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

 

''' 에릭 클랩튼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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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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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이름'''
'''에릭 클랩튼
ERIC CLAPTON
'''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00년'''
'''후보자격 연도'''
'''1996년'''
<:><bgcolor=#0C0000>'''후보선정 연도'''||<:><bgcolor=#0C0000>'''{{{#ffd700 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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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그래미 시상식'''[1]
[image]
'''올해의 레코드상'''
'''제34회
(1992년)'''

'''제35회
(1993년)'''

'''제36회
(1994년)'''
Unforgettable - 나탈리 콜(Feat. 냇 킹 콜)

Tears In Heaven - '''에릭 클랩튼'''

I Will Always Love You - 휘트니 휴스턴

'''제38회
(1996년)'''

'''제39회
(1997년)'''

'''제40회
(1999년)'''
Kiss from a Rose -

Change the World - '''에릭 클랩튼'''

Sunny Came Home - 숀 콜빈

'''올해의 노래상'''
'''제34회
(1992년)'''

'''제35회
(1993년)'''

'''제36회
(1994년)'''
"Unforgettable" - 어빙 고든

'''"Tears in Heaven"
-
에릭 클랩튼, 윌 제닝스'''

"A Whole New World"
-
앨런 멩컨, 팀 라이스









}}} ||
'''Eric Clapton'''
'''CBE'''
<colbgcolor=#333333> '''본명'''
에릭 패트릭 클랩튼
Eric Patrick Clapton
'''국적'''
[image] 영국
'''출생'''
1945년 3월 30일 (78세)
잉글랜드 서리 주 리플리
'''직업'''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학력'''
킹스턴 대학교 (중퇴)
'''장르'''
블루스
'''활동'''
1962년 ~ 현재
'''배우자'''
패티 보이드 (1979 ~ 1988)
멜리아 맥에너리 (2002 ~ )
'''신체'''
178cm
'''서명'''
[image]

1. 개요
2. 음악적 스타일
3. 음악적 자취
3.1. 초기: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3.2. 크림: 최초의 록 수퍼밴드
3.3. 블라인드 페이스: 또다른 수퍼밴드
3.4. 데릭 앤 더 도미노스: 그의 마지막 슈퍼밴드
3.5. 이후의 솔로 활동
3.6. 노년기에 다시 찾아온 전성기
4. 여담
5. 디스코그래피
5.1. 솔로
5.1.1. 정규 앨범
5.1.2. 라이브 앨범
5.1.3. 콜라보 앨범
5.1.4. 베스트 앨범
5.2. 밴드
5.2.1. 정규 앨범
5.2.2. 라이브 앨범
5.2.3. 베스트 앨범
5.3. 싱글
5.3.1.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5.3.1.1. 1위
5.3.1.2. 2위
5.3.1.3. 3위 - 10위
5.3.1.4. 11위 - 40위
5.3.2. 영국 UK 싱글 차트
5.3.2.1. 1위
5.3.2.2. 2위
5.3.2.3. 3위 - 10위
5.3.2.4. 11위 - 40위


1. 개요


<WHITE> {{{#!wiki style="margin: -5px -10px"[image]
'''Clapton is God'''[2]

'''사람들은 에릭 클랩튼과 같은 스타일의 연주를 단지 흥미만 갖고 연주하려 든다.'''

로리 갤러거

영국의 '''전설적인''' ,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들 중 한 명.

2. 음악적 스타일


'''로버트 존슨으로부터 이어져오는 블루스를 현대적으로 계승시킨 기타리스트.''' 특히 클린 톤에 강세를 둔다.[3]
그의 연주는 기본적으로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거기에 사이키델릭과 하드 록, 레게, 컨트리, 노년에는 재즈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렇게 현대 팝, 락의 조류를 따라가면서도 언제든지 에릭 클랩튼 본인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던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델타 블루스로 돌아가 블루스의 기본을 다진 복고적인 사운드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가 얘기하길 "블루스는 락이 벽에 부딪혔을 때 언제든지 다시 돌아가 영감을 얻어 돌아오는 군 본진과 같다."라고 했다. 'Wonderful Tonight' 등에서 보여주는 클린하면서도 따뜻한 클랩튼 특유의 기타 톤에 매료되어 카피하려고 하는 초보 기타리스트들이 많지만, 결국 파 보면 톤이 문제가 아니라 단지 기본기가 신급으로 탄탄한 것 뿐...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좌절하게 만드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제프 벡, 지미 페이지와 함께 소위 록 3대 기타리스트라는 타이틀로도 불린다. 참고로 이 3대 기타리스트라는 건 1970년대에 어느 일본 음악기자가 그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주장한 3대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한국에 들어와서 마치 확고한 정설인 것처럼 정착된 건데, 오직 한국에서만 유행해온 표현일 뿐이고 한국 이외의 나라들에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이 아니다.[4]
음악계 종사자들이 최고의 명예중 하나로 꼽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유일한 3중 헌액자'''이기도 한데, 솔로 아티스트 자격, 야드버즈의 멤버 자격, 크림의 멤버 자격으로 헌액되었다. 또한 비틀즈롤링 스톤스와의 친분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조지 해리슨과는 엄청난 절친이었으며 조지와 패티 보이드를 놓고 벌인 사랑 경쟁은 유명하다.[5]

3. 음악적 자취



3.1. 초기: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그는 어린 시절 시카고 블루스와 비비킹, 머디 워터스 등등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연주에 영향을 받아 기타를 시작했으며 1963년 전설적인 밴드 야드버즈에 가입한다.
이때 블루스 밴드였던 야드버즈가 본격적으로 팝 밴드로 노선을 바꾸기 위해 투입 되었던 곡이 For Your Love였는데 블루스 음악인으로의 자각이 컸던 에릭 클랩튼은 밴드의 방향 전환에 크게 갈등하게 되고 야드버즈에서 탈퇴 '''당하게''' 된다[6]. 이후 후임으로 들어오는 기타리스트가 바로 제프 벡. 야드버즈는 For Your Love[7]의 성공과 제프 벡의 뛰어난 음악적 능력으로 나름대로 인기를 구가하는 밴드[8]가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클랩튼은 청중으로부터 'Slow Handclap'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다. 에릭 클랩튼이 빠른 속도의 격렬한 연주를 할 때 줄이 끊어지는 일이 많아지자 줄 교체시간에 관객들이 그에게 느린 박수를 쳐주었는데 이에서 착안된 별명이 슬로우핸드. 다분히 미국적인 뉘앙스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인지 이후 그의 별명이 되었다. 이 표현은 곧 슬로우핸드가 된다.
야드버즈를 지미 페이지와 제프 벡에게 맡기고 그는 영국 블루스의 거장 존 메이욜(John Mayall-믹 재거, 키스 리차드, 지미 페이지 등등도 영향받은 영국 블루스의 큰 어르신)과 존 메이욜 앤 블루스 브레이커스를 결성하고 잠시동안 야드버즈의 팝적인 사운드가 아닌 매우 기본적이고 지금들으면 좀 답답하기도 한 정통 블루스를 연주하며 블루스적 필링을 다진다.

'''그리고 1966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의 하나인 크림을 조직한다'''.

3.2. 크림: 최초의 록 수퍼밴드


크림은 에릭 이외에도 최고의 연주실력을 가진 잭 브루스(베이스), 진저 베이커(드럼)가 멤버로 있던 밴드로 락 역사상 최초의 수퍼밴드로 얘기되며 3명의 멤버가 기타 - 베이스 - 드럼(이중 한 멤버가 보컬 겸업)을 연주하는 트리오 밴드로서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이후 이를 본딴 수많은 락 트리오들이 나타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크림에선 잭 브루스와 에릭 클랩튼이 번갈아 보컬을 맡았지만 주로 잭 브루스가 중요한 보컬을 맡았다.

이 시절 크림은 당시의 락의 조류였던 사이키델릭 락을 선도하면서 몽롱하고 느릿하기만 한 사이키델릭이 아닌 꽉 짜여진 연주와 힘찬 기타 리프, 반복적이고 강렬한 리듬, 무거운 베이스를 깐 락 음악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후 탄생하는 하드락과 헤비메탈의 연주측면에서의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크림의 주요 히트곡으로는 리프의 교과서 ''''Sunshine of Your Love''''와 잭 브루스의 ''''White Room''''이 있다.
크림하면 에릭 클랩튼만 생각하지만 사실 다른 멤버들의 음악성도 무시할수 없었고 특히 잭 브루스는 에릭보다 더 전위적이고 정신적으로 심오한 음악세계(주로 프리재즈 성향의)를 추구해 밴드는 계속 유지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결국 1968년 크림은 해체된다.
크림이 해체하게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첫째로는 지나친 투어일정으로 인해 창작활동이 마비된 것, 두번째로 공연이 멤버들의 화려한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를 강조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것, 세번째로는 멤버 3명 모두 리더기질이 다분한 한성깔(?) 하는 인물들이라서 의견충돌이 잦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성격의 혈기왕성한 젊은 세명의 뮤지션들이 허구언날 붙어다니니 싸움이 안날래야 안날수도 없고 잭 브루스의 프리재즈를 지향하는 방향성으로 인해 다른 두 멤버와의 음악적 충돌도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다른 이유로는 지미 헨드릭스의 등장 때문에 좀 밀렸다는 얘기도 있었다.
한편, 에릭 클랩튼은 비틀즈(특히 조지 해리슨)와 친분이 있어 비틀즈의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의 기타 연주를 해주기도 했다. 이는 조지의 다소 즉흥적인 제안이었는데, 다른 아티스트가 비틀즈의 곡에 연주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에릭은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꺼렸다고 한다.[9] 조지 해리슨이 회상하기를 당시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꼽히던 에릭 클랩튼이 녹음에 참여하자 다른 비틀즈 멤버들도 평소보다 더 진지하게 녹음에 임했다고 한다.
근데 조지 해리슨하고만 친하면 좋은데 에릭은 조지의 부인 패티 보이드와도 친밀해진다. 패티 보이드가 힌두교에만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는[10] 조지 해리슨에게 질투 작전을 펼친 덕분. 그런데 사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조지 해리슨은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거기다 조지 해리슨은 이미 링고 스타의 아내 모린 콕스와 바람이 나있던 상황이었고, 에릭 클랩튼도 빈말로도 인간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 자세한 건 조지 해리슨 항목 참고.

3.3. 블라인드 페이스: 또다른 수퍼밴드


크림을 해체한뒤 또다른 슈퍼밴드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결성하는데 이 밴드는 크림시절의 진저 베이커와 트래픽의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스티브 윈우드, 바이올린과 베이스 주자 릭 그레치가 참여해 이루어진 밴드였다. 이 밴드에서 에릭은 스티브 윈우드의 음악성에 경의를 표하고 밴드의 주도권과 보컬을 넘겨주게 된다.
이 시절의 음악은 스티브 윈우드의 영향으로 굉장히 단아하고 정돈되어 그야말로 고상하기 그지없는 사운드를 보여준다. 마치 스티브 윈우드의 전신 밴드였던 트래픽의 음악이 연주적으로 더 알차져서 연주되는 듯한 느낌으로 재즈와 민속음악, 프로그레시브 등등의 영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시기의 명곡으로는 현악협주곡처럼 단아한 어쿠스틱 기타연주가 돋보이는 곡 'Can't Find My Way Home', 장엄한 사이키델릭 블루스 'Presence Of The Lord' 등등이 있다.
하지만 에릭 클랩튼은 이런 지나치게 심오한 음악 세계에 진력이 났는지 앨범 한장만 발표한뒤 곧 밴드를 그만둔다.[11]
여담으로 이 시절 낸 셀프 타이틀 앨범 'Blind Faith'의 앨범 커버가 지금 기준으로 상당히 위험한 물건으로 유명하다. 다름 아닌 '''11세(!)''' 소녀의 상반신 누드 사진을 앨범 커버로 쓴 것이다. 심지어 이마저도 원래는 14세 소녀를 커버로 쓸 예정이었다가 너무 나이 들었다고(...) 빠꾸를 먹이고 3살 어린 여동생을 대신 찍은 것이라고. 커버 속 소녀는 비행기 모형을 들고 있는데, 비행기 끝이 둥글고 묘하게 뭉툭한 것이 남근을 연상시킨다는 설까지 있었다. 그래서 미국 버전을 낼 때는 멤버들 사진과 밴드명을 대충 붙인 커버로 때워야 했다.

3.4. 데릭 앤 더 도미노스: 그의 마지막 슈퍼밴드


블라인드 페이스 해체 후 1970년 에릭 클랩튼은 블라인드 페이스 시절 같이 투어를 다니던 '델라니 앤 보니와 친구들(Delaney & Bonnie and Friends)'라는 밴드의 일부 멤버들(짐 고든, 칼 래들, 바비 위트록)과 의기투합해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를 결성한다.[12] 이 시기에 밴드는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라는 단 한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해체한다. 여기에 듀언 올맨[13]도 객원 기타리스트로 참여한다.
이때의 음악은 블라인드 페이스 시절의 지나친 절제와 정돈을 벗어나 그야말로 푸근하고 따뜻한 블루스록 그 자체를 들려준다. 에릭 클랩튼과 듀언 올맨 두 사람의 협연 기타 연주는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시기 명곡으로는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에게 바치는 사랑의 찬가[14] Layla와 정말 슬프고 아름다운 'Bell Bottom Blues'와 어쿠스틱 곡 'Thorn Tree in the Garden', Billy Myles와 Big Bill Broonzy의 블루스 넘버를각각 리메이크 한 'Have You Ever Loved a Woman?', 'Key to Highway',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리프를 새롭게 해석해 연주한 'Little Wing' 등이 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연주 라이벌이자 동반자, 소울메이트같은 관계였던 또다른 위대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사망하고, 밴드를 같이하던 듀언 올맨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다.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하던 짐 고든은 정신 분열증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사적으로는 패티 보이드에게 실연까지 당했다. 이런 비극이 겹치자 에릭 클랩튼은 한동안 슬픔과 비탄에 잠겨 술과 마약에 빠져 폐인처럼 인생을 허비하며 괴로운 시간을 지냈다.
당시 에릭과 패티는 꽤 깊은 사이로까지 발전했으나 조지를 사랑하는 패티가 결국 다시 조지에게 돌아가게 되면서 둘은 헤어졌다. 이후 조지의 바람기로 조지와 패티가 이혼하고 뒤에 둘은 결혼한다. 이런것만 보면 에릭이 패티를 엄청 사랑했던 것 같지만, 에릭은 결혼 전이나 후나 술과 마약을 해댔고 패티가 아이를 못 낳는다는 걸 알자 밖에서 '''사생아를 둘이나 데려온다.''' 거기다 후에 에릭이 자서전에 밝히길 패티를 원한건 '''그저 조지 해리슨이 질투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3.5. 이후의 솔로 활동


이후 에릭 클랩튼은 밴드를 그만두고 계속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
솔로 이후의 그의 음악은 비트는 많이 줄어들고 섬세한 기타연주를 강조하는 조용한 사운드를 추구하게 된다. 이 때 마약중독을 극복하고 재활을 거치며 461 Ocean Boulevard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1971년 인도에 심취했던 친구 조지 해리슨의 권유에 따라 태풍(사이클론)에 희생된 방글라데시 난민들을 돕는 자선콘서트에 참석하기도 했다. 1975년 더 후의 락 오페라를 영화화한 작품 'Tommy'에 참여하기도 했다.
솔로시절 명곡으로는 밥 말리의 레게 곡 리메이크인 ''''I Shot The Sheriff'''', 옛날 서울의 달이란 MBC 드라마로 유명해진 'Give Me Strength', 아름다운 발라드 'Let It Grow'[15], 레게풍의 가스펠 리메이크곡 'Swing Low Sweet Chariot', 마약 이름이라 논란이 있었던 'Cocaine'[16], 그리고 마침내 조지 해리슨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한 부인 패티에게 바치는 찬가 ''''Wonderful Tonight''''이 있다(근데 결국 이혼하지만...).
1988년,[17]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에게 조지 해리슨이 보여준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고, 에릭 클랩튼의 바람기와 병크를 못 견디고 결국 둘은 이혼한다. 에릭 클랩튼은 조지 해리슨을 질투해서 패티 보이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트로피 와이프 취급한 것이라고 대놓고 밝혔고, 이후 패티는 오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했다.
결국 패티만 피해받은 셈.

3.6. 노년기에 다시 찾아온 전성기


1991년 이탈리아의 방송인 로리 델 산토가 낳아준 4살 된 아들 코너가 무려 53층이나 되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한다.[18] 이 때, 에릭 클랩튼은 슬픔에 빠져 지내다가 아들을 그리워하는 곡 ''''Tears in Heaven''''을 작곡한다. 무슨 새옹지마 였는지 이 곡은 그가 음악을 맡게 된 영화 러시[19]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어 엄청나게 크게 히트하고 이를 계기로 에릭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당시 언플러그드의 돌풍이 음악계를 강타하고 있던 때라 에릭은 MTV 언플러그드 콘서트에 나가 'Tears in Heaven' 외에 데릭 앤 더 도미노즈 시절의 히트곡 'Layla'의 어쿠스틱 곡 등등도 선보였고 이 공연은 크게 성공하였다.[20][21][22]
이 이후로도 에릭 클랩튼은 여전히 계속 활동하고 있다. 영화 페노메논의 삽입곡이자 베이비페이스와의 협업곡인 'Change the World'도 히트시키고 블루스의 거장 비비킹과 협연한(비비킹을 선배로서 극히 예우한) 'Riding with the King' 등등의 정통 블루스로 회귀한 앨범도 내고 있으며, 블라인드 페이스나 크림 시절의 동료들과 만나 그 시절의 곡들을 협연하기도 한다. 또 라이브 투어도 계속하고 있다.
자신도 마약에 중독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약치료시설에 상당한 기부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기부금만 내는 정도가 아니고 Crossroads라고 아예 자기가 지은 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재활 시설이 있다. 그리고 자선공연이나 여러 기부행사에도 자주 나가는 편이라고.
에릭 클랩튼이 쓴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중국 등지에서 자신의 라이브 DVD가 불법복제되어서 헐값에 판매되고 있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이는 비단 에릭 클랩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국 뮤지션들이 중국에 대해 큰 반감을 갖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에릭 클랩튼 불법 DVD가 장당 3000원~40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에릭 클랩튼의 팬이라면 정품을 애용하자!
에릭 클랩튼이 첫 내한공연차 방한 했을 때 공연 다음날 가이드에게 서울 시내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가이드가 호텔에서 가까운 압구정동을 안내했다고 한다. 한가한 평일 오후의 압구정 거리를 산책하던 에릭 클랩튼은 '1만원에 3켤레'란 가격에 양말을 파는 노점을 발견하곤 양말을 꼼꼼히 골라 샀는데 노점 주인이 '외국인이 참 곱게 늙었다'며 양말 1켤레를 덤으로 줘서 에릭 클랩튼이 기뻐하며 고마워 했다고 한다.
2011년 싱가포르 공연을 했는데 김정일의 차남인 김정철이 이 공연을 보러와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2016년 음악 잡지인 Classic Rock의 인터뷰에서 2013년에 말초신경병증(peripheral neuropathy)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팔다리에 찌르는 통증 또는 작열감이 드는 질환이기에 많은 팬들이 걱정하였으나, 2018년 현재 투어 일정이 잡혀있는 것으로 볼 때 다행히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월에 영국 BBC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귀에 이명 증상이 있으며, 손도 간신히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였다. 관련 기사

4. 여담


  • 지금도 매우 미노년인데, 젊은 시절엔 꽃미남이었다.
  • 기타의 신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 잘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상당한 보컬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가져다 준 그 유명한 MTV Unplugged에서 심금을 울리는 그의 보컬을 다시 한번 들어보자
  • 재산이 3000 ~ 4000억원으로 영국 출신 뮤지션으로는 최상위급이며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나 로버트 플랜트, 브라이언 메이 등등의 2배가 넘는다.[23]
  • 1995년에 음악적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고, 2004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녀 앤 공주의 추천으로 신년 Honours List에 올라 3등급(CBE)으로 승급되었다. 나이차이가 꽤 나는 현재의 아내[24]와 딸 세 명을 두고 있다.
  • 연주에 주로 사용하는 기타는 일렉트릭 기타계의 명기로 불리는 Fender Stratocaster. 데뷔초기에 이런저런 기타를 쓰다가(Gibson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Les Paul (BEANO)를 사용한 기타톤은 에릭 클랩튼을 신이라 불리는 계기가 되었고 크림시절까지 그의 메인기타는 언제나 깁슨이었다.) 1969년부터 스트렛을 자신의 메인으로 삼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유명세 때문에 1988년도부턴 시그니처 모델이 나오고 있는데, 그가 직접 개조를 가한 오리지널 스트렛인 일명 블랙키(BLACKIE)를 기반으로 생산되고 있는 모델이다. 한국에도 정식수입 및 판매되고 있는데 가격은 약 2~300만원 대. 2006년엔 에릭 클랩튼이 블랙키에 남긴 흔적을 100% 재현한[25] 리이슈 한정판 275대를 판매하기도 했다.[26]
  • 탑기어 시즌19 4회의 기아 씨드 2세대 모델 리뷰편에서 제레미 클락슨이 기타 좀 치는 동네 형님으로 소개하면서 짧게 등장하였다.[27]
  • 페라리광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인차고에 각종 페라리 차량을 수십대 보유중인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976년에 첫선을 보여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512BB 모델을 가장 좋아하여 3대나 보유중이라고 하는데, 최근 페라리측에서 에릭 클랩튼의 특별주문에 따라 페라리 458 이탈리아를 기반으로한 원-오프(One-off)모델인 Ferrari SP12 EC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전체적인 디자인을 올드카인 512BB에 맞추었으며 본래 클랩튼은 12기통 엔진을 원했으나 458의 v8엔진을 그대로 썼다.
  • 위에서도 언급했 듯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은 에릭 클랩튼의 광팬이라고 한다.
  • 461 Ocean Boulevard를 발매했을 시점, 친구이자 동료 뮤지션인 비 지스가 침체기에 빠져있을때 조언을 주었고 그리하여 그들의 명반 Main Course가 탄생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비 지스는 70년대 후반 전세계를 휩쓸며 정상에 올라섰다.
  • 또한 나중인 1988년에 비 지스와 함께 더 번버리스(The Bunburys)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88 서울 올림픽 주제가 앨범에 노래도 수록했다.
  • >'''오늘 밤에 모이신 청중 중에 외국인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손을 들어 주세요... 그래서 어디 계십니까? 어디 계시든 간에, 그냥 여기서 떠나 주시죠. 콘서트장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떠나 주시죠... 저는 당신들이 여기 있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이 방 안이든 저희 나라에든. 들어 보세요! 우리들은 그들을 모두 돌려 보내야 합니다. 영국이 흑인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외국인을 쫓아냅시다. 유색 인종을 쫓아냅시다. 깜둥이들을 쫓아냅시다. 영국을 계속 하얗게... 검은 유색 인종과 깜둥이들과 아랍인과 망할 자메이칸은 여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영국입니다, 여기는 백인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유색인종과 검둥이들이 여기에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영국은 백인을 위한 나라입니다. 나 참... 여기는 대영제국입니다, 백인의 나라인데, 도당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유색인종을 쫓아내자! 영국을 계속 하얗게![28]
>― 1976년 8월 5일 버밍엄 콘서트 도중의 발언
1976년 인종 분리를 주장한 극우 정치인 에녹 파웰(Enoch Powell)을 지지 선언하고 콘서트장, 기자 회견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을 수 차례 하여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동시기에 파시즘에 경도되어 각종 문제 발언을 하던 데이빗 보위와 함께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록(Rock Against Racism) 운동이 시작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2018년 자신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 에릭 클랩튼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 2020년의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가운데에서 밴 모리슨과 함께 락다운 반대 운동에 참가하고 자가격리에 반대하는 내용의 곡을 발표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기사 번역

5. 디스코그래피



5.1. 솔로



5.1.1. 정규 앨범


  • Eric Clapton (1970)
  • 461 Ocean Boulevard (1974)
  • There's One in Every Crowd (1975)
  • No Reason to Cry (1976)
  • Slowhand (1977)
  • Backless (1978)
  • Another Ticket (1981)
  • Money and Cigarettes (1983)
  • Behind the Sun (1985)
  • August (1986)
  • Journeyman (1989)
  • From the Cradle (1994)
  • Pilgrim (1998)
  • Reptile (2001)
  • Me and Mr. Johnson (2004)
  • Sessions for Robert J (2004)
  • Back Home (2005)
  • Clapton (2010)
  • Old Sock (2013)
  • I Still Do (2016)
  • Happy Xmas (2018)

5.1.2. 라이브 앨범


  • Eric Clapton's Rainbow Concert (1973)
  • E. C. Was Here (1975)
  • Just One Night (1980)
  • Time Pieces Vol.II Live in the Seventies (1983)
  • 24 Nights (1991)
  • MTV-Unplugged (1992)
  • Crossroads 2: Live in the Seventies (1996)
  • One More Car, One More Rider (2002)
  • Live from Madison Square Garden (with Steve Winwood) (2009)
  • Play the Blues: Live from Jazz at Lincoln Center (with Wynton Marsalis) (2011)
  • Crossroads Guitar Festival 2013 (2013)
  • Slowhand at 70 – Live at the Royal Albert Hall (2015)

5.1.3. 콜라보 앨범


  • Riding with the King (2000)
  • The Road to Escondido (2006)
  • The Breeze: An Appreciation of JJ Cale (2014)

5.1.4. 베스트 앨범


  • The History of Eric Clapton (1972)
  • Eric Clapton at His Best (1972)
  • Clapton (1973)
  • Steppin' Out (1981)
  • Timepieces: The Best of Eric Clapton (1982)
  • Backtrackin' (1984)
  • The Cream of Eric Clapton (UK) (1987)
  • Crossroads (1988)
  • Story (1991)
  • Stages (1993)
  • The Cream of Clapton (International) (1995)
  • Blues (1999)
  • Clapton Chronicles: The Best of Eric Clapton (1999)
  • Martin Scorsese Presents The Blues: Eric Clapton (2003)
  • 20th Century Masters – The Millennium Collection: The Best of Eric Clapton (2004)
  • Complete Clapton (2007)
  • Icon (2011)
  • Forever Man (2015)

5.2. 밴드



5.2.1. 정규 앨범


  • For Your Love (1965, 야드버즈)
  • Blues Breakers with Eric Clapton (1966, 존 메이올 & 블루스 브레이커스)
  • Fresh Cream (1966, 크림)
  • Disraeli Gears (1967, 크림)
  • Wheels of Fire (1968, 크림)
  • Goodbye (1969, 크림)
  • Blind Faith (1969, 블라인드 페이스)
  •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1970, 데릭 앤 더 도미노스)

5.2.2. 라이브 앨범


  • Five Live Yardbirds (1964, 야드버즈)
  • Sonny Boy Williamson and The Yardbirds (1965, 야드버즈)
  • Live Cream (1970, 크림)
  • Live Cream Volume II (1972, 크림)
  • Live Peace in Toronto 1969 (1968, 플라스틱 오노 밴드)
  • On Tour with Eric Clapton (1970, 델라니 앤 보니 & 프렌즈)
  • In Concert (1973, 데릭 앤 더 도미노스)
  • Live at the Fillmore (1994, 데릭 앤 더 도미노스)
  • Live! Blueswailing July '64 (2003, 야드버즈)
  • Royal Albert Hall London May 2-3-5-6, 2005 (2005, 크림)

5.2.3. 베스트 앨범


  • Having a Rave Up (1965, 야드버즈)
  • Best of Cream (1968, 크림)
  • Heavy Cream (1972, 크림)
  • Cream Off the Top (1973, 크림)
  • Strange Brew (1983, 크림)
  • The Very Best of Cream (1995, 크림)
  • 20th Century Masters: The Millennium Collection: The Best of Cream (2000, 크림)
  • BBC Sessions (2003, 크림)
  • Cream Gold (2005, 크림)
  • I Feel Free Ultimate Cream (2005, 크림)
  • Icon (2011, 크림)
  • The Alternative Album (2013, 크림)

5.3. 싱글



5.3.1.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5.3.1.1. 1위

  • "I Shot the Sheriff" (1974, 1위)

5.3.1.2. 2위

  • "Tears in Heaven" (1992, 2위)

5.3.1.3. 3위 - 10위

  • "For Your Love" / "Got to Hurry" (1965, 6위, 야드버즈)
  • "Sunshine of Your Love" / "SWLABR" (US: Gold) (1968, 5위, 크림)
  • "White Room" / "Those Were the Days" (1968, 6위, 크림)
  • "Layla" / "I am Yours" (1970, 10위, 데릭 앤 더 도미노스)
  • "Lay Down Sally" (1977, 3위)
  • "Promises" (1978,9위)
  • "I Can't Stand It" (1981,10위)
  • "Layla (Acoustic)" (1992, 12위)
  • "Change the World" (1996, 5위)

5.3.1.4. 11위 - 40위

  • "Crossroads" (live) / "Passing the Time" (1968, 28위, 크림)
  • "Cold Turkey" / "Don't Worry Kyoko" (1968, 30위, 플라스틱 오노 밴드)
  • "After Midnight" (1970, 18위)
  • "Willie and the Hand Jive"(1974, 26위)
  • "Hello Old Friend" (1976, 24위)
  • "Wonderful Tonight" (1977, 16위)
  • "Cocaine" (1979, 30위)
  • "I've Got a Rock 'n' Roll Heart" (1983, 24위)
  • "Forever Man"(1985, 26위)
  • "My Father's Eyes" (1998, 16위)

5.3.2. 영국 UK 싱글 차트



5.3.2.1. 1위

  • "Love Can Build a Bridge" (1위, 1995)

5.3.2.2. 2위


5.3.2.3. 3위 - 10위

  • "For Your Love" (3위, 야드버즈)
  • "Layla" / "Bell Bottom Blues" (1970, 7위, 데릭 앤 더 도미노스)
  • "I Shot the Sheriff" (1974, 9위)
  • "Tears in Heaven" (5위, 1992)

5.3.2.4. 11위 - 40위

  • "Wrapping Paper" / "Cat's Squirrel" (1966, 34위, 크림)
  • "I Feel Free" / "N.S.U." (1966, 11위, 크림)
  • "Strange Brew" / "Tales of Brave Ulysses" (1967, 17위, 크림)
  • "Sunshine of Your Love" / "SWLABR" (US: Gold) (1968, 25위, 크림)
  • "Anyone for Tennis (The Savage Seven theme)" / "Pressed Rat and Warthog" (1968, 40위, 크림)
  • "White Room" / "Those Were the Days" (1968, 28위, 크림)
  • "Badge" / "What a Bringdown" (1969, 18위, 크림)
  • "Cold Turkey" / "Don't Worry Kyoko" (1969, 14위, 플라스틱 오노 밴드)
  • "Comin' Home" / "Groupie (Superstar)" (1969, 19위, 댈라니 앤 보니)
  • "Swing Low, Sweet Chariot" (19위, 1975)
  • "Knockin' on Heaven's Door" (38위, 1975)
  • "Lay Down Sally" (39위, 1977)
  • "Promises" (37위, 1978)
  • "Behind the Mask" (15위, 1987)
  • "Bad Love" (25위, 1990)
  • "Wonderful Tonight (Live)" (30위, 1991)
  • "Runaway Train" (31위, 1992)
  • "It's Probably Me" (32위, 1992)
  • "Change the World" (18위, 1996)
  • "Circus (Album version)" (39위, 1998)
  • "My Father's Eyes" (33위, 1998)
  • "Forever Man (How Many Times?)" (26위, 2000)
[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바랍니다.[2] # 누군가가 그래피티로 "Clapton is God"을 엄청 크게 적어놔서 화제가 된적이 있었는데 이게 곧 그의 별명이 되었다.[3] 무조건 클린 톤만 쓰는 것은 아니고, 'Sunshine Of Your Love', 'Layla' 등은 퍼즈 등의 이펙터를 사용하였다.[4] 애초에 '''지미 헨드릭스'''가 없는 것 자체부터가 정설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5] 말이 사랑 경쟁이지 실상은 대중음악사상 전무후무한 최악의 불륜이라고도 불리며, 조지 해리슨 역시 링고 스타의 아내와 맞바람을 피우며(...) 현재까지도 전설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곤 한다. 이때 에릭 클랩튼은 그의 명곡인 Layla를 패티 보이드에 바치기 위해 쓰기도 했으며 롤링스톤 선정 500대 명곡에서도 30위권 안에 들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6] 밴드 내부 분열보다는 매니저였던 고멜스키와의 대립이 더 컸다. 이 고멜스키란 인물은 롤링 스톤스, 애니멀스, 야드버즈에 모두 관여한 당대의 거물이었다.[7] 밴드를 나오기 전 클랩튼이 여기서 기타를 쳤다.[8] 제프 벡 투입전에도 전혀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9] 이 시점까지 비틀즈 곡에 다른 대중 음악 아티스트가 참여한 일은 1962년 'Love Me Do'/'PS I Love You' 녹음 당시 링고 스타 대신 드러머로 참여했던 앤디 화이트 정도가 전부였다. 이후로는 'Revolution'에 니키 홉킨스, Let It Be 앨범에 빌리 프레스턴이 참여했다.[10] 그러나 조지는 힌두교에 몰두하면서도 바람을 계속 피웠다.(...)[11] 이 이후에도 에릭 클랩튼과 스티브 윈우드는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하고 다시 같이 음악 할 것은 약속하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9년에서야 그 결과물로서 메디슨 스퀘어 가든 라이브 실황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12] Derek은 에릭 클랩튼의 친구들이 그를 애칭으로 부르는 이름이고, Dominos가 나머지 멤버들을 의미한다.[13] 밴드 Allman Brothers의 리드 기타리스트이다. 롤링 스톤 선정 역대 기타리스트 '''9위'''라는 매우 높은 순위를 자랑하며, Layla를 만든 직후인 1971년 사망했다.[14] 결국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과 이혼하고 에릭 클랩튼과 재혼했다. 하지만 에릭 클랩튼의 바람기 때문에 이혼.[15] Led Zeppelin의 명곡 'Stairway To Heaven'의 영향을 받았다. 코드카피를 했다고 한다.[16] 원래 JJ Cale의 곡이지만 에릭클랩튼의 커버버젼이 워낙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에릭 클랩튼의 곡으로 알고 있다. 에릭 클랩튼은 마약의 유해성을 알려주는 곡이라고 생각한다고. 공연할 때 코러스 가사에 'that dirty cocaine'을 추가하기도 한다.[17] 어떤 곳은 1989년이라고 한다.[18] 가정부가 청소하느라 창문을 열어뒀다고 한다. 산토가 전화를 하여 "코너를 당신이 데려갔나요? 안 보이던데요?"라는 말을 듣고 불길함을 감추지 못했는데...결국 그 높은 곳에서 떨어져 끔찍한 모습으로 된 시체를 보고 만다... 그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여담이긴 하지만 이 사건을 가지고 애널 컨트라는 미국의 그라인드코어 밴드가 '''Conor Clapton Committed Suicide Because His Father Sucks'''라는 노래를 만든다. 다만 고소를 우려한 이 밴드의 소속사가 제목을 교체하긴 했지만 그 교체한 제목이라는 것이 '''Your Kid Committed Suicide Because You Suck'''(...) 그리고 가사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뭐 그라인드에서 이 정도 막장 가사는 아무것도 아니다만(...).[19] 영화 내용은 노래처럼(?) 아름답지는 않다. 마약 수사를 위해서 비밀리에 마약 소굴에 잠입한 남, 녀 경찰이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결국 마약 밀매단을 소탕하지만 남주인공은 죽고 여주인공은 중독 상태가 되어 보호소로 가야했다... 참고로 스타크래프트의 주인공 짐 레이너의 이름도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20] 동일 년도에 공연 실황 라이브앨범이 발매됐는데 이 앨범으로 에릭 클랩튼은 그래미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제외한 Record of the Year, Album of the Year, Song of the Year의 주요 3부문 포함 '''6관왕'''을 달성하였다.(이 때의 경쟁곡이 다름아닌 너바나Smells Like Teen Spirit) 다시 말하지만 이거 '''라이브 앨범'''이다.[21] 후일담으로 Tears in Heaven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탓으로 너무 많이 부른데다 시간도 많이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때의 감정이 살지 않는다며 이제 부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일도 있다.[22] 정확히 말하자면, 2004년 이래로 부르지 않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죽은 아들인 코너를 이제는 보내 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23] 여담으로 1위는 폴 매카트니.[24] Melia McEnery. 1998년 53세의 클랩튼과 22세의 나이로 만나 2001년 결혼.[25] 도장이 벗겨진 부분은 물론이고 수 천번의 연주로 뒤틀린 넥, 담배불을 지져서 끈 흔적을 그대로 담아냈다.[26] 참고로 이 블랙키의 탄생 배경은 다음과 같다. 원래 상기하였듯 깁슨을 주로 쓰던 에릭은 '데릭 앤 더 도미노스' 시절 동료이자 친구인 스티브 윈우드가 흰색 Stratocaster를 갖고 있는 것과, 자신의 우상인 버디 홀리와 버디 가이 모두 Stratocaster를 연주하였다는 것에 영향을 받아 내슈빌의 악기점에서 한 대 당 100달러 조금 안 되는 값에 생산된지 몇 년 된 스트랫 여섯 대를 샀다. 이 중 세 대는 조지 해리슨, 피트 타운젠드, 스티브 윈우드에게 선물하였고, 나머지 세 대는 본인이 각각의 기타에서 좋은 부품만 골라 빼내어 스트랫 한 대를 만들었다. 이 기타가 바로 블랙키.[27] 카오디오에 일렉기타를 연결하여 짧게 2곡(Layla와 Sunshine of your love의 메인 리프)을 연주하며 성능 테스트를 해주었다.[28] 원문 - Do we have any foreigners in the audience tonight? If so, please put up your hands … So where are you? Well wherever you all are, I think you should all just leave. Not just leave the hall, leave our country … I don’t want you here, in the room or in my country. Listen to me, man! I think we should send them all back. Stop Britain from becoming a black colony. Get the foreigners out. Get the wogs out. Get the coons out. Keep Britain white … The black wogs and coons and Arabs and f*cking Jamaicans don’t belong here, we don’t want them here. This is England, this is a white country, we don’t want any black wogs and coons living here. We need to make clear to them they are not welcome. England is for white people, man … This is Great Britain, a white country, what is happening to us, for f*ck’s sake? … Throw the wogs out! Keep Britain wh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