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오리어리
1. 소개
'''삼성 라이온즈의 마이크 그린웰'''[1]
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활동했다.
2. 선수 생활
2.1. 메이저리그 시절
1987년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되어 입단한 오리어리는 1992년 밀워키 산하 더블A팀에서 타율 0.334 169안타 28도루의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이듬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데뷔했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지만 밀워키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했고 1994년 시즌 후 웨이버 공시되어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보스턴으로 이적한 오리어리는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았고, 1999년에는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또한 1999년 10월 11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ALDS 5차전[2] 에서 3회초 만루홈런과 7회초 3점 홈런으로 혼자서만 7타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역전승과 ALCS 진출에 일조했다.당시 오리어리의 활약 이때 오리어리의 맹활약은 아직도 보스턴 팬들에게서 회자되곤 한다.
이후 2002년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2003년에는 시카고 컵스에서 활동하지만 보스턴 시절만큼의 활약은 못했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3년 시즌 후 이승엽이 해외진출을 선택해 일본으로 건너가고 FA 자격을 얻은 4번 타자 마해영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중심타선이 휑하게 된 삼성 라이온즈는 거포 외국인 타자를 데려오려고 했다. 그러면서 '''현역 메이저리거'''였던 오리어리를 영입했다. 당시 발표로는 20만 달러에 오리어리를 영입했다고 했지만 적게는 150만에서 최고 200만 달러를 줬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오리어리는 정규시즌 전부터 문제를 일으켰다. 시범경기 첫 경기를 앞두고 무좀(...)을 핑계로 출장을 미뤘고, 시범경기 처음으로 출장한 후에는 선동열 수석코치에게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면서 팀을 이탈했다. 오리어리는 10여일 만에 백기투항하며 돌아왔고,[3] 정규시즌이 시작한 후 4월달에만 홈런 9개를 기록했지만 5월 들어서는 타격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면서 타율도 떨어지고 홈런도 겨우 1개를 기록했다.
성적이 하락해 가면서 오리어리는 점점 한국 생활에 불만을 표했다. 그런데 오리어리의 주장과 달리 그 동안 구단에서는 오리어리가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던히 노력했지만, 오리어리는 한국 음식 냄새만 맡아도 질색할 정도로[4] 애초부터 한국 생활에 의욕이 없었다. 코칭스태프는 오리어리에게 2군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라고 했지만 오리어리는 2군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했고, 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면서 팀을 이탈했다. 그런 깽판을 부린 후 다시 2군에 합류했고, 7월에 1군에 복귀했지만 곧 퇴출되었다.
2.3. 은퇴
미국으로 돌아간 오리어리는 2005년 독립리그 팀에 입단했지만 딱 1경기, 그것도 1타석만 들어선 후 은퇴했다.
2.4. 연도별 성적
3. 관련 문서
[1] 공교롭게도 둘 다 보삭스 출신이고, 불혹의 나이에 아시아에 와서 태업으로 일관하다가 불명예 퇴출로 선수생활을 마쳤다.[2] 이 경기에서 구원등판한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6이닝 노히터를 기록하기도 했다.[3] 여담으로 시범경기 도중 오리어리가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오리어리의 아버지(인종차별이 지금보다 더 지독한 시대에 유명 항공사 임원을 역임한 개천용이라고 한다)가 그를 호통쳐서 한국에 돌려보냈다는 카더라가 있다...[4] 한국 음식을 못 먹으니 자연스레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웠고, 그런 그가 안됐는지 미8군 출입증이 있는 김응용 감독이 매일 미군부대를 오가며 그에게 고급 양식을 공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