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더부르

 



'''프랑크 더부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네덜란드'''}}}
{{{-2 39대



'''클럽'''
'''아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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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르'''}}}
{{{-2 76대



'''크리스탈 팰리스 FC 역대 감독'''
샘 알라다이스
(2016~2017)

'''프랑크 더부르
(2017)
'''

로이 호지슨
(2017~ )

'''네덜란드 축구 국가 대표팀 역대 주장'''
다니 블린트
(?~1997)

'''프랑크 더부르
(1997~2004)
'''

에드빈 판데르사르
(2005~2008)

'''프랑크 더부르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프랑크 더부르의 기타 정보'''


'''Nederlands nationaal voetbalelftal '''
<colbgcolor=#ff6600> ''' 이름 '''
'''프랑크 더부르'''
'''Frank de Boer'''[1][2]
''' 본명 '''
프란시스퀴스 더부르
Franciscus de Boer
''' 출생 '''
1970년 5월 15일 (54세) /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주 호른시
''' 국적 '''
네덜란드
''' 체격 '''
180 cm[3] / 90 kg[4]
''' 직업 '''
축구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colbgcolor=#ff6600> ''' 선수 '''
AFC 아약스 (1984~1988 / 유스)
'''AFC 아약스 (1988~1999)'''
FC 바르셀로나 (1999~2003)
갈라타사라이 SK (2003~2004)
레인저스 FC (2004)
알 라얀 (2004~2005)
알 샤말 (2005~2006)
''' 감독 '''
AFC 아약스 유스(2007~2010 / 코치)
네덜란드 대표팀 (2008~2010 / 수석코치)
'''AFC 아약스 (2010~2016)'''
인테르나치오날레 (2016)
크리스탈 팰리스 FC (2017)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FC (2019~2020)
네덜란드 대표팀 (2020~ )
''' 국가대표 '''
112경기 13골 (네덜란드 / 1990~2004)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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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6600> ''' 가족 '''
동생 로날트 더부르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2.2. 국가대표
2.3. 플레이 스타일
3. 지도자 경력
4. 기록
4.1. 대회 기록
4.1.1. 선수
4.1.2. 감독
4.2. 개인 수상
4.2.1. 선수
4.2.2. 감독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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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2020년부터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1990년대 초~중반 루이 판할 감독이 이끄는 AFC 아약스의 일원[5]으로 에레디비시는 물론이고 유럽 클럽 대항전까지 석권한 네덜란드의 레전드로 프랑크 더부르는 우수한 수비수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패스 능력과 프리킥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A매치 112경기 출장으로 네덜란드 역사상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고[6],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로 기록되었지만 에드빈 판데르사르에 의해 기록이 갱신되었다.
은퇴 후 베르트 판마르베이크네덜란드 대표팀에서 수석코치를 맡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자국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데 공헌했다. 감독으로서는 AFC 아약스 감독 때 2010년부터 4시즌 연속 에레디비시를 제패하는 기염을 토해내며 명장 반열에까지 올랐으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크리스탈 팰리스 FC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시즌 도중 경질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가족으로 아약스와 레인저스,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 팀에서 같이 활동한 쌍둥이 동생 로날트 더부르가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1984년 14살의 나이로 아약스 유소년팀에 입단한 프랑크 더부르는 1988년 18살에 1군으로 콜업되어 데뷔전을 치룬다. 그의 원래 포지션은 레프트 백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센터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하였다. 그 후 타 팀에 임대없이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면서 1990년에는 A매치 데뷔전까지 치루게 된다. 국가대표팀 출전과 아약스에서 리그 우승에 공헌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던 프랑크 더부르는 1991년 루이 판할 감독이 임명된 이후 데니스 베르캄프,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빈 판데르사르, 에드가 다비즈, 로날트 더부르 등과 함께 팀을 이끌며 3차례의 리그 우승과 1991-92 시즌 UEFA CUP 우승, 1994-95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아약스의 돌풍을 이끈다.
1994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하며 승승장구하던 프랑크 더부르는 1994-95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 직후 팀을 떠난 루이 판할 감독, 데니스 베르흐캄프,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가 다비즈 등과는 달리 에드빈 판데르사르, 동생 로날트 더부르와 함께 구단에 잔류하였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직후인 1998-99 시즌 직전 프랑크 더부르는 동생과 함께 6년 연장계약을 체결하면서 아약스에 금전적으로 이익이 있는 오퍼가 두명의 형제 중 한 명에게 올경우 다른 한명은 잔류한다는 조건으로 연장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아약스 구단은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다시 우승할수 있도록 계약 조건을 무시하고 두 형제를 팀에 잔류시키는것을 주주들과 합의하면서 더부르 형제와 아약스 구단은 충돌하게 된다. 더부르 형제는 법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 소송을 걸었고 결국 승소하여 두 형제는 이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크 더부르는 1998-99 시즌 윈터 브레이크 기간에 2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동생인 로날드 더부르와 함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아약스 시절 감독이었던 루이 판할이 이끌고 있었고 루이 판 할과 FC 바르셀로나 구단은 일종의 네덜란드 커넥션 구축의 일환으로 으로 윈스턴 보가르데,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필립 코쿠, 마이클 레이저허르, 바우데베인 젠던같은 네덜란드 대표 선수들을 영입하였고 계속 영입중이었다.
영입된 직후 1998-99 시즌 라리가 타이틀을 차지하였지만 그 직후 네덜란드 커넥션의 주축인 루이 판할 감독이 지역 미디어와 구단, 그리고 자신과 불화를 겪는 선수와의 갈등으로 인해 바로 사임하였다. 그 이후 바르셀로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계속 감독 교체를 하는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바르셀로나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 와중에 동생인 로날드 더부르는 2000-01시즌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레인저스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금지 약물 복용건[7]으로 인해 2001년 6월에 1년 출장정지가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고의가 아니었다"라는 해명이 받아들여져 1년에서 11주로 줄어들었다.#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 이후 루이 판 할은 2002-03 시즌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다시 부임하여 또다시 반 할과 재회하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 바르셀로나는 2002-0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본선에서 6경기 전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한것과는 달리 리그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막장 행태를 보이면서도 제대로 해법조차 내놓지 못하는 안습한 길을 걸고 있었다. 결국 중간에 루이 판 할감독이 경질되고 후임인 안티치 감독이 선임돼서야 겨우 리그 6위를 기록하며 체면치레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의 수비를 지키고 있었던 프랑크 더부르였지만 2003-04 시즌 감독으로 부임한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플랜에 포함되어있지 않았고 결국 자유계약으로 터키의 갈라타사라이 SK로 이적한다.
2003-04 시즌 15경기 출전하며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었지만 결국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스코틀랜드의 글레스고 레인저스로 이적하여 동생과 재회한다. 2003-04 시즌 반 시즌만 활동한 프랑크 더부르는 동생과 함께 2004년 카타르의 알라얀으로 이적하였고 2005년 까지 활동한 뒤 2006년 4월, 36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1990년 9월 26일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였다.
이후 꾸준히 활약을 하던 프랑크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쌍둥이 동생 로날트와 함께 대표로 발탁되었고 주장 완장을 차게 되었다. 8강에서는 베르흐캄프에게 환상적인 어시스트를 제공하며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하면서 네덜란드를 4강까지 진출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다. 4강에서는 브라질과 승부차기까지 가면서 프랑크 더부르는 1번 키커로 나서서 골을 성공시켰지만 필립 코쿠로날트 더부르가 실축을 하는 바람에 결국 네덜란드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image]
유로 2000에서도 승승장구하여[8] 4강전 이탈리아와 만나게 된다. 이 경기에서 프랑크는 전반전 파트릭 클라위버르트가 얻은 페널티 킥을 실축하였으며 0-0으로 승부차기까지 가게되어 또 다시 1번 키커로 나섰으나 프랑크는 실축을 하면서 결국 네덜란드가 탈락하게 된다. 프랑크는 '페널티 킥의 악몽'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루이 판할과 아약스-바르셀로나에 이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3번째 만나게 되지만 전술한 도핑 적발로 인하여 3경기에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팀이 탈락하면서 32살이라는 수비수로서는 절정인 나이에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도 유로 2004까지 주장으로서 출전하였다. 더부르는 스웨덴과의 8강전 경기에서 발목부상을 입어 35분에 교체되었다.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이렇게 끝났다.

2.3. 플레이 스타일


아약스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육성된 선수답게 날카로운 시야와 정확한 수비 위치선정은 물론이고 상대방으로 부터 공을 빼앗은 뒤 최전방에 있는 스트라이커를 향해 한번에 롱패스로 연결을 하여 득점으로 연결시킨다던가 가끔 오버래핑도 하여 공격의 활로를 여는 등 빌드업에도 능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로날드 쿠만보다는 못하지만 프리킥에 의한 득점에도 상당한 능력을 갖춘 선수.

3. 지도자 경력


은퇴 선언 후 1년 뒤인 2007년 친정팀인 AFC 아약스의 유소년 팀 코치로 임명된다. 그리고 2008년에는 필립 코쿠와 함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어 시즌 기간에는 아약스의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A매치 기간에는 대표팀에서 감독인 베르트 판마르베이크와 함께 대표선수들을 지도하였다.
유소년 팀 코치로서 3년,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2년동안 지도자 수업을 받은 프랑크 더부르는 2010년 12월 중도 사임한 마틴 욜의 후임으로 윈터 브레이크 기간이 끝날 때 까지 AFC 아약스의 임시감독으로 임명된다. 부임 첫 경기인 챔피언스 리그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데뷔전을 화려하게 치뤘고 팀을 재정비 하자 아약스 보드진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임시 감독직을 연장시켰다. 프랑크 더부르는 임시 감독 신분으로 승승장구하며 결국 2010-11 에레디비시에 타이틀을 거머쥔다. 특히 2010-11시즌 리그 우승은 리그 마지막 경기에 결정이 되었고 마지막 경기를 치루는 날이 프랑크 더부르의 41번째 생일이었다. 생일에 상대 팀을 누르고 우승을 확정 지은 것.
리그 우승 확정 후 프랑크 더부르는 정식감독으로 임명되었고 그 뒤 11-12, 12-13, 13-14, 시즌을 연속으로 우승하여 리그 4연패와 두 차례의 10-11, 13-14 시즌 KVNP 컵 준우승을 기록한다. 다만, 대외컵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보여줬는데 10-11 시즌에는 유로파 리그 16강을, 11-12, 12-13, 13-14, 14-15 시즌에는 4시즌 연속 리그 우승자격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였으나 4시즌 연속 조 3위로 유로파 리그 강등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11-12, 12-13, 13-14 시즌에는 3시즌 연속 유로파 리그 32강에 머물렀고 14-15 시즌에는 유로파 리그 16강까지 올라갔다. 14-15 시즌 리그 우승은 PSV에 밀려 다섯 시즌 연속 우승에는 실패했다.
그렇지만 리그에서의 괄목할만한 성과로 2012년에는 리버풀, 2014년에는 토튼햄의 구애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아약스에 잔류하였다. 2015년 여름, 브랜던 로저스 감독의 후임으로 리버풀이 노리고 있지만, 팬들은 위르겐 클롭카를로 안첼로티를 놔두고 웬 데부어냐라는 반응이다.
2015-16 시즌 3월 10일 현재 20승 4무 2패로 리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선두 PSV와은 승점 1점차. KVNP컵에선 32강전 페예노르트에게 0:1 패배로 탈락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선 전 시즌 리그 준우승 자격으로 2차예선에 참가했으나 오스트리아의 리피드 빈에게 패배하여 탈락하였고 그 후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를 통해 유로파 리그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같은 조에 속한 노르웨이의 몰데와 터키의 페네바르체에 밀려 조3위로 32강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2016년 5월 12일 아약스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좋은 성과를 내오다가 두 시즌 연속으로 실패를 하자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모양이다. 차기 행선지로는 에버튼이나 발렌시아행이 거론되고 있다. 발렌시아에는 파코 아예스타란 임시감독이 정식감독으로 계약을 맺고, 에버튼에는 전 사우스햄튼 감독 로날드 쿠만이 부임하자, 쿠만 감독이 떠나면서 남긴 사우스햄튼 감독직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프랑스인인 클로드 퓌엘이 감독이 되면서 결국 말짱 헛일이 되었다. 최근에는 인테르에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상호해지로 하차하면서 그의 후임자로 물망에 올랐고 8월 9일(한국시각) 인터밀란의 구단 공식 트위터와 홈페이지를 통해 “더부르가 우리 구단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됐다”라며 더부르 선임을 알렸다. 그러나 인테르 부임 후 4승 2무 5패 리그 12위, 유로파 리그에서는 조별 리그 1승 2패 최하위로 부진한 끝에 결국 11월 1일 경질되었다.
[image]
2017년 6월 26일(현지 시간) 크리스탈 팰리스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같은해 9월 11일(현지 시간) 개막후 무득점 4연패를 기록하면서 감독 취임 77일만에 경질되었다. '''EPL 역사상 최단 기간 경질 기록'''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인테르 시절에 이어 또 다시 시즌 중 경질되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2019 시즌부터 헤라르도 마르티노의 후임으로 메이저 리그 사커애틀랜타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으로 선임됐다.[9]
2019 시즌 애틀란타 유나이티드를 동부지구 2위로 이끌며 2020 북중미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지만 동부지구 결승전에서 토론토 FC에게 1:2로 패하여 최종결승전 진출에는 실패하며 애틀란타 유나이티드의 MLS 2연패 달성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미국의 FA컵 격인 US OEPN CUP 우승에 성공했으며 2018 미국과 멕시코의 리그 우승팀끼리 만나는 2019 Campeones cup에서 멕시코 우승팀 클럽 아메리카를 3:2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2020년 시즌은 COVID-19로 인해 단 2경기만 치른 상태에서 리그가 중단되는 일이 일어났고, 결국 7월 리그 재개 직전에 구단과의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2020년 9월, 바르셀로나로 떠난 로날드 쿠만 감독을 이어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유로 2020까지이며 성과에 따라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지휘봉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데뷔전에서 비록 친선경기였지만 멕시코에게 0대1로 패하며 불안한 시작을 알렸으며 이후 첫 승을 신고하지 못하다가 보스니아를 상대로 첫 승을 거뒀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1.1. 선수



4.1.2. 감독



4.2. 개인 수상



4.2.1. 선수



4.2.2. 감독


  • Amsterdamse coach van het jaar (De Fanny): 2012
  • 리누스 미헬스 상[10]: 2013, 2014
  • JFK's Greatest Man Award: 2013

5. 둘러보기



[1] 네덜란드어 발음: /ˈfrɑŋg də ˈbuːr/.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한국에서는 피파온라인의 영향으로 데부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 독일 등 고전 중계가들은 데보어, 드보어로 불렀었다.[3] 쌍둥이 로날트 보다 2cm 가량 작음 #[4] 선수 76 kg 감독 90 kg[5] 이 때 주축으로는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데니스 베르캄프, 로날트 더부르, 에드가 다비즈,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빈 판데르사르, 마이클 레이저허르가 있다.[6] 그 전 최다 기록은 아론 빈터[7] 약물 검사 결과 기준치의 4.3배에 달하는 근육강화제 `난드롤론'이 검출되었다.[8] 조 예선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유로대회 역사에 남을 만한 멋진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2010년대 축구팬들에겐 별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올드팬들에겐 'S자 프리킥' 으로 유명한 골[9] 아약스 암스테르담의 기술이사로 재직중인 마르크 오버르마르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감독직을 제의받은 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심지어 MLS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던 상황이었다) 오베르마스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는데 오베르마스가 "창단된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리그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잠재력이 상당한 팀"이라고 말한게 그로 하여금 감독직을 수락하게된 배경이 되었다고.[10] 네덜란드 올해의 감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