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배향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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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왕조 현종 원문대왕 대의 문신. 경주 최씨 문벌귀족 출신이며 최언위의 친손자이다.
2. 상세
경주 최씨는 옛 왕조 신라의 6두품 출신 호족 가문이다. 수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타 가문과 인연을 맺어 최고의 문벌귀족 가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최항은 이런 가문 출신으로 성종 대의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가문 좋고 실력도 좋은 인재를 발탁한 성종은 그를 중용했고, 성종의 후계자인 목종도 최항을 크게 신임하여 이부시랑(吏部侍郞)[1] 중추원사(中樞院使)[2] 까지 임명했다.
목종이 정권을 잃고 실각 위기에 처했을 때, 목종이 점 찍은 후계자 현종을 데려오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 바로 최항이었다. 최항은 채충순, 고영기, 유충정 등과 함께 숨어살던 대량원군을 데려오는데 성공했지만, 누군가의 쿠데타로 정권이 옮겨진다. 분노한 최항은 강조에게 고금에 이러한 일이 있었냐며 면전에 대고 일갈했다.
이후 고려에 중흥의 기회를 가져온 현종에게 중서문하성 서열 3위인 참지정사를 거쳐 중서문하성의 차관인 수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守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까지 임명되었다. 동시에 자작으로 임명되어 청하현을 봉지로 받고, 수정공신호를 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 관직에 마음이 없던 최항은 표문을 올려 퇴직을 요청했고, 자신의 본관에 있는 황룡사 9층 목탑 수리에 전력을 다하고 자신의 집을 사찰로 바치는 등 불교에 큰 관심을 보였다.[3]
1024년 6월, 최항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고려의 유학자였으며 불교 신자였고, 조정의 2인자 자리까지 올랐지만 반부패, 청렴함을 유지해 집은 초라하고 재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현종은 그의 죽음을 슬퍼해 유가족에게 곡식, 비단 등을 하사하려 했지만 최항의 아들은 아버지가 유언으로 받지 못하게 했다며 받지 않았다. 청백리 인생을 산 최항은 큰 존경을 받아 시호를 받고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이후 정광(正匡)[4] , 시중(侍中)[5] , 수태사(守太師)겸 중서령(中書令)에 계속 추증되어 후대의 우대를 받았다.
3. 대충 매체에서
이 시대를 다룬 유일한 드라마인 천추태후에서 등장한다. 현종의 사부 격으로 나오며 배역은 김하균[6] . 현종과 함께 피난길에 같이 오르며 특이하게도 현종을 지지하면서도 천추태후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게 그려진다.
4. 기타
- 현종의 현화사비에선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로 등장한다. 내사시랑평장사는 평장사 중 4등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