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백
1. 개요
[image]
李基白
1924년 10월 21일 ~ 2004년 6월 2일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192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했다.
2. 활동 내역
1941년 정주 오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이 학교는 이승훈(1864)(1864년~1930년)이 설립한 학교로, 이승훈은 이기백의 종고조부, 즉 고조부의 동생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여 재학하던 중 일본군에 징집돼 만주 관동군에서 복무했다. 종전 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귀국,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편입해 1년 만에 졸업했다.
1963년부터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양사의 전해종, 서양사의 길현모, 차하순 등과 함께 '서강사학'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985년에 한림대학교 교수로 옮겨 1995년 퇴직했고, 한림과학원 객원교수와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초기 사학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민족사학을 개척하고, 한국사의 대중화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1987년부터는 이기백의 주도로 역사학자들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국사시민강좌>와 같은 역사 잡지를 펴내기도 하였는데, 처음에는 호응이 좋았으나 가면 갈수록 수익이 줄어 들었다. 그러나 잡지의 총편집을 주도한 이기백의 노력 덕분에 <한국사시민강좌>는 이기백이 사망한 후로도 꾸준히 발행하다가 2012년, 50호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한국사신론>이 있다. 실제로 <한국사신론>은 오랫동안 국사 교과서 집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책은 현재에도 한국사 개설서의 고전으로 꼽힌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강단 사학의 거두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부 재야사학 진영에서는 이병도에 이은 식민사학의 후계자라고 힐난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포지션의 책으로는 한영우의 <다시 찾는 우리역사>, 변태섭의 <한국사통론>이 있다. 이 세 권의 책은 현재까지도 역사교육과 학생이 임용고시을 준비하려면 적어도 한번쯤은 읽어야하는 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일부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도 한국사 과목 심화 보충교재로 쓰기도 한다. 과거 행정고시(현 5급 공채) 1차 과목에 한국사가 있던 시절(현재는 한능검 고급 취득으로 대체)에 한국사통론과 함께 고시생들의 사실상 필독 도서였다.
물론 현재는 역사학이 많이 발전하고 연구되어 이기백의 책은 중요도가 낮아진 책이지만 이전 세대의 역사 교육을 이해하려면 한번 쯤은 검토할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저서 <민족과 역사> 중 일부인 <민족문화의 전통과 계승>이 국어(교과) 교과서에 실려있어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기억하고 있다. 서구화된 우리 사회에서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해야 하고 우리가 보존하고 발전 계승할 전통과 인습을 구분하여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 해야하며 이는 국수주의나 배타주의가 될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외국의 선진문화 섭취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생전에 이화여대에서 강의한 녹취록을 토대로 사후에 제자들에 의하여 엮여져 <한국사학사론>이 편찬되기도 했다.
"국어사개설"로 유명한 한국어학자였던 서울대 명예교수 이기문(1930~2020)은 그의 동생이다. 형은 한국사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고, 동생은 한국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총체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국어사개설' 역시 연구의 진척과 함께 비판받는 부분도 많이 있으나, 아직까지 두 사람의 책이 강단에서 나름대로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형제가 아닐 수가 없다.
그의 수제자인 이종욱의 박사학위 논문(이종욱, <新羅國家形成史 硏究>,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1)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긍정론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수정론자인 이기백에 대해 수제자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선생님의 연구 성과들은 대부분 잘못된 것 같습니다" 라는 내용의 논문을 들고온 것. 그러나 이종욱의 논문을 읽어 본 이기백은 논리적으로 자신의 견해보다 타당한 것 같다며 흔쾌히 박사학위 인준을 시켜주었다.
마찬가지로 이기백의 뒤를 이어 서강대 한국고대사 교수가 된 이종욱 역시 자신의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의 골품제 연구를 부정하는 논문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전미희, <新羅 骨品制의 成立과 運營>,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하였는데 흔쾌히 박사학위를 인준해주었다. 이러한 학풍은 서강대 사학과의 전통이 되어, 서강대 사학과의 교수들은 학부와 대학원 수업에서 자신의 연구성과를 학생들이 비판하는 것을 거리끼기는 커녕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1]
생전에 그를 알고 지내던 교수들이나 동료들이 평가하기를 "자신이 연구가 부족하다고 여기거나 연구해도 타당성이 낮으면 확신을 가질 때까지 함부로 가설이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다른 사람이 타당한 이야기를 제시하면 그것을 거리낌 없이 수용하는 점잖으신 분." 이라고 평하는 분들이 많다. 실제로 대학원 수업 시간에서 대학원생들이 이기백 교수의 입장을 비판하더라도 그 의견이 타당성이 있으면 이기백 교수 본인이 칭찬하면서 수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학술대회의 대화록을 보더라도 이기백의 이와 같은 면모가 잘 드러난다.
총서 이기백한국사학논집(15권+별권)이 발간되어 있다.
3. 관련 문서
[1] 물론 어설프게 덤비면.... 비판할 의욕이 넘치는 것과 비판할 능력이 있는 것은 매우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