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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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411과 412(Volkswagen 411/412. 코드명 Type 4)는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에서 생산한 중형차이다. 폭스바겐의 첫 4도어 세단이자 전통적인 뒷엔진 뒷바퀴굴림+공랭식 복서엔진 구성을 고집했던 당대 폭스바겐의 전형적인 라인업 중 하나였으며, 이러한 구성으로 설계된 마지막 승용차 라인업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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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1960년대 들어 폭스바겐 비틀과 폭스바겐 트랜스포터 등의 차종들의 흥행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폭스바겐에서는 비틀과 타입 2의 설계를 기반으로 라인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등장한 것이 비틀과 비슷한 급의 폭스바겐 Type 3(1500과 1600)이였고, 더 나아가 중형차 라인업을 보충하기 위해 하인리히 노르트호프(Heinrich Nordhoff)가 이끄는 개발팀이 프로젝트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브랜드로 만드는 차들 중 가장 상급 라인업인만큼, 기존의 공랭식 4기통 엔진도 1679cc까지 키워 같은 엔진 시리즈 중 최대 배기량을 기록했고, 차량 디자인은 당시 폭스바겐 디자인 센터를 자문해주는 역할을 맡았던 피닌파리나가 만들어 냈다. 복서엔진을 고집하는 만큼 무게 배분도 비교적 고른 45/55%였고, 또한 완전히 평평한 실내 바닥과 조절 암이 장착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같은 새로운 시도도 했었다. 그 이외에도 유압 클러치가 적용된 4단 수동변속기와 트레일링 위시본(trailing wishbone) 구성의 뒷바퀴 서스펜션, 모노코크 차체, 코일 스프링 등이 적용되었으며, 차체 라인업은 2도어와 4도어 패스트백, 2도어 웨건으로 기획되었다. 본래는 일반적인 디자인의 4도어 세단도 계획해서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지만, 이는 결국 양산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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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1968년 10월에 파리 모터쇼에서 데뷔한 타입 4는 "폭스바겐 411"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고, "기함급 폭스바겐"이라는 명분에 걸맞게 운전석(우핸들 시장에서는 조수석) 아래에 위치한 배터리, 쾌적한 환기를 위해 적용된 쪽창이 없는 앞좌석 창문, 추가비용이 필요없는 메탈릭 페인트 도장, 레디얼 플라이 타이어, 차량 전반에 깔린 카펫, 시계, 전동으로 작동하는 김 서림 방지 장치(demister), 차체 하부코팅, 관류식 통풍장치(flow-through ventilation), 온도에 따라 작동되는 보조 난방, 예열 플러그로 작동되는 Eberspächer제 가솔린 연소식 BA4 히터, 기본장착된 디스크브레이크 등이 적용되었다.
출시 당시에는 위에서 언급한 1679cc 엔진이 이중 카뷰레터나, 1969년에 추가된 보쉬(Bosch) D-제트로닉 전자 연료분사 장치와 같이 적용되어 68~80마력 정도의 출력을 냈고, 유럽시장용 차량은 연료분사식 엔진이 적용된 라인업에 "E(Einspritzung의 약자)"를 덧붙였으며, 연료분사 엔진은 후에 포르쉐 914와 같이 사용했다. 1969년에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지면서 엠블럼이 보닛 위에서 그릴 안쪽으로 이동하고, 헤드램프가 2점식에서 4점식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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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1972년 8월에는 브룩스 스티븐스(Brooks Stevens)[1] 가 페이스리프트를 맡은 후속차량인 "폭스바겐 412"가 등장했다. 할로겐 헤드램프가 적용되는 것은 물론 앞모습이 크게 바뀌어 헤드램프 주변 금형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변경되었고, 이는 브라질 시장용 차량인 폭스바겐 브라질리아(Brasilia)와 같이 공유하는 디자인 요소였다. 1974년에는 엔진 크기를 1795cc로 늘리고 연료분사 장치 대신 이중 카뷰레터를 장착해 "412LE"였던 트림명이 "412LS"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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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의 생산 기간동안 총 36만 7천 728대가 생산되었으며, 이들 중 1971년부터 1974년 7월까지 11만 7천 110대가 미국에서 판매되었다. NSU로부터 가져온 폭스바겐 K70의 4년 간 판매량인 21만 82대에 비하면 좀 나은 성적이었으나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고, 결국 폭스바겐에서는 비틀과 타입 2 외의 거의 대부분 라인업에서 기존의 "뒷바퀴굴림 공랭식 복서엔진" 구성을 완전히 지워버리게 된다. 이후 폭스바겐 파사트가 411/412의 자리를 대신 담당했으며, 앞바퀴굴림 구성과 해치백 디자인 덕분에 폭스바겐에서는 오랜만의 상업적 성공을 맛볼 수 있었다.
1. 개요
폭스바겐 411과 412(Volkswagen 411/412. 코드명 Type 4)는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에서 생산한 중형차이다. 폭스바겐의 첫 4도어 세단이자 전통적인 뒷엔진 뒷바퀴굴림+공랭식 복서엔진 구성을 고집했던 당대 폭스바겐의 전형적인 라인업 중 하나였으며, 이러한 구성으로 설계된 마지막 승용차 라인업으로 기록되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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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1960년대 들어 폭스바겐 비틀과 폭스바겐 트랜스포터 등의 차종들의 흥행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폭스바겐에서는 비틀과 타입 2의 설계를 기반으로 라인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등장한 것이 비틀과 비슷한 급의 폭스바겐 Type 3(1500과 1600)이였고, 더 나아가 중형차 라인업을 보충하기 위해 하인리히 노르트호프(Heinrich Nordhoff)가 이끄는 개발팀이 프로젝트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브랜드로 만드는 차들 중 가장 상급 라인업인만큼, 기존의 공랭식 4기통 엔진도 1679cc까지 키워 같은 엔진 시리즈 중 최대 배기량을 기록했고, 차량 디자인은 당시 폭스바겐 디자인 센터를 자문해주는 역할을 맡았던 피닌파리나가 만들어 냈다. 복서엔진을 고집하는 만큼 무게 배분도 비교적 고른 45/55%였고, 또한 완전히 평평한 실내 바닥과 조절 암이 장착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같은 새로운 시도도 했었다. 그 이외에도 유압 클러치가 적용된 4단 수동변속기와 트레일링 위시본(trailing wishbone) 구성의 뒷바퀴 서스펜션, 모노코크 차체, 코일 스프링 등이 적용되었으며, 차체 라인업은 2도어와 4도어 패스트백, 2도어 웨건으로 기획되었다. 본래는 일반적인 디자인의 4도어 세단도 계획해서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지만, 이는 결국 양산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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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1968년 10월에 파리 모터쇼에서 데뷔한 타입 4는 "폭스바겐 411"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고, "기함급 폭스바겐"이라는 명분에 걸맞게 운전석(우핸들 시장에서는 조수석) 아래에 위치한 배터리, 쾌적한 환기를 위해 적용된 쪽창이 없는 앞좌석 창문, 추가비용이 필요없는 메탈릭 페인트 도장, 레디얼 플라이 타이어, 차량 전반에 깔린 카펫, 시계, 전동으로 작동하는 김 서림 방지 장치(demister), 차체 하부코팅, 관류식 통풍장치(flow-through ventilation), 온도에 따라 작동되는 보조 난방, 예열 플러그로 작동되는 Eberspächer제 가솔린 연소식 BA4 히터, 기본장착된 디스크브레이크 등이 적용되었다.
출시 당시에는 위에서 언급한 1679cc 엔진이 이중 카뷰레터나, 1969년에 추가된 보쉬(Bosch) D-제트로닉 전자 연료분사 장치와 같이 적용되어 68~80마력 정도의 출력을 냈고, 유럽시장용 차량은 연료분사식 엔진이 적용된 라인업에 "E(Einspritzung의 약자)"를 덧붙였으며, 연료분사 엔진은 후에 포르쉐 914와 같이 사용했다. 1969년에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지면서 엠블럼이 보닛 위에서 그릴 안쪽으로 이동하고, 헤드램프가 2점식에서 4점식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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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1972년 8월에는 브룩스 스티븐스(Brooks Stevens)[1] 가 페이스리프트를 맡은 후속차량인 "폭스바겐 412"가 등장했다. 할로겐 헤드램프가 적용되는 것은 물론 앞모습이 크게 바뀌어 헤드램프 주변 금형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변경되었고, 이는 브라질 시장용 차량인 폭스바겐 브라질리아(Brasilia)와 같이 공유하는 디자인 요소였다. 1974년에는 엔진 크기를 1795cc로 늘리고 연료분사 장치 대신 이중 카뷰레터를 장착해 "412LE"였던 트림명이 "412LS"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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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의 생산 기간동안 총 36만 7천 728대가 생산되었으며, 이들 중 1971년부터 1974년 7월까지 11만 7천 110대가 미국에서 판매되었다. NSU로부터 가져온 폭스바겐 K70의 4년 간 판매량인 21만 82대에 비하면 좀 나은 성적이었으나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고, 결국 폭스바겐에서는 비틀과 타입 2 외의 거의 대부분 라인업에서 기존의 "뒷바퀴굴림 공랭식 복서엔진" 구성을 완전히 지워버리게 된다. 이후 폭스바겐 파사트가 411/412의 자리를 대신 담당했으며, 앞바퀴굴림 구성과 해치백 디자인 덕분에 폭스바겐에서는 오랜만의 상업적 성공을 맛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