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로아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 이름 '''
'''카를로스 로아
Carlos Roa'''

''' 본명 '''
카를로스 앙헬 로아
Carlos Ángel Roa
''' 출생 '''
1969년 8월 15일 (55세) /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벨라크루즈
''' 국적 '''
아르헨티나
''' 신체 '''
191cm
''' 직업 '''
축구선수(골키퍼/ 은퇴)
''' 소속 '''
''' 선수 '''
라싱 클루브 데 아베야네다(1988~1993)
CA 라누스(1993~1997)
RCD 마요르카(1997~2002)
알바세테 발롬피에(2002~2004)
클루브 올림피아(2004~2005)
''' 국가대표 '''
16경기 (아르헨티나 / 1997~1999)
1. 개요
2. 선수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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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97-98시즌 사모라 상을 수상하는 등 클라우지우 타파레우,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등과 함께 90년대 남미 최고의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으며, 라 리가에서도 산티아고 카니사레스와 함께 90년대 후반 라 리가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다.

2. 선수경력



2.1. 클럽 경력


1988년 아르헨티라 리그 5강인 라싱 클루브 데 아베야네다에서 프로데뷔를 한 로아는 93년 CA 라누스로 이적을 해 UEFA 유로파리그의 남미격인 Copa CONMEBOL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후 1996년 스페인 RCD 마요르카로 이적해 당시 하위권인 팀을 코파 델 레이 결승까지 이끌면서 단숨에 라 리가 최고의 골키퍼로 등극하게 된다. 이 후 1998-99 시즌엔 35게임 29실점, 방어율 0.76이라는 경악스러운 수비력을 보이며 당시 동갑내기 올리버 칸과 함께 유럽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다. 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알렉스 퍼거슨페테르 슈마이켈의 후계자로 점찍었을 정도였다. 문제는 본인이 독실한 기독교 인이라 토요일이 안식일라 토요일에는 경기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1999년도에 은퇴를 하는 기행 아닌 기행(...)을 선보였는데, 2002년 세군데리가 소속 알바세테 발롬피에에서 토요일에는 출전하기 않는다는 조건하에 알바세테 발롬피에에 다시 선수복귀를 하여 팀은 승격시키고 2년간 활약한 뒤 클루브 올림피아에서 한 시즌을 뛰고 은퇴하게 된다.

2.2. 국가대표 경력


1997년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를 했으나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페루에 1 : 2로 일격을 당한다. 하지만 월드컵 남미예선에서는 좋은 모습으로 팀의 최소실점을 기록하며 남미예선 1위로[1] 본선에 오른 뒤 본선 조별리그에서도 무실점으로 팀을 조 1위로 16강에 이끌었다.
16강에서 잉글랜드를 만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8강에 진출했지만 8강에서 데니스 베르캄프의 원더골을 내주며 1 : 2로 패했다.
그 후 앞에도 서술했지만 독실한 기독교 인이라 1999년도에 은퇴를 하는 기행을 선보인 탓에 1999년 코파 아메리카 대회와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1] 당시 브라질은 디펜딩 챔피언 자동진출 자격으로 예선을 치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