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회당(1961년)

 



1. 개요
2. 결성과정
3. 대중당과의 통합시도


1. 개요


1961년 사회대중당의 후계로 나타난 정당. 5.16 군사정변으로 해체되었다가 1965년 김철에 의해 다시 창당되었으나 2년 만에 다시 해체되고 만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후 재창당을 한다.

2. 결성과정


1961년 사회대중당창당준비위원회의 다수파는 통일사회당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였지만 5.16 쿠데타로 해체된다. 그 후 1965년 김철, 안필수, 구익균 등이 통일사회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7월 20일 대성빌딩에 모여 대표위원에 김성숙을 선출했다. 창당준비위원회는 민주사회당의 서민호, 혁신계의 정화암까지 3자를 공동대표로 한다는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까지 도달하지만 결렬되었다. 7월 2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통일사회당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를 마쳤다. 하지만 12월 16일 대표위원 김성숙이 윤보선의 신한당 창당에 참여한 행위를 이유로 제명하고 1967년 4월 3일 대표최고위원 김성숙이 당 공식결의에 불복하고 대중당에 입당하였다는 이유로 권한정지 처분을 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1967년 4월 4일 대의원 58명중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이봉학을 대표로 선출하였고, 4월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등록을 하고 전국 47개의 지구당과 함께 출범하였다.

3. 대중당과의 통합시도


1968년 7월 13일 대중당의 이형연 대변인은 대중당과 통일사회당이 합당에 합의하였다고 발표했고 이날 종로호텔에서 열린 양당 전권대표자회의에서 도출된 합의안은 다음과 같다.

당의 노선은 민주사회주의를 추구한다.

통합신당의 이름은 양당의 이름을 반영하도록한다.

정치활동정화법에 묶여있는 인사, 재야인사들의 참여를 위해 특별배려를 한다.

양당은 합당절차에 따른 계속적인 협의를 위해 대중당에서는 이청천, 김하경, 안정용, 김린, 이형연, 이원수를 전권대표로 통일사회당에서는 손철, 김철, 안필수, 류갑종, 유영봉, 김성식을 전권대표로 선출하여 교섭을 진행해 나갔으나 그해 9월 24일에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 대중당이 민주공화당에서 제명된 신용남, 기세풍을 공천한 것에 대해 통일사회당이 반발함으로써 결렬되었다.

4. 제7대 대통령 선거와 그 이후


1970년 12월 1일 대성빌딩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통일사회당은 김철 부위원장을 당위원장으로 추대하는 한편, 다음해에 있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나올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김철 후보는 4월 24일 보수 야당인 신민당에 지나친 기대를 가질 순 없지만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수립할 수 있는 정권 교체를 이룩하기 위해 후보를 사퇴한다 밝히며 대통령 선거에서 물러난다. 또한 신민당 전국구의원인 박재우씨가 통일사회당에 입당하여 잠시나마 원내정당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의원인 박재우 후보를 비롯해 모든 후보들이 낙선하고, 전국구의석을 받기에도 부족한 표를 받아 다시 원외정당의 자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