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하늘
1. 개요
The Blue Sky
1988년부터 1993년까지 활동했던 동아기획 소속의 팝 밴드.
출발은 동아기획에서 오디션으로 멤버를 뽑아서 만든 5인조 기획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드러머가 1집 녹음도 하기 전에 탈퇴한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멤버들도 1, 2집 활동 후에 줄줄히 탈퇴하면서 결국 초기 멤버 유영석과 2집부터 정식 멤버로 들어온 드러머 송경호 2인조 체제로 오랜 기간 활동하게 된다. 이 때문에 싱어송라이터 유영석의 그룹으로 알려졌고, 실제로도 송경호의 비중은 거의 없다.
주요 멤버들은 다음과 같다.
- 유영석: 보컬, 신디사이저, 피아노
- 송경호: 드럼 (1집에서 세션으로 참여 후 2집부터 정식멤버로 활동)
- 박준섭: 베이스, 퍼쿠션 (2집까지 활동 후 탈퇴)
- 이종석: 보컬, 신디사이저 (1집까지 활동 후 탈퇴)
- 전영준: 기타 (1집까지 활동 후 탈퇴)
히트곡으로는 '겨울바다', '눈물나는 날에는', '우리 모두 여기에', '꿈에서 본 거리', '자아도취', '오렌지 나라의 앨리스',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둔 채...' 등이 있다. 한편 푸른하늘의 6개 음반 중 단 한 곡[1] 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영석의 작품이다. 작사는 2곡[2] 을 빼고 모두 유영석 작품. 노래도 1곡[3] 빼고 유영석의 목소리가 안 들어간 곡이 없고, 편곡까지 합하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푸른하늘에서 유영석의 위치는 거의 절대적이다시피 하다. 사실상 원맨 밴드나 다를 바 없는 구성인 게 특징.
2. 활동 내역
푸른하늘 1집은 유영석의 음악 실험실 앨범이었는데, 이는 '겨울바다'와 함께 타이틀곡으로 지명된 '하얀 사랑'에서 드러났다. '하얀 사랑'은 잔잔한 소프트 발라드였던 '겨울바다'와 달리 신디사이저가 동원된 빠른 곡조의 음악이었다. 이렇게 푸른하늘 1집에서 시도된 각종 시도는 푸른하늘 2집에서 결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푸른하늘 1집에 수록되었던 건전가요[4] 는 LP판에 있으나 CD판에서는 삭제되었고 이 건전가요를 들어본 사람이 있긴 한 건지는 의문이다.
푸른하늘 2집은 유영석의 실험을 좀더 확정짓는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 있는 '이밤 내곁에 없어도'는 1970년대 영국을 휩쓸었던 팝 그룹 '퀸'의 성향을 보이는 노래며, '사랑만으로'는 가사가 단 3줄 뿐인 독특한 노래다. 다만 유영석은 푸른하늘 1집에서는 약했던 록의 느낌을 살렸다. 이는 1집 발표 이후 푸른하늘에 들어온 록 그룹 태백산맥 출신의 드러머 송경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는데, 1집의 히트곡 '겨울바다'는 여기서 다시 녹음되었다.
푸른하늘은 푸른하늘 3집 이후로는 다른 가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3집의 '우리 모두 여기에'(장필순, 박학기, 오태호), '축하해요'(오태호, 김미진), 4집의 '그때 그시절'(장필순, 송재호[5] , 박영애[6] ), 5집의 '자아도취'(김미진), 6집의 '두시간 전에',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둔 채'(변진섭, 이승환, 조규만, 박상민)에서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가수는 같은 동아기획 소속의 장필순. 상기된 곡 외에도 코러스로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7]
3집 이후로 인기를 좀 더 얻다가 5집 '자아도취'가 가요톱텐에서 1위까지 하면서 절정기를 찍은 다음 1년 뒤인 1993년 6집을 내고 해체했다. 애당초 6집 앨범의 제목이 'Final Sound'인 걸 보면 해체를 계획하고 음반을 낸 것으로 보인다. 해체 이후 유영석은 5집부터 세션에 참여했던 블랙테트라 출신의 김기형과 화이트를 결성했고, 송경호는 솔로활동 이후 '뉴푸른하늘'이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참고로 솔로활동시 타이틀곡이 유영석 작곡이므로 사이가 나빠서 갈라선 건 아닌듯. 그 노래는 바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뉴푸른하늘은 '판도라의 상자'를 위시한 1집 앨범을 냈으나 그 이후 송경호는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푸른하늘의 6개의 음반 중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음반은 바로 1993년도의 6집이다. 푸른하늘 6집은 푸른하늘의 기존 소프트 록과 화이트의 뮤지컬 음악 사이에서 전환기적인 시대에 있는 음반으로, 기존 노래의 틀을 깬 독백조 노래 '사랑 그대로의 사랑', 오렌지족을 비판한 사회적인 노래 '오렌지 나라의 앨리스' 등 혁신적인 음악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앨범이었다. 이는 기존의 소프트 록 밴드로 푸른하늘을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으며 유영석의 음악 스타일은 푸른하늘 해체 후 화이트로 넘어가면서 뮤지컬 음악으로 고정되었다.
한편 푸른하늘 2집과 3집 사이, 1990년 1월경 '푸른하늘/유영석 Vol.1'이라는 음반이 나왔다. 유영석의 솔로 첫 음반으로, 당시에는 푸른하늘은 연주음악 중심으로, 기존의 푸른하늘 음악은 솔로로 내려는 의도로 낸 음반이지만, 다시 계획이 바뀌었는지 3집이 나왔다. 다른 푸른하늘 음악들과는 달리 각 곡의 러닝타임이 긴 편. 그로 인해 당대에는 완전히 묻혔지만 지금은 찾으려고 해도 없는 음반이 되었다. Tape나 CD는 간혹 보이는데 LP는 진짜 찾기 어렵다. 타이틀곡이었던 '어두운 하늘 아래서'는 푸른하늘 4집에, 연주곡 하나는 유영석의 연주곡 앨범 '유영석 소품집(1992)'에 각각 재수록되었다. 이 앨범에 실린 타이틀곡 '어두운 하늘 아래서'는 원래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것으로, 1년이 더 지난 뒤인 1991년 5월에 푸른하늘 4집에 재수록되었다.
푸른하늘은 밴드의 이름을 '푸른 하늘'이 아닌 '푸른하늘'이라고 함으로써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됐다. 단독으로 떨어져 있는 체언 2개인 '푸른 하늘'은 고유명사가 아니지만 '푸른하늘'은 붙어있는 하나의 단어로서 고유명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푸른하늘의 상징성을 더하는 부분이다.
3. 음반 목록
그리고 각 음반별 노래 목록은 아래와 같다.
4. 관련 문서
[1] 6집의 'Prologue'[2] 앞의 'Prologue'와 1집의 '오직 넌 외로울 뿐'[3] 1집의 '그대'[4] 고향의 봄[5] 가을쯤 되면 라디오에서 종종 나오는 '늦지 않았음을'을 부른 가수다. 전형적인 원 히트 원더. 이 곡 역시 유영석의 작품인데, 송재호가 데뷔하면서 유영석에게 ''꿈에서 본 거리'랑 비슷한 곡으로 써줘요'라고 부탁했다는 얘기가 있다.[6] 유영석이 푸른하늘 이전에 활동하던 록밴드 '비상탈출'의 보컬[7] 그래서인지 장필순 2집 수록곡인 '내 사랑인걸'은 유영석과 듀엣으로 불렀다.[8] 수록곡의 제목은 '슬픈 안녕'인데 다른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9] 유재하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 1.[10] 유재하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 2. 위의 '슬픈 안녕'과 목적은 같은 노래이나, 특정인을 추모한다고 보기에는 성향이 짙지 않다.[11] 빌리 오션이 부른 'Because of You'(1988)의 표절 논란이 있다. [12] 1996년 청소년 드라마 '나'의 남자 주인공인 김수근이 리메이크, 그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13] 유영석이 랩을 시도했던 첫 작품.[14] 김현식을 추모하는 노래로, '형'을 지칭하고 있어 이전의 추모곡들보다 추모 대상이 뚜렷하고 그 성향도 짙다. 한편 유영석이 푸른하늘의 이름으로 정식 6집까지 내놓은 노래 중 러닝타임이 가장 길기도 하다.[15] 당시 인기를 끌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의식한 듯한 노래이나, 큰 실패를 맛보았다.[16] 오렌지족의 실태를 비판한 노래로, 유영석의 노래가 사회적인 성격을 띠게 된 최초의 노래다. 그러나 당시 푸른하늘의 기존 팬들은 이 노래의 발표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17] 사실 그 어느 노래보다도 타이틀곡 같았던 이 노래의 제목이 상징하듯 푸른하늘은 이 앨범을 내고 해체 발표를 했다.[18] 현재 유영석의 부인에게 고백할 때 사용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전형적인 고백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