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하시 료스케

 


[image]
1. 개요
2. 커리어
3. 연출 특징
4. 정치 성향 및 반미 논란
5. 다른 제작자와의 관계
6. 기타
7. 작품 일람


1. 개요


高橋良輔
일본애니메이션 감독. 1943년 1월 11일 생. (81세) 도쿄도 아다치구 출신.

2. 커리어


메이지 대학 문학부를 중퇴한 후 3년 정도 이토추 자동차라는 회사에서 자동차 세일즈맨을 했다가 일이 재미가 없어서 마침 어릴 적부터 데즈카 오사무를 동경하고 있는 점으로[1] 1964년 데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에 입사해서 여러 애니메이션의 각본을 담당했다. 커리어의 처음 시작은 철완 아톰의 66화 제작이였다고 본인은 회고한다. 1969년 도로로를 마지막으로 무시 프로덕션을 퇴사한 이후 CM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선라이즈가 창립되면서 선라이즈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선라이즈 말고는 갤럽 하고도 인맥이 있어 갤럽 창립 초기에 힘들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무시 프로덕션에서 나온 이후 선라이즈에서 일하기 이전까지도 애니메이션 감독일을 몇 번씩 하였는데 사이보그 009 감독도 이 시절에 했다. 단, 이 시기 이야기를 할 때 스스로에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데 아무것도 못하면서 입만 살았던 시절이라 회상한다. 자신이 연출가로서 이름을 걸만한 수준까지 올라온 건 다그람이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이 시절에 대한 언급을 보면 어디서 일이 진행되고 있으면 거기서 자신은 아무것도 몰라서 병풍처럼 있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몇마디씩 자기 의견도 물어봐서 대충 답변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의 낮은 평가와는 다르게 다그람을 감독하기전에도 이미 주변에서 매우 높게 평가했었다고 한다. 그가 대충 툭 내놓는 발상이 천재적으로 획기적이었기 때문이다.
토미노 요시유키기동전사 건담이 성공한 이후 198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 불어닥친 리얼로봇 붐에서 타카하시 료스케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기동전사 건담을 보며 타카하시 료스케는 '로봇을 소재로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하는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오히려 처음에는 여기에 위축이 되어 자신은 재능이 없으니 이번에야말로 애니메이션 업계를 떠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라이즈 측에서 이제 이런 건담 같은 것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식으로 꼬셔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로봇을 통해 자신이 담고 싶은 걸 표현한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다. 칸다 타케유키와 공동으로 감독한 대하드라마 분량의 "태양의 엄니 다그람"이 그 시작이었고, 이 작품은 타카하시 료스케 커리어 중에 있어서도 가장 상업적으로 많은 성공을 한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무겁다는 등의 이유로 당시 애니메이션 잡지에서는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하는데[2], 여기서 일부 비판점을 수용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후일 타카하시 료스케의 대표작으로 남게 되는 "장갑기병 보톰즈"였다. 이후 "기갑계 가리안", "푸른 유성 SPT 레이즈너"까지 1986년까지 거의 매년 로봇물을 내놓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리얼로봇 붐이 시들해지고 "푸른 유성 SPT 레이즈너"가 실패한 뒤 타카하시 감독은 한동안은 다른 감독들의 작품의 연출이나 협력을 담당하거나 프로젝트의 구성을 맡았다. 다만 "기갑엽병 메로우링크",[3] "기갑전기 드라고나" 등에서 칸다 타케유키와 다시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하는 등 이후에도 리얼로봇물에서 완전히 손을 뗀 건 아니였다.
1990년대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마동왕 그랑조트"나 "마신영웅전 와타루", "RPG전설 헤포이" 등의 각본을 담당했다. 1990년대의 이력을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데 "빨간망토 차차"나 "리리카 SOS",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의 장난감"같은 소녀 대상 작품들의 각본이나 연출을 맡기도 했는데 평가는 굉장히 좋았다. 그러나 1990년대 감독 활동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이 시기에 만든 작품이 다름 아닌 보톰즈의 마지막 OVA였던 혁혁한 이단이었다. 시리즈에 신선한 변화를 주기 위해서 히로인 교체라는 무리수를 두다가 실패하고 보톰즈 시리즈 자체를 한동안 강제로 종결시켜 버리는 자충수를 두게 된다.
1990년대 말에는 "용자왕 가오가이가"에서는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고, "용자왕 가오가이가 FINAL"에서는 감수를 맡았다.[4] 그리고 1998년이 되어서야 거의 10년만에 TV 애니메이션 감독을 재개하여 "가사라키"를 만들었다.
이후에도 여러 작품의 각본이나 연출을 맡았고 2004년 "불새"의 TV 시리즈 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인터넷 애니메이션으로 진출하여 "플래그" 등의 작품을 선보였고 2007년에는 오랬동안 종료되어 있던 "장갑기병 보톰즈"의 신작 OVA를 내놓으면서 활발하게 활동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에는 다시 활동이 거의 없어진 상태지만 영 블랙 잭의 각본에 모처럼 그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감독으로서의 경력 못지 않게 각본가로서의 입지도 확고해 다른 감독들이 그에게 각본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으며, 애니메이션계의 넓은 인맥으로 여러 감독들의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다.
토미노와의 대담에서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하고 싶은 건 다 했으며 이후는 제자를 키우는데 집중하고 싶다고 한다. 만약 다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해도 로봇 애니는 안 할 거라고 한다. #
2019년에는 중국 여행 칼럼을 올리고 거의 중국에서 지내고 있으며 작품 하나 정도는 더 제작할 욕심이 있음을 밝혔다.
2020년에는 리얼사이즈 스코프 독 전시 현장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 연출 특징


사실 직책만 감독이지 콘티를 짜거나 시나리오를 짜는데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주로 다른 후배 크리에이터들의 발상을 듣고 조언을 하는 정도이며,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프로듀서나 스폰서와 함께 술을 마시러 다니거나 하면서, 아랫 사람들의 의견이 통과될 수 있도록 설득하며 아랫 사람들이 일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이런 건 감독이 아니라 프로듀서가 하는 일이다. 때문에 감독보다는 오히려 프로듀서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스폰서를 구워삶는 능력이 탁월한지 그가 감독, 프로듀스한 작품들은 당대의 애니메이션보다 예산이 많이 사용된 것이 티가 난다. 보통 타카하시 료스케 작품은 다른 TV판 애니메이션보다 셀 매수를 1000~3000은 많이 사용하고 애니메이터와 성우도 1류로 투입되며 작화나 성우 연기력에서 비판받는 작품이 없다. 그의 탁월한 영업능력을 보여준다.
타카하시 료스케는 자신이 연출을 직접하는 경우가 많지않아서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은 별로 한 게 없다고 말할 때가 많다. 그의 작품엔 항상 콘티 체크와 영상 연출을 대신 해주는 연출 치프가 있고 그들이 실질적인 감독의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색으로 알려진 것들은 오히려 자주 같이 활동한 동료와 제자들의 것이라 봐야할 것이다. 그나마 그가 비중있게 참여한 것이 태양의 엄니 다그람. 반대로 프로듀서의 직책으로 참여한 용자왕 가오가이가도 실질적으로 그의 감독 작품이라 보는 해석도 있다. 어차피 감독작들도 대부분 조언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인데 가오가이가도 마찬가지의 과정으로 제작되어서이다. 가오가이가도 잘 관찰하면 타카하시 료스케 작품에 가까운 점이 많다.
다만 그가 내놓는 조언들은 획기적인 것이 많아서 그의 조언을 따르다보면 타카하시 료스케만의 작품이 된다며 그의 공적을 인정하는 후배 크리에이터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파일 벙커, 롤러 대시, 사복검, 사족보행 로봇, 스카우터의 원조가되는 안경형 디스플레이, V-MAX 등은 모두 타카하시 료스케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후배들이 실질적인 감독임에도 그에게 공을 넘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조언을 일부러 구하러 가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협력' 이라고 스태프롤에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직접 하는 게 없다고 아예 무시할 것도 아닌 게 타카하시 료스케 작품의 세계관과 분위기, 중심 메세지, 영상 품질은 타카하시 료스케가 이러한 지시와 조언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타카하타 이사오도 이런 식으로 작품 활동을 했는데 그렇다고 타카하타 이사오가 무능한 건 아니고 오히려 천재란 소리를 들었다. 타카하시 료스케도 이러한 감독에 들어간다.
그리고 콘티나 시나리오 짜는 것도 감독이 아니라 순수 각본가로서 활약을 더 많이 한 90년대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매우 잘한다. 그가 직접 콘티를 그려서 연출한 태양의 엄니 다그람의 마지막 화를 보면 대체 왜 이 정도의 사람이 콘티를 그리는 걸 접었는가 안타까워질 정도이다. 본인은 자신감이 없어 자신은 재능이 없다고 하지만 주변에선 모두 천재라 불렀던 인물이다. 그가 콘티를 직접 작성한 에피소드도 유심히 볼 가치가 있다. 콘티 작성을 그만둔 이유는 그리는 속도가 느려서라고 한다. 콘티를 그리는 게 싫어서 선라이즈에서 감독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콘티는 안 해도 되지?" 라는 것부터 물어보고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자라면서 만화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만화보다는 전쟁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연출을 자주 볼 수 있다. 토미노 요시유키데자키 오사무 같은 천재들과 같이 일하면서 중압감을 느끼던 중 그들은 재능도 있지만 자신보다 만화와 영화를 많이 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그들만큼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고 그럼 많이 본 게 뭔가 생각을 하니 다큐멘터리라 다큐멘터리 식 연출을 시도했더니 그들과 다른 작품이 나오면서 잘 풀리기 시작하더라고 한다. # 그래서 그의 작품은 드라마 식 연출보다는 한 인물을 카메라가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면서 행동을 관찰하는 연출이나 화면 여러 곳을 있는 그대로 잡는 다큐멘터리식 연출이 많이 나온다. 아예 다그람 재편집 극장판이나 감벽의 함대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편집하거나 나레이션을 넣는 경우도 많은 편.
어렵고 방황하던 과거사와 전쟁 역사에 심취한 영향으로 타카하시 료스케 본인이 주도적으로 만든 오리지널 작품들은 배경이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에 속한다는 특징이 있다. 전쟁물을 많이 다루는 타카하시 감독 본인이 가장 영향을 많이 전쟁은 그가 17살 때 시작된 베트남 전쟁이라고 스스로 많이 공언하고 다닌다. 가족간의 애증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심도있게 다루는 것도 그의 작품에서는 큰 맥을 그리는 경우가 있으며 대표적으로 다그람이 있다.
예고편에 특별히 신경을 쓰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타카하시 료스케 팬들은 타카하시 료스케 작품은 예고편까지 다 봐야한다고 여긴다. 보통 각본 같은 건 각본가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기고 최종 감수와 수정만 하는 편이라는데 이상하게 예고편은 자기가 직접쓴다고. 태양의 엄니 다그람 예고편의 캐치프레이즈 "Not even justice, I want to get truth 진실은 보이는가?"는 작품의 주제와 본질을 나타내고 있으며 장갑기병 보톰즈에서는 매 예고편마다 시를 쓴다. 예고편을 복선으로 페이크를 거는 경우도 꽤 있으므로 예고편 보면 스포일러 당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이 사람 작품 예고편은 보는 게 좋다. 요시카와 소지는 보톰즈의 에고편을 보면서 "넌 이런 걸 쓰면서 손발이 오그라지지도 않냐? 신기하다." 라면서 돌려서 칭찬했다고 한다.

4. 정치 성향 및 반미 논란


일단 본인의 인터뷰들을 보면 정치적 성향은 중립에 가까운데, 아버지가 2차 대전에서 사망한 이후 편모가정에서 자란 타카하시 료스케는 하층 노동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기존 권력층만큼이나 좌익도 그 나름의 권력구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뜻 전공투 세대라는 말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본인의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데모 현장을 카메라 들고 찾아가긴 했으나 직접 참가한 적은 없으며, 평생 자신이 해본 유일한 정치적인 행동이라고는 무시 프로덕션 시절에 월남전을 반대하는 티셔츠를 입고 다닌 것밖에 없다고 한다. 사실 전공투가 활동하던 시기에 타카하시는 무시프로에서 생업을 달리고 있다는 점에선 전공투와 큰 연관이 있을 수가 없다. 전공투의 탄생과 몰락을 그린 작품 다그람에서는 전공투가 내부부터 썩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서 이를 비판했고 가사라키에서도 좌익 비판이 확실하게 나온다는 점에서 타카하시 료스케는 좌익이라고 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이런 의심을 받는 건 그의 작품 세계관 때문이다. 그가 주도적으로 만든 오리지널 작품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태양의 엄니 다그람은 식민지의 독립을 주제로 한 정치 드라마이며 [5], 장갑기병 보톰즈는 주인공인 키리코 큐비가 절대적인 권력자에 대항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키리코는 끊임없이 자신을 위협하거나 회유하는 '힘'으로부터 도망치고 저항하는,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행보를 보인다. 군부는 목적을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독한 존재들이고 권력자들은 민중을 착취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다그람이나 보톰즈 레이즈너 등은 정치적으로 보면 완전히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느끼게 한다.[6] 푸른 유성 SPT 레이즈너에서는 지구의 인류가 강대국끼리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패배하고 주인공인 알바트로 나르 에이지 아스카도 조국을 배신한 몸이다. 전반적으로 타카하시 작품에서 조직이나 국가라는 것은 폭정을 일삼는 문제있는 존재들로 묘사되는데, 우익이 단골소재로 우려먹는 애국심, 향토심,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 등은 기본적으로 타카하시 작품에서는 미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도 황국의 수호자로 유명한 사토 다이스케는 대담회를 통해 오시이 마모루와 타카하시 료스케를 좌익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깐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타카하시 료스케 작품 세계를 전부 파악하지 못하고 한 발언에 가깝다.
토미노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토미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고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 누군가에겐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토미노보다 악역에 더 몰입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악역이 아예 진주인공이 되어버린 사례도 종종 있을 정도. 가사라키도 이것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악역이 정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톰즈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아예 각 진영과 독립된 무관계한 인물이며 정치와 이해관계에 얽혀서 행동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혐오하는 인물로 나온다.
정리하면 어느 쪽으로 쏠린 사상가는 아니고 전체 주의와 패권 주의는 싫어하며 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미국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감독이다. 한 인터뷰에서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라서 미국이 싫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미국에게 살해당한 것도 있어서인지 자신의 본심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 그의 작품은 항상 미국이 적이거나 미국을 모델로한 국가가 적으로 나온다. 미야자키나 토미노와 다르게 타카하시 료스케는 미국과의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베트남 전쟁까지 접했으니 미국에 대해 냉정해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국을 몰아낸 베트남과 쿠바의 저항활동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즉 개인과 평화에 대한 침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저항과 무력행사도 필요하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주로 게릴라전을 묘사하는 것도 이러한 영향이 크다. 그리고 타카하시 료스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미국이 이대로의 태도를 고수하면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 이라며 안 좋은 방향으로 예상한 작품 가사라키는 훗날 그 예상이 대부분 맞아버리면서 장르가 음모론 애니메이션에서 극 사실주의 작품으로 평가가 바뀌며 예언 애니메이션이라 불리게 된다. 가사라키의 경우 일본이 미국과 갈등을 빚는다는 설정이 문제시되었지만 애초에 일본 애니메이션이니만큼 주인공 측의 국가가 일본이라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고 타카하시 감독은 원래부터 미국에 대해서도 비평적이었기 때문에 딱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침묵의 함대", "감벽의 함대"같은 작품들에서는 군국주의 논쟁이 생기기도 했으나, 사실 저 두 작품 모두 역사 고증이 개판이라서 까이는 것이지 일본군과 일본의 전쟁 범죄 비판도 해서 일본에선 우익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일본 우익이 선정한 좌익 반일 매국노 A급 위험인물 침묵의 함대 작가 카와구치 카이지, # 일본 우익이 선정한 좌익 반일 매국노 B급 위험인물 감벽의 함대 작가 아라마키 요시오. 이런 점에서 군국주의나 일본 우익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이 두 작품에 참여했다고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기용되었거나 두 작품이 미국을 일방적으로 까는 내용이 많아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침묵의 함대의 경우 다른 사람이 만들고 있다가 기획이 전환되어 자신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이렇게 미국에 대해서만 좀 냉정함이 부족해지는 감독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건 헐리우드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는 것이다. 타카하시 본인이 미국 문화 안에서 자랐다고 하기도 했으며 단순히 그 작품성에 끌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엔 헐리우드 영화 패러디가 매우 많다. 물론 타카하시가 활동하던 시절의 헐리우드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준 람보,블레이드 러너도 그렇고 펑크 문화나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미국 정부를 비난하는 반전주의가 삽입된 영화가 많았기 때문에 그가 좋아해도 이상하진 않았다만. 그래서 그의 작품은 사이버펑크 같다. 다만 이런 특유의 분위기는 타키자와 토시후미 같은 제자들의 취향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타카하시 료스케의 메인스트림 작들은 대놓고 반미 메세지를 던지지도 않았고, 미국인 개인에게 비판을 전가하지도 않아 냉전 당시의 소련과 미국을 풍자하던 레이즈너만 봐도 딱히 미국 출신 캐릭터 개인들을 나쁘게 묘사한적은 없다. [7] 오히려 미국에서는 인기 있는 감독이다. 심지어 "미국인보다 미국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 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메이저 채널에서 방영 된 적 없던 타카하시 작품은 유독 매니아가 많다. 대부분의 작품이 팬들이 90년대 부터 자체 제작한 영어 자막이 존재하고 보톰즈 같은 작품은 정식 수출되었다.

5. 다른 제작자와의 관계



5.1. 칸다 타케유키


무시 프로덕션 시절부터 서로 알던 사이이며 둘다 굉장한 주당이였다고 회상한다. 이들이 콤비를 본격적으로 이룬 건 태양의 엄니 다그람을 만들 때 부터인데 영상적인 면은 칸다가 맡고, 스토리나 오리지널 요소는 타카하시가 맡는 일종의 분업관계였다. 이후 역으로 칸다 타케유키의 작품인 기갑전기 드라고나에 타카하시가 불려가기도 했으며 보톰즈의 외전작품 기갑엽병 메로우링크에서는 다시 타카하시가 보톰즈 라고는 전혀 몰랐던 칸다를 감독으로 모셔왔다.
쌍방의 인터뷰를 보면 둘 다 상대와는 좋은 친구였다고 말하는 것에 전혀 이론이 없고 상대방의 능력도 칭찬하지만, 작품 성향은 서로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덕분에 메로우링크 같은 경우에는 타카하시 료스케의 의향이 많이 들어간 1화와 칸다가 감독 권한으로 밀어붙인 2화의 갭은 매우 크다. 칸다의 요절 이후에는 밀리터리 방면으로 타카하시 감독이 좋아하는 아날로그 향기나는 2차 대전 쪽에 밝은 크리에이터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5.2. 토미노 요시유키


타카하시 료스케는 토미노 요시유키와 많이 비교되는데, 토미노 요시유키보다는 인지도에서 조금 떨어지는 감은 있지만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카하시나 토미노는 둘다 무시 프로덕션 출신에다 비슷한 연배에 둘 다 로봇으로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타카하시도 인터뷰에서 토미노를 의식적으로 언급하는 편이며 토미노 감독의 성향은 무시 프로덕션 시절부터 비슷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둘 다 작화쪽 출신이 아니라는 것도 공통점. 다른 점이라면 타카하시 료스케는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린 반면, 토미노는 작화쪽 인물들에게 대항심을 불태워 미친 듯이 연습해서 아직도 콘티를 직접 그리기도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특히 다그람의 성공 이후 보톰즈를 시작할 때 정도 되어서는 타카하시 본인은 토미노 감독에게 라이벌 의식까지 불태웠다고 직접 말했다. 그럼에도 그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해서 토미노 감독과는 커피숍에서 만나서 중구난방으로 흘러가던 보톰즈의 초기 계획안을 가지고 상담도 받았는데 토미노 감독은 지금의 장갑기병 보톰즈가 될 초기 원안이 가장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타카하시 료스케 쪽은 토미노 감독에 대한 언급을 매우 자주 하고 타카하시 료스케의 말에 따르면 서로 여러번 토론도 하는 사이인 것 같은데 정작 타 크리에이터에게 사정없이 평가를 하는 토미노답지 않게 타카하시 료스케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대담에서 토미노는 "타카하시의 작품은 보면 무의식 중에 따라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한 편도 보지 않았다." 라고 하고 타카하시는 토미노가 팬들에게 고평가 받는 것을 보고 토미노의 작품을 분석하고 토미노와 다른 작품을 하는 식으로 갔다고 한다. #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토미노는 어른을 구시대의 상징이자 구축해야 할 대상으로 한심하게 묘사하는 반면 타카하시 료스케는 왜 그런 어른이 탄생했는가, 어른의 사고방식이 왜 이 세상에 필요한가를 다루는 식으로 어른을 변호하는 내용이 많다.

6. 기타


  • 넉살좋은 호걸이지만 원래 운동을 좋아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양아치였다고 본인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절대 화내게 해서는 안 되는 인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 성격과 경험은 자신의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예로 다그람의 폭주족 묘사가 있다. 정말 깡패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리얼한 묘사가 압권이다. 콤바트라 V에도 폭주족 에피소드가 있는데 타카하시 담당이었다. 또한 사복검도 친구가 자전거 체인을 휘두르는 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 아마 그쪽 친구였을 것이다.
그의 커리어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인터뷰.
  • 2004년 열린 제8회 춘천 애니타운 페스티벌(CAF 2004)에 초청받아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 애니메이터 아시다 토요오와 외모가 상당히 비슷해서 팬들이 농담 삼아서 어릴 때 헤어진 형제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평생 이렇다할 관계가 없었다.

7. 작품 일람



[1] 장갑기병 보톰즈의 주인공 키리코 큐비블랙 잭의 등장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2] 그런데 이 잡지가 타카라가 잘 자나가는 걸 견제하려는 반다이의 사주를 받은게 아닌가 의심하는 시선이 강하다.[3] 보톰즈의 스핀오프 작품[4] 그래선지 용자왕 가오가이가 FINAL에서는 그를 모델로 한 캐릭터 '타카노하시 료스케'가 나온다. 성우는 코바야시 키요시/최한. 여담이지만 코바야시 키요시는 타카하시 료스케와 생일이 같다(1월 11일).[5] 훗날 토미노 요시유키와의 대담에서 전공투를 모델로 만든 작품임을 밝히기도 했다. 즉 식민지의 독립이 주제이기도 하지만 일본 학생운동의 부흥과 좌절을 그린 작품이기도 한 셈이다.[6] 여담이지만 1996년 월간 키노라는 영화잡지에서는 보톰즈가 필리핀에서 방영중단되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싣기도 했는데, 해당 작품은 보톰즈가 아니라 초전자머신 볼테스 V다. 이름이 비슷해서(...) 착각을 한 것으로 추정.[7] 다만 레이즈너에서 미국은 주인공 일행을 방해하는 나라로 나온다.[8] 1979년판. 당시 일본 선라이즈의 멤버로 참여했으며 이 작품은 선라이즈가 제작협력으로 참가했다.[9] 한국에서 카미카제 미화로 알려진 '음속뇌격대' 편이 아니라 '철의 용기병' 편을 맡았다.[10] 사람도 로봇도 아니고 술병의 디자인 및 원화를 그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