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화

 




崔相和
1931년~1987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 해군의 제독. 오경환 제독의 뒤를 이어 15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2. 생애


1931년 김천시 출생.
1951년 해군사관학교 9기로 입학했고 미국 유학을 갔다왔으며 1955년에 졸업, 임관했다. 영관급 장교 시절에 고창함장, 대구함장 등 함장을 거쳤고 1981년에 현재의 제3함대에 해당하는 제3해역사령관에 올랐다. 1982년에는 해군본부 정보참모부장을 지냈고 84년까지 한국함대사령관[1]을 지냈다. 1984년에 해군참모총장에 올랐고 1986년에 전역했다. 최종계급은 해군대장이었고 후임자는 김종호 제독. 그 뒤의 후임자도 김종호 제독이었다. 동명이인.
그의 임기 때까지 해병대사령관은 제2해군참모차장이었고 해군 항공대가 해군항공이라 불리는 것처럼 해군해병으로 해군의 한 병과에 불과했는데[2] 해병대 출신들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이기백전두환 대통령 등에게 [3] 착실히 로비를 하여 해병대사령부의 재창설을 끌어냈다. 해사 11기 출신으로 당시 제2참모차장인 성병문 중장이 이 일을 주도했다. 최상화 총장은 이 일에 반대했지만 결국 막지는 못 했다. 1987년 예편하였다.
해상작전분야의 전문가였으며 1983년 8월 울릉도 근해에서 북괴의 무장간첩선 모선을, 1984년 2월에는 부산 다대포침투간첩선을 격침시키는데 성공했다.
함대사령관 시절에 해군 내 개신교 시설 건립을 돕기도 했다.[4]
신장은 178cm로 당시 평균신장보다 훨씬 큰 편이었다.

[1] 뒷날의 해군작전사령부[2]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해병대를 해체해 해군에 완전히 복속시켰다. 5.16 군사정변 초기만 해도 해병대가 적극 쿠데타에 개입한 탓에 해군참모총장도 못 달던 대장을 해병대사령관들이 다는 일도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조절에 들어가 해병대는 사라졌다.[3] 해군사관학교 골키퍼로 같은 골키퍼인 전두환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전두환의 독재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진 않은 듯 하다[4] 여담으로 해군 군종은 개신교가 초강세이다. 초대 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 제독이 개신교도였던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