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1. 개요
'''Canterbury.''' 실제 발음은 캔터베리와 캔터버리의 중간 어느 지점에 가깝다. 외래어 표기 용례는 캔터베리를 내세우고 있으며, 실제로 이 발음이 범용적으로 표기되고 있다.
2. 목록
2.1. 영국의 도시
영국 동남부의 켄트 주에 위치한 유서깊은 도시. 런던에서는 동남쪽 85km 지점에 위치한, 인구 5만 5천의 도시이다. 옥스퍼드가 대학 도시라면 캔터베리는 기독교의 상징적인 도시다. 대성당과 수도원 등이 위치한 성공회(영국 국교회)의 본산이며 동시에 가톨릭의 성지[4] 이기도 한 종교 도시이다.
로마 제국의 브리타니아 정복 시에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고, 이후 켄트 왕국의 수도였다. 잉글랜드에서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도시이며, 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은 대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세 내내 캔터베리 대주교는 잉글랜드 왕국에서 국왕 다음가는 영향력을 자랑하였다. 헨리 2세에게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켓이 암살된 후로는 성지가 되어 순례객들이 몰렸는데, 캔터베리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다. 현재 영국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며, 적은 인구에 비해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한다.
1070년부터 1089년 사이에 지어진 캔터베리 대성당은 1174년의 화재로 소실된 후 4년 후에 재건되었고 1495년에 증축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되었다. 영국 특유의 퍼펜디큘라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성당은 지금도 잉글랜드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영국 왕실의 의례를 책임지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바로 이 대성당을 주교좌로 하고 있다.
1381년 와트 타일러를 중심으로 일어난 켄트주 농민봉기의 진원지였으며, 헨리 7세부터 찰스 2세 시대(15세기 말 ~ 17세기 초반)까지 특허를 받아 자치 도시의 특권을 누렸던 역사도 있다.
[clearf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