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바레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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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쿠웨이트'''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2.2. 21세기
3. 상호 왕래
4. 관련 문서


1. 개요


바레인쿠웨이트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아라비아 반도 동부 페르시아 만에 위치해 있으며, 모두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걸프 협력회의에 속해있는 나라들이다.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고대에는 모두 딜문 문명에 속해있었으며, 훗날 아라비아에서 대규모로 사람들이 이주해왔다.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아카드 제국, 아시리아,바빌로니아 또는 칼데아) 및 고대 페르시아(아케메네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 왕조)에 정복되어 지배를 받기도 했었으며, 그래서 이들 문화의 영향도 받았다. 622년, 아라비아에서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통일된 이후 이슬람이 창시되었고 훗날 바레인 군도와 쿠웨이트 지역도 점령되면서 이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인다. 이후 아랍 제국 시기에는 어로 생활을 하거나, 해상 무역을 통해 진주를 팔면서 큰 수익을 얻었다.
근세, 근대시기는 두 지역들은 오스만 제국에 복속되었으며, 1480년대 포르투갈 제국에 점령당하기도 했다가 나중에 오스만에 의해 축출되었다. 한동안 오스만의 지배를 받다가 사파비 왕조, 나디르 샤의 정복 때 잠시 페르시아에 점령되었다가 다시 오스만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752년, 동부 아라비아에서 알 칼리파 가문이 나타났는데 페르시아 만 해안일대를 중심으로 지금의 쿠웨이트 셰흐국이 나타났다. 쿠웨이트 셰흐국이 등장하기 이전 바레인과 쿠웨이트는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의 각축장이자 그 외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계 호족 중 해상에 강했던 세력들이 점거했었으나 쿠웨이트가 등장한 이후 최종적으로 쿠웨이트 지역에서 오스만과 기타 아랍계 세력들을 무찔렀다. 알 칼리파 가문은 1760년대에 등장했으며,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해상강국으로 번영했다. 1783년, 쿠웨이트는 최종적으로 바레인 섬들을 점령하여 이곳에 페르시아 세력을 축출했으며, 페르시아인과 페르시아군들이 페르시아로 물러난 후 바레인에 일부 쿠웨이트인들과 알 칼리파 왕족들이 이주했다. 이후 쿠웨이트에서는 알 칼리파가 아닌 알 사바 가문에 의해 통치되었고 바레인에서는 남은 알 칼리파 가문들을 중심으로 바레인을 다스렸으며, 이는 바레인의 시초가 된다.
두 나라들은 1800년대에 영국의 보호령을 받았는데 쿠웨이트에서 갈라진 바레인은 1820년, 쿠웨이트는 1871년에 오스만에 다시 지배를 받았다가 영국이 이곳에 패권을 확장하는 데 성공하면서 1899년에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후 쿠웨이트는 1961년에 독립되었으며, 바레인은 1971년에 독립되었다. 두 나라는 1971월 8월 19일에 수교를 맺었다.

2.2. 21세기


2011년 2월 바레인에서는 2월 14일, 쿠웨이트에서는 2월 18일에 첫 반정부 시위가 나타났으며, 쿠웨이트는 얼마 안가 시위가 끝났으나 바레인은 한동안 시위가 나타났다가 잠시 끝난듯 했으나 3월 16일에 시위가 재발발했으며, 11월에 다시 재봉기하자 바레인은 주변 국가들에게 군사 파견을 요청했고 쿠웨이트 역시 이를 받아들여 걸프 국가들의 동맹군들이 바레인 시위를 진압했다. 바레인 봉기가 다른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3. 상호 왕래


둘 다 이슬람이지만 세속주의를 표방하기에 개방적이고 신앙심을 적당하게 유지한다. 특히 바레인은 비무슬림들에게 돼지고기 소비와 음주도 허용할 수 있도록 하다보니 바레인에 놀러온 일부 아랍인(쿠웨이트 국적 포함)들은 물론 소수의 무슬림조차 술이나 돼지고기 소비를 하는 사람들도 적게나마 존재한다고 한다. 다만 정책으로서는 세속주의를 펼치지만 국민들 중 반 이상은 원리주의 성향도 있다보니 원리주의자 입장에서는 세속주의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으며, 술과 돼지고기를 허용할 수 있는 정책에 대해서도 다른 걸프만 아랍인들은 물론 바레인 아랍인들도 포함해서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두 나라들은 걸프 협력회의를 통해 군사동맹들도 맺었다.

4.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