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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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펠레와 함께 셀레상의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천재 공격수. 그러나 2번의 망막 박리로 인한 시력 문제로 2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한 비운의 공격수이기도 하다.'''“1970년 펠레에겐 토스탕이 필요했다. 마치 현재의 메시가 이니에스타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크 갓프레이
2. 플레이 스타일
브라질 축구사에는 수많은 천재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선수를 꼽으라면 토스탕의 이름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천부적인 골 결정력을 비롯해 뛰어난 패스 역시 보유한 최정상급의 골잡이이자 플레이 메이커로 펠레를 이어 1970년대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펠레가 국가대표를 은퇴하고 그의 뒤를 이을 토스탕마저 은퇴하자 마땅한 공격수가 없었던 브라질 대표팀은 1974년 월드컵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다.
3. 클럽
1962년 만 15세라는 나이에 지역 팀인 아메리카 MG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1963년까지 뛰었으며 이때의 기록은 26경기 16골. 1964년 만 17세의 나이에 자국의 명문 클럽인 크루제이루 EC로 이적한다.
크루제이루에서 그는 17세부터 24세까지 총 7년을 뛰었다. 그리고 남긴 기록은 '''378경기 249골'''. 이 기록은 크루제이루 구단 통산 최다 득점이다. 보통의 선수들이라면 주전 선수로 성장할 시기에 이 양반은 세계 최고의 스타들[3] 이 총 집결한 리그에서 골폭격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천재적인 공격수였다. 또한 전국 리그 우승 1회와 주립 리그 우승 5회를 이끌었다. 그러나 비극 역시 이 시기에 시작되고 있었다. 1969년 토스탕은 리그 경기 도중 안면에 공을 맞았고 자신을 은퇴까지 내몰 망막 박리에 시달리게 된다.
병세가 어느 정도 호전되자 토스탕은 1972년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한다. 그러나 망막 박리로 인한 시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결국 토스탕은 1973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당시 토스탕의 나이는 '''26살'''이었다.
4.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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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월드컵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고작 19살의 나이에 칠레를 상대로 데뷔했다. 1966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포함되었으며 헝가리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펠레의 부상 아웃, 가린샤의 노쇠화 등 안팎으로 많은 문제를 겪으며 조별리그 광탈.
4년 뒤에 열린 1970 멕시코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며 호베르투 히벨리누, 펠레, 자이르지뉴와 함께 공격진을 구성했다. 6경기 모두 선발 출장했으며 8강전 페루를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했다. 이후 4강에서 우루과이를 격파했고,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 펠레를 이을 차세대 브라질의 에이스로 각광받았으나, 건강 문제로 26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게되고 브라질은 이전과 같은 파괴력을 보이지 못하고 대회에서 부진하게 된다.
5. 은퇴 이후
은퇴 이후 의사가 되었고, 축구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1] 큰 동전이라는 뜻이다.[2] 공격형 미드필더[3] 지금은 아니지만 이때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대다수는 브라질 리그에서 활약했다. 물론 주 리그 등 여러가지로 갈라져 있어 펠레, 자이르지뉴, 제르송 등과 같은 선수들이 한 개의 우승컵을 위해 다투는 리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