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브라(태풍)

 

'''1944년 태풍 코브라'''
위성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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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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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
1944년 12월 13일 ~ 12월 18일
영향 지역
미크로네시아 연방, 팔라우, 필리핀
태풍 등급
'''4등급'''[JTWC]
태풍 크기
'''관측 안됨(직경 불명)'''
최저 기압
'''907hPa'''
최대 풍속
1분 평균
'''62m/s'''
1. 개요
2. 피해
3. 여파
4. 여담
5. 관련문서
6. 외부링크


1. 개요


'''Typhoon Cobra'''
'''Halsey's Typhoon'''
1944년 12월 13일경,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 중'''이었던 필리핀 해에서 발생한 태풍이다.
당시 미 해군 제38임무부대(Task Force 38, TF38)가 이 태풍에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어 큰 피해를 보았다. 역사의 기록에 남은 가장 유명한 태풍 중 하나.

2. 피해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가 않아 그저 "홀시가 배 몇척 깨먹은 사건" 정도로 언급이 되지만, 피해 내용을 보면 어지간한 해전 몇개를 합쳐도 모자랄 정도로 미국 해군이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혹자는 '''일본 해군 제4함대사건의 미국 해군 버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 제4함대 사건과 비교도 안되는 수준으로 피해가 크다.[2]
'''함번'''
'''함명'''
'''함급'''
'''피해'''
DD-350

패러것급 구축함
'''침몰''', 202명 사망
DD-354
모너핸
패러것급 구축함
'''침몰''', 256명 사망
DD-512
스펜스
플레처급 구축함
'''침몰''', 317명 사망
CVL-25
카우펜스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격납고 손상 및 함재기 8기 망실
CVL-26
몬터레이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격납고 화재, 3명 사망
CVL-27
랭글리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손상
CVL-28
캐벗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손상
CVL-30
샌재신토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함재기 및 에어인테이크 손상
CVE-18
알타마하
보그급 호위항모
함재기 손상 및 화재
CVE-57
안치오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주요 수리 필요
CVE-74
네헨타 베이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손상
CVE-88
캐이프 에스퍼란스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비행갑판 화재 및 주요 수리 필요
CVE-98
콰잘레인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조타능력 상실
BB-61
아이오와
아이오와급 전함
추진축 1개 손상 및 수상기 1기 망실
CA-68
볼티모어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주요 수리 필요
CL-89
마이애미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주요 수리 필요
DD-349
듀이
패러것급 구축함
조타능력 상실 및 배전반 침수
DD-355
아일윈
패러것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D-484
뷰캐넌
글리브스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D-572
다이슨
플레처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D-673
히콕스
플레처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D-731
매독스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손상
DD-796
벤험
플레처급 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E-44
도날드슨
에바츠급 호위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E-416
멜빈 R. 나만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주요 수리 필요
DE-418
태버러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전방 마스트 망실
DE-740
워터맨
캐논급 호위구축함
손상
AO-60
낸터할라
시마론급 급유함
손상
ATF-104
지카릴라
아브나키급 함대예인선
손상
종합하면 구축함 3척이 침몰하고 다수의 함선이 손상되었으며, 79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함재기 146대가 손·망실되는 대피해를 보았다. 이는 미 해군과 일본 해군이 질과 양 모두 동등한 수준에서 교전을 벌였던 마지막 전투인 산타크루즈 해전 때 미군과 일본군이 입은 각각의 피해(함재기 및 인원 한정)를 모두 합친 수준과 맞먹는다.
각 함선이 입은 피해에는 태풍의 영향 외에 운도 작용했다. 침몰한 함선 중 DD-512 스펜스는 연료탱크가 거의 비어 있어서 (약 10~15%) 상대적으로 배가 더 가벼웠으며 중량 배분이 안되어 결국 침몰하는 피해를 입었다. 큰 손상을 입은 DD-673 히콕스, DD-731 매독스도 같은 케이스이다. 그나마 히콕스와 매덕스는 연료탱크에 바닷물을 채워버림으로써 침몰을 면했다. 또한 침몰 함선 중 DD-350 헐, DD-354 모너핸 두 척은 구형 패러것급 구축함으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추가로 500톤 이상의 장비들을 장착함에 따라 함정 상부가 무거워진 것이 침몰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태풍의 위력이 실로 어마어마했는지라, 현장 당사자인 홀시 제독은 "배수량 5만톤의 아이오와급 전함이 마치 급류의 카누처럼 흔들렸다"라고 나중에 증언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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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파


이 사건으로 윌리엄 홀시 제독은 울리히 제도에서 개최된 군사법원(Naval Court of Enquiry)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함대를 태풍 쪽으로 향하도록 한 판단의 잘못은 있었다"라는 결론이 내려졌으나 실제로 어떠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4]
하지만 다음 해 1945년 6월에 최저기압 980hPa, 최대풍속 130km/h의 태풍 코니(Typhoon Connie)에 홀시 제독이 지휘하던 미 제3함대가 또 피해를 보았고 이번에는 함선 침몰이 없었지만, 다수의 함선이 손상을 입고 6명이 목숨을 잃고 항공기 76대가 손·망실되어 또 군사법원에 소환되어 이번에는 퇴역할 것을 법원에서 권고했지만,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도움으로 퇴역하지 않고 종전까지 현역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모가지는 겨우 피했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 때부터 일선에서 일본군을 상대하며 전공을 세웠던 홀시 입장에서 퇴역 얘기가 오가는 건 치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10월에 최저기압 969hPa, 최대풍속 150km/h의 태풍 루이스(Typhoon Louise)가 버크너 베이 해군기지를 덮쳐 건물과 함선, 보트, 항공기 등이 손·망실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러한 피해 때문에 이후 미 해군은 종전으로부터 약 14년 후인 1959년 5월 1일에 합동태풍경보센터(Joint Typhoon Warning Center)를 설립하여 태풍에 대한 관측 능력을 높이게 되었다.
피해를 본 함선 중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몬터레이에는 훗날 미국 38대 대통령이 되는 제럴드 포드가 타고 있었다. 당시 포드 본인도 파도에 휩쓸려 갈 뻔하고 화재를 진압하는 등 꽤 고생했다.

4. 여담


코브라가 왔을때 한반도는 매우 강한 1944-1945년 한파가 왔다.

5. 관련문서



6. 외부링크


Typhoons and Hurricanes: Pacific Typhoon, 18 December 1944
Typhoons and Hurricanes: Pacific Typhoon June 1945
Typhoons and Hurricanes: Pacific Typhoon at Okinawa, October 1945
wikipedia:Typhoon Cobra(1944)
wikipedia:Typhoon Connie(1945)
wikipedia:Joint Typhoon Warning Center
The Day a Typhoon Nearly Wiped Out the US Third Fleet
Two Typhoons Crippled Bull Halsey’s Task Force 38

[1] 미 해군이 태풍 코브라를 레이더로 촬영한 사진이다. '''태풍을 레이더로 직접 촬영한 최초의 사진이 되었다.'''[JTWC] [2] 제 4함대 사건은 54명의 사망자를 냈고 침몰한 군함은 없었다. 반면 태풍 코브라 사건은 아래 서술되어 있듯이 구축함 3척 침몰에 기타 함정 손상은 셀수도 없다.[3] 아이오와급 전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를 위해 폭이 제한되어서 전체적으로 길쭉한 형상을 하고 있었기에 능파성 개선이 있었음에도 악천후 항해성능은 저 크기 대에서 다소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함이 저렇게 흔들릴 정도면 정말로 강력한 태풍이었던 건 사실. 전함은 그 무거운 장갑에서 나오는 무게로 항해 시 놀라울 만큼 안정성을 갖는다. 일례로 일본 해군 제 1항공전대 소속 정규항모인 카가는 전함으로 건조되던 중 항모로 바뀐 케이스인데, 진주만을 치러 1, 2, 5항전이 하와이로 항해할 당시 최신 항공모함이었던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큰 파도를 만난다 싶으면 거의 20도 가까이 흔들리는 데 반해 카가는 약 5도 정도의 미동에 그쳤다고 전해진다.[4] 국문으로 직역하기가 쉽지 않지만, 재판보다는 조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