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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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4년 이후 꾸준히 활동 중인 한국의 3인조 힙합 그룹. 초창기에는 댄스 그룹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명실공히 그 성향이 바뀌었다. 뛰어난 곡들과 실력만큼이나 멤버들의 양아치 성향으로도 유명한 그룹. 한때 농담삼아 떠돌던 말이 '''"한국에서 제대로 된 갱스터 힙합하는 그룹은 DJ DOC가 유일하다."'''라고 했을 정도.
그들의 거친 이미지 때문에 오래 남지 못한 가장 아까운 이미지는 20세기 말에 가장 진보성향인 음악을 했다는 것. 동성동본 결혼[1] , 직장 내 비정장(청바지) 착용[2] , 노년세대의 자기표현[3] , 교복의 정형화[4] 문제 등 한국사회 내 고정관념들을 정면공격하였고, 그런 당대 가장 민감하던 소재를 진보적이고 유쾌한 가사와 신나는 리듬으로 풀어내는 곡들을 만들어 히트시켰던 상당한 뮤지션이다.
그들이 그런 곡들을 발표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수년 뒤 그런 일들이 한국에서 모두 현실화되었기에 더욱 놀라운 부분. 그들이 그곡들을 발표할때만해도, 각 소재들에 대해 기성세대 뿐만 아니라 청년세대들조차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건 좀 그렇지 않냐"는 반응을 보이던 현실이었다.
멤버는 이하늘, 김창렬, 정재용으로 세 명 모두 DJ 출신, '''폭력전과자'''[5][6] 며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가정사가 좀 좋지 않다. 이하늘은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버림받아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김창열은 아버지가 1998년, 어머니가 2000년에 차례차례 타계했으며, 정재용은 늦둥이 외아들로 14년간 아버지 병간호를 했으나 돌아가셨다. 하지만 정재용, 이하늘의 경우 당시 업소 쪽에서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던 DJ 겸 댄서였고, 전세대 댄서로 유명한 이주노, 박철우 등에게 미묘한 컴플렉스와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는데 '''"그 형들은 춤만 추지만, 우리는 노래도 한다."'''[7] 라는 식이었다.
원래 1집 때는 이하늘, 김창렬, 박정환 라인업이었다가 박정환이 1집 활동 이후 탈퇴했고, 2집부터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정재용을 영입하여 현재까지 체제를 유지 중이다. 참고로 정재용과 김창렬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김창렬은 보컬, 이하늘, 정재용은 랩을 맡고 있으며, 5집 이후로는 세 멤버가 고루 돌아가면서 프로듀싱도 맡고 있다.
원래 DOC의 의미는 '''Dreams of Children'''이지만 당연히 현재의 모습과 심히 안 어울리고 기획사 소속일 때 붙은 억지 네이밍이다 보니 독립을 한 이후부터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데뷔초에는 'DOC'를 '덕'이라고 읽었다가 박정환이 탈퇴한 2집때부터 DOC를 '디오씨'로 읽기 시작했고, '디제이 덕'과 '디제이 디오씨'를 병용하다가[8] 4집의 '디오씨와 춤을'부터 디오씨라고만 발음하고 있다. 초창기 음악을 들으면 "디제이~ 덕!"이라고 음악에서 본인들이 분명히 외치고 있고 언론에도 그렇게 보도되었다. 왕년 주먹다짐으로 파출소 신세를 많이 지던 시절에 "가수 디제이 덕 맞죠?"라고 물어보는 순경의 질문에 "덕 아니고 디오씨거든요, 디 쩜 오 쩜 씨!"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단, 언론 보도는 98년도까지 계속 '디제이 덕'으로도 나갔다. 물론, 이게 편해서 아직도 '디제이 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있다. 2010년대 중반으로 치면 EXID를 불러달라는 대로 '이엑스아이디'로 안 부르고 '엑시드'라고 부르는 식이긴 한데, DJ DOC는 초창기부터 본인들이 디제이 덕이라고 불렀다가 바뀌었으니 경우가 다르긴 하다.
2. 활동 내역
2.1. 1집 활동 (1994년)
1992년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클럽 DJ로 활동 하던 이하늘은 철이와 미애로 유명했던 신철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대구광역시의 클럽으로 옮겨 랩퍼로 유명한 박정환을 만나고 신철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유명한 DJ였던 김창열까지 모여 1994년 2월 합숙훈련에 들어가 6월에 DJ DOC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9월 가요계에 데뷔했다.
데뷔곡인 '슈퍼맨의 비애'가 지상파 가요 순위프로에서 10위 권에 랭크되는 등 반응이 괜찮았고, 나름 이 노래로 식혜음료 CF도 하나 따 내는 등[9] 신인으로서의 행보는 순탄했다.[10]
사실 1집 데뷔곡인 슈퍼맨의 비애는 우선 앞부분 반주부터가 왕년 인기 그룹이던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 1969년에 발표한 Proud Mary 음악을 그대로 써먹었고 랩에서는 Tag Team이라는 2인조 흑인 그룹의 마이애미 베이스 넘버 <Whoomp!(There it is)>의 표절곡이며 활동 당시MBC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2580에서 가요계 표절을 다룰때 두 노래를 같이 틀어주면서 이걸 본 사람들이 표절임을 알게 되었다. 이후 1집 시절을 흑역사 취급하면서 잘 언급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참고로 노래 제목을 후크로 연호하는 부분(슈퍼맨의 비애에서는 슈~퍼~맨~)이 유명해서 슈퍼맨의 비애를 몰라도 표절원곡 역시 유명하기 때문에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 싶을 것이다. 이 후크는 간혹 샘플링으로도 쓰인다.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앨범 수록곡으로 덩달이 시리즈가 있는데, 곡 자체는 특별할것도 없이 통기타 솔로 잼에 랩만 읊은거지만, 당시 유행하던 덩달이 유머 시리즈를 소재로 한 가사가 일품이다. '철이형 덩달이 시리즈 너무너무너무 썰렁 썰렁' '그 다음날 아침 덩달이는 꽁꽁 얼어죽었데'하는 후크도 포인트.
표절 논란 및 멤버 박정환의 탈퇴 등으로 이후 1집 활동 시절을 그룹 스스로도 흑역사화 하는 편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DOC 1집은 의외로 당시(90년대 초)의 나름 최신 미국 랩음악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당시 인기를 끌던 MC Hammer, Tag team, DJ Jazzy Jeff and the Fresh Prince등의 오마쥬 가 곳곳에 숨어 있으며, 특히 Kriss Kross 1집 Totally Krossed Out의 복제나 다름없는 느낌. 그 유명한 'Jump'를 쬬 쬬(...)로 써먹는다거나(절교선언), 특히 '나만의 비밀'같은 곡은 마치 맥 대디가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2. 2집, 3집, 3.5집 활동 (1995~1996년)
그 뒤 '두근거리는 상상' 등의 후속곡으로 1집 활동을 마무리한 다음 기존 멤버였던 박정환이 탈퇴 후 이하늘, 김창렬과 같은 클럽DJ 출신인 정재용이 새 멤버로 중간 투입되어 1995년 여름에 정규 2집을 발매했으며 타이틀 곡인 '머피의 법칙'으로 1위를 여러 번 차지하면서 큰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6년 3집 앨범들을 통해 '겨울 이야기', '미녀와 야수'를, 3.5집 여름 스페셜 앨범을 통해 '여름 이야기' 등의 1위 곡들을 배출해 내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DJ DOC 멤버들은 원래 본격적인 미국식 음악을 하고 싶어했지만 데뷔 초에는 기획사의 요구로 댄스곡을 했으며 3집 활동 종료 후 미국에서 곡 작업을 한 뒤 4집 이후부터는 점점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 색을 찾기 시작했다.
2.3. 4집 활동 (1997년)
1997년 4집의 타이틀곡[11] 인 'DOC와 춤을' 으로 엄청난 초대박을 쳐서 1세대 아이돌로 바뀌는 시대였음에도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다. DJ DOC를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 노래만큼은 아는 경우가 많아 '국민가요'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을 정도의 인기였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이 선거에 "DJ와 춤을"로 개사해 홍보송으로 사용했는데 후보자의 이미지메이킹에도 도움이 돼 당선에 혁혁한 공로를 했다. #[12][13] 당선 이후 DJ DOC 멤버들이 청와대에 초대받았다고.
사실 이 4집은 DJ DOC의 전환점이라고 정의될만한 앨범이다. 초창기부터 힙합적인 방향을 추구해 왔고 랩도 잔뜩 넣었으나 정작 가사의 내용은 옛날 민요처럼 웃긴 방향이었다. 비트를 어떤 것을 따와도 가사 내용은 그냥 웃겼다. 슈퍼맨의 비애도 가사의 내용은 웃겼고, 깡패의 천국은 쿨리오의 갱스터 파라다이스를 비트로 따왔으면서 정작 곡의 마지막은 깡패한테 걸렸는데 깡패를 여자친구가 때려잡던데 여자는 무섭다로 끝난다. 말하자면 비트는 미국의 갱스터인데 내용은 한국식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는데 뿜빠라뿜빠뿜빠빠였다. 이하늘이 지속적으로 본격적인 갱스터랩을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불만이 많았던 것 같고 또 그럴 만도 한 듯이 보인다.
4집은 일종의 과도기로 서울 트레인이나 꼴통일기, 스크래치 패밀리 등에서는 기존의 만요적 요소가 강하지만, 타이틀곡인 'DOC와 춤을', '뱃놀이'[14] , '삐걱삐걱'[15] , '모르겠어?'[16] , everybody 등의 트랙에서 사회 및 가요계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비쳐보이고 있으며 이 성향은 이후 앨범들에 쭉 이어져내려오게 된다. 이런 노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서정적인 노래나 놀자판 노래도 있고 메가히트곡도 있으니 한 번 들어두는 것도 괜찮다.
2.4. 5집 활동 (2000년)
4집 활동 이후 꽤 오랜 기간동안 잠적했던 DOC는 3년만인 2000년 5집으로 컴백, 'Run to You'로 인기 몰이에 성공했지만.... 자세한 것은 바로 아래의 'Run to You' 관련 부분 참조.
이 5집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김창렬의 비중이 극히 적었고[17] 이하늘과 정재용의 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극히 힙합스러운 앨범이다.[18] 특히 'L.I.E'[19] 나 '포조리’등의 직설적인 욕설이 들어간 곡들을 통해 공권력 및 찌라시 기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메시지를 설파했다. 욕설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로 판정받아 19금 딱지가 붙여졌다. 그리고 정년퇴임한 전직 경찰이 이들을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
5집은 대체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앨범으로 DJ DOC의 본격적인 힙합 앨범으로 평가 받는다. 발매 일주일 만에 10만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으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2차 65위, 3차 60위를 차지한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D.O.C. Blues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듯 멤버들의 정신적, 물질적 곤궁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이며, 김창렬의 비중이 적었고 전 앨범들처럼 상업적 성공의 pressure가 적은 상태에서 본인들이 하고 싶은 랩음악을 처음으로 시작한 앨범이다.
타이푼, 후니훈 등도 피처링에 좋고 그리고 심지어는 나얼도 앤썸시절 피처링도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전 트랙에서 버릴 노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높게 살 만하다. 한국 100대 명반에 들어갈 정도의 앨범이면 거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Run to You'에선 뮤직비디오와 공연에서 가희가 백댄서로 출연한 적이 있다.
겜생 상담소에서 밝힌 바로는 당시 NC에서 김창열이 리니지를 한다는걸 접하고 앨범에 리니지 15,20일 무료 쿠폰을 넣어주면 스톡옵션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하늘이 반대했다고 한다. 현재 가치를 계산하니 30억이 넘는다고 한다 김창열은 내돈이 아니구나 했지만 이하늘은 크게 후회 했다고 한다.
2.5. 싱글, 6집 활동 (2003~2004년)
2003년 싱글 'Street Life'와 2004년 6집 'Sex And Love..Happiness' 이후 꽤 장기간 잠수했다.[20] 특히 6집앨범은 김창렬이 프로듀싱을 하였다.[21] 이전에 발매한 싱글앨범의 곡도 6집에 함께 수록되었다. 5집이 이하늘, 정재용의 위주로 힙합스타일인 비중이 컸던 반면 6집은 김창렬 스타일의 발라드스타일인 비중이 절반이었다.
6집앨범 타이틀곡인'I wanna' 로 활동하고 싸이가 작곡한 '수사반장' 으로도 활동을 하였다. 수록곡 중 '끝나버린 이야기' 는 이현도가 작곡하였다.
2.6. 7집 활동 (2010년)
2010년에 7집 '풍류'를 내고 활동하면서 다시 뮤지션으로서 대중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7집 타이틀곡은 싸이가 프로듀싱을 맡은 '나 이런 사람이야'. 발매 직후부터 음원차트 올킬, 음반차트의 경우 샤이니, 같은 시기 복귀한 BoA나 SE7EN 등 아이돌들과 경쟁했다.
7집 수록곡 중 '부치지 못한 편지'가 강원래를 디스하는 내용이 아니냐는 추측으로 꽤 화제가 됐는데, 본인들이 인터뷰에서 강원래 맞다고 밝혔다.[22] 이 노래가 나오게 된 원인은 라디오 스타 때문. 2010년 3월 10일, 17일에 클론과 박미경이 출연했고, 방송 중 강원래와 이하늘 사이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속된 말로 그걸 보고 이하늘이 빡돌아버린 것. 가사에서'''만'''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을 뿐, 숨김없이 깠다.
7집 활동 당시 SBS 강심장 출연 거부로 인해 같은 방송사의 인기가요 무대가 취소됐다고 밝히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3. 각종 사건사고
이 그룹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단연 폭행 사건들일텐데, 특히 그 중 김창렬이 가장 유명했다.
김창렬이 겪는 패턴은 주로 '''폭행시비가 터진다 - 유명연예인의 입장에서 조용히 끝내는 게 좋으므로 깽값 물어준다 - 이 점을 노린 다른 누군가가 일부러 시비를 걸어온다 - 폭행시비가 터진다…'''의 악순환이었으며 언젠가 김창렬이 합의금을 충당하기 위해 나머지 멤버들에게 급히 전화하여 전혀 어울리지 않는 LG화학 발코니창 광고를 찍어야 했던 과거도 있다. 참고로 공식적으로 보도된 폭행 사건은 17건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조용히 묻어가는 대신 합의한 사건까지 합치면 꽤 되는 듯. 합의금 충당용 CF # 이런거 다 모았으면 제대로 된 기획사 몇 개는 차렸을 듯….
그래도 김창렬의 경우는 일찌감치 결혼하고 자식도 가졌고, 이경규의 도움으로 갱생에 성공해서 부드러운 남자로 거듭나 안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기 들어서는 다시 본인과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 및 논란들로 인해서 다시금 비호감으로 추락한 상태이다.
반면 이하늘은 그야말로 시궁창스러운 처신으로 점점 추락하고 있다. 분명 이하늘도 '재용이의 순결한 19'의 MC를 맡은 바도 있는 정재용과 더불어 '천하무적 야구단'이나 '명랑히어로' 등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을 거치면서 늦깎이 예능 전성시대를 누리게 됐지만, TV 출연이 잦아지기 시작한 이 과정 중에 각종 논란과 거짓말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전멤버 박정환의 고소건이다. 자세한 것은 '전 멤버 박정환과의 갈등'에서 후술되어 있다.
이하늘은 과거에도 베이비복스를 '미아리복스'[23] 라고 까서 논란의 중심에 선 일이 있었다.
'여름 이야기'가 실려있던 스페셜 앨범의 경우, 동앨범에 실린 '신당동떡볶이집 허리케인박'이라는 노래가 무단도용표절시비가 있었던 적이 있다. 장두석, 이봉원이 시커먼스 이후 선보였던 두번째 음악개그듀오 니캉내캉 시절 작곡/작사해서 불렀던 노래인데, DOC 측에서 구전가요로 알고 그냥 사용한 것. 이 곡은 장두석, 이봉원 외에 장두석과 자주 작업한 작곡가 홍정완도 작사/작곡으로 참여했는데, 실질적인 표절관련 고소는 홍정완이 한 것으로 보인다. "그룹「DJ 덕」히트곡 「허리케인 박」표절고소" 어찌됐건 잘 마무리돼서, 해당곡의 저작권자(작사작곡자)는 장두석, 이봉원, 홍정완으로 등록돼 있다. 이후 장두석은 2007년 9월 13일에 김창렬이 진행하는 김창렬의 올드스쿨에 출연했는데, 이때 김창렬은 저희들은 구전가요로 알고있었다며 사과를 했고 장두석은 내가 직접한 고소는 아니었던터라 나도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적당히 훈훈한 광경이 연출됐다. 참고로 장두석이 모를 수는 없다. 인기곡이 아니라서 미미하긴 하지만 어쨌든 관련된 저작권료는 들어오니까...
이하늘은 부다 사운드라는 레이블을 설립, 후배 뮤지션들을 양성에 힘쓰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사정이 영 여의치 않았는지 결국 친동생 이현배가 리더로 있는 45RPM은 YG 언더그라운드쪽에 매니지먼트를 넘기고 Leo Kekoa도 스나이퍼 사운드로 떠나보냈다. 남아 있는 건 라임버스 정도였으나 그 라임버스도 얼마 안 가 활동을 중단하고 흩어졌다. 본인이 놀러와 에서 "요즘은 '''부도''' 사운드다"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별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던 듯. 현재는 바스코와 라임버스의 J-dogg도 나간 상태. 45rpm은 다시 돌아왔는데... 45rpm에서 J-Kwondo가 탈퇴했다.
소속사와의 불화로 인해 꽤나 여기저기를 전전한 그룹이다. 앨범판매량이 일정수준 이상이 나오면 추가수당을 받는 식으로 계약을 했는데,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해도, 음반판매량 순위에서 1위를 먹어도 소속사 측에서는 계약에 명시된 판매량에 못미친다며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챠트상으로 자신들보다 순위가 낮은 다른 가수들은 자신들의 목표 판매량 이상으로 앨범이 팔린 불가사의한 상황이 계속되자 결국 소속사에 대한 불신 때문에 막대한 해약금을 지불하고 다른 소속사로 이전. 이런 짓을 서너번 반복했다고 한다(…).
다만 이런 식의 행태는 비단 DJ DOC만의 문제라기보다는 90년대에 데뷔하거나 활동한 가수들이라면 피차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할 말은 하고 살았을 것 같은 대형스타(국민가수)들도 결국 기획사가 이야기해주는 음반판매량을 그대로 믿고 정산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엉뚱하게 값비싼 외제승용차를 덜컥 사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보너스를 챙겨주기는 했지만, 결코 '''정확하게 정산'''을 해주는 경우는 없었다고 보면 된다.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역시 많은 히트곡을 터트렸던 R.ef의 이성욱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는 '그때보다 밤무대 나이트 뛰는 지금이 훨씬 많이 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 그나마 1980년대 말부터 계약서라도 쓰고 가라라도 어느정도 정산해주는 관행이 생긴거지, 그전에는 진짜 주먹구구식이였다. 일례로 1970년대말~80년대 초반을 강타했던 산울림은 수많은 음반을 팔고 방송에 출연했지만, 실제 가수활동으론 '''수입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들은 취직했다고...
덕분에 왕년에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그룹임에도 멤버들은 상당히 빈곤한 생활을 계속해 온 모양. 특히 3집의 경우 비공식 판매량 270만장을 기록했지만 소속사 집계로는 98만장에 그쳤고, 이에 멤버들은 다른 계약사와 계약을 맺고 계약금을 전 소속사 위약금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이때 받은 계약금이 무려 30억원. 하지만 한 푼도 만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 30억이면 강남구에 빌딩이 한 채.
그 와중에 가장 조용하던 편인 정재용도 기어이 폭력 사건에 휘말렸다. 2010년 1월 27일,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이혁재의 폭행 사건의 여파가 아직 가시기도 전에, 정재용이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피소를 당한 것. 이에 대해 정재용 본인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종업원 간의 다툼을 말리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은 것이라 해명'''을 했으며, 부다 레코드 측에서도 대표가 직접 나서서 공식사과를 하였다. 다만, 이미 DJ DOC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던 상황이고 수습이 빠른 편이었는데다 정재용이 아무래도 팀 내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편에 속하는 멤버인지라 이 때 사고를 친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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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DOC 정재용씨 고소당해… 유흥주점 女종업원 폭행혐의
동아일보 지면에 해당 기사가 실리면서 올렸던 사진으로, 기사보다 사진이 더 화제였다(...).
2010년 8월 13일에는 KBS 뮤직뱅크에서 1위를 한 BoA가 준 꽃을 갑자기 집어던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보아의 1위가 발표되자 이하늘은 반 장난식으로 투덜거리는 제스쳐를 취했는데,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었지만, 이후 보아가 준 꽃을 이하늘이 던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고, 상반신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김창렬이 떨어진 꽃다발을 발로 차는 듯한 모션이 찍혀서 더 문제가 되었다. 이후 김창렬의 트위터에 자신의 회사가 크지 않고 음반을 사재기하지 못해서 1위를 하지 못했다는 식의 글이 올라왔다.
이 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투덜대는 퍼포먼스까지는 그렇다 쳐도 너무 심했다는 의견과 화날만도 하다는 의견, 개그를 위한 퍼포먼스를 가지고 뭘 그러냐는 의견 등 여러 의견이 충돌하는 중이다.
하지만 애초에 김창렬 트위터 발언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뮤직뱅크 점수 산정방식을 몰랐던 것도 이런 발언을 한 이유로 볼 수 있다. 뮤직뱅크는 매주 한터차트,신나라레코드,핫트랙스 1위~100위까지 전체 판매율 판매량을 기준으로 각 음반의 판매량 비율을 따져 점수를 주는 방식이며, 그러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1800 대 9600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24]
그 후, 2010년 8월 20일 뮤직뱅크에서 다시 1위를 한 보아에게 사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2010년 9월 2일 tvN의 현장토크쇼 TAXI에서도 퍼포먼스였다고 해명했다.
2010년 GSL 개막전에 초대된적이 있다. 그땐 별 이야기가 없었으나…. 2010년 12월 4일 던전 앤 파이터 남자 격투가 발표 쇼케이스에 초대되어 특별무대를 가졌다. 이전에 등장했던 레인보우와 윤하, 김세황 모두 싸늘한 반응 속에 뻘쭘하게 무대를 마쳤는데, DJ DOC는 관객들에게 일어날 것을 종용하고 관객들에게 '''앉아 있는게 일인 겜덕'''이라고 디스하는 등 특유의 광역어그로 시전을 보여줬다.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그대로 돌아 나가서 게임하러 가라', '맨날 키보드만 쓰는 손 좀 위로 들어봐라' 등 관객들이 충분히 비아냥으로 들릴만 했기 때문에 말이 많았다.[25]
2021년 학교폭력 폭로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됨에 따라 한국 연예계와 체육계를 풍비박산낼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DJ DOC 멤버들의 부정적인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물론 긍정적으로 재평가받진 않고 부정적인 재평가가 대부분이다. 네티즌들의 재평가의 요지는 DJ DOC이 저지른 사건사고에 비해 사회적 책임을 충분히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3.1. 5집의 '런투유(Run to You)'의 저작권 문제
'런투유(Run to you)'는 앞에 베이스 2마디를 Boney M.의 유명한 싱글 Daddy Cool에서 샘플링한 곡이며, "돈이 부족해서 해외저작권을 포기한 탓에, DJ OZMA가 사용해서 히트쳐도 DJ DOC 멤버들에겐 돈 한푼 안들어왔다"..는 식으로 DJ DOC팬들에 의해 알려져있으나, 이건 네티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와전된 이야기이다.
일단 '해외 저작권'만 포기했다는 이야기부터 출처가 불분명하다. 이후 DOC가 여기 저기 나와서 한 이야기들만 봐도 '샘플링해서 만든 곡인데 돈이 없어서 아예 저작권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만 있을뿐. # 또한 한국은 94년말 WTO가입과 96년 베른협약 발효로 해외저작권도 국내에서 보호받으므로 "해외 저작권 포기"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Boney M.이 알 사람들은 아는 그룹이기도 하거니와 앨범 부클릿에 Boney M.의 Daddy Cool을 샘플링했음을 명시하기까지 했으니 굳이 일반인들에게 샘플링이었음을 숨길 의사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관건은 DOC와 Boney M. 양측간의 합의가 어떤 과정으로, 어떤 결론을 도출해냈는지이다.
작곡자로 이하늘과 박해문이 등록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사정을 유추하기도 힘든 것이, 과거에는 정당하게 샘플 클리어링을 거쳤건, 무단 샘플링이건 작곡자를 2차 창작자로 표기해놓는 곡들이 부지기수였다. 2014년 시점에서 샘플링에 관련하여 검색을 해봤다는 한 게시물을 보면 정당하게 샘플 클리어링을 거쳤다는 에픽 하이의 'Let it rain'에 작곡자로 타블로와 김종완만 이름이 올라와 있다. # 그러나 최소 2015년을 전후로 관련 규정이 바뀐 것인지 자정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후로는 저작권위원회에서 샘플링으로 만들어진 곡들을 검색해보면 무조건 원작자 이름만 표기되어 있다. 앞서 예시로 든 에픽 하이의 Let it rain도 지금 검색해보면 작곡에 '로마노 무수마라'의 이름만 올라와 있고 Run to you 또한 마찬가지로 프랭크 파리안의 이름만 표기돼있다. 다만 네이버에서 'Run to you'를 검색하면 작/편곡에 박해운/이하늘이라고 뜬다.
2009년 국내의 여러 가요들이 표절시비에 휘말리자 당시 DOC의 소속사측에서 Run to you에 대한 입장을 다시 밝힌 적이 있다. # 'Run to you가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려다 그냥 지분 포기 각서를 쓰고 끝냈다.'는 것이 골자인데, '타이틀곡이 아니었다면 저작권 관련으로는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어떻게 표현하건간에 DJ DOC 이미지에는 불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Run to you'의 저작권 에피소드이지만.. 2001년에 진관희. 2004년엔 두덕위가 리메이크 했던 것과 달리 DJ OZMA의 리메이크가 화제가 되면서, 한창 방송에 올인하고 있던 DJ DOC 입장에서는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불법행위를 그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양념을 쳐서 불쌍한 에피소드로 바꾼 것인데.. 문제는 이게 흔한 방송용 에피소드로 끝난 수준이 아니라 DJ DOC에게 애국투사 이미지를 덧씌우는데에 이용이 돼버려서, 거짓말의 스케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렸다는 점이다. 2011년에 일어난 前멤버의 명예훼손 고소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DOC는 매순간의 방송에 충실할뿐 진실을 추구하는데에 큰 관심이 없다. 팬이라면 최대한 이 일은 묻어두는게 DJ DOC에게도 이로운 일.
2011년에 방송한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 역대앨범을 이야기하는 코너에서도 'Run to you'와 관련해선 적극적으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DJ DOC 최대히트곡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는 'Run to you' 저작권과 관련된 에피소드 자체가 어느 정도 조작된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DJ DOC가 방송에 나와서 적극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곡에는 데뷔곡인 '슈퍼맨의 비애'도 있는데, 단순히 정재용 합류 전이라는 시기상의 문제 때문에 언급을 자제한다기 보다는 이 곡 역시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한 곡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일과 관련해 "DJ DOC에게 돈을 주지않고 'Run to you'의 인기에 무임승차한 DJ OZMA"라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야기가 자주 도는데, DJ OZMA는 같은 해에 DJ DOC 측이 저작권을 가진 'One Night' 역시 리메이크했으며 다른 한국가요들도 여럿 리메이크했다. 따라서 "불쌍한 DJ DOC에게 돈 한 푼 주지않고 무임승차한 DJ OZMA"라는 것은 약간의 과도한 평가이다. DJ DOC가 DJ OZMA와의 공동무대에서 했던 퍼포먼스 역시 이걸 이용했다고 밖에 보여지지않는다. DJ OZMA가 독도 관련 발언을 했다면 애국 퍼포먼스가 성립되지만, DJ OZMA는 독도와 관련한 어떠한 발언도 한 바가 없다. 만약 DJ DOC 측이 정말로 DJ OZMA가 싫었다면 공동무대를 거부했으면 됐을 일이다.[26]
이것에 대한 반론으로, "DJ OZMA와 두덕위의 리메이크는 Boney M의 베이스라인 샘플링이 아닌 'Run to you' 전체 멜로디를 통째로 가져다 쓴 카피곡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작권료를 Boney M측에만 지불하고 DOC 측에는 주지않았다"며, 해외에서의 리메이크들이 무단 샘플링의 약점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케이스라고 항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서너번 강조해도 바뀌지않을 사실은 'Run to you' '''곡의 모든 저작권은 Boney M 측에만 있다'''라는 점이다. 즉, DJ DOC측은 법적으로 리메이크 저작권료는 물론 음원사용으로 발생하는 그 어떤 저작권료도 배분받을 권리를 이미 상실한 상태이다. '국내저작권은 아직까지도 DJ DOC가 가지고 있다'라는 오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국내저작권은 지키고 해외저작권은 포기했다"라는 와전된 루머 때문인데, 국내 음저협에 등록된 저작권자 역시 DJ DOC 측이 아니라 Boney M 측이다.
3.2. 전 멤버 박정환과의 갈등
박정환이 고소를 결심하게 된 김구라 동영상
참고로 2010년 7월 27일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당시 프로듀서였던 '신철'이 출연해 박정환이 래퍼임에도 박자를 잘 못 맞춰서 교체시켰다고 증언한 바 있으며, 2011년 이하늘과 김창렬이 해피투게더에 출연, 박정환이 박치였다는 발언을 했다. 전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을 개그소재로 삼아도 같은 멤버였고 팀이 잘되라고 참아오던 박정환이지만, 해피투게더 방송이 도화선이 돼 이하늘과 김창렬은 박정환에게 고소를 당했다. 덧붙이자면 박치는 사실이 아니며 박정환이 팀내에서 따돌림 비슷하게 당했다고 당시 대표가 증언했다.
이하늘과 김창렬은 SBS 파워 FM <김창렬의 올드스쿨>에서 사과를 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나와서 한 이야기라는게...
이런 식이었다. 박정환은 이 발언을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탈퇴의 전말을 밝혔는데, 멤버들의 주장과 달리 탈퇴는 박정환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팀내 알력에 의한 것이었던 것. 상황이 이쯤되자 DJ DOC 멤버들의 오랜 예능활동 덕에 그나마 긍정적으로 변해가던 대중의 시선은 한 순간에 싸늘해졌다."박정환이 '''그렇게 속이 좁은지 몰랐다'''. 무심코 한 이야기인데 상처 받은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박)정환이는 정말 박치였다. '''대머리에게 대머리라고 하는 것이 잘못이냐'''. 정환이가 그만 둔 것은 박치가 아니라 우리보다 잘 생겼기 때문"
"인간적으로 잘 해결해 보자.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차 한 대 사 줄게'''"[27]
고소는 계속 진행됐고 # 이후 이하늘이 잠정 활동 중단 선언까지 하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씨알도 박히지 않으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됐다.
추가 고소 이후 박정환은 이하늘이 박정환이 사기를 저질렀다고 방송에서 발언하는 바람에 중고차 딜러로 활동하던 자신은 고객의 신뢰를 잃어 계약을 하나도 하지 못해서 생업에 큰 지장이 생겼다고 밝혔다. 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딸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고.# 결국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어 경찰에 송치되었다가 결국 무혐의로 마무리되었지만 박정환은 항소한다고 말했다.# # #
[image]
사과(???) 문자도 공개되었다. "미안하다 정환아" 다음에 곧바로 무슨 문장이 나오는지 보면 박정환이 이걸 진심어린 사과로 받아들였을지 어그로로 받아들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나중에 이하늘이 다시 해피투게더에 나오면서 이 사건을 얘기하면서 박명수가 괜히 물어보는 바람에 일이 터졌다며, 박명수 보기 싫어서 무한도전도 안 봤다는 말을 했다. 예능이었음을 감안해야겠지만 이에 대해 대중들이 이하늘을 어떻게 바라봤을지는 뻔할 뻔자다. 바로 자신의 집단괴롭힘 행위를 제3자의 탓으로 돌린 무책임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4. 앨범 목록
정규 앨범만 기재한다.
5. 수상 경력
5.1. 시상식
5.2. 가요 프로그램
6. 이야깃거리들
- 엉뚱하게도 일본에서는 넷 우익이라고 불리우는 혐한초딩들에게 유명한 그룹인데, 그 이유가 혐한초딩 중 누군가가 인터넷 상에서 정체불명으로 P2P에 떠돌던 반일랩음악 'Fuck zapan' 이라는 노래를 2004년 경에 DJ DOC의 노래로 날조해 복붙한 것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직도 2ch를 중심으로한 일본의 웹에서는 DJ DOC라는 한국의 힙합그룹이 Fuck zapan이라는 반일랩으로 차트 1위 했다라는 유언비어 복붙이 여기저기 꾸준히 되고 있다. 물론 실제로는 라는 정체불명의 가수가 불렀다고 하고, 2000년대 초반에 잠깐 파일로 P2P나 음원사이트에 여기저기 떠돌았으나, 정식 음반도 활동도 없는 노래. 그리고 노래를 자세히 들어보면 DJ DOC 멤버들의 목소리도 아니다.
- 이 그룹 자체가 가요계의 양아치다(정재용 제외.).
- 김창렬이 김현정의 기럭지, 비주얼, 가창력이 모두 최고 수준이라서 후배 남자 가수들한테 "현정이는 내꺼니까, 건드리면 뒈진다"고 했으며 그 말을 "어디서 개가 짖나"로 받아들인 임창정이 김현정에게 사귀자고 했다가 이들은 현피를 떴다고 한다. 정작 둘 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 이하늘이 베이비복스와 시비 붙자 끊임없이 똥군기와 인신공격을 퍼붓고 미아리복스라는 악질별명을 지어서 그 별명을 유행어가 될 때까지 계속 공공연하게 방송에서 지껄이고 다니는 등 결국 베이비복스를 해체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이하늘, 베이비복스 문서 참고. [28] 참고로, 그 유머를 퍼나른 것은 Club H.O.T.가 굉장히 적극적이였다고 한다.
- BoA가 허리케인 비너스로 활동할 때였던 2010년 9월 뮤직뱅크에서 1위를 했었는데, 당시 DJ DOC가 경쟁자였다. 그런데 보아가 1위가 되자, 멤버 전원이 썩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아가 수상소감 이후, 함께 후보에 오른 DJ DOC에게 고맙다며 꽃다발을 건넸지만, 이하늘은 그 꽃다발을 바닥에 팽개치고, 김창렬은 팽개친 꽃다발을 발로 차버리는 만행을 보여줬다. 이 때 보아의 표정은... 심지어, 방송 후 김창렬은 본인의 SNS에 "소속사가 크니까 음반 사재기해주고 좋네 진짜 1위는 우리."라는 식의 글을 게재해 보아의 1위를 비꼬기까지 . 본인들의 음원 순위가 1위였기 때문에 자기들이 1위였다는 건데, 2위가 보아의 허리케인 비너스였다. 게다가 음반은 보아가 DJ DOC의 3배 이상을 앞섰고. 나중에 욕을 엄청나게 먹자, SBS 인기가요 클로징에서 보아에게 꽃다발을 주고 '보아 사랑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그런데 정작 그 당시 1위는 보아가 아니라, 샤이니여서.. 보아가 적잖이 당황했다고.. 그 다음주 뮤직뱅크에서 보아는 또 1위를 했고, 앵콜무대에서 DJ DOC와 함께 무대를 꾸몄다. 당시 검색어에 DJ DOC 인성 논란, 이하늘 인성, 김창렬 인성 등등 아무튼 매우 안 좋은 단어가 오르내렸다.
- 위대한 탄생을 통해 인상좋은 모습만 보여줬던 작곡가 윤일상은 사실 90년대에 어린 남가수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작곡가다. 녹음할 때 연습량이 부족해서 작업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면 심하게 꾸짖거나 벌을 세웠는데, DJ DOC도 윤일상에게 벌 받은 가수들 중 하나다.[29]
- DJ DOC의 독한민박을 진행했다.
- 전 멤버였던 박정환은 1996년에 스타일의 멤버로 활동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진 못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해 박근혜 디스곡인 수취인분명을 제작, 가사 문제로 논란이 있었으나, 12월 10일 집회 중 가사를 일부 수정한 버전으로 서울광장에서 공연했다.12월 10일 집회 당시 공연 영상.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2018년 7월 17일 국회 중앙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0주년 제헌절 경축행사 KBS1 열린음악회 무대에 올라 "자한당 계속 정신 못 차렸으면 좋겠다” 는 발언을 하며 VIP로 초청된 국회의원들을 앞에서 디스했다. 기사. 하지만 기사 댓글의 반응은 누가 누구를 욕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위기다.
- 김창열이 멤버 중에서 최초로 유부남이 되었고, 2018년에 이하늘과 정재용도 50줄이 다 된 상태에서 차례차례 결혼하면서 멤버 전원이 유부남이 되었지만, 2020년 2월 24일 자로 이하늘이 이혼했다.
- 2019년 11월 9일,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열린 코요테 20주년 콘서트에서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하여 세 곡을 불렀다(Run to you, 나 이런 사람이야, DOC와 춤을).
- 멤버 전원이 군대를 면제받았다.
[1] "내가 맘에 들어하는 여자들은 꼭 내친구 여자친구이거나...(중략) 아니면 꼭 동성동본"[2]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히 하기만 하면 괜찮을텐데"[3]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춰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춰요, 그깟 나이 무슨 상관이에요 자신을 만들어 가요 이렇게"[4]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5] 김창열, 이하늘의 경우는 둘 다 폭력전과만 4범이고 합의금 5억원 이상에 둘이 산 징역날짜를 합치면 10년이 넘는다.[6] 김창열은 2014년 추석 특집 개그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자신의 흑역사를 거론하는 자학 개그를 했다.#[7] 사실 두 그룹은 나이차이가 적지 않게 난다.[8] 2집의 '머피의 법칙'을 부를 때 인트로에서 "우리들은 디오씨 디제이~ 덕!"이라고 외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9] 물론 당시 레전드급 인기를 달리던 비락 식혜는 아니며 LG화학에서 식혜음료 열풍에 편승하기 위해 내놓은 듣보잡 상품이었다. [10] 프로듀서 신철은 서태지 등장 이전 현진영등과 함께 국내 래퍼 0세대로서 랩음악을 개척한 가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20년의 세월 에 수반되는 오그라듦을 견뎌낸다면 의외로 랩 리스너의 입장에서 2,3,4집보다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앨범. [11] 원래 타이틀곡은 '무아지경'이었는데, 발매 당시에 선정적인 가사로 논란이 있어서 방송 3사에서 모두 방송금지를 당했다. 결국 대중적인 다른 곡을 선택한 게 'DOC와 춤을'. '무아지경'은 MBC에서 후속곡으로 짧게 활동하는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2008년에서야 KBS에서 방송금지가 풀렸다.[12] 잘 보면 노무현 前 대통령 등 낯익은 얼굴이 많다.[13] 물론 노래를 부른 사람은 정작 DJ DOC가 아니라 방대식이었다. 사실 대선송은 방대식이 이 시기부터 현대까지 꽉잡고 있다.[14] 민요 뱃노래를 차용했다.[15] 선행 싱글로 공개된 버전보다는 가사가 순화되었다.[16] 그냥 들으면 사회비판 노래지만 실은 클론, 특히 강원래를 까는 내용이 숨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부치지 못한 편지'에 붙어있는 각주 참고.[17] '포조리, Run To You, 기다리고 있어, 아무도 모르게' 이 4곡에만 참여했다.[18] 당시 김창렬이 모친상으로 의해 심적으로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다. 그의 부친은 이미 이전에 별세해서 부모를 모두 잃었다는 슬픔 때문에 5집 앨범 작업에 차질이 생겨서 이하늘과 정재용의 비중이 클 수 밖에 없었다.[19] 욕 들어간 횟수 47회.[20] 2006년에 베스트앨범이 발매되기는 했다.[21] 5집 앨범 작업의 저조한 참여에 미안해서 인지 6집앨범을 프로듀싱 하였다.[22] 4집에 수록된 '모르겠어?'의 가사 중에 나오는 '개장수'라는 명칭이 이 노래에서도 나온다.[23] 이하늘이 지상파에서 발언을 해서 논란이 있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은 힙합 관련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지나가듯이 농담반으로 베이비복스를 언급해 깠었던 것이다. 헌데, 이게 문제가 됐다. '미아리복스'는 이후 양자간 감정 싸움이 격해지면서 이하늘이 직접 인터넷에 적은 글 중에서 나온 발언이다. '미아리복스'라는 단어를 두고, 언더그라운드 방송인 구봉숙 트리오{김구라, 황봉알, 나도야(舊 노숙자)}가 먼저 사용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이 미아리복스 사건은 베이비복스 해체의 단초가 되었다.[24] 참고로 음반판매 점수 최고기록은 소녀시대가 기록한 14318점이다. 그 당시 소녀시대 점수가 이랬으니 당연히 그 밑은.... 당시 2위였던 2AM의 음반판매 점수는 2832점이었다.[25] 현재는 던전 앤 파이터에 대한 시각이 워낙 좋지 않아진지라 유저들을 까거나 비웃는 경우가 많긴하나 사실 단순하게 볼 부분은 아니다.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적지않긴 했으나 또 유저들 입장에서는 애시당초 게임과 관련된 정보, 행사를 보러 온 것이지 가수들의 축하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아닌데다 하다못해 관련있는 가수면 몰라도 전혀 게임과 관계 없는 가수들이 와서 공연을 한 탓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 된 것도 있었다. 그렇다해도 공연 온 가수들이 잘못도 아닌데 호응좀 해주는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고 그 의견 역시 맞긴하지만 그 행사의 성격을 생각하면 키보드나 두들기는 씹덕들이라고 단순하게 비웃을 일은 아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겪고 이후의 아이돌 가수의 축하 공연에도 워낙 부정적이었던 던파 유저들의 요구에 결국 축하 공연은 생략되는 형식으로 변화했다. 더불어 당시 행사가 있던 장소는 소극장으로 공연에 대한 호응은 둘째치고 흔히 아는 극장과 같은 의자가 배열 된 탓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공연에 호응하기에는 알맞지 않은 장소였다. DJ DOC의 종용에 의해 일어선 사람 들도 공간 특성 상 불편한 상황이었다.[26] DJ OZMA는 기시단의 리더 아야노코지 쇼의 또 다른 캐릭터로, 캐릭터 설정에 불과하지만 2000년에 한국에서 이미 데뷔한 설정이다. 그다음 2004년 중국에서 데뷔했고 2006년에 들어서 일본에 데뷔한 것이 공식약력설정(?). DJ OZMA가 리메이크한 한국가요 수만 봐도 더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굳이 혐한세력을 위험요소로 들지않더라도, 한 아티스트가 특정국가의 곡들을 집중적으로 리메이크해서 내놓는다건 대중들에게 '커넥션(뒷거래)'의 의혹을 살 위험성이 있는 행위이다. 그리고 아야노코지 쇼가 알고 그랬는지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데뷔초 '키시단짝퉁'소리 들으며 욕을 먹던 노라조가 더이상 그런 이야기를 듣지않게된 것도 그가 '노라조를 존경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준 덕이 크다.[27] 박정환은 현재 중고차 딜러로 일하고 있다.[28] 간략히 얘기하자면 미아리라는 지명은 과거 집창촌으로 유명한 지명이었다. 베이비복스를 몸파는 창녀들이라고 비하한 것이나 마찬가지. 거기에 직설적으로 섹스 가수라며 성적으로 심각하게 인신 공격을 일삼았다.[29] 그 외에는 터보, 쿨, 젝스키스 등이 있다. 보통 한 번씩은 다 울었다고... 정작 여가수들은 절대로 벌 주거나 꾸중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