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볼커
1. 개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재임 기간 : 1979년 8월 6일 - 1987년 8월 11일
2. 상세
폴 아돌프 볼커 주니어(Paul Adolph Volcker, Jr.)'''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일 때 접시를 빼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로 70~8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혔던 고물가 인플레이션을 잡은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70년대 초반과 후반 1ㆍ2차 오일쇼크로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물가가 급등하자 '''기준금리를 연 20%대까지 끌어올리는 초고금리 정책'''을 썼다.
이 초고금리 정책을 '볼커 쿠데타' 라고 하는데 이후로 실업률 억제대신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하는 '통화주의(monetarism)' 기조가 지배하였다.
긴축정책이 단기적으로 투자 억제 및 불황을 초래하지만, 기업 구조조정 촉진, 실업률 증가, 임금인상 억제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 및 이윤율 상승을 가져온다고 봤기 때문이다.[1] 하지만 나중에 가서 Fed는 금리를 상당히 인하하였다.
볼커가 유발한 국제적 금융 긴축은 이미 한계선에 있던 소련의 경제 상황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볼커 쿠데타는 미국이 양강이 아닌 제 1의 초강대국으로 올라서게 만든 계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반면 금리를 인상하면서 중남미와 동유럽, 아프리카 상당수 국가들의 달러가 전부 미국으로 회수됨에 따라 외채부담이 상상이상으로 커지면서 결국 국가부도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제 3세계와의 외교를 중시하는 쪽에서는 고금리 정책을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1] 반면 정부의 재정정책은 팽창적이여서 통화주의의 원칙과는 배치되었다. 미국, 영국 정부의 경우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예산 축소 및 균형재정을 목표로 내세우고 예산을 축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영국 등은 정부지출 규모(GDP 대비 비중)를 꾸준히 증가시켰고, 또한 세제구조 개편 및 적자 재정에 기초한 예산(특히, 군비지출) 증가 형태의 팽창적 재정정책을 사용하였다. 폴 볼커 Fed 의장 시기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권과 영국의 대처 정권은 감세가 노동 의욕제고와 투자 촉진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가설을 근거로 소득세율을 일률적으로 내리거나 최고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방식으로 부유층에 유리한 역진적 세제개편을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상속세율의 인하 추세에 불을 붙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혹은 레이건노믹스의 결과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소위 쌍둥이 적자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