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당제
1. 개요
多黨制, multi-party system
다당제라는 용어는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 여러 정당의 공존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제도. 이런 의미의 다당제를 복수정당제라고도 부른다.
이 의미의 다당제/복수 정당제는 정당들이 민주적으로 자유로이 결성될 수 있고 특정 정당이 다른 정당을 통제하지 않는 방식임을 전제하는 게 일반적이다. 독재 국가들이 자기 나라가 민주적인 척을 하려고 집권당과 정권의 통제를 받는 구색정당의 존재만 인정한다든지, 구색정당이 아닌 야당들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공작 정치로 마구 탄압을 한다든지 하면 일반적으로 다당제/복수 정당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독재 국가들은 자국이 다당제/복수 정당제 국가가 아니라는 외부의 평가를 부정하고 자국이 다당제/복수 정당제를 채택했다고 우기는 게 일반적이다. 중국 공산당 1당 우위에 민주당파라는 허수아비 정당 8개만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중국도 자국이 '다당 합작'을 한다고 약을 팔고 있다.[1]
- 3개 이상의 정당이 실질적으로 주요 정당으로서 공존하는 정치 체제. 2개의 거대 정당 위주로 돌아가는 양당제와 구분하는 용어이다.
이 문서에서는 2에 대해서 설명한다.
2. 다당제의 특성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가 분류하는 다당제의 존립 구조는 크게 분극형, 분절적 다당제로 구분된다.
2.1. 분극적 다당제
분극적 다당제는 양당제, 좀더 본질적으로는 일당우위제를 좀더 분절해 좌파, 중도, 우파로 분류한 다당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위적 3등분 다당제로 87년 체제 이후 치러진 총선 구도 중,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가 가장 적절한 예시이다.
- 적실성 있는 반체제 정당이 있다.
국가 체제의 존립에 있어 주류 정당의 의견에 정반대에 서는 정당이 존재할 경우가 그렇다. 한국에서는 과거 통합진보당과 현재 우리공화당이 대표적이었고, 해외의 예를 들면 일본 공산당, 프랑스 국민연합.
- 이념적으로 대치되는 야당이 있다.
집권당 혹은 보수당의 이념과 대치되는 야당의 존재가 있다. 이는 한국의 민주당계보가 그러하다.
- 중도적 이념을 장악하는 하나의 정당 혹은 정당군이 있다.
이는 어느정도 좌파, 우파에도 서지 않는 의미의 중도지향을 의미한다. 한국 정치에선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은 포지션이었으나, 과거의 국민의당이 지향하였다.
- 다극적 상호작용이 있다.
좌파, 중도, 우파가 한 정치적 레일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한쪽만 움직여도 나머지 둘이 같은 레일에서 밀렸다 당겼다 하며 이들이 어떻게 합종연횡하느냐에서 정치구도가 요동치기 쉽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좌파, 중도, 우파 모두 다 표를 많이 얻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에 표를 얻기 위해 우파가 좌클릭 혹은 좌파가 우클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를 중위 투표자 정리라고 한다.
다당제로 시작한 제20대 국회에서는 분극적 다당제의 전형을 보여줬는데, 경기동부연합 - 울산연합 / 평등사회네트워크 - 정의당 주류(PD) - 참여계 / 당내 진보 - 친문 - 친노 비문 - 민평련 / 동교동계 / 친안 -친유 / 친무 - 친홍 - 친박 / 삼성동계가 모두 서로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합종연횡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이것이 극명하게 보여준 예가 바른정당 탈당사태 이후의 대규모 정계개편후의 상황인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정의당 / 국민의당 호남계 - 국민의당 친안계 / 바른정당 친유계 - 바른정당 친무계 / 자유한국당으로 이뤄진 야권 벨트가 정의당 - 민주평화당 / 바른미래당 친안계 - 바른미래당 친유계 / 자유한국당 친무계 - 자유한국당 친홍계로 재편되는 양상을 보였었다.2.2. 분절적 다당제
온건 다당제라고도 불리며, 당의 정치기반인 이념과 정치철학, 지지기반 등이 각각 독립적인 정치지형을 갖는 다당제를 말한다.
- 적실성 있는 반체제 정당이 없다.
이런 국가는 이데올로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당의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이 분극적 다당제보다도 훨씬 넓다. 독일처럼 네오 나치성향의 극우 정당과 독일 녹색당같은 좌파정당이 모두 원내 진입이 가능한 것이 그렇다.
- 적실성 있는 정당의 숫자가 많고 상호 연합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으며 정치지형이 독립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당 지지기반이 완전히 분화되어있다. 유럽 다당제의 필수요소인 기독교정당, 노동자정당의 존재가 대표적으로[2] 이들은 각기 정치기반이 뚜렷하고 적실성이 뚜렷하여 상호 연합으로 연립정부 구성 없이는 안정적인 의석수 확보와 통치가 어려운 구조이다.
- 구심력 있는 경쟁구도를 가진다.
전술했듯 확고한 정치지형을 가진 상태에서 정당이 각자도생하는 구조기 때문에 각자의 구심력이 탄탄하고, 국가적 흐름에 따라 경쟁구도가 변하게 된다.
3. 대한민국의 다당제
대한민국 정치는 1987년 6월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민주화 국면이 도래한뒤 잠시 여소야대의 4당체제가 들어섰으나 1990년 3당합당부터 보수당 일당우위체제에 가까운 양당제가 자리잡았고, 이후까지도 자민련이나 국민의당 같은 일부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이런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4] 심하게 말하면 역사적으로 한국의 야당의 시작은 압도적인 우위를 갖춘 독재 집권당에 대항하려던 반체제 집단의 연합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고, 직접적으로는 5.18 민주화운동을 시발점으로 3당합당 이후 보수진영의 반호남 지역주의 구도에 포위된 호남이나, 운동권 학생들과 노동자 조직 등이 모조리 연합하여 오늘날의 민주당계 정당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극형 다당제로 이데올로기 지향을 취하기에는 대한민국은 좌파 정당의 존립 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분절적 다당제를 가기에는 독립적 정치지형을 갖기 어려운 구조이며[5] 지역 정당 체제로 가기엔 지방의 인구 및 정치력이 극도로 취약한 서울 공화국이기 때문에, 시기를 짧게 보면 제3당의 존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3당이 완전하게 독자적인 정치지형을 구축하고 지지기반을 장기적으로 확보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다. 1996년 자민련이후 선거를 통해 단독으로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한 제3당은 20년이 지난 2016년 국민의당이 유일하다.[6]
2017년 기준으로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갈등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새누리당이 분당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 원내교섭단체 3당에 바른정당, 정의당, 민중당, 대한애국당 등 비교섭단체 4당까지 합세했고, 이후 두 당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쪼개 지면서, 극우정당, 우파정당, 중도우파정당, 민주당계정당, PD계 정당, NL계 정당이 다당제를 이루고 있다[7] . 2017년 시점에서 의석 151을 차지한 정당은 없다[8] . 즉 이전과는 달리 상황이 매우 복잡해졌고 서로 타협과 설득을 하며 국정을 운영해야하는 상황이 왔었다.
당이 늘어난 건 18대 국회때에도 그랬다. 특히 가장 많을 때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미래희망연대, 창조한국당, 국민중심연합, 진보신당 등 무려 원내정당만 8개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이 단독 과반이었으므로 타협과 설득의 필요성이 적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양대 정당과 선진과 창조의 모임 등 3개의 교섭단체뿐이었고, 선진과 창조의 모임은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통합 교섭단체였는데다가 단 1년도 못 가서 자유선진당 충청 지역파가 이탈하고 창조한국당이 공중분해 되면서 해산됐다. 2018년 자그마치 3개의 정당과 1개의 정당연합이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4개의 교섭단체를 구성한 것은 3당 합당 이래 처음이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당 내 합당 반대파들이 민주평화당을 창당하며 분당되어 잠시나마 원내 8당 체제가 되면서 18대 국회 때의 원내정당 최다 기록과 타이기록을 이뤘다.
다음 21대 총선까지 승자독식인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고치지 않으면, 다시 양당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해당 총선은 사실상 20대 대선 판세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여야 접전이 이뤄질 경우 1:1로 될 듯하다. 이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바른정당 - 국민의당 지지 세력과 더불어민주당 - 정의당 지지 세력 간 동질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만약 소선거구제가 그대로 유지되면, 두 정당 연합은 각각 서로서로 합쳐야 되는 상황을 맞이할 처지다.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진보적인 이슈에서는 그럭저럭 잘 협력하고 문재인 정부 내각 인사 청문회에서 정의당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인사는 문재인 정부도 포기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주며[9] 두 당의 라이트 지지자들은 심상정 같은 경쟁력 있는 정의당 후보와 그렇지 않은 민주당 후보가 나오면 정의당 후보를 찍거나 정의당에 비례표를 주기도 하지만 코어 지지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를 적대하고 있다. 한편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호남이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을 용납할 지 그리고 바른정당은 호남계 정치인들의 햇볕정책을 용납할지가 문제인데 결국 용납하지 못하고 국민의당은 쪼개져 국민의당에 친안 세력만 남아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이 되었고, 호남 세력은 민주평화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세력이 약한 관계로 다당 체제의 존속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21대 총선을 기점으로 고정 지지층을 가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당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고, 사표가 방지되고 소수당의 목소리가 커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이[10] 21대 총선에서 적용되었기 때문에 양당제에 더 균열이 가거나 아예 양당제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100%연동형이 아닌 50%연동형인 데다가 국회의원 정수가 늘어나거나 지역구가 줄어드는 개혁은 이뤄지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11] 사실상 양당제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21대 총선 때 그랬다.
[1] 단, 처음부터 이들 야당이 허수아비는 아니었고, 실제로 1950년대 중반까지는 공산당을 견제하는 야당으로써 역할을 수행하기는 했다. 그러나 1957년 반우파투쟁과 1966년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민주당파에 대대적인 타격이 가해졌고, 이후로 허수아비가 되다시피한것이다.[2] 이는 유럽의 역사적인 배경으로 중세 이후의 정교분리, 근대이후의 산업혁명을 통해 종교계와 노동계가 민주주의 정치체계에서 스스로 권력집단의 길을 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정당, 노동자정당이 된 것이다.[3] 이 규정은 제5차 개정헌법(제3공화국) 때 신설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4] 이에 대해 유시민이 평가하길 일본은 1.5당체제, 한국은 1.7당 정도 된다고 말했다.[5] 기독교 정당(혹은 종교정당)이나 노동자 정당의 시도가 없진 않았으나,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다.[6] 2008년 자유선진당의 경우 20석에 딱 2석이 모자라 3석의 창조한국당과 교섭단체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단독으로 선거를 통해 교섭단체를 구성하지는 못했다.[7]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19대 국회까지만 해도 보수정당, 민주당계 정당, 진보정당이 각각 하나씩만 있었는데, 현재에 와서는 모든 정당이 전부 한 번씩 분열되고 극우정당과 그 진보정당의 실질적 후계 정당이 원내에 입성했다는 점이다.[8] 각 정당을 범여권과 범야권으로 나눴을 때, 범여권의 의석은 153석이다(민주+정의+민중+민평+국회의장). 반대로 범야권의 의석은 146석(한국+바른미래+애국)[9] 정의당과 민주당 내 여성계가 적극적으로 비토를 했지만 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에 그대로 기용한 탁현민 행정관 제외.[10] 정확히는 절반의 사표만 방지되는 준연동형으로 통과되게 되었다. 아예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한 자유한국당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나마 찬성한 더불어민주당도 사표를 모두 방지하면 자신들의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11] 한국은 국회의원의 수가 적은 탓에 여러 문제가 생기는 나라지만, 그 여러 문제로 생긴 정치 혐오 정서 때문에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걸 극혐하는 국민들이 절대다수이고, 그렇다고 지역구 의석을 줄이려니 많은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줄어들 지역구의 국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결국 기존의 선거제도에서이후 민주당 역시 이에 대응하게 위해 비례연합정당(사실상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하면서 양당제에 딱히 균열을 내지 못할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 21대 총선 결과는 양당제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