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
1. 개요
공산권이 붕괴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나타난 시대. 대한민국에서는 제6공화국의 시작과 맞물린다.
2. 역사
2.1. 냉전의 종식 (1985~1991)
1989년 동구 공산권 붕괴의 주인공은 바웬사나 하벨이 아닌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고르바초프는 막장으로 치닫는 소련 경제를 개선하고자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를 추진, 돈만 먹는 군비 경쟁을 줄이고 미국의 지원을 얻고자 평화 외교ㆍ군축 협상을 실시해 서구권에서 엄청난 외교적 인기를 구가하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한 것이 동구 공산권 붕괴로 이어졌다. 고르바초프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버려도 동유럽이 친소파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현실은...
한편 냉전 말엽, 소련의 경제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소련이 히틀러의 제3제국처럼 살아남으려 마지막 발악을 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다행히 소련은 미국과 NATO를 향해 발악하지 않고 스스로 붕괴되었으며[2] 세계멸망의 위기는 조금 사라졌다.
세계를 양분했던 두 거대 세력의 대결치고는 마무리가 허전한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소련이 사라지면서 냉전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종주국이었던 소련 쪽은 물론이고 다른 공산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국과 베트남 같이 공산국가이긴 했지만 소련의 영향 아래 있지는 않았던 공산국가들도 차차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나 베트남의 도이모이 운동과 같은 개방 정책으로 선회하였으며 동유럽의 수많은 공산국가들도 소련의 영향력을 벗어나 하나의 유럽 체제로 뭉쳐 나갔다. 물론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처럼 사회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막장으로 개조시킨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문을 닫아건 나라도 있다(...).
사실 미국이 냉전 말기에 냉전을 이기기 위해 큰 공작을 한 것도 아니고 냉전 승리를 주워먹은 것이 맞다. 소련에 강경하던 레이건 정권도 고르바초프 집권 직후 대소 강경 정책에서 유화 정책으로 돌아섰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며 강경하던 레이건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자 소련을 비난하여 자극하지 않고 유화 정책을 펼쳤다. 비록 레이건이 상호확증파괴 개념을 극단적으로 싫어해 SDI에 집착해서 SDI 포기를 요구하는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레이건은 SDI 기술을 소련과 공유하겠다며 미국과 소련이 SDI를 공유하면 핵무기가 무력화되어 결국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게 될 거라는 이상론을 주장했다(...). 사실 2차 집권기의 레이건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야 된다고 수시로 주장했고 화성인이 침공하면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야 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3]
비록 SDI 문제로 갈등이 있었지만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INF 협정을 체결했고 레이건은 소련을 방문해서 더 이상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베를린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는 명연설을 하기는 했지만 립서비스였고 레이건은 2차 집권기에 냉전 승리를 위해 특별히 큰 공작을 하지는 않았다.
이후 부시 집권기에도 미국은 소련에 유화 정책을 펼쳤다.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위성국들이 민주화되자 미국은 환영했지만 동유럽 공산 정권 붕괴를 위해 큰 공작을 하지는 않았고 소련의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로 위성국들의 공산 정권이 무너졌다. 미국은 동유럽 민주화와 독일 통일에 만족하고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소련이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으로 흔들렸지만 미국은 독립운동 지원은 커녕 소련 붕괴 직전까지도 소련의 내전을 우려하며 오히려 독립 요구를 말리려 했다. 1991년 7월에는 양국이 전략무기를 감축하는 제1차 전략무기감축협정을 맺었다. 8월 쿠데타 전에는 공산당의 권력이 살아 있었고 소련이 평화적으로 붕괴될 거라고 예상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1991년 8월 쿠데타 직전에는 고르바초프의 요청으로 부시는 우크라이나에서 독립 반대 연설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쓴 이 연설에서 부시는 미국은 독립운동을 지원하지 않을 거라며 독립운동을 자기파괴적인 민족주의라고 발언해 미국 보수파들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아버지 부시는 당시 독립운동을 노골적으로 미국이 지원해서 독립운동이 과격해졌다면 전쟁이 날 수 있었다고 해명하였다.
2.1.1. 주요 사건
-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소련)
- 개혁/개방(중국)
- 천안문 6.4 항쟁
- 베를린 장벽 붕괴
- 1989년 동유럽 혁명[4]
- 동서독 통일
- 걸프전쟁
- 8월 쿠데타
- 소련 해체
2.2. 팍스 아메리카나 (1991~2008)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12개 공화국 중 조지아를 제외한 11개국은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 이미 1991년 9월 6일에 독립을 승인받은 발트 3국과 조지아는 독립국가연합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후에 조지아는 러시아의 압력으로 1993년 12월에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클린턴 집권기의 미국은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무너지고 중공이 아직 부상하기 전과 대조적으로 최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등으로 미국의 국력이 떨어지고 러시아가 중공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결국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으로 신냉전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5] 다만 남오세티야 전쟁 직후에는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 서구에서 큰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2.2.1. 주요 사건
[1] 냉전의 종결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으로서 당시 서방 국가들 뿐 아니라 러시아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쇼크로 다가왔던 사건이다. 평양 시내에 이마트 평양점이 들어섰다고 생각해 보자. 그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 소련(러시아) 최초 맥도날드에서 자본주의의 맛을 맛보기 위해 수많은 소련 국민들이 밤낮을 줄을 서 가며 햄버거를 주문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프랜차이즈가 공산주의의 심장에 들어섰다는 것은 '''공산주의가 이념적으로 완전히 패배'''하였음을 의미했으며 개방과 개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많은 공산국가들에게 일깨워 주었다.[2] 정확히는 소비에트 건국의 주요자들이 퇴직하며 등장한 기술관료들(테크노크라트)이 특권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생긴 공산귀족, 노멘클라투라들에 의해 강제로 소비에트를 해체하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러시아를 건국함으로써 냉전 또한 막을 내렸다.[3] 그래서 극단적인 강경파도 아니었던 닉슨도 2차 집권기의 레이건이 지나치게 소련에 유화적이라고 레이건을 비판하기도 했다.[4]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을 시작으로 하여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공산독재를 무너뜨렸다.[5]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련의 정치적 위기 등을 거치면서 북미와 유럽 등 서구에서는 2014년을 신냉전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중국 무역 전쟁이 시작된 2018년을 신냉전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