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

 




'''해병대사령부'''
'''海兵隊司令部'''
'''Headquarters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image]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창설일'''
1949년 5월 5일
1987년 11월 1일[1]
'''상징명칭'''
'''덕산대(德山臺)'''
'''소속'''
[image] 대한민국 해병대
'''상급부대'''
[image] 해군본부
[image] 합동참모본부
'''규모'''
작전사령부
'''역할'''
대한민국 해병대에 대한 총괄 지휘
'''사령관'''
[image] 중장 이승도([image] 해군사관학교 40기)
'''부사령관'''
[image] 소장 백경순([image] 해군사관학교 42기)
'''참모장'''
[image] 준장 정수용([image] 해군사관학교 43기)
'''주임원사'''
[image] 원사 양병장(부후180기)
'''위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1. 개요
1.1.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
2. 역사
2.1. 창설
2.2. 6.25 전쟁
2.3. 전후
2.4. 베트남 파병
2.5. 해체
2.6. 재창설
2.7. 현재
3. 지휘부
4. 편제
4.1. 직할부대
4.2. 예하부대
5. 출신인물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6.2. 사령부가
7. 여담
8. 둘러보기

[image]
화성시 해병대사령부 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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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병대사령부직제'''
'''제1조(목적)''' 이 영은 해병대사령부의 조직과 직무범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직무)''' 해병대사령부(이하 "사령부"라 한다)는 해병대의 정책, 군사력 건설의 소요(所要) 제기, 편성, 교육·훈련, 인사, 군수 및 작전, 그 밖에 해병대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다. 해군본부 예하 부대로,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으며 서북도서방위사령부도 같은 건물을 쓴다. 해병대사령관(중장)이 지휘관이며, 해병대사령관은 서북도서방위사령관을 겸임한다.
별칭은 덕산대. 진해구의 덕산비행장(德山飛行場)에서 해병대가 처음 창설되어 이름을 덕산대라고 했다. 그리고 사령부 본청의 뒷산도 덕산이라고 부른다.
전투부대가 아닌 기행부대로 분류되어 평시 근무 복장이 근무복이었으나, 2011년 6월부터 전투부대로 분류되는 서방사가 해병대사 내에 창설되고 해병대사령관이 서방사령관을 겸직하면서 전투복으로 변경되었다.

1.1.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산하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 Combined Marine Component Command)는 지정된 한국 해병대 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지정 또는 명시된 미 해병대 부대는 한국 전구에 도착과 동시에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로부터 전구 작전통제 또는 전술통제를 받으며, 평시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사령관은 한국 해병대 사령관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시지휘권 전환을 위한 발전과 협조를 지원하기 위하여 향후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의 모든 연합사 연습 및 연습계획발전은 한국 해병대 주도로 실시하고, 전시 연합해병구성군사령관은 미 해병 장성이 수행하여 임무를 계획하고 시행한다.

2. 역사



2.1. 창설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해병대가 창설되었다. 이어서 1949년 5월 5일 대통령령 제88호로 해병대령이 공포되었다. 당시 해군에서 편입한 장교 26명과 부사관 54명, 그리고 병 300명(해군 13기에서 특별 모집한 해병대 병 1기생)으로 구성된 380명은 초대사령관 신현준 중령 지휘 아래 시작하였다. 1949년 8월 1일 장교와 부사관을 해군에서 추가로 증원받고 해군 14기 중 440명을 해병대 병 2기로 특별모집하여, 2개 대대 규모로 증편하였다. 이후 김성은부대(약 1개 대대)는 1949년 8월 29일 진주로 이동하여 약 4개월 동안 진주에 주둔하면서 치안 확보, 민심수습, 선무공작 활동 등을 전개하여 진주지역 일대에 출몰하는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2.2. 6.25 전쟁


장항·군산·이리지구에 투입되어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고 진동리지구 전투에서는 전 장병 1계급 특진의 빛나는 영예를 차지하였으며 통영상륙 작전에서는‘귀신잡는 해병대’라는 애칭을 얻었다. 특히, 낙동강 전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동년 9월 15일 한반도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에 미 제1해병사단과 같이 참가하여 북진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9월 20일부터 수도 서울 탈환작전을 감행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수훈을 세웠다. 인천에서 함정으로 원산·함흥지역으로 이동, 분전하던 해병대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하였고, 1951년 1·4후퇴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전을 실시할 때 북진하던 중 도솔산과 펀치볼 일대를 공격, 이를 탈취하여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 휘호를 하사받았다. 1951년 2월부터 동·서해안 전략도서 확보 작전을 수행하여, 휴전 뒤 서해 5개 도서를 아군의 통제 하에 두는데 기여 하였다. 1952년 3월, 중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으로 이동하여 장단(사천강)지구 전투를 1년 4개월 동안 수행하면서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격을 격퇴하고 현 전선에서 휴전을 맞이하였다.

2.3. 전후


독자적인 해병대의 장교, 부사관, 병을 양성하기 위하여 해병학교 및 해병훈련소를 기간으로 해병교육단을 창설하여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해병대식 교육훈련으로 강인한 해병을 창출하는 산실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해병 1여단과 제1상륙사단이 창설되었고 1955년 3월 26일 사령부는 서울 용산으로 부대를 이전하였다. 더불어 동해안의 여도, 모도, 사도, 황토도, 웅도, 양도부대와 서해안의 초도, 석도부대가 휴전협정에 따라 진해로 철수하여 해병 제2연대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나 백령도와 연평도에 주둔했던 서해부대는 계속 잔류하여 서해안의 5개 전략도서 방어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4년 3월 17일, 미 해병대가 본국으로 철수함에 따라 도서작전에 대한 작전권을 인수하였다. 그 뒤 서해도서 부대(1955.2.1.), 해병함대부대(1958.4.15.), 함대해병경비부대(1959. 4. 1.)로 개편되었으며, 1960년 1월 1일부로 해병도서경비부대로 증·개편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2.4. 베트남 파병


제2여단(청룡부대)을 창설하여 파월하였다. 캄란에 상륙한 청룡부대는 투이호아지구, 추라이지구, 호이안지구 전투를 수행하면서, 6년 5개월 동안 짜빈동 작전 등 작전을 수행했다.

2.5. 해체


대통령 분부사항 (1973. 5.29.) 및 해병대 운영개선에 관한 국방부 훈령 제157호(1973.7.10.)에 의거, 해병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전투부대를 제외한 해병대 사령부와 교육 및 지원부대를 해군에 통·폐합시켰다. 해군본부 내 해병참모부를 편성·운영하여 해군참모총장을 보좌하고 제2참모차장의 지시에 따라 해병대 부대의 상륙작전, 도서방어작전, 교육훈련과 교리 발전에 관한 사항을 분장하였으며, 해병대사령부 재창설시까지 해병부대를 실질적으로 지휘 관리하였다.
해군본부 일반명령 제10호에 의거 1974년 3월 11일 해군 도서경비부대를 해군 도서방어부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74년 9월 20일부로 연평도를 경비하던 2중대와 우도경비소대를 통합하여 해군 도서방어부대 예하부대로 연평부대를 창설하였고, 제6해병여단 예속의 연평부대를 실질적인 지휘가 가능 하도록 1996년 1월 1일 해병대사령부 직할부대로 예속 변경하였으며, 해군 본부 일반명령 제9호에 의거 1977년 1월 1일부로 해군 도서방어부대를 해체하고 제6해병여단을 창설하였다.[2]

2.6. 재창설


전력관리의 문제점이 나타나 상륙작전에 관한 지휘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해병대사령부를 1987년 11월 1일 재창설하였다. 이어서, 한미 군사위원회 제10차 상설회의 각서 제1호(1999.10. 2.)에 따라 연합 작전을 계획하고 실시하기 위하여 연합사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연합해병 작전능력을 통합·발전시키기 위해 연합해병사령부(CMFC)를 창설하였다.[3]

2.7. 현재


해병대사령부는 재창설된 직후부터 해군본부 부속건물인 기지병원을 개축하여 사용하던 중 재경부대 교외 이전계획(1988. 4.15.)에 의거, 경기도 서해안으로 해병대사령부 이전을 결정하고 52개 지역을 대상으로 33회 검토하여 현 위치인 화성시 봉담읍 형제산 기슭에 사령부를 신축한 후 이전하였다. 2008년 2월 20일에는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를 창설하였다. 연평도 포격전(2010.11.23.) 발발 후 정보, 감시자산 및 타격수단이 강화된 강력한 서북도서 전담 방위사령부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5도 방어를 전담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였다..

3. 지휘부


'''대수'''
'''사령관'''
'''부사령관'''
'''참모장'''
'''주임원사'''
35대
중장 이승도(해사40기)[4]
소장 서헌원(해사41기)[5]
준장 정수용(해사 43기)[6]
원사 전종익(부후167기)[7]
소장 백경순(해사42기)[8]
원사 양병장(부후180기)[9]



4. 편제


2개 해병사단과 2개 해병여단, 1개 부대(연대급)으로 전투부대가 편성되어 있으며 2개 단급(교육훈련단, 군수단)으로 이루어져 있다.[10]

4.1. 직할부대



  • 해병대 연평부대
  • 해병대 교육훈련단
  • 해병대 군수단[11]
  • 해병대 항공단
  • 해병대 특수수색대

4.2. 예하부대




5. 출신인물



5.1. 사령관





5.2. 장교/부사관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5.3. 병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6. 기타



6.1. 근무환경



6.2. 사령부가



7. 여담


  • 공식적으로 의장대가 편성되어 있으며, 국내 의장대 중 유일하게 M1 개런드를 사용하고, 계룡대와 국방부와는 달리 헬멧를 착용한다.
  • 수원시와 가까워 흔히 해군이나 해병들은 수원 사령부라고 한다. 수원역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30~40분, 해군버스나 해병버스를 이용하면 20분 만에 들어간다. 주로 봉담, 발안으로 가는 노선들이 사령부 앞을 거쳐간다. 물론 해병대 사령부 사거리에서 내려주고 한참을 걸어 부대에 들어 간후 한 없이 넓은 부대 안은 짤없이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사령부 근무 해병대원들은 외박이나 휴가 이후 1시간 정도 여유를 갖고 복귀하는 편이다.
  • 서울에서는 사당에서 8155번이나 8156번을 타면 1시간 정도 걸린다. 해당 버스 행선지 스티커에 사령부라고 쓰인 것이 이것을 말한다. 단 사당역이 알아 주는 헬게이트인건 감안해야 한다. 아니면 수원역까지 수도권 전철 1호선을 타거나 강남에서 3000번을 타고 수원역에 가서 35번이나 38번으로 갈아타거나 해군/해병버스를 타면 된다.

8. 둘러보기




[1]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사령부 해체 후 재창설[2] 제6해병여단과 연평부대는 서해 최북단 6개 전략도서를 방어하는 부대로서 적 활동을 감시하며, 경제수역 확장 및 주변 어로작업을 보장하고 있다.[3] 주요내용은 연합사의 지휘체제 하에서 선임해병사령부로 발족하고, 창설과 동시에 한국 해병대 병력을 작전통제하며, 계획된 미 해병부대들은 대한민국 도착과 동시에 연합해병사가 작전통제하고, 창설과 동시에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이 평시 연합해병사령관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었다.[4] 2019.04.08.~[5] ~2020.00.00[6] 0000~[7] 2017.09.21~ 2019.12.30[8] 2020.00.00~[9] 2019.12.31~[10] 항공단은 창설 준비중인 상태이다.[11] 기존의 상륙지원단.(약칭 상지단) 해병대 유일의 군수부대로 육군2군지사, 3군지사, 5군지사에서 배식을 받거나 지상전 장비인 전차, 자주포, 장갑차 등의 정비를 위탁한다. 그래서 오류동역에 해병대 장비들이 보이는 것. 그리고 해군 소속 부대답게 해군군수사령부와도 협력관계며 거리도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