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야 테츠

 



雁屋哲 (かりや てつ)
(1941년 10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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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소개
3. 여담


1. 개요


일본인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에세이 작가. 본명은 토츠카 테츠야(戸塚哲也)다. 오토코구미, 맛의 달인의 원작자이자 일본인과 천황이라는 걸출한 천황을 비판하는 작품을 쓴 인물이다. 타카하시 료스케, 오시이 마모루 등과 함께 일본 만화계의 좌익 거물. 국내에서는 '일본인과 천황' 보다는 맛의 달인 원작자로 유명하다.

2. 소개


2차대전이 한창인 1941년 중화민국 베이핑(현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1]에서 출생했으며, 2차 대전이 끝난 뒤엔 도쿄에서 지냈다. 도쿄대학에서 양자역학을 전공했으며 졸업후 광고회사 덴츠(電通)에 취직했다. 재직중 만화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으며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스토리 작가로 활동한다.
맛의 달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활동 초중기에는 주로 소년지에서 액션 만화를 연재했다. 신인 시절인 1974년에 작화가에 이케가미 료이치를 두고 <오토코구미>(男組)를 만들어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후 오토코오오조라(男大空) 등을 계속 발표한다. 이 시절에 원작을 담당한 작품의 대부분은 몸과 마음이 건전한 청년이 부패한 권력에 대항한다는 좌익성향이 강한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것이 야망의 왕국으로 일본 만화의 괴작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그 전까지의 작품에서 방향성을 전환하여 주인공은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암약하는 두 명의 천재 청년으로 설정했으며 성적인 묘사나 인체파손적인 묘사는 없지만 대단히 폭력적이고 황당무계한 작품이다. 일본의 정치가나 관료를 배출한 도쿄대 법학부를 대놓고 사회를 더럽히는 장본인이라고 매도하는 등 국가나 관료, 경찰이나 폭력단의 묘사들이 매우 공격적이라서 언론이나 고학력층에게 항의를 받지 않은 것이 의아하기까지 하다. 어디에서도 태클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당시 일본의 사회상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몹시 혼란스러웠던 덕분이라는 것이 중평.
그러나 야망의 왕국 완결 후 이듬해인 1983년에는 독기가 야망의 왕국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인지 그 때까지의 방향성과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지닌 맛의 달인(원제 美味しんぼ)을 '빅 코믹스 스피릿'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맛의 달인은 일식을 중심으로 하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 대해서 대단히 정치적으로 배려가 잘 돼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시절 일본의 학살과 만행에 대해서도 대부분 인정하고 비판한다. 이런 점은 한국편에 잘 나타나 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지한파로 알려졌으며, 일본내에서는 반천황주의자로도 활동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묘하게 평가가 높지만 정치적인 면으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좌익판 고바야시 요시노리라는 비평도 있다. 특히 이러한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저서인 박쥐를 쏴라!(蝙蝠を撃て!)로 특정 정치가를 지정하여 공격하는 구도는 고바야시의 대표적인 수법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우익은 카리야를 부모의 원수 보듯 싫어하고 중도도 카리야가 표현하는 정치성향과 여러 행보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일례로 '맛의 달인'에서 "일본 천황은 백제의 핏줄이다." 라는 천황백제기원을 언급하기도 했고, 일본 수상들이 과거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과했을 뿐, 국가가 사과한 적이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 도예문화의 발달은 임진왜란때 한국에서 납치해 간 도공들의 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는 말도 작중에서 한 적이 있다.[2] 전체적으로 전쟁의 피해에 대해 언급하며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주의... 덕택에 2ch 및 일본 내 우익계에게 많은 비난과 심할 경우엔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물론 과거의 가락이 죽지 않았는지 맛의 달인에서도 주인공 지로의 입을 빌어 '''도쿄대는 일개 대학이 나라를 조져놓은 케이스로 세계 최고 수준일 거다'''라고 까기도 한다(...).
자녀 교육 문제로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이민했으며 호주가 마음에 들어서 수십년 이상 호주에 거주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맛의 달인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다. 일각에선 우익들의 보복 협박 때문에 호주로 도피했다는 말이 정설처럼 돌고 있으나 그가 반천황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호주로 간 뒤 한참 뒤인 90년대 이후 부터이므로 사실이 아니다. 88년 때만 해도 카리야 테츠는 우익의 협박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호주에 간 뒤 일본에선 볼 수 없었던 여러 자료와 증언을 접하며 일제의 대한 만행을 직접 알고나서 성향이 바뀐 걸로 보인다. 또한 그러한 성향을 내비친 이후에도 취재를 위해 일본에 머물러 있는 시간도 굉장히 많은 편이라 [3] 우익 인사의 보복을 회피하러 호주로 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중국 출신이다 보니 중국 음식에 대해 다루는 비중도 큰 편이다. (물론 아시아 요리를 논하는데 중국 요리를 빼면 안되긴 하지만)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김인식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비난했다.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발언을 '''공식석상'''에서 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다. 실제로 이는 국내에서도 조금 논란이 일었다. 이를 비난한 것 때문에 국내 언론에 의해 좋은 떡밥이 되어 '혐한 작가가 대표팀을 욕한다 카더라'는 식으로 과장되어 퍼졌다. 김인식 감독 비판 때문에 이 작가를 모르는 사람 가운데 '''우파'''로 여기는 경우 마저 있다.(…)
WBC 결승이 끝나고 난 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면 WBC를 통해 표출된 '''내셔널리즘'''을 까고 있다.
맛의 달인중에서 포경을 관대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어서 까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다만 작중에서도 멸종 위기의 고래를 포경하는 것(예:참고래)에서는 반대 입지에 섰으며, 그가 비난한 것은 이미 멸종 위기에서 벗어난 밍크고래를 멸종 위기라고 싸잡는 것과 머리가 좋은 동물이라서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14년 1월 일본 '니치고 프레스'와의 단독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며, 이 여파로 일본 음식이 장기적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이다. 또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통해 해외에서 싼 음식물이 들어오게 되면 (일본 음식은) 앞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 이라고 인터뷰를 했다. 또한 "내가 직접 후쿠시마 방문했다가 갑자기 밤마다 코피를 쏟고 알 수 없는 피로감에 고생했다. 그런데도 일본 병원에서는 '코피와 방사능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라고 하더라." 라며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후쿠시마 인근은 더이상 사람이 살아서는 안되는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덕분에 5ch나 우익 성향 사이트나 블로그 등에서 주구장창 까이고 있다.
UFO전사 다이아포론과 특촬물인 메가로맨의 원작을 담당하기도 했다.

3. 여담


  • <마스터 키튼>의 절판에 관한 의혹에 휘말려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자.
  • 중도의 앱등이이며 그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를 깐다. 맛의 달인의 야마오카 시로의 짤방이 유명하며[4] 이것만으로는 그냥 개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블로그나 에세이등에서 간간히 찾아볼 수 있는 발언에 의하면 적어도 애플빠인 것은 확정. 너그러이 봐서 개그라고해도 실제로 회사의 상표를 만화에 그대로 게재한 것에 대해서는 일본내에서도 적지 않은 비난이 있었다.
  • 한국과는 상관이 없으나 일본내의 특정 회사나 상품을 작품 중에서 언급하는 수법에 대해서는 많은 비난이 있다.
  • 작중에서 다루는 지식들에 적지 않은 오류가 있으나 후에 단행본화되거나 재판될 때 이것을 수정하거나 정정문을 내지 않는다.
  •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때 민주당을 비난하는 자민당을 공격했다. 물론 해당 발전소의 관리문제는 자민당시절부터 이어진 문제점이기는 하나, 민주당도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했고 이러한 자신의 판단을 전면에 내세운 비평은 정치적인 중립성에 문제가 있을 뿐더러 해당 사건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한 만큼 카리야에게도 적지 않은 비평이 있었다. 결국 카리야는 해당글을 슬그머니 내렸다.
  • 폭력만화의 원작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성격하는 편이다. 자신의 블로그 중에 하나인 오늘 또다시(今日もまた)에서 2008년 6월 23일짜로 머리 염색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일본인은 육체적으로 서양인에게 도저히 상대가 안되니 머리로 겨룰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머리를 물들인 자들한테는 일절의 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를 염색한 크리에이터의 창작물은 거품같아서 2년도 못간다', '머리를 염색한 크리에이터들은 패배자', '더럽다'같은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막말을 하는 편이라 자신을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낸 주간지에 대해서 원색적인 비난을 한 적도 있다.
  • 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여러 번 다룬 것으로 보아 작가가 개인적으로 고양이 덕후로 추정된다. 개는 상대적으로 등장이 적은 편.
[1] 당시 왕징웨이 정권이 장악한 상태였다.[2]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맞는 말이다. 실제로 임란 당시 도공을 많이 납치해 간 것도 사실이며, 일본의 만화 효게모노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조선에선 서민들이 대충 쓰던 막사발이 일본에선 엄청난 명물 다기로 평가받아 다이묘들이 비싼 값에 구입하기도 했기 때문이다.[3] 반 년 넘게 취재하는 경우도 있다.[4] 앱등이항목 최 상단에 올라와 있는 만화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