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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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 원래는 베네치아가 세운 가톨릭 성당이었다. 정교회 성당이 모스크로 쓰인 예는 많지만, 가톨릭 성당이 모스크로 변환된 예는 상당히 드물다. 참고로 가지마우사는 베네치아 지배기에 세워진 성당이 워낙 많은 곳이라, 365개 성당의 도시(365 kiliseli şehir)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영어: Famagusta
터키어: Gazimağusa(가지마우사), Mağusa(마우사)
그리스어: Αμμόχωστος(암모호스토스)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가지마우사 구의 중심지. 흔히 키프로스 파마구스타 구의 주도인 파마구스타로 잘 알려져 있으나 분단 이후 실제 행정력은 전혀 미치지 못하며, 키프로스의 파마구스타 구의 주도는 실효지배 구역의 지방도시인 파랄림니가 사실상 대행하고 있다. 도시의 원래 이름은 암모호스토스로 '모래에 감춰진 땅'인데 '파마구스타'는 '암모호스토스'를 이탈리아어으로 읽은 파마고스타(Famagosta)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터키어 명칭인 '가지마우사'(Gazimağusa) 역시 파마고스타에서 유래했는데 원래는 그냥 '마우사(Mağusa)'라고 했던 것을 1974년 키프로스 전쟁 때 키프로스를 침공한 터키군이 파마구스타를 점령한 이후 파마구스타를 점령한 업적을 기념해 전사라는 뜻의 터키어 '가지(Gazi)'를 도시 이름에 붙여 지금의 '가지마우사'가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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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에 새겨진 베네치아 사자
1570년,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이던 키프로스 섬을 침공한 오스만 제국은 쉽게 니코시아를 접수하였으나 이곳 파마구스타에서는 수비대장 마르칸토니오 브라가딘의 영웅적인 저항에 부딪혀 고전하였다. 막대한 피해에도 불과하고 오스만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파마구스타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베네치아 수비대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게 보장한 원래 항복 조건과 달리오스만군 사령관 랄라 무스타파 파샤의 원한[2] 에 수비대장은 브라가딘은 살가죽이 벗겨져 허수아비가 만들어지고 휘하 부관들은 모조리 참수당해 허수아비와 함께 술탄에게 전리품으로 보내지는 등 온갖 험한 꼴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신성 동맹의 함대가 오스만 제국을 응징하려 하였고, 그 유명한 레판토 해전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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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가 매우 크고 아름다운 것이 인상적이다. 16세기 서유럽의 성곽 건축의 특징이다.
'''그 악명높은 유령도시 바로샤도 여기 관할이다.'''
키프로스리그 축구팀 아노토르시스 파마구스타의 원래 연고지가 여기다. 하지만 키프로스 전쟁으로 구단이 피난가서 라르니카에 자리잡았고 전쟁이 끝나면 복귀할 계획이었지만 분단이 길어지니 어쩔수없이 복귀를 포기하고 라르니카에 눌러잡았다. 그래도 과거 역사는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파마구스타라는 이름은 남겨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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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 원래는 베네치아가 세운 가톨릭 성당이었다. 정교회 성당이 모스크로 쓰인 예는 많지만, 가톨릭 성당이 모스크로 변환된 예는 상당히 드물다. 참고로 가지마우사는 베네치아 지배기에 세워진 성당이 워낙 많은 곳이라, 365개 성당의 도시(365 kiliseli şehir)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1. 개요
영어: Famagusta
터키어: Gazimağusa(가지마우사), Mağusa(마우사)
그리스어: Αμμόχωστος(암모호스토스)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가지마우사 구의 중심지. 흔히 키프로스 파마구스타 구의 주도인 파마구스타로 잘 알려져 있으나 분단 이후 실제 행정력은 전혀 미치지 못하며, 키프로스의 파마구스타 구의 주도는 실효지배 구역의 지방도시인 파랄림니가 사실상 대행하고 있다. 도시의 원래 이름은 암모호스토스로 '모래에 감춰진 땅'인데 '파마구스타'는 '암모호스토스'를 이탈리아어으로 읽은 파마고스타(Famagosta)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터키어 명칭인 '가지마우사'(Gazimağusa) 역시 파마고스타에서 유래했는데 원래는 그냥 '마우사(Mağusa)'라고 했던 것을 1974년 키프로스 전쟁 때 키프로스를 침공한 터키군이 파마구스타를 점령한 이후 파마구스타를 점령한 업적을 기념해 전사라는 뜻의 터키어 '가지(Gazi)'를 도시 이름에 붙여 지금의 '가지마우사'가 되었다.[1]
2. 파마구스타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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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레판토 해전의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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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에 새겨진 베네치아 사자
1570년,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이던 키프로스 섬을 침공한 오스만 제국은 쉽게 니코시아를 접수하였으나 이곳 파마구스타에서는 수비대장 마르칸토니오 브라가딘의 영웅적인 저항에 부딪혀 고전하였다. 막대한 피해에도 불과하고 오스만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파마구스타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베네치아 수비대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게 보장한 원래 항복 조건과 달리오스만군 사령관 랄라 무스타파 파샤의 원한[2] 에 수비대장은 브라가딘은 살가죽이 벗겨져 허수아비가 만들어지고 휘하 부관들은 모조리 참수당해 허수아비와 함께 술탄에게 전리품으로 보내지는 등 온갖 험한 꼴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신성 동맹의 함대가 오스만 제국을 응징하려 하였고, 그 유명한 레판토 해전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2.2.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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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가 매우 크고 아름다운 것이 인상적이다. 16세기 서유럽의 성곽 건축의 특징이다.
3. 여담
'''그 악명높은 유령도시 바로샤도 여기 관할이다.'''
키프로스리그 축구팀 아노토르시스 파마구스타의 원래 연고지가 여기다. 하지만 키프로스 전쟁으로 구단이 피난가서 라르니카에 자리잡았고 전쟁이 끝나면 복귀할 계획이었지만 분단이 길어지니 어쩔수없이 복귀를 포기하고 라르니카에 눌러잡았다. 그래도 과거 역사는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파마구스타라는 이름은 남겨뒀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