06.28.
28.7%
'''60회'''
2010.10.12.
24.3%

7. 평가


'''로맨스 사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지만, 정통 사극이나 고증,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보면 살짝 아쉬움도 묻어나는 작품'''
초중반부 까지 이어지는 정체를 숨긴 허당스러운 왕과 당돌한 천인 출신 여성의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이 드라마의 백미. 언제나 근엄 일변도로 묘사되던 기존 사극의 전형적 틀에 박힌 이미지의 왕들과는 달리, 보다 친근하고 인간적이며 따뜻한 모습으로 그려진 숙종의 캐릭터가 천방지축 동이와 잘 어우러져 그동안의 사극에선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묘미를 자아냈다. 또한, 그동안 수많은 사극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악하고 독하게만 묘사되던 희빈 장씨 캐릭터에 총명함과 품위를 선사한 최초의 사극이기도 하다.
숙종과 동이의 로맨스가 강조되며 극이 다소 가볍게 흐르는 부분과 사실과 다른 갖가지 역사왜곡 관련 논란들이 아쉬운 건 사실이나, 역사극이라 하더라도 결국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드라마라는 예술적 창작에 자꾸 역사적 팩트와 고증이라는 잣대만 들이대며 평가절하 하려는 우를 범하는 건 옳지 않다. 창작물은 창작물로 바라보고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 관점 내에서만 평가받는 게 맞다.

[1] 본래 50부작이었으나 10회분 연장했다.[2] 한창 숙종의 마음이 장희빈을 떠나 동이에게 옮겨갈 무렵 숙종을 만나러 간 장희빈이 숙종이 동이와 둘이서 노닥거리는 모습을 본게 무려 세 차례나 된다.[3] 김혜수표의 장희재는 다름아닌 선덕여왕에서 김서현을 연기했던 정성모가, 정선경표의 장희재는 길용우가, 또한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에서는 다름아닌 이덕화 가 배역했다. 또한 동이 촬영 이후로부터 3년 후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원래는 푸른거탑의 싸이코 상병 역을 맡은 김호창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으나 본인이 거절해서 고영빈으로 대체했는데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장희재는 문무겸비의 인물로 묘사되었다.[4] 여기에 두 연기자 모두 이소연과도 엮였다. 한효주는 봄의 왈츠에서, 배수빈은 결혼합시다천사의 유혹에서 각각 이소연과 함께 연기했다.[5] 《이산》에서 영조(이순재)가 어머니 숙빈 최씨(한효주)의 옥가락지를 손자 정조(이서진)의 연인 의빈 성씨(한지민)에게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6] 이런 마지막 장면은 보통 동이가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놀라는 장면이 대다수이다.[7] 본명은 '정상이'라고 언급된다.[8] 본명은 '봉변이'라고 언급된다.[9] # [10] #[11] # [12] 1704년(숙종 30년) 4월 1일 ,1711년(숙종 3년) 6월 22일 조선왕조실록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