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베르투 히벨리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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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선수.'''“우리는 그들이 펠레를 가지고 있다고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후 히벨리누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선수였다. 또한 엘리아스 피게로아, 지쿠와 더불어 70년대 남미를 대표하는 축구선수였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히벨리누는 1963년에 SC 코린치안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였다. 데뷔하자마자 멋진 모습을 보인 ‘코린치안스 파크의 왕’이라는 별명을 받을 정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코린치안스는 1950년대에 상파울루를 호령하는 강팀이었지만, 히벨리누가 뛰던 시대는 그렇지 못했는데, 하필 펠레가 이끄는 산투스 FC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74년에 주립리그 결승에 진출하지만, SE 파우메이라스에게 패했고, 에이스였던 히벨리누는 가장 욕을 먹었고, 결국 플루미넨시 FC로 이적한다. 히벨리누는 플루미넨시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2연패를 달성하였고, 말년에는 알 힐랄 FC에서 국왕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2.2. 국가대표
히벨리누는 셀레상의 일원으로서, 당시 팀의 중앙 공격수였던 펠레, 토스탕 등과 자유롭게 스위칭 플레이를 하면서 공격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히벨리누는 강력한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4:1 대승에 공헌하였다.[1] 히벨리누는 페루와 우루과이를 상대로 득점을 올리며, 결승 진출에 공헌하였고,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1로 승리하여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하여 브라질은 줄리메 컵을 영구 소장하게 되었고, 히벨리누는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펠레와 토스탕이 은퇴하였고, 히벨리누가 에이스로서 브라질을 이끌었으나, 1차 리그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1승 2무로 겨우 2차 리그에 진출하는 바람에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히벨리누는 2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와 동독을 겨우잡아냈으나, 토탈 풋볼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던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에게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고, 그제고시 라토와 카지미에시 데이나가 버티는 폴란드에게 패해 4위에 그쳤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음모로 결국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고 3위에 그쳤다.
3. 플레이 스타일
히벨리누는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레프트 윙어로 뛰었으며, 플립 플랩[2] 을 안방 드나들듯 자유롭게 구사한 선수로 매우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가속력을 이용한 상당한 드리블 실력을 뽐냈으며, 스텝오버와 넛메그, 스쿱턴 등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였다. 그의 왼발 프리킥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일명 원자폭탄 킥으로도 불렸다.
특히 1970 멕시코 월드컵은 그의 왼발 킥 능력을 제대로 과시한 국제 대회인데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쪽에서 아웃프런트로 휘는 강력한 왼발 중거리 골, 골포스트 맞고 들어가는 강력한 드리븐 골, 또 이 대회에서 유명한 골 중 하나인 체코전에서 나온 인사이드로 휘는 파워 프리킥 골[3] 등 그야말로 강력한 왼발 슈팅의 진수를 보여주며 브라질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1] 이 프리킥은 원자폭탄 킥으로도 불렸고 이것이 히벨리누의 별명이 되었다.[2] 호나우지뉴가 자주 쓰는 그 기술 맞다. 엘라스티코라고 부르기도 한다.[3] 너무 강력해서 골키퍼 손에 맞았는데도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