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clearfix]
1. 소개
파라과이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골키퍼.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서, 득점력이 뛰어난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다.
2. 클럽 경력
스포르티보 루게뇨에서 데뷔한 칠라베르트는 과라니와 산 로렌조 등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뒤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한다. 하지만 칠라베르트는 사라고사에서 주전을 차지하지 못하고 벨레즈 사스필드로 이적한다. 벨레즈 사스필드에서 칠라베르트는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하면서 1993년 클라우수라 리그에서 우승, 팀에게 25년 만에 우승을 안겨주었으며, 1994년에는 남미를 넘어 세계축구를 호령하던 강호 상파울루 FC를 꺾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인터컨티넨탈컵에서 AC 밀란을 2:0으로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한다.
칠라베르트는 1995년, 1997년, 1998년 IFFHS 선정 최고의 골키퍼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6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다. 특히 1999년 페로 카릴 오에스테를 상대로 3번의 페널티킥을 모두 성공시키며 '''골키퍼 역사상 최초로 해트트릭을 성공한다.'''
2000년 칠라베르트는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로 이적하며 유럽무대로 진출하여 2001년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끌었고. 2003년 칠라베르트는 페냐롤로 이적한 뒤 벨레스로 돌아와 2004년에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경력
파라과이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칠라베르트는 불가리아,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클린시트를 달성하며 무승부를 이끌었고 나이지리아를 3:1로 격파하여 16강에 진출한다.
이후 16강에서 만난 프랑스를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프랑스의 공세를 막아냈다. 허나 아쉽게도 연장혈투 끝에 로랑 블랑이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골든골을 터트리면서 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1999년에는 자국에서 코파 아메리카가 열렸지만 후술할 내용으로 불참을 선언한다.
그 후에도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던 칠라베르트는 2002 한일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호베르투 카를로스와 마찰을 벌이며 카를로스에게 침을 뱉었고 칠라베르트는 4경기 출장 정지를 먹는다.[2] 어쨌든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해 팀의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16강전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미하엘 발락-올리버 칸이 이끄는 독일을 만났으며 후반 88분에 올리버 뇌빌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0:1로 패배해 탈락하고 만다. 이후 2003년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
여담으로 코파 아메리카에 3번 출전했으나,[3]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는데 199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여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나 호나우두가 이끄는 브라질에게 패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반사신경과 세이빙능력, 좋은 판단력을 지닌 골키퍼이면서 1대 1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뛰쳐나와 공격수를 제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골키퍼다. 그리고 상술했듯이 킥이 좋아 프리키커와 PK 전담키커를 맡아 골을 자주 터트렸다. 노이어가 정립한 스위퍼 키퍼의 원형에 가까운 스타일이라 보면 되겠다.
5. 여담
- 칠라베르트는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동이나, 몸이 불편한 아동을 위해서 모금 활동과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협력하고 있다.
- 1999년 모국 파라과이에서 코파 아메리카 대회가 열렸는데 그는 대표팀 소집을 거부하며
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경제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운 파라과이에 지금 필요한 것은 코파 아메리카 같은 국제 대회가 아니라 학교와 병원이다."'''[4]
라는 말도 했다. 대통령 오비에도는 무척 불쾌해했지만 당시 파라과이 대학생들이 칠라베르트를 대통령으로 추천하자고 무척 칭송했었다. 하지만 칠라베르트는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정치인들을 의회에서 패버릴지도 모른다며 사양했다."파라과이에는 미국 거지보다 못사는 550만 인구가 살고, 미국 부자보다 잘 사는 20만명 부자가 산다. 그런 부자들 이득을 대변하는 오비에도[5]
정권을 찬양할 결과를 만들고 싶지 않다."
파라과이는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로 과라니어를 함께 쓰고 있는데, 칠라베르트는 이 과라니어 교사 면허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2002 한일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과의 경기를 마치고 나서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자신을 놀린다며[6] 카메라를 통해 TV 생방송이 나오는데도 침을 뱉어 출장정지를 받았고 이 때문에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 1차전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봐야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마이클 오언, 에밀 헤스키, 제이미 레드냅, 에마뉘엘 프티 등 유럽 축구 선수들이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대한민국의 개고기 식용에 대해 반대하고 압력을 넣는 서명을 했는데,[7] 반면에 그는 한국의 개고기 식용은 한국의 전통 문화라며 100% 지지한다는 말과 개고기를 반대하는 선수들이 있는 영국은 왜 개에게 각성제 먹여가며 벌이는 여우사냥을 그만두지 않냐고 했다. 링크 갈비찜을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었으며 아욱국 또한 잘 먹었다고 한다. 링크 16강전에서 독일에게 종료 직전 아쉽게 골을 허용하여 지고 난 다음 인터뷰에서 파라과이 대표팀을 응원해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한국에 대해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간 듯하다.
그에게는 친형 롤란도 칠라베르트(Rolando Chilavert)가 있으며
동생과 다르게 177cm 작은 체구이며 1961년생으로 동생보다 4살이 많다. 대표팀 11경기를 뛰었으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쉽게도 벤치에만 있었다. 1974년 프로에 데뷔해서 1994년에 은퇴했고 대부분 커리어를 파라과이 자국 리그에서 보냈으며 은퇴 후에는 동생과 다르게 감독으로서 커리어를 유지하며 지금까지도 남미 대륙을 돌며 감독 생활을 하고 있으며 2003년에는 U-20 파라과이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 대표팀과 상대한 인연도 있다. 결과는 한국 대표팀의 0-1 패배로 끝났다.
2020년 12월 2023년 파라과이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선언하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1]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수비수나 미드필더 뺨치는 수준인데 클럽에서 기록한 골까지 합하면 '''70골이 넘는다''' [2] 이것 때문에 남아공과의 본선 첫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그 경기에서 2:2로 비기고 만다. 만일 칠라베르트가 출전 정지를 먹지 않아 그 경기에 정상적으로 출전했다면 그 경기 결과는 아마 파라과이의 2:0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3] 1991 코파 아메리카와 1993 코파 아메리카, 1997 코파 아메리카[4] 이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개최 반대 시위 때 펠레나 호나우두가 보여준 태도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히바우두와 같이 월드컵 개최를 반대하며 비슷한 의견을 보인 선수도 있다.[5] 당시 파라과이 대통령이다.[6] 안 그래도 경기 전부터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과 카를로스가 파라과이를 깔보며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했고 경기에 진 것도 화가 나는데 특히 자신이 실점당할 때 놀리기도 했고 끝나고 나서는 일어나! 인디오~(칠라베르트가 자신이 원주민 취급이 받는 것이 불쾌했다기보다는 카를로스가 파라과이에 많이 사는 과라니족을 비하하는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분노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라고 놀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면 참은게 더 대단한 거다.[7] 당시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가 반대파인 정몽준을 깎아내리기 위해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에 개고기를 가지고 트집을 잡은 상황에서 생긴 일이라서 이들이 정말로 순수하게 동물보호의 뜻에서 동참했을지는 각자 판단하자. 그런데 웃기는 건 1996년 당시 월드컵 개최 경쟁을 할 당시, "한국이 개고기 안 먹으면 더 유리할 것이라능~"이란 망언이나 징징거리던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당시 피파가 "그런 건 상관도 없다. 그리고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냐?" 라며 비아냥거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