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 칼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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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탄생부터 쌍용 마크를 달기까지
3. 생산종료까지
4. 여담
5. 둘러보기

'''Panther Kalista''' / '''SSangYong Kallista'''

1. 개요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국내 생산한 레트로 스타일 FR 스포츠카로, 쌍용자동차 최초의 승용형 차종이다.[1]

2. 탄생부터 쌍용 마크를 달기까지


1976년에 영국의 자동차 업체인 팬더 웨스트윈즈(Panther Westwinds)에서 제작한 리마(Lima)가 기원. 1930년대 전통 영국식 2인승 로드스터의 부활이라는 명목 아래 재규어의 SS100을 기본 컨셉으로 하여 만들어졌고, 1980년에 당시 유명한 차덕후였던 진도모피그룹 사장 김영철[2] 이 팬더사를 인수, 약간의 디자인 변화를 거쳐 칼리스타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게 된다. 이 시절 제작된 모델은 1,600cc 직렬 4기통 엔진과 2,800cc V6, 3,000cc V6 포드 퀼른 엔진의 3가지 모델이 있었다.
그러나 판매 및 경영 부진으로 1987년 쌍용자동차[3]에 매각되었는데, 쌍용자동차에서는 수작업 키트 조립 방식의 생산이 국내 사정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일단 생산을 유보하였다가 1992년 3월부터 평택공장에 조립 라인을 만들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3. 생산종료까지


완전 수제 조립식 알루미늄 보디에 쌍용 공용의 2000cc 엔진과 3000cc V6 포드 퀼른 엔진 2가지 배기량을 가졌으며, 직렬 6기통 2.9리터 기준 145마력에 최고 시속 208km, 제로백 8.45초. 전통 영국식 2인승 라이트웨이트 로드스터라는 컨셉에 걸맞는 준수한 핸들링과 주행안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클래식한 외모 덕분에 이 차량이 계속해서 생산된다는 사실 자체로도 전 세계의 차덕후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연간 내수 100대와 수출 200대'라는 목표를 두고 평택 공장의 수가공 라인을 돌렸는데, 평택에선 밤새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직원들은 거의 노이로제 상태였다고 전해지는 설이 있을 정도로 쌍용자동차에서 칼리스타에 거는 기대는 큰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판매가만 3300만~3800만원 수준이라서[4], 당시의 사치품을 배격하는 국민감정에 밀려 예상보다 1년 빠른 1994년에 생산이 멈춘다. 그것도 연 20대 내외의 판매에 머물러서, 단종 시점에서 최종 생산대수가 고작 78대였다.
여담이지만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 이 차를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별다른 근거는 없다. 애시당초 재벌그룹에서 오너가 싫어하는 일이 이루어질 리가...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누가 의사결정을 했다는 말인가? 자동차에 꽂혀서 쌍용그룹 다 말아드신 분이 나중에 오리발 내미는 얘기를 그대로 받아쓴 듯 하다.

4. 여담


1996년에 방송된 TV가요 20에서 DJ DOC가 이 차를 타고 SBS 등촌동 공개홀 앞까지 이동한 적이 있었으며, 2000년 당시에 방송된 SBS 인기가요#s-2.4에서 진행자석에 배치된 병풍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쌍용자동차 마크를 달고 생산된 최후의 칼리스타 78대 중 약 60여대가 해외의 자동차 수집가들에게 반출되었고, 교통사고로 말아먹은 몇 대를 제외하고 나면 2010년 기준으로 16대가 국내에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에 희귀한 차량이라 오너들 사이에서도 극도로 조심스럽게 운행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희귀성에 걸맞게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중. 실제 수량이 희귀할 뿐만 아니라 외향 자체가 유니크하다 보니 한번 도로에 나타나면 부가티급 이상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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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까지는 서울디자인고등학교/동도중학교 맞은편 사진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건물 일부가 약국으로 바뀐 이후[5] 로 2017년부터는 마포대로 건너편 불교방송 건물 최하층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전시했던 차종은 구형 초록색 번호판인 점이나 타이어 마모가 거의 되어 있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말로 쇼윈도 장식용으로만 배치해 둔 것으로 보인다. 간혹 사진 촬영용으로도 쓰이기는 한 듯 하다.
보배드림에 2016년 5월 3일자로 매물이 나왔다가 7월 기준으로 거래 완료 상태. # 5800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을 자랑하며, 31,900km의 짧은 주행거리나 관리 상태를 보면 사실상 소장용으로만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딜러들이 차량을 개인 소유할 목적으로 거래 완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제3자가 사갔는지 딜러 소유로 전환되었는지는 판별할 수 없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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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팬더사의 차량으로 솔로의 후속차량인 솔로 II(Solo II)[6]또한 해외에서도 몇대 남지 않았다는 소리가 있다.
나중에 솔로 II의 후속작으로 출시된 솔로 III도 마찬가지로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울산광역시에 있는 주연자동차프라모델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주행가능한상태.
당진공영버스터미널에 산업단지내의 한 공장 로비에 노란색 한대가 전시되어 있다. 주행가능 여부는 불명.
소노벨 경주의 메인 로비에 1대가 전시되어있다. 경주세계자동차 박물관 마크를 달고 있는 것 봐서 박물관 홍보용인 듯.
춘천시 옥산가 달아실미술관 옆에 현대 포니 픽업과 포드 모델 A, 키트 모델카(폰티악 파이어버드) 2대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총 2대이며, 카키색과 은색이다.

5. 둘러보기




[1] 최초 생산이 1992년이니까 1997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쌍용 체어맨보다 5년 앞섰다.[2] 진도모피의 창업주였던 김성식 창업주의 둘째아들. 이후 진도모피그룹은 외환위기때 망했지만 이분은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데, 모터트렌드, 마리끌레르,여성춘추 등의 잡지를 거느린 가야미디어의 대표이다. 차도 사들이고, 자동차 잡지도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덕중지덕.[3] 당시 상호는 동아자동차. 이미 1986년 쌍용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상태였다.[4] 1992년 기준으로 최고급 세단이 1800에서 1900만원 수준이었다. 특히 같은 1992년에 출시된 당시 국산 최고급차였던 현대 그랜저의 2세대 모델 뉴그랜저의 최고급사양인 3.0 골드의 가격이 3,500만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20세기 한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3천만원 중후반대의 2인승 로드스터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3800만원은 2017년 시점에서도 꽤나 높은 가격이다.[5] 사진관이 다 없어진건 아니고 반절정도만 약국으로 바뀌었는데. 아깝게도 칼리스타가 있던 자리만 약국으로 바뀌었다.[6] 김영철 사장의 자서전에 따르면 출시 직전 일본산 경쟁차량을 보고 솔로의 출시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 후 사륜구동으로 다시 개발한 차량이 바로 솔로 II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