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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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8년에 세워져 1998년까지 충청남도 지역을 거점으로 존속한 지방은행. 노조는 한국노총 금융노련 소속이다.
당시 PC통신 명령어는 'go ccb'이며, 행화는 도라지꽃이다.
주요 주주는 한화그룹(16.55%), 금풍실업(11.74%)이었다.
2. 역사
2.1. 설립과 성장
1968년에 설립한 후 초기엔 충청권 전체를 사업 영역으로 삼았으나, 1971년 충북은행이 설립되자 영업구역을 충남권으로 축소하고 1975년 11월 서울지점을 개점하였다. 1972년 6월 기업공개 후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고, 1976년 을류 외국환업무, 1979년 갑류 외국환업무를 개시하였다. 1989년 중부리스(주)를 설립하였으며, 199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해외사무소를 개설하고 1991년 CIP를 제정한 후, 1995년 총수신 5조 원을 돌파하고 1996년 충남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다.
대전-충남권 자체가 경제 기반이 취약한터라 지방은행 중 실적이 하위권이었으나 1993년까지 법인세를 낼 정도로 건실했고, 1996년 48억원 흑자도 낸 바 있었다. 1998년 6월 기준으로 서울·천안·부여·공주·아산 등지에 50개 지점과 25개 출장소 등 총 75개의 영업망과 종업원 1,815명, 총자산 2조 1,468억 원, 자본금 930억 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2.2. 외환위기와 퇴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자산 건전성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1998년 6월 29일, 정부에 의해 부실은행으로 지정돼 퇴출됐고, 자산과 조직은 하나은행이 인수하게 되었다.
자행의 퇴출 소식에 충청은행 직원들은 반발하며 퇴출 취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하나은행 측의 인수작업을 방해했다. 전산 담당자들은 서버를 끄고 도주했고, 영업부에서는 각종 비밀자료를 파기 및 은닉했으며, 각 지점에서는 통신선을 절단하는 등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펼쳐졌다. 이로 인해 충청은행의 영업망은 완전히 마비되었으며, 고객들은 전재산이 동결된 채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특히 퇴출 발표 시점이 월말이었기 때문에 수표와 어음 결제, 납세, 대출 이자 납입이 시급한 고객이 많았는데, 은행 업무가 완전히 멈춰버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퇴출 사태 당시 전 직원이 반발하며 인계 작업을 거부했지만 대전 가양동지점만이 정상 개점 후 하나은행 직원들에게 인계 작업을 실시했다. 이는 고객이 생명인 금융인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박종덕 가양동지점장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승유 당시 하나은행장이 가양동지점을 직접 찾아 지점장과 접견했는데 지점장은 문을 열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나는 하나은행에서 불러도 가지 않겠다. 다만 직원들만은 고용 승계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김 행장이 지점장을 포함한 충청은행 가양동지점 전 직원을 채용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지점장은 직원들의 고용만 보장되면 상관없다면서 본인의 채용을 거절했지만 하나은행 측의 지속적인 설득을 받아들이고 1998년 9월 탄방동지점장으로 부임했다. 원칙을 강조한 결정으로 인해 박종덕 지점장은 김승유 행장을 비롯한 하나은행 경영진에게 신임을 얻어 2004년 충청사업본부장에 올랐고 2007년 직급이 부행장보(상무이사)로 올랐으며 2009년 부행장급인 충청영업그룹 대표에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대표 임기를 마친 후에는 하나은행 자문위원으로 선임되어 명예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1998년 7월 2일 정부의 선처 약속에 도주했던 전산 관리자들이 복귀하여 오후부터 예금거래를 재개하였으며 7월 10일 전 직원이 정상 출근하여 업무가 정상화되었다. 인수 작업이 끝난 후 하나은행에 재고용된 충청은행 직원은 전체의 32.6%였다. 퇴출 이후 기존의 충청은행 법인은 파산법인으로 남았고 청산 절차를 거쳐 2012년 공식 해체되었다.
2.3. 하나은행의 충청은행 역할 계승
하나은행은 충청은행을 무시하는 대신 그 위상과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펼쳤다. 2002년까지 대전·충남 지역의 하나은행은 '충청하나은행'이라는 상호를 달고 영업하였고[5] , 대전광역시 제1시금고를 맡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4년 10월에는 인접한 세종특별자치시의 제2시금고로 선정되었다.[6] 하나은행의 일부 콜센터가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것도 이 영향의 산물이다.
또한 직원 채용도 지역 출신 인재를 충청영업그룹에 채용함으로써 지역의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는데 앞장서며[7] 웬만한 타 지역 지방은행에 뒤지지 않는 역할도 해내고 있다. 특히 2009년 1월에는 충청은행 인수 이후 처음으로 충청은행 출신의 박종덕씨가 부행장급인 충청영업그룹의 대표로 선임되어 2012년 12월까지 4년간 근무한 후 하나은행의 자문위원으로 추대되었으며, 후임으로는 서울은행 출신이지만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인 함영주씨가 선임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분이 2015년 9월에 출범하는 통합 KEB하나은행의 첫 행장으로 선임된다. 게다가 함영주씨 후임인 현재 충청영업그룹 대표 민인홍 씨도 충청은행 출신이다.
하나은행은 금융 외의 분야에서도 대전·충남 지역 현안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데, 대전 지역 교통카드인 한꿈이카드의 사업 주관사이기도 하며 대전 지역 화폐인 온통대전 운영 대행사이기도 하다. 2019년에는 성적 부진에 시달리던 지역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을 인수해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새롭게 출범시키기도 했다.
3. 기업정신
3.1. 사명
'''새로운 가치의 창조'''
3.2. 비전
'''- 미래를 열어가는 일류은행'''
'''고객을 존중하는 정다운 은행'''
'''한계에 도전하는 활기찬 은행'''
'''정보금융체제를 구축하는 활기찬 은행'''
'''꿈과 행복이 가득찬 우리은행'''
3.3. 경영이념
'''고객에게 만족, 우리에게 보람, 앞서가는 경영'''
3.4. 행훈
- 1968 ~ 1988
'''지혜롭고 올바른 은행원이 되자'''
'''서로 돕고 겸손한 은행원이 되자'''
'''내 은행을 계산없이 사랑하는 일꾼이 되자'''
'''이 고장 발전의 선도적 일꾼이 되자'''
- 1988 ~ 1993
'''성실근면, 인화단결, 친절봉사'''
- 1993 ~ 1998
'''나부터 변하고 스스로 행하며 함께 노력한다'''
3.5. 행원정신
- 나의 다짐 (1984 ~ 1993)
'''나는 충청은행의 주인이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나는 충청은행의 발전을 통하여 나의 발전을 이룩한다'''
- 우리의 다짐 (1993 ~ 1998)
'''우리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를 사명으로 한다'''
'''우리는 미래를 열어가는 일류은행을 만든다'''
'''우리는 고객에게 만족을, 우리에게 보람을 앞서가는 경영을 추구한다'''
'''우리는 나부터 변하고 스스로 행하며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다'''
4. 상징 노래
4.1. 행가
작사는 최원규, 작곡은 김용진이 맡았으며, 1978년 2월 16일에 제정되었다.
4.2. 이미지송
작사는 인주식, 작곡은 소라기획이 맡았다.
5.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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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1993년까지 사용한 삼각타입 로고는 충청의 첫글자 'ㅊ'이 3개 머리를 맞대는 형태로, 충청남도와 그 출신 재경실업인 및 본행 임직원이 그 예지와 자본을 한데 모아 세운 은행임을 표상했다. 1987년까지 워드마크는 붓글씨체였다가 1988년부터 굴림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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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부터 1998년 퇴출 때까지 썼던 심볼마크는 고객과 은행, 지역사회와 은행의 동반관계를 상징하는 두 개의 동전과 우주의 형상이 결합된 모양으로 상호협력에 의해 새로운 가치(중앙의 다이아몬드)를 창조하고자 하는 본행의 이념을 표상한다. 또한 태극의 운동감은 한국적 이미지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충은인의 정신을 나타내며, 씨줄 10개는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계속 발전하는 본행의 미래지향적 의지를 담아냈다.
6. 역대 은행장
- 김운태 (1968~1970)
- 김정성 (1970~1979)
- 오민환, 이운용 (1979)
- 김관수 (1979~1982)
- 송희빈 (1982~1985)
- 이기웅 (1985~1991)
- 성욱기 (1991~1994)
- 윤은중 (1994~1998)
- 최동열 (1998)
7. 자회사
- 충남상호신용금고: 1998년 폐업.
- 중부리스: 2001년 군인공제회로 매각됨. 현 한국캐피탈.
[1] 원래는 본점을 서구 둔산동 932 둔산신도시에 지상 21층 최고 높이 109.05m의 당시 충청권 최고층 규모의 신사옥을 건축하여 이전할 예정이었으나 1998년 신사옥 건설중간에 외환 위기로 인해 퇴출당하여 결국 건축중이던 신사옥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인수하여 캠코캐피탈타워로 이름을 개칭하여 완공하였다.[2] 퇴출로 인한 상장폐지[3] 금융공동망 코드가 세자리가 된 것은 충청은행이 망한 지 훨씬 후인 2009년이다.[4] 현재는 하나은행 대전영업부 및 해외업무콜센터이다.[5] 2002년 일부 대전지역 금융사에서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어 충청하나은행 상호가 폐기되었다. 한 사업체가 2개 이상의 상호를 쓰는 것은 상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이후 '충청하나은행'은 관행적으로 하나은행 충청영업그룹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다가 KEB하나은행 출범 이후 쓰이지 않게 되었다.[6] 1금고는 NH농협은행이다.[7] 그래서 다른 지역은행처럼 대전 지역 대학출신들이 많다. 특히 지역인재 채용을 홍보문구로 활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