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사노스케
原田左之助
텐포 11년(1840년) - 케이오 4년 5월 17일(1868년 7월 6일)
1. 소개
신센구미 10번대 조장. 이요 번(지금의 에히메현) 출신. 타네다류창술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히지카타 토시조가 가장 믿었던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암살이나 전투임무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한때 사카모토 료마 암살의 하수인으로도 의심받았지만[1] , 실제로는 료마 암살과 신센구미와는 무관하다는 설이 다수이다. 2004년의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에서는 사카모토 류마 암살범이 하라다라는 당시의 풍문을 멋지게 이용해 재구성했다.
1.1. 생애
이요 국의 마츠야마번의 하급무사 가문인 하라다 가문에서 태어났으며,[2] 어려서부터 번에 출사, 마츠야마 번의 에도 저택에서 최하급 가신 신분인 주겐(中間)으로 일했다. 그는 본래 격한 성격으로 윗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저택에서 소동을 일으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결국 사임한 뒤 낭인이 되어 떠돌다가 곤도 이사미를 알게 되어 신센구미의 전신인 로시구미(浪士組)에 참가했다. 이후 신센구미의 부장 보조를 거쳐 10번대 조장과 7번대 조장[3] 을 맡았다.
사노스케는 창술의 달인으로, 호방하고 단순한 성격이었으나 미남자였다고 한다. 술에 취하면 왼쪽에서부터 일자로 배를 반쯤 가른 흉터를 자랑했다고 전해진다.[4][5]
사노스케는 세리자와 카모를 암살할 때 야마나미 케이스케와 함께 가모의 수하인 히라야마 고로를 처치했다. 또 이케다야 사건 때는 타니 산쥬로와 함께 창을 들고 여관 출구를 지키다가 달아나는 적을 제압하는 등, 신센구미 대원으로서 두루 활약했다. 또한 금문의 변[6] , 산조 제찰 사건[7] , 아부라노코지 사건[8] 등에도 출전하여 활약했다.
한때는 사카모토 료마 암살 사건의 범인이 이요 지역의 사투리를 썼다는 이유로 사노스케를 범인으로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는 료마 암살의 주체가 신센구미일 것이라는 확신 아래 이루어진 억측일 뿐이다.
여담으로, 조슈의 첩자였던 쿠스노키 코쥬로(楠小十郎)를 뒤에서 베어 죽이고는, 기분 좋다며 히죽거리는 바람에 곤도에게 크게 야단을 맞은 이야기가 있다. 이런 난폭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애처가였다고 한다.[9]
하라다 사노스케는 도바 · 후시미 전투에서 신센구미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를 보좌하며 활약했으나 결국 패했고, 고요친부타이(甲陽鎭撫隊)[10] 의 출진에도 동행했으나 패퇴했다. 그는 신센구미 국장 곤도 이사미가 신센구미를 독단적으로 휘두르는 것에 분개하여 동료인 나가쿠라 신파치와 함께 항거했는데, 이전에도 그는 이사미의 전횡을 아이즈 번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에게 탄원한 적이 있었다.
결국 가신이 될 것을 강요하는 이사미에 반대한 사노스케와 신파치는 나가레야마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신센구미를 이탈, 독자적인 조직 세이쿄타이(靖共隊)를 결성하여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에도 곳곳을 전전하면서 신정부군에 대항했으며, 최후에는 쇼기타이(彰義隊)[11] 에 합류하여 1868년 우에노 전투에서 전사했다. 하지만 일설에 따르면 부상을 입은 채 탈출하여 니가타, 시모노세키, 부산(!)을 거쳐 대륙으로 건너가 마적 두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청일전쟁 때 마츠야마에서 옛날 이야기를 하는 노병이 있었는데 "내가 하라다 사노스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러일전쟁 때도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메이지 40년경에 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었는데 진실은 불명.[12]
1.2. 그를 모델로 한 캐릭터
- 바람의 검심 - 사가라 사노스케
- 박앵귀 - 하라다 사노스케(박앵귀)
- 신센구미! - 하라다 사노스케(신센구미!)
- 은혼 - 하라다 우노스케
- 학원☆신센구미 - 하라다 사노
[1] 암살현장에 떨어진 칼집을 이토 카시타로가 하라다가 차던 것이라고 증언한 것과 하수인이 이요 사투리(이런 쓰벌!(こなくそ!))로 말한 것을 들었기 때문.[2] 아버지의 이름은 하라다 조지(原田長次)라고 한다.[3] 나중에 타니 산쥬로가 7번대 조장을 맡게 된다.[4] 이 흉터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인데, 다소 성질 급한 면 때문에 상관격인 무사와 싸우다가 "할복도 못하는 놈"이라는 소리를 듣고 빡쳐서 진짜로 배를 가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벼운 상처라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고. 그 사건 때문에 부대 내에서는 죽다 만 사노스케(死損ね左之助)라는 별명이 붙었다.[5] 결국 배에는 그때의 상처가 남게 되었는데, 하라다는 곧잘 '''너희들하고는 격이 달라서, 내 배는 쇠붙이 맛을 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6] 이케다야 사건 이후 조슈 번이 군대를 일으켜서 아이즈 · 사츠마 번의 병력과 충돌한 사건.[7] 교토 시내에 '조슈는 조정의 적'이라고 써 붙인 포고문을 도사 번의 무사들이 훼손하자 신센구미가 이를 단속하여 주동자들을 처단한 사건.[8] 신센구미의 내부투쟁으로 인해 참모 이토 카시타로와 그 일파가 암살된 사건.[9] 교토에서 여자를 두고 있었던 사람은 많았지만 정식으로 처를 맞이한 신선조 사람은 적었다. 그중에서 하라다는 정식 부인을 맞았다.[10] 신센구미의 새 이름.[11] 막부 해체에 반대하는 무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부대.[12] 바람의 검심의 사노스케가 본편 이후 중국으로 간 것도 이 마적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