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레바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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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레바논'''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중세
2.3. 19세기
2.4. 20세기
2.5. 현대
2.5.1. 반론
3. 관련 문서


1. 개요


프랑스레바논의 관계. 레바논은 19세기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독립 과정에서 프랑스가 벌인 추태 때문에 깊은 골이 생긴 알제리와는 달리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의 프랑스에 대한 시선이 매우 좋은 편인데,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마론파 기독교도들을 보호해 온 역사도 있고, 1919년에는 레바논의 독립을 위해서 프랑스에게 신탁통치를 요청했으며, 프랑스의 지도 아래 헌법을 제정한 역사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가 독립의지를 꺾기 위해 저지른 뒷공작과 마론파 기독교도의 착오 때문에 레바논 내전을 포함한 정치 불안정의 원흉이 되기도 했지만.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고대에는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지역으로 교역을 많이 했다. 지금의 프랑스 지역에 거주하던 갈리아인들은 페니키아인, 그리스인들과 교역을 많이 했고 이들 민족들로부터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로마 제국시절부터 갈리아 지역과 레바논 지역은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2.2. 중세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으로 분열되면서 갈리아 지역은 서로마 제국, 레바논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갈리아 지역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프랑크 왕국이 건국되면서 로마 문화를 많이 보존했다. 반면에 레바논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8세기부터 아랍 세력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북아프리카지역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지역을 차지하면서 아랍화가 되었고 달라지게 되었다.

2.3. 19세기


19세기에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에 영향을 주면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시리아레바논 지역을 지배했다. 당시 프랑스는 대영 제국과 함께 중동에 영향을 줬다. 시리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마론파 기독교 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던 지역을 따로 지배했다.[1]

2.4. 20세기


20세기에 레바논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발전을 많이 이뤘다. 20세기 중반이 되자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레바논은 프랑스에서 독립하게 되었다.

2.5. 현대


현대에 들어서면서 레바논은 프랑스와 관계가 매우 좋은 편이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레바논은 프랑스어아랍어와 함께 널리 쓰이고 있고 프랑스 문화가 레바논에도 영향을 많이 주었다. 레바논에서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다보니 레바논인들이 프랑스어 어휘와 섞어서 말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서 아랍어 보호 운동이 일어날 정도이다. 또한, 레바논은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프랑스에도 레바논계 프랑스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레바논은 프랑스와 관계가 깊어서 레바논인들중에도 프랑스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예컨대, 카를로스 곤 등).
경제적으로도 레바논은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도 레바논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17년 11월 18일에 레바논의 사드 하라리 총리가 프랑스를 방문하여 프랑스 엘리제 궁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을 하였다.#
2019년 시위로 인해 경제원조를 프랑스 중심으로 요청했다.#
2020년 8월초에 레바논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자 마크롱 대통령은 미셸 야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위로를 하면서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레바논을 방문했을 때, 레바논 시민들이 크게 환대했다. 그리고 레바논 시민들은 자국의 정부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 다시 레바논을 통치해달라고 하고있다.
8월 31일에 마크롱 대통령이 레바논을 한 달 만에 두 번째로 방문했다.# 그리고 레바논 정부의 개혁이 없으면 국제사회의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9월 28일에 레바논 정부 구성이 무산되자 마크롱 대통령은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2.5.1. 반론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의 뉴스공장 인터뷰에(###) 따르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레바논 방문은 식민주의 야수를 여지없이 세계에 드러낸 일이다. 오늘날 레바논에서 종파 간 부족 간 혼란이 일어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진 근원적인 이유는 프랑스 식민지배 영향이라는 것.
프랑스가 레바논 식민지배 20년을 끝내고, 레바논을 떠나면서도 계속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종파별 정치 구도를 만들었다.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 국방부 장관은 드루즈파가 맡도록 헌법에 명시했다. 어느 종파가 다수를 차지할 수 없어 헌법을 영원히 개정 할 수 없다.
20세기 식민 분할통치(Divided and Control)가 21세기에도 영향을 미쳐 레바논을 혼란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혼란을 틈타, 프랑스가 인도주의라는 허울을 앞세워 레바논에 개입한 것이었다.
헤즈볼라가 정권을 잡은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은 프랑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친 프랑스 정권을 세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언론에선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이후 급격한 정세불안과 반정부 운동이 벌어지면서 그중 일부 레바논 국민들이 프랑스의 통치를 다시 원한다고 전하나, 기독교도이거나 프랑스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소수 시민의 주장이라고 한다. 대다수 국민들은 헤즈볼라의 지배권인 베이루트에서 터진 초대형사고를 통해 집권 여당 헤즈볼라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졌고, 오랜 분열과 분쟁에 지친만큼 레바논도 시민의 아픔을 이해하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정부를 세우길 바란다. 이것이 지금 계속 커지고 있는 시위의 본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폭발사고의 피해 수습과 국가 재건과정에서 외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려운데, 이는 외세가 개입하기 딱 좋은 조건이고 특히나 지금은 중동에 대한 이해관계가 역전되면서 미국이 중동에서 손 떼려는 움직임을 틈타 프랑스가 다시 들어올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프랑스의 개입은 피할수 없는 상황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내놓았다.

3. 관련 문서


[1] 이후,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의 식민지배 시절부터 달라지게 되었고 마론파 신자가 다수를 차지하던 지역은 레바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