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제1공화국
1. 개요
1910년에 일어난 10월 5일 혁명으로 포르투갈 왕국이 붕괴된 후 설립된 포르투갈의 첫번째 공화국이자 프랑스에 이어 유럽내에서 두 번째로 단명하지 않고 10년 넘게 이어진 현대식 공화정 체제이다.
2. 역사
새로 세워진 제1공화국은 포르투갈의 각 공화파 사이에 일어난 다툼으로 크게 혼란했다. 지속된 16년 동안 무려 8명의 대통령, 38명의 총리가 있었다. 이러한 혼란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공화국 주도 세력의 반교권주의였다. 이들은 혁명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자마자 정교분리법을 제정했는데 모든 수도회를 폐지하고 가톨릭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초강경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당시 포르투갈은 80% 정도가 농민이고 이들의 보수적인 성향은 정교분리와 반교권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로 나타났다.[1] 선거법도 문제였는데, 왕정을 몰아내고 21세 이상의 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시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했으나 정작 공화파는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은 자를 후보에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공화파 세력이 의회에서 절대 다수를 점하기는 했지만 정작 자신들도 정권을 잡고 얼마 못 가 분열해 기껏 성립된 내각을 무너뜨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더불어 농촌의 보수 세력 못지 않게 정국 주도권에서 배제된 노동자들 역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1910년대 초반에는 보수 세력이 주도한 쿠데타도 여러 번 있었다. 물론 진압당했지만 당시 포르투갈 정부는 보수 세력에 불안감을 느끼고 군인들과 글을 쓰지 못하는 자들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해 보수 세력의 정치적 파워를 줄이고자 했다.
공화파 정부는 자국의 혼란을 식민지를 더 얻어 해소하고자 제1차 세계 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이것을 반대하는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가 한 번 뒤집히는 바람에 포르투갈은 적극적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못했고 아프리카 전선에서 조금 도와 준 것을 제외하면 한 것이 없었다. 그 결과 승전국은 되었지만 포르투갈에게 돌아온 것은 거의 없었을 뿐더러 무리한 참전으로 인플레이션만 심해졌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심화되자 정부는 무력을 가진 군인들을 달래서 정부를 수호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내각이 무너지고 세워지기를 반복하여 정부의 군대에 대한 통제력은 점점 약화되어 갔다. 1920년대 초반부터 정부의 혼란을 수습하겠다며 군인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1926년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서 제1공화국은 붕괴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의 군부는 포르투갈 국가독재라는 군정을 실시했고 1933년에는 안토니우 살라자르를 총리로 한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