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밴드)

 

[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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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크림
CREAM
'''
'''멤버'''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
'''입성 연도'''
'''1993년'''
'''후보자격 연도'''
'''1992년'''
<:><#0C0000>'''후보선정 연도'''||<:><#0C0000>'''{{{#ffd700 1992년, 19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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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 영문: Cream
사진 왼쪽부터
  • 진저 베이커[2] (Peter Edward "Ginger" Baker, 드럼, 1939~2019)
  • 잭 브루스 (John Symon Asher "Jack" Bruce, 베이스,피아노,리드보컬 1943~2014)
  • 에릭 클랩튼 (Eric Patrick Clapton, 기타,보컬 1945~)
1. 소개
2. 경력
3. 디스코그래피


1. 소개


영국의 6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록밴드.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과 천재 작곡가이며 베이스의 귀재이자 피아노, 하모니카 까지 담당한 잭 브루스,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3] 3명이 조직했던 세계 최초의 슈퍼밴드[4]이다. 하드 록이란 개념이 크림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블루스를 바탕으로 극한으로 올린 사운드[5]와 재즈에서나 볼 수 있는 개념인 임프로바이제이션(즉흥연주)를 록 공연에 최초로 도입함으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Jimi Hendrix Experience)와 함께 후대의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 경력


1966년 3월, 진저 베이커가 "멜로디 메이커"지와의 인터뷰에서 '''크림의 결성'''을 알렸다.[6] 이후 런던에서 펼쳐진 재즈/블루스 페스티벌에서 정식 데뷔무대를 갖게되었는데 당시 크림은 무명이라 마지막날 공연의 끝 순서에 배정을 받았다고 한다. 앞 순서가 더 후의 공연이었는데, 알다시피 후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밴드"'''로 정평이 나있었다. 크림은 이에 대조적인 반응을 보이며, 세 곡의 레퍼토리와 즉흥연주를 선보이며 공연을 이어갔고, 당대 최고의 실력과 자부심이 있는 만큼 관중들은 열띤 반응을 보였다.[7]
밴드 내의 음악적 주도권은 베이시스트 겸 리드 보컬리스트인 잭 브루스가 가지고 있었다. 대표곡들도 그가 작곡한 곡이 대부분인데, 열거해보면, "I Feel Free", "Sunshine Of Your Love"[8], "White Room"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참고로 이 곡들의 작사는 피트 브라운이라는 외부 인물이 따로 담당했다.
데뷔앨범, Fresh Cream 과 싱글 "I Feel Free" 가 인기를 모으면서,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점차 열성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이키델릭 블루스/하드록의 명반이라 불리는 "Disraeli Gears"가 나왔을 때 지미 헨드릭스가 혁신적인 비주얼과 음악을 들고 음악계에 등장했다. 그리고 1967년 당시 비틀즈, 롤링 스톤즈, 지미 헨드릭스의 3파전으로 압축되었고, 지미 헨드릭스는 인기의 여세를 몰아 크림을 제치고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에도 출연했다.사실 크림이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에게 잠시 밀렸던 건 사실이지만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Disraeli Gears"는 영국 차트를 점령하고, 미국 차트 5위까지 기록했다. 그 불세출의 명곡 "Sunshine Of Your Love"도 이 앨범에 수록되었다.[* 같은 해 나온 지미 헨드릭스의 Purple Haze와 함께 인상적인 리프로 하드 록 사운드의 시초로 알려진 곡. 오늘날 매체에서는 크림의 최대 히트곡인 White Room보다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Sunshine of Your Love가 빌보드 최고순위 5위, 연말차트 6위로 크게 히트했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Purple Haze의 인기를
압도했을 정도.]
1968년 크림은 "Wheels of Fire"를 발표했다. 하드록의 고전이 된 "White Room"을 빌보드 싱글차트 10위권에 올려놓으면서 앨범 차트 1위를 거머쥐었고, 크림의 최대 성공작이 된다. 그리고 전미 순회공연으로 인기몰이를 한다. 그러나 엄청난 공연 스케줄은 당시 멤버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음악도 각자의 기교를 과시하는 방향으로 목적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이러다 보니 음악적인 아이디어도 고갈되었고, 멤버간의 불화도 심해진다. 그리고 이 앨범은 최초로 백만장 이상을 판 더블 앨범이 된다.[9]
1968년 11월 여러 문제로 인해, 크림은 '''갑작스런 고별공연을 발표한다'''. 크림의 고별공연은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이틀간 펼쳐졌다.[10] 이후 "Goodbye" 앨범이 발표되고 크림은 해체한다.
영국 현지시간으로 2014년 10월 25일,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가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간질환으로 알려졌다.
이후 영국 현지시각으로 2019년 10월 6일. 드러머 진저 베이커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결국 크림에서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멤버는 최연소인 에릭 클랩튼이 되었다.

3. 디스코그래피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영미권에서는 빨간머리인 사람들을 ginger라고 부른다.고로 진저 베이커는 빨간머리다.[3] 투베이스 드러밍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이후 헤비메탈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4] 멤버 세 명 모두 각 분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이다.[5] 이명증으로 고생중인 에릭 클랩튼은 그 땐 정말 미친 짓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6] 잭 브루스와 에릭 클랩튼은 당시 각자의 밴드가 있었고 결성 사실은 비밀에 부쳤기에 불같은 성격의 잭에게 왕창 깨졌다고 한다.[7] 이 공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크림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멤버들도 음악적인 발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에릭 클랩튼이 쓴 자서전에 따르면 "우리는 3인조 블루스 밴드도 4인조 팝밴드만큼 멋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밴드의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했다."라고 했다고 한다.[8] 에릭 클랩튼과 공동 작곡[9] 이 앨범이 발매된 건 8월이고,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이 발매된 건 11월이었다.[10] 록 밴드 예스가 오프닝 밴드로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