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린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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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진 중 윗쪽 사진은 장전되지 않은 상태로, 해머에 부싯돌을 물려놓지 않았고 화약접시도 열려있다. 부싯돌을 물려 놓아야 화약에 불씨를 일으킬 수 있다. 보통 부싯돌만 끼우면 제대로 고정되지 않고 비뚤어지거나 이리저리 움직였으므로, 돌에 가죽을 감싸서 물려두었다. 또한 발사하기 위해서는 아래 사진과 같이 화약접시를 닫아야 한다.
1. 개요
2. 상세
3. 사용 방식


1. 개요



Flintlock. 수발식(燧發式), 수발총(燧發銃), 부싯돌 소총이라고도 한다. 전장식 화기인 머스킷에 사용된 작동 메커니즘. 플린트(Flint, 부싯돌)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흔히 대체역사 소설 등을 보면 수석식 소총 등으로 묘사되면서 비오는 날에도 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플린트락은 화승만 사용하지 않을 뿐 화약 접시가 그대로 남아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우천시에 사격이 불가능하다.[1][2] 애초에 부싯돌 자체도 현대에 쓰이는 파이어스틸이 아닌 이상 물에 젖으면 불꽃이 나오지 않는다. 우천시에도 사격이 가능해진 것은 퍼커션 캡(뇌관)의 등장 이후였으며, 그나마도 장전시 장약이 젖는 문제 때문에 우천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금속 탄피가 등장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2. 상세


부싯돌의 마찰을 통해 점화약에 불을 붙여 격발하는 방식이며 장치의 기본 개념 자체는 16세기 말엽에 발명되었다.[3] 그러나 가격과 생산의 문제 때문에 점진적으로 보급되었고 매치락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17세기 말~18세기 초에 이르러서이다.
특성상 화승이 필요 없으며 격발시 화약의 반응속도가 다소 향상되었다. 하지만 매치락보다는 낫다고 해도 플린트락 역시 우천시나 습기가 있는 환경에서는 불발탄이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실제로 먼지가 많거나 습기찬 환경을 가진 조선, 청나라, 일본, 인도 등의 나라에서는 유럽으로부터 플린트락이 전래된 후에도 신뢰성 문제 때문에 매치락을 고집했던 사례가 있었을 정도. 이 문제는 퍼커션 캡의 등장 이후에나 해결된다.
그러나 서구 제국들은 습기로썬 최악의 환경인 '''정글'''에서도 무리없이 플린트락을 운용했으며[4] 마찬가지로 동남아 국가들 또한 플린트락을 서구의 상관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입했거, 비록 실패했지만[5] 복제 및 자체 생산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구 제국들도 열대습윤기후가 아닌 온난 습윤 기후에서는 뇌홍이 발명되기 전까진 전쟁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실제사례로 제1차 아편전쟁때 삼원리 사건에서 영국군이 플린트락을 들고갔다 하필 비가오는 바람에 냉병기를 든 농민들한테 박살날 뻔했다.
조선은 몇번 플린트락이 도입 되었던걸로 추정되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도 보이고 나선정벌 당시 신유장군이 들여오기도 하였으나 제식화되지 못하였다. 명확한 이유가 언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보다 복잡한 기계 장치에서 부터 오는 기술적 어려움 및 가격상승이나 앞서 말한 불발률 의혹, 흑요석이나 황철석 같이 부싯돌로 쓰기 좋은 광석 부족, 그리고 전쟁과 교전이 없었기에 소요가 없었던 점이 복합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부싯돌 격발 장치는 이후 병인양요 이후 조선의 서구 세력에 대한 강구책에서 다시 보이는데 일종의 기뢰인 수뢰포의 격발장치에서 동화모(뇌홍)이 없을 경우 사용하는 부수적 격발 장치로서 '화석기'라는 이름으로 소개 되고 있다. # 뇌홍은 그 퍼커션 캡으로서 청나라로 부터 수입했던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개인화기에 대한 적용의 흔적은 없으며 서구는 금속제 탄피를 이용한 후장식 소총으로 넘어가고 있었으므로 기술적 진보의 의의는 시대상을 반영할때 눈에 띄는것은 아니었다.
좋은 부싯돌은 가격이 제법 나갔기 때문에 병사들 중에 이걸 빼서 팔아먹는 놈들도 있었다. 어차피 혼란한 전투 중에 누가 불발돼도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저질러진 행위. 물론 들키면 징벌을 받았고, 당대 하사관들은 지금 못지 않게 총기 검열을 빡세게 했다.
한편 플린트락에도 세부적인 분류가 있는데, 19세기 영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라운 베스나 샤를르빌 등 일반적인 서유럽 머스킷의 작동 메커니즘은 파이어락(firelock)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 외에도 스냅핸스(snaphance)나 미퀼렛(Miquelet) 등 약간 다른 종류의 작동 방식이 존재했으나 일반적인 파이어락보다 복잡하고 고장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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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퀼렛의 격발장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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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핸스의 격발장치 구조.# 미퀼렛과 스냅핸스 모두 척 봐도 일반 플린트락보다 뭐 하나씩 더 붙어 복잡해 보이는 구조다.
19세기 초~중엽까지도 사용되다가 뇌홍을 활용하는 퍼커션 캡의 등장 이후 군대에서 퇴출되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원시적인 작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나, 플린트락은 발명된 후 거의 100년 이상 큰 변화 없이 절찬리에 사용되어 온 베스트셀러였다.
아프간 스타일의 소총인 제자일도 이런 방식이었다고 한다.

3. 사용 방식



사격 방법은 대체로 화승총과 유사하나, 화승을 다룰 필요가 없어져서 보다 단순화 되었다.[6]
  • 요즘 총에서 해머(공이치기)라고 부르는 부분을 콕(cock)이라고 칭하는데, 여기에 부싯돌이 단단히 물려있다. 콕을 뒤로 당겨서 장전하는 것을 풀콕이라고 하며 현대 화기의 해머 코킹도 이 용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 코킹 후 방아쇠를 당기면 콕이 앞의 프리즌(frizzen)을 때리는데, 프리즌은 화약접시의 뚜껑 겸 부싯돌과 부딪혀 불똥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 프리즌이 얻어맞은 충격으로 튕겨서 열리면서 - 거기서 생긴 불똥이 화약접시 상의 점화 화약에 불이 붙고 - 그 폭발이 화약접시 옆의 약실로 향하는 작은 구멍으로 전달되어 약실을 점화한다.
나폴레옹 전쟁을 전후하여 영국군 일부 연대를 주축으로 보급된 '''탭 로딩'''은 분당 3발, 최대 4발 사격을 가능케 하여 발사속도를 획기적으로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은 힘들게 꼬질대로 꾹꾹 쑤셔넣는 것이 아니라 총 자체를 바닥에 툭툭 쳐서 중력에 의해 화약과 총알이 가지런히 정렬되도록 하는 방식.
다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서양에서 흑색화약은 가루상태가 아니라 '코닝'이라는 공정을 거쳐 알갱이 형태로 유통됐기 때문이며 이 방식에서 쓰는 머스킷탄은 딱 맞는 탄이 아니라 약간 헐렁하다.(딱 맞는 탄을 쓰면 정확도는 오르지만 최악의 경우 망치로 꼬질대를 때려가면서 장전해야 한다). 아래 동영상(2:35)을 보면 샤프 소령과 리인엑터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bite, pour, spit, tap, aim의 5단계가 있다고 한다.
  • Bite: 탄환과 화약이 함께 든 종이 봉투를 입으로 뜯는다. 이 때 탄환이 입속으로 들어간다.[7]
  • Pour: 종이 봉투 안의 화약을 약접과 총구에 주입한다. 약접에 화약을 넣고 닫는 것이 먼저다.
  • Spit: 입속의 탄환을 총구에 뱉어 넣는다.
  • Tap: 총구를 위로 향하게 하여 개머리판을 땅에 두어 번 두들긴다. 이 절차가 꼬질대로 쑤시는 절차를 갈음한다.
  • Aim: 조준한다.

다만 해당 동영상의 댓글을 보면 이 과정에서 spit은 불필요하며 안전상의 문제를 일으키므로[8]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다음의 영상에서는 해당 과정을 생략하고 사격한다.

아예 통째로 탄포를 집어넣는 방법도 있는데, 사실 위의 5단계 방식보다 우수한 방법이다.[9] 몸에 좋을 리가 없는 납탄이 입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도 탄이 종이 탄포와 함께 총구로 들어가기 때문에 총신에 더 밀착하게 된다. 원래 탄환의 구경이 총신의 구경보다 작으므로 헐거워서 명중률 저하의 원인이 되지만 이 경우 탄포가 그 빈틈을 메워 명중률을 높여주는 것이다. 보통 이렇게 하면 탭 로딩이 불가능할 정도로 뻑뻑해져서 꼬질대로 쑤셔줘야 하지만 마침 탄포는 기름종이라서 쉽게 미끄러져 들어가므로[10] 탭 로딩도 여전히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스핏 동작을 위해 총구를 입가로 가져다 대는 잔동작도 하나 생략함으로써 장전 시간을 소소하게 단축할 수 있다. 즉, 연사속도와 명중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셈이다. 동영상의 사수는 그리 빠르지 않은 동작으로도 대략 14초에 한 발을 쏘는데 1분당 4발이라는 놀라운 연사속도로 35야드(32m) 거리의 작은 표적을 모두 맞혔다.

[1] 화약접시 부분에 비가 직접적으로 들이치지 않도록 하는 작은 덮개를 다는 식으로 어느 정도 임시조치는 여러 번 시도되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은 하지 못했다. 다만 거추장 스러운 불붙은 화승을 신경쓸 필요는 덜어서, 코트를 머리 위로 둘러써 비가 들어오지 않게 해 발사를 한다거나 하는 융통성을 발휘할수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불이 꺼지지 않게 신경써야 하는 화승의 압박으로 부터 해방 될 수 있었다.[2] 사회타파!라는 책에서도 독립전쟁당시 영국군과 미군이 이 총을 들고 대치하나 소나기가와서 칼을 들고 싸운다.[3] 사실 동양에서도 명나라 말엽 자생화총과 격전총등으로 불리는 플린트락을 발명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안가 명나라는 망하였고 뒤를 이은 청나라는 새로운 화기의 도입과 개량에 관심이 없었다.[4] 어차피 정글은 인구밀도가 극히 낮았으므로 적군의 수가 적어서 한번 불발되어도 바로 다시 격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상술된 조선, 청나라, 일본, 인도는 습도도 높으면서 주변 가상적국의 인구밀도도 높았다.[5] 실패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다만 동남아도 불발 확률이 높았던게 현실이고, 부싯돌을 구하기가 다른 아시아지역 보다도 더 힘든 지역이었다. 동남아는 불피우는 방법부터 마찰식 점화법이 대세였다.[6] 접시에 화약을 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에 총구로 나머지 화약을 총알과 함께 담고서, 꼬질대로 잘 다져넣어서 장전시키는 것 까진 동일하다. 여기서 화승을 쓸 필요가 없으니, 화승을 격발장치에 물리는 것 하고 화승이 화약에 닿아서 점화가 될 수 있게, 사격 직전에 화약 접시를 열어야 되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A] A B 물소고기와 야크고기는 힌두교에서도 소고기와는 다르게 여겨져 금기시되지 않는다.[7] 세포이 항쟁의 발단으로 꼽히는 사건이 이 종이 봉투에 동물성 기름이 발라져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힌두교인들은 입으로 소기름이 발라진 종이를, 무슬림들은 돼지기름이 발라진 종이를 뜯어야 했으니 터부를 직접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다만 식물성 기름은 총기 소재에 사용시 오히려 뻑뻑해지는 특성 탓에 동물성 기름을 사용한 이유도 있다. 물론 기름, 물소기름[A], 야크기름[A], 기름 등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맞다.[8] 미숙한 사수들은 실수로 입 안의 납탄을 삼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중금속인 납덩어리를 삼키면 건강에 좋을 리가 있겠는가.[9] 물론 이 방법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총열에 종이를 통째로 넣기 때문에 사격 후 총신 내에 연소 잔재물이 spit 과정이 포함된 위의 방법보다 더 많이 남게 되고 이는 불발이나 작동 불량의 주된 원인이 된다. 후대에 종이 단피를 쓰던 드라이제나 샤스포 소총의 단점과 일맥 상통하는 문제점.[10] 위 영상에선 아예 집어넣으니 '''쑥'''하고 들어가선 꼬질대로 쑤실 필요 없이 가볍게 탁탁하고 털어주더니 바로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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