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오버르마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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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당대 제일의 스피드를 자랑했던 윙어[2] 이며 플라잉 더치맨이라는 별명의 대중화를 일궈냈던 선수''''''"포기하는 순간 그 경기는 시합 종료이다."'''
2. 클럽
2.1. 초창기
이글스에서 데뷔한 오베르마스는 빌럼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다.
2.1.1. AFC 아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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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마스는 1992년 아약스에 입단한다. 오베르마스는 헤렌벤과 KNVB컵 결승전에서 2골을 넣어 6:2로 대승을 거두며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입단 첫 시즌에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어 더블을 달성하였다
1993년 오베르마스는 에드가 다비즈, 에드빈 판데르사르, 클라렌스 세도르프등과 팀을 이끌며 리그우승을 안기고 이듬해에도 리그우승을 차지하고 챔스에서 4강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격침시키고 당대 최강의 팀이였던 밀란 제너레이션을 꺾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더블을 달성한다.[3] 오베르마스는 아약스를 이끌고 1995년 리그우승을 달성하고 1995-1996 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유벤투스 FC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1997년 아약스를 떠나기로 맘먹는다.
2.2. 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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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마스의 전성기'''
아약스에서의 대단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오베르마스는 그가 입었던 장기 부상으로 인해 다른 빅클럽과의 이적루머가 끊긴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를 눈여겨보던 아르센 벵거의 부름을 받아 에마뉘엘 프티와 함께 아스날에 입단하게 된다. 그 해 리그 12골을 넣었으며 아스날은 영원한 맞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모두 승리하며 승점 1점 차이로 우승한다. FA컵 결승전에선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선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오베르마스는 그 이후에도 주전 윙어로 출전하여 1999-2000 UEFA컵 결승전에서 갈라타사라이 SK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지만 역대급 임팩트를 남긴 오베르마스는 훗날 팬들이 뽑은 최고의 선수 12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2.3. 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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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마스의 흑역사'''
2000년 오베르마스는 함께 아스날에 입단했던 동료인 에마뉘엘 프티와 함께 합계 32M유로라는 거액으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적 후, 오베르마스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활약을 펼치는 일이 드물었고 아쉽게도 스피드도 점점 감소하게 된다.
측면의 빈 공간을 빠르게 찢어버리는 게 장점이던 공격수가 스피드를 잃자, 포지션도 초기의 왼쪽 윙포워드가 아닌 레프트 풀백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2004년에 은퇴했다. 이후 2008년에 친정팀 고 어헤드 이글스에 깜짝 복귀하여 1년을 뛰고 다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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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94 미국 월드컵 예선 7경기에 출장했으며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도 선발되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8강전까지 전 경기에 출장하여 빼어난 플레이를 펼치며 대회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부상으로 UEFA 유로 1996에는 출장하지 못하게 된다.
부상에서 회복한 후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5경기에 출장하였고 월드컵 본선에서는 한국과의 경기[4] 에서 필립 코쿠에 이어 두 번째 골을 기록하였으며[5] 팀의 월드컵 4강행에 일조했다.
UEFA 유로 2000을 앞두고 다시 부상을 당하여 대회 출전이 좌절될 뻔 했으나 다행히도 대회 직전에 회복, 체코와의 경기에서 교체출장하여 팀의 1대0승리에 기여[6] 하고 유고와의 경기에서는 두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대회내내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그는 4강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파올로 말디니에 의해... 이하생략.[7]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네덜란드가 지역예선에서 탈락하여 출전이 좌절되었고 그후 1년여간을 부상으로 인하여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였다가 UEFA 유로 2004에 출장하여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전에서 패배한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A매치 최종기록은 86경기 출장에 17골.
4. 플레이 스타일
무시무시한 속력을 자랑하는 오베르마스는 당대 최고의 스피드 윙어였으며[8] 슈팅능력과 크로스능력도 뛰어났다.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안쪽으로 파고들면 슈팅, 측면으로 파고들면 크로스를 올리는 형식의 공격으로 최근의 선수로 비유하자면 아르연 로번의 직속선배인 셈.
그러나 그의 빠른 스피드는 잦은 부상을 가져왔고 후에 그의 몰락을 부르게 된다.
스피드가 얼마나 빨랐냐면 전성기가 지나고 참가한 UEFA 유로 2004 때 포르투갈과의 4강전 경기에서 직선으로 뛰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상대로 약간 옆쪽에서 출발했음에도 스피드로 이겨서 볼을 따내는 충공깽스러운 장면이 있다. [9] 그 외에도 치달이나 동료의 패스를 받을 때 수비수의 몇 미터 뒤에서 출발했음에도 수비수보다 앞서 볼을 따내는 장면을 자주 보여주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AFC 아약스 (1992~1997)
- 에레디비시: 1993-94, 1994-95, 1995-96
- KNVB컵: 1992-93
- 더치 슈퍼컵: 1993
- UEFA 챔피언스 리그: 1994-95
- 인터컨티넨탈 컵: 1995
- 아스날 FC (1997~2000)
- 프리미어 리그: 1997-98
- FA컵: 1997-98
- FA 커뮤니티 실드: 1998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1993~2004)
5.2. 개인 수상
- 네덜란드 축구 올해의 재능: 1992
-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선수: 1993
- FIFA 월드컵 최우수 영플레이어상: 1994
- 발롱도르 8위: 1995
- AFC 아약스 올해의 선수: 1996
6. 기타
엄청 유명한 스피드 윙어이며 '플라잉 더치맨'이라는 별명을 대중화 시킨 선수지만 항목은 2015년 7월 18일에 만들어져 늦은 감이 있다.
데니스 베르캄프가 인터 밀란에 있던 시절 그를 영입하기 위해 나선 아스날에게 베르캄프는 자신의 이적 조건으로 오베르마스의 영입을 요구했다고 한다.
오베르마스의 이적은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이적에도 약간의 영향을 미쳤다. 원래 오베르마스의 이적시 부대조항으로 아스날 FC와 바르셀로나와의 친선경기(이익은 아스널이 모두 가져감)가 있었는데 바르셀로나는 이 친선경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르센 벵거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바르셀로나 유스에서 빼갔고 이로 인해 바르셀로나는 세스크에 대한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펄펄 뛴 바가 있다. 이 때 아스널 측은 바르셀로나가 오베르마스 이적 때 제시한 친선경기 조항을 아직까지 수행하지 않고 있음을 문제삼았고, 바르셀로나와의 협상 끝에 보상금 문제를 상호간 친선경기 조항 삭제로 퉁치면서 마무리했다.
성(姓)인 오베르마스를 영어로 풀이하면 3월의 끝인데, 그의 생일도 3월 29일이다. 참으로 재밌는 이름이다.
선수 시절 나이키 머큐리얼을 신고 뛰었다.
[1] 접두어 over-는 오버르로 표기한다.[2] 100m를 10.55초에 주파했다. [3] 사실 이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약스는 밀란을 조별리그에서 2번 만났는데 2번 다 2:0으로 승리를 거두어 조별리그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4] 한국이 '''5대0으로 진''' 그 경기 맞다.[5] 본인 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골'''이다.[6] 오베르마스가 올린 크로스를 로날트 더부르가 받으려는 찰나 체코 수비수가 반칙을 범하여 페널티킥을 허용하였고 결국 페널티 킥을 골로 연결시키며 네덜란드가 승리했다.[7] [8] 오베르마스는 스피드가 당대에서 뿐만 아니라 역대로 따져도 순위권을 다툴 정도로 빠르며, 통계에 따르면 100m 기록이 10.4초 라고 한다. 가장 빠른 선수는 클라우디오 카니자로 100m 기록이 10.2초였다.[9] 물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빠르기로 유명하지만 역대급으로 빠른 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