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만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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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부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UC 삼프도리아에서 스타급 선수로서 엄청난 실력을 보이며 구단에 우승컵을 안겨줬고, 은퇴 이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맨체스터 시티 FC 등에서 감독 생활을 하며 여러 대회에서 우승했다. 특히 44년만에 리그 우승컵을 안겨주는 등 맨시티에서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현 시점(2018년)에서 일류 축구클럽을 향해 가고 있는 맨시티와 팬들의 입장에서는 구단주 만수르와 더불어 맨시티가 빅클럽으로 성장하는데 기틀을 다진 중요한 존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들 안드레아 만치니도 자신처럼 축구를 하고 있으나 그다지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 못 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고 있다. 인테르, 맨시티, 이탈리아 대표팀까지 함께하고 있는 악동 마리오 발로텔리와는 돈독한 사제관계를 맺고 있으며, 발로텔리에게 그의 존재는 양아버지급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 선수 생활
17세의 나이로 볼로냐에서 30경기 9골을 넣으며 데뷔했으며, 이후 삼프도리아의 에이스로서 삼프도리아의 유일한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단지 리그 우승만이 아닌 삼프도리아의 전성기 그 자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맨시티에는 만치니 선수시절보다 더 뛰어난 선수는 없어요. 그만큼 대단한 선수였죠![3]
'''- SBS Sports 축구 해설위원 장지현
삼프도리아 팬들이 만치니를 일컬어 신이라고도 할 만한 게, '''만치니가 삼프도리아에서 경험한 모든 우승''',
세리에 A - 1회 (90-91)
코파 이탈리아 - 4회 (84-85, 87-88, 88-89, 93-94)
UEFA컵 위너스 컵 - 1회 (89-90)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1회 (90-91)
'''즉 이 모든 우승이 곧 삼프도리아가 지금까지 기록한 우승의 수와 동일하다.''' 나폴리에 마라도나가 있었다면 삼프도리아는 만치니가 있었다. 게다가 삼프도리아가 경험해 본 가장 높은 챔피언스리그 무대인 결승전까지[6] 진출시켰으며, 리그 최다 출장기록과 최다득점 기록까지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삼프도리아의 신이자 모든 것이 만치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이기도 했던 지안루카 비알리와 짝을 맞추어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니만큼 엄청난 기대를 받고 스타팅 멤버로 출전했으나, 첫경기 두번째 경기 모두 후반에 자신의 교체로 들어간 당시로선 거의 무명급(?)이었던 살바토레 스킬라치가 골을 넣는 바람에 이후로 계속 벤치신세...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7]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이탈리아 축구 국가 대표팀에서 뛴 경력이 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만큼 빛나지 못해 총 36경기 출장 4골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월드컵 출전기록은 1990년 월드컵이 전부이다.[8]
97시즌 이후 팀의 감독이던 에릭손 감독을 따라 라치오로 이적했으며 라치오에서의 3시즌 동안 스쿠데토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컵 위너스 컵 우승 1회를 추가하며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으며, 말년에는 프리미어 리그의 레스터시티로 이적했으나 몇경기 뛰지 않고 2001년 은퇴했다.
요약하면 클럽에서의 화려함에 비해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아쉬웠던 선수생활.
선수 시절은 이탈리아 사람답게 성깔도 드럽기로 유명했다고 한다.[9]
성격과 관련된 일화로 1995년 11월 경기에서 자신이 파울을 당했고 페널티킥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만치니는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자 성질을 못 이기고 자신의 주장완장을 땅바닥으로 던졌고, 당시 감독이었던 에릭손 감독은 만치니에게 욕설을 날렸다. 그가 다시 필드로 돌아온 후 그놈의 성질을 못 이기고 곧바로 심각한 파울로 퇴장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6주 동안 출전할 수 없는 중징계를 받았다.
보이첵 슈체스니와도 기묘한 인연이 있는데 역시나 골리였던 슈체스니의 부친이 뛰던 클럽과 유럽대회에서 삼프도리아가 만났는데 슈체스니의 부친이 만치니에게 주먹을 날리고 퇴장당했었다고.
이러한 권위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과 비순응적인 모습들이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이 된 이후로는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 아니 유해진게 아니고 '''아드리아누'''나 마리오 발로텔리같은 멘탈갑들을 관용으로 품어주는 보살로 승화했다.
워낙 본좌였던 선수시절 때문인지 감독이 된 지금도 아웃된 볼을 처리하는 트래핑이 일품이다. 수트에 구두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현역보다 더 뛰어난 컨트롤 능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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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테르 감독으로 부임한 2014/15 시즌 제노아와의 세리에 A 경기에서 마르코 안드레올리 선수가 찬 공에 적중하여 발라당 넘어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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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이탈리안 판타지스타 타입의 공격수. 센터 포워드와 공격형 미드필더 롤에서 뛸 수 있었으며 넓은 시야와 창의성, 정확한 스루패스 능력을 갖춘 선수였다. 만치니는 발리슈팅 능력과 환상적인 볼 컨트롤과 드리블을 자랑하며, 뛰어난 전술적인 능력으로 플레이메이킹을 했으며, 스스로 그 마무리를 지을 능력이 있던 선수였다. 거기에 델 피에로, 로베르토 바조등의 다른 판타지스타들과는 다르게 신체적으로 강인했으며, 체력과 수비가담 역시 다른 판타지스타들에 비해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축구지능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피치 위 다른 선수들을 지휘하며 때로는 더 강한 요구를 하던 팀의 리더였다. 때로는 이 성향이 지나쳐서 심판이나 다른 선수들과 언쟁을 하곤 하던 다혈질의 선수였다.
4. 감독 생활
4.1. 초창기 ~ 인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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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생활은 2001년 마감했으며, 이후 본격적인 지도자 행보를 하기 시작했다. 2001년 라치오에서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의 수석코치로 일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으며, 이후 일년만에 피오렌티나 감독직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탈바꿈했다. 피오렌티나와 라치오 감독을 맡으면서 코파 이탈리아 대회를 우승하는 등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고, 2004년 인테르 밀라노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인테르 밀라노 감독직을 맡으면서,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하는 등 꽤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챔피언스 리그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리그 내에서 성적은 꽤 괜찮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8강 이상을 진출하지 못했던 것.
결국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바랐던 모라티 구단주의 뜻에 따라, 만치니 감독은 2008년 인터밀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리버풀전 패배 이후 사임의사를 비치면서 시즌 종료후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아드리아누, 루이스 피구등과의 갈등도 심했다. 이후 첼시나 중동 클럽의 러브콜을 받다가 2009년 성적 부진으로 인해 마크 휴즈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에서 경질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발탁되었다. 공교롭게도 만치니의 후임으로 임명된 조세 무리뉴는 만치니가 4 시즌 동안, 꿈도 꾸지 못 했던 챔스 우승을 '''단 2시즌만에''' 이뤄냈다. 그것도 트레블로!
4.2. 맨체스터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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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시즌 12월 19일, 무승부만 계속하다 짤린 마크 휴즈 감독의 뒤를 이어 맨시티의 새로운 감독이 되었다. 계약 기간은 3년 반. 데뷔전인 스토크 시티 FC와의 홈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었고, 그리고 이 경기에서 만치니 감독의 머플러 패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만치니가 새 감독이 되자마자 맨시티는 4연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다. 고무적인 것은 휴즈 재임 시절 리그 17경기에서 무려 27실점이나 허용했으나, 만치니가 오자마자 4경기 1실점. 그러나 에버튼 원정에서 0:2로 패하며 무패행진이 깨졌다. 그리고 칼링컵 1차전 홈경기에서 맨유에 2:1 역전승을 거두었지만 2차전 연장전에 들어갈 찰나에 추가시간 웨인 루니에게 골을 먹으며 1:3으로 패배,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FA컵 16강에서 스토크 시티 FC에 재경기 끝에 패하며 FA컵마저 탈락, 사실상 우승 트로피 획득에 실패하게 되었다. 휴즈가 경질 전까지 2패를 당한 반면, 만치니는 부임한 지 2개월밖에 안됐는데 4패. 이로 인해 만치니는 영국 언론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맨시티의 남은 목표는 4위권 진입.
겨울 이적시장에서 호비뉴와 벤자니, 블라디미르 바이스를 각각 산토스 FC, 선덜랜드 AFC, 볼튼 원더러스 FC에 임대보내고, 아담 존슨과 파트리크 비에이라를 영입하였다.
그러나 맨시티는 번번히 토트넘 홋스퍼 FC이나 아스톤 빌라 FC, 그리고 리버풀 FC과의 경쟁에서 좀처럼 도망가는데 실패했다. 이를테면 첼시 FC 원정에서 '''4:2'''로 두들겨 패며 첼시의 홈 무패를 깨뜨리기도 했지만, 헐 시티 AFC나 스토크 시티 FC, 선더랜드 AFC 등 중하위권 팀에 번번히 발목잡혔다. 3월 25일 에버튼 FC과의 홈경기에서 0:2로 패하며 리그에서 첫 홈 패배를 당했다. 이 경기에서 만치니는 에버튼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과 몸싸움을 벌이며 퇴장을 당했다. 에버튼에 패한 뒤 맨시티는 3연승에 14골을 몰아넣으며 4위 진입에 무난하게 골인하는 듯 했다. 35라운드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종료 직전 인저리 타임에 폴 스콜스에게 버저비터 골을 실점하며 상승세가 끊겼다. 그리고 같은 날 첼시 FC를 꺾은 토트넘 홋스퍼 FC에 밀려 5위로 내려갔다. 맨시티의 챔스 진출 여부는 5월 5일, 4위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 결판나게 되었는데 이 경기에서 피터 크라우치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챔스 진출이 좌절되었다. 챔스 진출이 좌절되었음에도 맨시티의 칼 무바라크 구단주는 만치니를 신임하였다.
2010-11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야야 투레, 다비드 실바, 제롬 보아텡, 마리오 발로텔리,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제임스 밀너를 폭풍 영입하였다. 그러나 맨시티는 전반기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이며 만치니의 경질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12월과 1월 상승세를 타며 하루 뿐이지만 리그 선두에 올라서기도 했으며 EPL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다. 만치니는 EPL 12월의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에딘 제코까지 데려왔다. 그러나 두 번의 버밍엄 원정, 아스톤 빌라 FC에 0:1 충격패를 당하고, 버밍엄 시티 FC에 2:2 무승부에 그치며 리그 우승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7라운드 웨인 루니에게 오버헤드킥을 허용하며 사실상 리그 우승은 어려워졌다. 풀럼과의 홈경기에서도 1:1로 비기며 승점을 까먹었고, 30라운드 첼시 원정에서 졸전 끝에 0:2로 패하며 4위로 내려앉았다. 맨시티는 우승권에서 챔스권을 사수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게다가 유로파 리그에서도 16강에서 디나모 키예프에 일격을 당하며 탈락. 남은 우승트로피는 FA컵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2010년 리그 5위에 머물 때 다음 잔류 조건이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챔스 진출에 또다시 실패할 경우 만치니는 모가지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맨시티는 5월 10일, 1년 전 챔스 좌절을 맛봤던 장소에서 토트넘에 이번에는 크라우치의 자책골로 1:0으로 승리하면서 완벽하게 복수했고, 마침내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만치니는 다음 시즌에도 감독 유지. 그리고 FA컵도 준결승에서 맨유를, 결승에서 스토크시티를 꺾고 우승하면서 팀의 35년 우승 무관을 끊어냈다. 여세를 몰아 아스날의 부진을 틈타 잔여 경기도 모두 승리하며 2위 첼시와 승점이 같은 3위로 시즌을 마감.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를 거치지 않고 직행에 성공했다.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축구로 정평이 나 있다. 수비와 피지컬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래서 수비진의 호흡과 조직력을 끌어올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편. 실제로 만치니 감독 부임 이후 맨시티는 리그에서 시즌 최소 실점팀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같은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유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과 스타일이 아주 대조적이다. 윙어 덕후 퍼거슨은 사이드 라인을 기본으로 하는 빠르고 스마트한 축구를 선호하는 반면에 만치니는 피지컬과 테크닉 좋은 미드필더들로 중앙을 장악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한때는 중앙 장악에 신경쓰다가 원톱만 선호한다고 까이기도 했는데 맨시티에 좋은 선수들이 들어온 이후 투톱도 곧잘 쓴다. 그러나 전술에 유연성이 없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되는데, 이러한 단점 때문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곧잘 성적이 좋지 못했다.
맨체스터 시티에 워낙 악동 같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렇지, 선수 장악력도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무리뉴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 그렇지만 그 마리오 발로텔리가 믿고 따르는 감독이라고 하니, 그걸로 선수 장악력은 증명이 된 셈... 이었는데 2010-11 시즌 맨시티에서 계속 선수들끼리의 충돌, 선수와 감독의 충돌, 선수의 은퇴 땡깡 등이 일어나면서 "선수 장악력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VS "맨시티 자체가 워낙 막장이라 만치니도 별 수 없다." 같은 논란이 생기고 있다.
단점이라면 대놓고 비기기 전술이나 잠그기 축구를 꽤 자주 보여준다는 점. 관중 입장에서는 꽤 지루한 시합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클럽의 서포터들은 '새가슴'이라고 대놓고 비난하기도.
그리고 만치니는 "더 이상 전술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피지컬의 발전만이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다른 전술가적 감독들은 이 얘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2011-12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무패 행진으로 1위로 올라서는 등 순조로운 시작을 보였으나... 챔피언스 리그에서 카를로스 테베즈의 항명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지도력에 대해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처는 불확실하지만 인테르 시절에도 대다수의 선수들과 갈등이 있었다는 소식도 보도되면서 더더욱 지도력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시합에서 1무 1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만치니의 챔스 본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까이는 중. 그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0:2로 깨진후, 2011년 10월 2일 블랙번 로버스 FC와의 시합에서는 4:0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만치니 감독은 맨체스터 시티 부임 후 역사를 만들어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올드 트래포드에서 6:1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관광을 태우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툭하면 사고치는 발로텔리[11] 가 2골을 집어넣었고 특히나 팀의 조직력이 상당히 올라간 경기였기 때문에 만치니 감독의 논란은 종결될 듯 싶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가면서 주춤한 모습을 계속 보이면서 연장계약이 이뤄질지 의문시이다. 20라운드 넘어가면서 되려 안방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맨유와 똑같은 17승 3무 3패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맨유에게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 첼시전을 빼면 선더랜드와 에버튼이란 중하위팀에게 패했다. FA컵과 리그 컵, 챔피언스 리그, 유로파 리그는 죄다 탈락했고 남은 건 리그 우승 뿐인데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 5달 넘게 유지하던 리그 1위 자리조차도 라이벌 맨유에게 빼앗겼고 31차전까지 승점 차가 크게 벌어질 위기에서 만치니조차도 리그 우승 장담이 어렵다고 실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올 시즌이 계약기간이 마지막이라 맨시티를 떠날 것이라고 예상이 많았는데 알 나얀 구단주가 만족한다면서 2년 재계약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판에 맨시티의 연승 행진과 반대로 맨유의 삽질이 이어졌고 36차전에서 극적으로 리그 1위를 탈환하면서 44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많아졌기에 다음 시즌 감독 재계약은 확실시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38차전 QPR과의 경기에서 고전 끝에 겨우 3:2로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한 우승 확보, 감독으로서 7번째 우승컵이자 팀에겐 무려 44년 만에 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물론 두둑한 우승 보너스는 덤. 그리고 5시즌 장기간 감독 연장 계약이 되었다.
2011-12 시즌 말에 접어들면서 신선한 언플과 심리전을 시전하는 바람에 약간 개그 캐릭터 기믹도 생겼다. '''"어차피 맨유가 우승해."''', '''"여러분. 맨유 우승에 돈을 거세요."'''라고 언론에 조롱조로 인터뷰하는 바람에 역레발로 우승했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 리그 우승 결정전인 QPR전 바로 직전까지 저런 인터뷰를 했다.
위에 썼다시피 선수 시절에는 악동 이미지였는데 감독이 되자 덕장 이미지가 강해졌다. 무리뉴도 포기한 발로텔리를 그래도 잘 조련하고 있는 것이나[12] 항명 사건까지 일으켰던 테베즈를 시즌 말에 잘 끌여들여서 우승에 큰 역할을 하게 한 것을 보면 나름 덕장은 덕장.[13] 그래서 한국 한정으로 ''''만보살''''이라는 별명도 있다. 테베즈와는 잘 화해했는지, 테베즈는 계속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발로텔리 또한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감독은 만치니 뿐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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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4강, 한국 vs 브라질전을 관람하기 위해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했다가 전광판에 그의 얼굴이 비치자 야유 세례를 받았다. 한국 언론에서는 기성용을 보러 왔다느니 호들갑을 떨었지만, 네이마르를 비롯한 브라질 선수들을 보러왔다는게 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2012-13 시즌에 리그 2위,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탈락, FA컵 준우승에 그치면서 팀이 무관으로 끝나고서 바로 경질되었다. 사실 성적이 경질의 한 이유는 되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와는 다른데, 관측과 구단의 발표에 따르면 경질의 이유는 1) 계속된 징징댐, 그리고 2) 선수진과의 불화이다.
우선 지속된 영입에도 판 페르시, 데로시를 언급하면서 징징대는 만치니의 태도에 높으신 분들이 많이 짜증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2012년 여름 이적시장 당시 맨시티의 풋볼 디렉터였던 말우드가 만치니의 영입 타겟을 하나도 영입 성공시키지 못하고 어중간한 대체 선수들만 사왔기 때문에 만치니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실제로 2012년 여름 영입 선수들은[14] 결과적으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팀을 떠났다.
한편 나스리나 발로텔리와의 잘 알려진 불화를 제하더라도 선수단 분위기는 대단히 안 좋았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트위터발 일설에 의하면 주장 뱅상 콩파니마저도 만치니를 경질하지 않으면 팀을 나가겠다는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고. 이 설이 사실이라면 만치니는 선수단과의 힘 싸움에서 졌다고 볼 수 있다. 덕장 스타일로 팀을 이끌기에 선수단 기강 유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평도 있었지만, 이후의 여러 인터뷰에 의하면 오히려 선수 시절 성깔을 다 못 죽이고 종종 신경질적으로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을 대한 탓에 개인적으로는 평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즉 오히려 덕장 스타일로 알려진 것이 잘못이었던 것으로 본인의 성격이 반발을 불러온 것. 바로 다음 감독인 페예그리니가 덕장 스타일로 별다른 문제 없이 팀을 이끌면서 이 사실은 반증되고 있다.
만치니가 팀을 떠난지 4년 가까이 되었어도 만치니가 영입하거나 성장시킨 핵심 선수들(아구에로, 실바, 투레 등등)은 4년 동안 대부분 주전으로 팀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만큼 이들도 맨시티에서의 커리어가 끝나가고 있지만 만치니는 현재 리그 내 빅클럽이 된 맨시티의 기반을 닦은 감독이라 할 수 있다.
4.3. 갈라타사라이 SK
2013년 9월, 갈라타사라이 SK에 테림의 후임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갈라타사라이 팬들로부터 사랑받아왔던 테림이 석연찮은 이유로 팀을 떠났기 때문에 만치니를 보는 팬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겠으나, 리그에서는 그럭저럭 꾸역꾸역 승점을 챙기면서 초반의 부진을 만회하고 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끝내 팀을 16강 진출에 성공시켰다.
사실 만치니가 갈라타사라이 팬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대표적 이유는 앞에서도 서술된 바 있듯이, 수비적인 전술 때문이다. 센터백인 체쥬와 세미 카야는 세트플레이 상황을 제외하면 하프라인 밖을 벗어나지 않고, 양쪽 풀백인 리에라와 에보우에가 열심히 오버래핑을 해주면서 공격가담을 하는 게 전부다. 적극적인 공격가담과 상대팀 페널티박스에서의 공중전 수행이 큰 장점이었던 펠리페 멜로는 더욱 더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셀추크 이난 또한 센터에서의 적극적인 공격보다는 사이드에서 에보우에를 지원사격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부락 일마즈가 철저하게 고립당하면서 득점력 저하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은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왜 만치니를 좋아하지 않는 지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될 수 있다. 그나마 드록바와 스네이더가 테림 감독 시절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언제까지 드록바의 개인기를 이용한 돌파나 스네이더의 폭발적인 슈팅력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 만치니가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다. 이러한 만치니의 전술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테림 감독 시절의 호쾌한 공격축구를 그리워하고 있다.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에게 1-6으로 대패한 경기조차도 '갈라타사라이답게 당당히 맞서싸웠다', '적어도 전반전까지는 레알을 밀어붙이지 않았느냐' 라고 반문할 정도로 공격적인 전술에 대한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선호는 절대적이다.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치니는 자신의 전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2014년 2월 22일, 베식타쉬와의 라이벌 매치에서 1-0으로 승리한 직후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얻은 것이다." 라고 운을 띄우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과감한 전술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술을 지향해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
3월 14일부터 계속된 무승행진으로 인해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은 만치니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본인은 "원한다면 오늘 저녁, 아니 내일 아침에라도 떠나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 일을 하러 왔기 때문에 그런 결정은 내려줄 수 없다." 라고 맞불을 놓았다. 또한 한편으로 "4개월만에 (자기가 원하는) 팀이 완성될 수 없다." 고 말하며 서포터들에게 인내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부진으로 인해 본인 또한 아리송한 답변만 계속 늘어놓으면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갈라타사라이 前 코치였던 하샨 샤쉬[16] 가 TV에 출연하여 '파티흐 테림 감독과 내가 팀을 지휘했다면 페네르바흐체가 쉽게 리그 챔피언에 오를 수 없었다' 라고 만치니를 정면비판하기도 했다.
만치니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4월 6일 페네르바흐체와의 경기는 웨슬리 스네이더의 결승골로 힘겹게 1-0 승리를 거두며 잠시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어서 팬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며, 지난 4월 19일에는 페네르바흐체도 아니고, 베식타쉬도 아닌, 카슴파샤에게 홈에서 0-4 대패를 당하며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이 기록은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 개장 이후, 갈라타사라이의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이다. 그나마 5월 7일, 튀르키예 쿠파스 결승전에서 에스키세히르스포르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감독으로서 터키에서의 첫 우승 트로피를 챙겼다.
13-14 시즌 종료 후 얼마 뒤 갈라타사라이와 상호계약해지를 했다. 사실 만치니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예전부터 극심했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무미무색의 전술과 겨울 이적시장에서만 자그마치 300억 가까이 지출하고도 선수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모습은 그로부터 팬들을 등돌리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재임기간동안 선수들과의 불화설(특히 펠리페 멜로와 셀축 이난)도 심심찮게 제기되었으나, 막상 프란델리 체제의 갈라타사라이 훈련장을 직접 찾아와서 선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모습을 보면 결국 본인의 말대로 맨시티 시절과는 달리 선수들과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타사라이와의 결별 원인은 구단의 이적 정책과 다음 시즌 예산 책정에 대한 의견차이.
14-15 시즌 이후 갈라타사라이 팬덤 내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만치니인데, 일단 공격지향적인 갈라타사라이 팀 전통의 컬러에 수비축구의 색채를 입히려고 했던 시도 자체는 좋았다[17] 는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감독 취임 5개월만에 경질된 체사레 프란델리가 구질구질하게 스포츠 중재 재판소까지 가서 잔여연봉을 다 받아먹으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만치니는 잔여연봉 350만 유로를 쿨하게 포기하고 팀을 떠났다. 결국 프란델리 때문에 만치니는 터키 축구팬들 사이에서 졸지에 '대장부(Adam)'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 차기 사령탑 후보에 올라있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worldsoccer/newsview?newsId=20140708180204395 만약 대표팀을 맡게 되면 영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태리팀 감독에 콩테 감독이 선임되어 이태리팀 감독이 되진 못했다. 한편 현재 한국팀 감독의 자리가 공석이라 여라 한국팀 감독 후보로 꼽혔지만, 높은 연봉으로 협상에도 들어가지 못한 듯 하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고, 이는 이탈리아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예선 탈락 후 현실이 되었다.
4.4. 인테르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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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4일 마짜리 감독의 후임으로 10년만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인테르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광복절 분위기에 휩싸였다. 계약기간은 2017년까지.링크 그리고 데뷔전이 세리에 A의 '''AC 밀란전이다.'''
만치니는 인테르 역사상 가장 많은 트로피를 획득한 감독이며(총 7개)[18] , 인테르의 감독으로 100경기 이상 치른 감독 중 승률이 3위이다.[19] 또한 인테르 감독 역사상 가장 적은 패를 기록한 감독이기도 하다. 유럽무대에서 약했던 전력 외에는 인테르의 기나긴 역사에서 톱을 달리는 명장이었기에 팬들의 기대는 더욱 크다.
하지만 리그 막바지에 이르는 현재 그렇게 막장이라 불리는 AC밀란보다도 1단계 순위가 낮다가 거의 끝판에서 뒤집어서 37라운드까지 8위를 거두며 11위를 거둔 밀란을 제치긴 했다. 하지만 전번 시즌 5위를 거둔 것보다 성적이 나쁜 터. 인테르 자체의 선수층의 문제도 있지만 포돌스키, 샤키리를 영입했음에도 공격진의 답답함과 그냥 서있기만 한 미드필더, 허수아비같은 수비진 등 전술에 문제가 없다고 보기엔 심각하다. 그나마 밥값을 하는건 골키퍼 한다노비치 정도.
결국 도저히 안 되겠는지 2015년 여름 이적 시정에서 맨시티, 갈라타사라이 시절 그랬듯, 보드진에 선수 사달라고 졸랐다. 지금 아니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다는 구단 수뇌부의 판단과 맞불려 인테르는 말 그대로 po영입wer을 시전했으며, 이 과정에서 만치니는 조프리 콩도비아를 시작으로 스테반 요베티치, 아뎀 랴이치에게 연달아 전화 찬스를 성공시키며 '보이스피싱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리그 초반 데르비 승리를 포함 4연승을 달리고 있다. 리그만 치루기 때문에 다른 팀들보다 조건적으로 유리한 가운데 목표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2015년 12월까지 1, 2위를 엎치락 뒤치락 하며 시즌 전반기를 성공적으로 보냈다. 미란다 - 무리요의 강력한 중앙수비진과 방탄 골키퍼 사미르 한다노비치의 맹활약에 힘입어 15경기에서 단 9실점만을 허용했다. 다만 공격력이 다소 아쉬운 데, 15경기중 무려 8경기가 1-0 승리이다. 이로 인해 만치니와 인테르는 ''''이진법축구''''를 하고 있다는 팬덤의 평가가 있었다.
12월에 해외 몇몇 언론이 난데없이 그가 2016-17시즌 첼시 FC 감독 후보로 올라왔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만치니 본인은 대꾸도 안하고 이탈리아 현지 반응은 헛소리라는 반응.
2016년 5월 8일, 엠폴리 전을 2 - 1로 승리해 4위를 확정 지었다. 챔스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인테르를 다시 상위권으로 올려놓은 것을 높게 평가 받았다.
16/17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에베르 바네가, 카네르 에르긴이라는 베테랑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마짜리 때와는 네임밸류가 다르다. 게다가 바네가는 유로파 리그 결승전 MOM까지 먹었고 자유계약이다! 야야 투레 영입을 시도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괜찮은 영입에도 불구하고 새로 구단을 인수한 쑤닝 그룹 측과의 의견차이, 이카르디의 이적 관련 파동 등 팀의 악재 등이 겹치면서 프리시즌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특히나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1:6'''이라는 스코어로 개털리면서 만치니 본인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 자신의 장점이었던 수비력이 붕괴되자 인테르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그말싫급으로 추락. 아무리 프리시즌이라지만 마짜리의 재림에 가까운 노답 축구를 몸소 보여주었다.
결국 2016년 8월 8일 상호 합의하에 구단을 떠나고 말았다. 선수단과의 관계는 아주 좋았던 모양인데, 만치니가 이탈하자 주장 이카르디를 포함한 여러 선수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기사가 올라왔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직후 인테르가 장렬히 산화하면서 본의 아니게 재평가되고 있다. 사실 재평가할 것도 없는게 유로파권 진출 실패 팀을 4위로 끌어올려놨는데 이걸 실패라고 할 수는 없을듯. 단지 전반기가 페이스가 너무 좋았기에 후반기 저조한 퍼포먼스가 더 비참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4.5.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6월 1일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을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3년이다.
젊은 아르헨티나피를 대거 수혈하고, 기존의 자원들을 정리하면서 화끈하게 스쿼드를 재편했다. 그에 따라 팬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나 초반 페이스는 오히려 엄청나게 좋다. 특유의 탄탄한 압살 축구를 기반으로 8R 현재 리그 최다득점, 리그 최소실점의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아스날 툴라전에서 뜻밖에 패배를 당하게 되는데 후에 CSKA,로코모티프 전에서 연달아 무승부,패배 그리고 같은 우승경쟁팀인 스파르타크전에서도 패배를 당하게되면서 스파르타크와 함께 공동 2위로 전반기를 끝나게 됐다.
현재 만치니가 영입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추운 러시아에 적응을 못하게 되면서 경기력 저하로 나타났고 또한 만치니 자신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PSG 부임을 원한다, EPL 복귀를 원한다는 발언과 함께 팀을 흔든 책임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전반기 말미에 경질설까지 돌 정도.
결과적으로 제니트에서의 도전은 1년만에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유로파 16강탈락, 리그에서 유로파출전마저 간당해지면서 (원래 목표는 리그 or 유로파우승,챔피언스리그 진출인데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각종 SNS에서 #manciniout 이 제니트 팬들 사이에서 보였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며 5월 13일 상호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사실상 경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4.6.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18년 5월 15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2년 계약에 옵션 2년으로, 연봉은 600만 유로.
5월 29일에 스위스 장크트갈렌의 AFG 아레나에서 킥오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전이 그의 국대 감독 데뷔전이 되었다. 경기 결과는 2:1로 사우디를 가볍게 완파했다. 6월 2일, 알리안츠 리비에라에서 열린 프랑스전은 3:1로 패배했다. 6월 5일에 유벤투스 스타디움에서 했던 네덜란드전은 1:1로 비겼다.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폴란드와 1:1로 비겼고, 포르투갈전은 0:1로 패했다. 10월 11일 우크라이나전은 1:1로 비겼다. 이후 폴란드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하며 리그 A 잔류에 성공했고, 유로컵 예선 핀란드전과 리히텐슈타인전은 각각 2:0, 6: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3차전 그리스를 상대로 전반에만 3골을 집어넣는 화력을 보여주며 3:0승을 이끌었다. 이날 보여준 인시네의 감아차기는 백미
이후 4차전 보스니아, 5차전 아르메니아, 6차전 핀란드, 7차전 그리스전까지 전부 승리하여 유로 2020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후 8차전인 리히텐슈타인전과 9차전 보스니아 원정까지 승리하면서 이탈리아 A매치 최다 연승 기록인 10연승을 달성하였고 내친 김에 예선 10전 전승을 거두면서 벤투라 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네이션스 리그 본선 1차전인 네덜란드 전에서는 거의 반코트로 가둬놓는 수준의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1:0으로 승리했다. 골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경기력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네덜란드와 4강 진출을 놓고 경쟁했으나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아버렸다(...). 일단 팀은 수석코치인 알베리고 에바니가 이끌었고 다행히 이탈리아 대표팀은 진출에 성공했다.
5. 코칭 스타일
간단히 정리하자면 단단한 수비와 중원을 구성해서 쉽게 지지 않는 팀을 만들고, 공격은 공격진에 맡긴다.
좀 극단적일 정도로 피지컬을 강조한다. 특히 중원 구성에서 매우 두드러진다. 선수들의 기술 발달은 이미 상향평준화되어 더 상향되기 어렵기 때문에 팀 간 전력을 변별할 수 있는 요소는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피지컬 좋은 선수라고 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기반 자체가 피지컬 활용과 지공에 있다 보니 보는 맛은 떨어진다. 다만 수비진에 안정감을 불어 넣는 능력은 탁월해서 수비 불안으로 골머리를 앓는 팀에는 구세주 같은 감독.
공격수 출신이지만 공격 전술을 짜는 데에는 큰 소질이 없는 듯하다. 공격진은 피지컬보다 기술 좋고 번뜩이는, 10번형 선수를 선호하는데 그냥 알아서 하도록 맡긴다. [20]
단점은 승부처에서 한끗이 모자란 운영을 한다는 점. 특히 유럽대항전에서 두드러진다. 기본 전력을 활용해 상수를 만들고 그 상수를 붙들어 안정적으로 상대를 눌러 죽이는 운영에는 능하지만,[21] 변수 싸움에서는 약점이 드러난다. 혹 상대가 자기보다 상수가 크면 자신이 변수를 만드는 모험수도 필요한데, 영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고, 정작 시도를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이런 전략적인 전술운영능력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리빌딩'''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좋은 모습을 보인다. 그가 원하는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하는 선수를 사다주는 구단이 필요한데, 맨시티나 갈라타사라이같은 팀은 당장의 성적을 낼 수 있는 전술운영을 원했고, 그의 요구가 무리한 요구로만 보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1)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 혹은 2) 능력치가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선수들을 빠르게 영입하고 팀을 꾸리는 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맨시티에서는 마크 휴즈 시절 심화된 불균형 스쿼드를 다시 성공적으로 리빌딩했다. 그때 영입했던 선수들이 다비드 실바, 야야 투레, 세르히오 아구에로 이다. 인테르 2기 시절에는 만치니의 전화를 받고 중하위권 인테르로의 이적을 선택한 세르단 샤키리, 포돌스키[22] , 콩도비아, 맨시티의 요베티치, ATM의 미란다 등의 선수들을 영입했다.
6. 수상 경력
● 선수 시절
- UC 삼프도리아 (1982 ~ 1997)
- 세리에 A : 1990-91
- 코파 이탈리아 : 1984-85 , 1987-1988 , 1988-1989 , 1993-94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1991
- UEFA 컵 위너스컵 : 1989-90
- SS 라치오 (1997 ~ 2000)
- 세리에 A : 1999-00
- 코파 이탈리아 : 1997-98 , 1999-00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1998 , 2000
- UEFA 컵 위너스컵 : 1998-99
- UEFA 슈퍼컵 : 1999
-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 (1984 ~ 1994)
- 1990 FIFA 월드컵 : 3위
● 감독 시절
- SS 라치오 (2002 ~ 2004)
- 코파 이탈리아 : 2003-04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2004 ~ 2008 / 2014 ~ 2016)
- 세리에 A : 2005-06 , 2006-07 , 2007-08
- 코파 이탈리아 : 2004-05 , 2005-06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2005 , 2006
- 맨체스터 시티 FC (2009 ~ 2013)
- 프리미어리그 : 2011-12
- FA컵 : 2010-11
- 커뮤니티 실드 : 2012
- 갈라타사라이 SK (2013 ~ 2014)
- 튀르키에 쿠파스(터키 컵) : 2013-14
- 쉬페르 쿠파 : 2013
7. 여담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잘생기고 간지나는 외모의 미중년이고 패션 감각도 좋다.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로 유명한 리암 갤러거는 옆동네의 옆집 할아버지 같은 감독과 달리 우리 감독은 잘생기고 멋쟁이라는 발언을 한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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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답게 패션감각이 좋아서 사복도 잘 입고 피치위에서도 옷 잘 입는다. 맨체스터 시티 머플러를 패션 아이템처럼 제대로 활용[23] 하기도 한다. 맨체스터 시티 감독시절 남성잡지 GQ와 에스콰이어에서 그의 패션세계를 기사로 다루기도. 링크 미중년속성의 본보기와 같은 존잘러.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맨체스터 시티 팬들에게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는 감독이다.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수비조직을 탄탄하게 다지고 FA컵과 리그우승을 선물했기 때문. 소위 Bobby Manc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맨시티 시절 응원가도 있다. 듣기 원곡은 Gispy Kings의 'Volare'. 두산 베어스 팬이라면 오재일의 예전 응원가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가사는 다음.
최근 부인과 이혼수속을 밟게 되었는데 소식을 접한 에이프릴 서머스라는 플레이보이 모델이 트위터를 통해 공개구혼을 했다. 참고로 이분은 맨체스터 시티 시절부터 만치니 감독에게 지속적인 공개 구애행위를 벌이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고.Mancini oh oh oh
Mancini oh oh oh
He comes from Italy
To manage Man City
2015년 12월 7일 인테르의 콩도비아가 슛 포 러브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 알려졌는데, 진행 당시 만치니 감독이 캠페인 진행 장소에서 곧 훈련을 할 예정이니 옮겨 달라고 진행자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진행 측은 그냥 구단 관계자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만치니 감독인 걸 나중에야 알아서 현재 매우 후회하고 있는 중이라고...
[1] 1991년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기사장 Cavalier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2] 펜싱으로 유명한 동네다. 여자 플뢰레의 전설인 그 발렌티나 베잘리의 고향이며, 우승청부사이자 서울올림픽 남자 플뢰레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스테파노 체리오니가 펜싱을 시작한 동네이다.[3] 지금이야 세르히오 아게로, 다비드 실바, 케빈 더 브라위너 그리고 맨시티의 레전드 뱅상 콤파니까지 쟁쟁한 선수들이 많지만 만치니가 맨시티를 감독할때는 아직 부족한 선수들이 많았다. 콤파니와 아게로는 이름을 떨쳐가기 시작하지만 리그에서도 탑이라 할 수 없었고 실바 역시 현재보다는 평이 떨어졌던 편. 더 브라이너는 만치니가 감독하던 시절에는 맨시티에 없기도 했고 한참 어린 선수였다.[4] 유벤투스 명예 구단주[5] 이들은 각각 AC 밀란, 유벤투스, SSC 나폴리의 레전드 선수이다.[6] 1991-92시즌 유로피언 컵에서 팀을 이끌고 디펜딩 챔피언인 츠르베나 즈베즈다까지 제치며 결승까지 올랐었다. 다만 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바르셀로나였는데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바르셀로나에게 0-1 석패를 당하였다. 결승골은 그 유명한 로날드 쿠만의 188km/h 프리킥.[7] 그리고 스킬라치는 이 대회 득점왕에 오른다. 한마디로 월드컵 빤짝스타의 대표적인 사례.[8] 94년 월드컵도 갈수 있었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서 부진한 모습으로 팬들의 질타를 연이어 받자 개최직전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9] 성질 더럽기로는 어디가서 지지 않는 베론이 삼프도리아 시절 코너킥을 이상하게 찼는데 만치니가 와서 '공 좀 제대로 차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베론은 욱해서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는데, 경기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가니 만치니가 자기를 때릴 준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베론의 표현에 따르면 다른 선수가 말리지 않았으면 죽을뻔 했다고... 라고 알려져 있지만 포포투 2013년 1월에 베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치고받고 싸운 건 아니고 짜증은 좀 냈다고 한다. 애시당초 자신은 그 양반 이길 수 없다고... 그래도 만치니와 베론은 삼프도리아-라치오 선수시절을 비롯해서 인테르에선 감독과 선수로도 만난 걸 보면 잘 푼 모양.[10] 사실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걷어내기 위해 강하게 찬 공인데다가 얼굴로 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자신도 이해한 것인지 별 탈 없이 웃으며 넘어갔다. [11] 인테르 시절 만시니가 1 대 1 면담에서 "넌 진짜 바보고 왜 내가 너 같은 놈을 사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갈군 적도 있고, 담배 피우는 것울 보고 "내 아들이었으면 죽여놨을거야."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한 발로텔리의 대답이 압권. '''"나는 킥복싱을 배웠다."'''[12] 마침 발로텔리가 아들과 친구라고 한다.[13] 사실 테베즈는 구단의 압박에 돌아온 것이라는 게 중론. 그러나 빅클럽 감독이 자기한테 정면으로 개겼던 선수를 다시 중용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알렉스 퍼거슨이 데이비드 베컴과 야프 스탐을 내친 사례 그리고 펩이 즐라탄과 사무엘 에투를 내친 것만 봐도 거물급 감독이 자신의 리더십에 도전한 선수를 달래서 중용하는 것은 왠만한 도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14] 마이콘, 잭 로드웰, 하비 가르시아, 스콧 싱클레어 등.[15] 사실 터키의 축구는 '''승리'''보다 '''오락'''적인 요소가 더 강하기 때문에 만치니의 수비적인 축구는 터키에서 좋게 보일 수가 없다. [16] 국내에는 '하산 사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2002 한일 월드컵의 그 선수가 맞다.[17] 이미 만치니 재임기부터 소수의 팬들이 주장해오던 얘기였다. 문제는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다수의 팬들이 인정하지 않았을 뿐...[18] 전설적인 명장 엘레니오 에레라와 타이, 트레블을 이룩한 무리뉴는 5개로 만치니에 이은 3위이다.[19] 61.95%의 승률, 1위는 주제 무리뉴 63%[20] 만치니가 2001년 이탈리아의 코치와 심판 연수를 담당하는 코베르치아노에서 연수를 받고 쓴 논문의 제목이 10번형 선수를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Il Trequartista'''이기도 하다.[21] 그래서인지 이적 시장이 열리면 스쿼드 보강에 열을 올린다.[22] 이 선수들은 리그 중간 영입된 임대생들이었으며, 결과만 보자면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14시즌 인테르의 상태를 생각해보면 이정도 네임밸류를 가진 선수들을 시즌 중간에 데려오는것도 능력이다.[23]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 시절에도 선수로 있던 삼프도리아, 감독으로 있던 라치오의 상징색이 모두 하늘색이라 하늘색 머플러를 자주 착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