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주

 

'''미스코리아 진'''
1993

1994

1995
궁선영
'''한성주'''
김윤정
[image]
'''이름'''
한성주 (韓成周)
'''출생'''
1974년 9월 23일, 부산광역시 남구
'''직업'''
아나운서, 방송인
'''가족'''
아버지 한효섭, 어머니, 오빠 1명
'''배우자'''
채승석 (1999-2000년)
'''데뷔'''
1994년 미스코리아
'''학력'''
배정초등학교
여의도여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승마특기자 특례)
1. 개요
2. 생애
2.1. 성장과 집안
2.2. 아나운서 시절
4. 이후 근황
5. 여담


1. 개요


대한민국미스코리아 출신 전 아나운서, 방송인이며 아버지는 한효섭신한민주당 국회의원(한석봉에서 개명)이다.

2. 생애



2.1. 성장과 집안


1994년 미스코리아 진을 수상해 대중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미스코리아 진에 수상되었을 때, 고려대학교 출신임이 화제가 되었으나[1]승마 특기로 합격한 게 알려져 화제성이 사라졌다.
참고로 한성주의 집안 자체가 부산 지역의 토호라고까지 불릴 수 있는 세화학원(現 한얼교육재단, 부성고등학교) 집안이다. 이 집안이 저지른 황당한 짓 중의 하나가 재단 공금 횡령을 넘어서서 학생들의 저축 금액을 횡령한 것이다. 기사
한성주의 오빠(한현철-여의도고등학교 재학시절 일진)는 승마가 아닌 요트 특기생으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아빠가 개최한 전국요트대회에서 3등한 것이 수상 경력의 전부였다고 한다. 참가자가 3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3등을 했다고 한다.
물론 한성주 역시 자기 아빠가 개최한 전국승마대회에서 입상한 게 수상경력의 전부였고, 여의도여고 재학 시절 승마협회에 승마 선수로 등록된 적도 없었다고 한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할 당시 장래희망을 외교관이라고 답해서 화제가 되었다. 무슨 신라시대도 아니고 20세기에 말타기 같은 걸로 외무고시에 합격한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느냐는 것. 당시 외무고시 수험생들이나 같은 고려대 정외과 학생들이 그녀에 대해 특히 흥분했다는 말이 있다.[2]

2.2. 아나운서 시절


1996년 SBS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했다.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1세대 중 하나였다.
1999년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삼남 채승석과 결혼하여 당시 화제가 되었으나 10개월 만에 이혼한 뒤 아나운서직을 그만두면서 대중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2000년 중반 들어 방송 활동을 재개하며 "매력적인 연하 남성에게 관심을 숨기지 않는 연상녀" 컨셉과 과감한 방송 의상 등으로 인기를 회복, 활발한 방송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3. 리벤지 포르노 피해


2011년 12월 5일에 전 남자친구가 한성주의 섹스 비디오와 사진들을 유포했다. 이에 한성주 본인은 관련 동영상을 올린 블로거를 고소했다.
이어서 2012년 1월 16일, 한성주의 전 남자친구(크리스토퍼 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성주를 폭행죄로 고소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1월 이 사건에 대한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피고 한성주가 원고 크리스토퍼 수의 신용카드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명품 등을 구입한 것에 대한 배상 및 한성주의 오빠 및 어머니 등 피고들에 의한 폭행, 감금, 협박에 대한 피해 보상으로 제기한 5억 원의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원고가 부담하는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와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판결 결과 요약

4. 이후 근황


리벤지 포르노 피해 이후로는 방송 활동을 중단하며 평상시에도 은둔 생활을 한다고 알려졌다가, 2019년 4월에 밝혀진 근황에 따르면 현재 원예치료전문가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
그렇지만 포탈 뉴스 댓글들을 중심으로 피해자인 그녀에게 오히려 악플이 줄줄 달리는 형국이다. # # #

5. 여담


  • 2011년 유명 건축가이창하와 한남동 주택가의 조망권 문제로 법정 싸움을 벌인 적이 있으며 그녀의 일부 승소로 마무리되었.
  • 사학비리로 유명했던 본인 아버지를 비호하여 최근까지도 인터넷 상에서 조롱과 비난을 받곤 한.
[1] 이 시기만 해도 미스코리아가 오늘날처럼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경력을 높이기 위해 지망했다기 보다 탤런트나 영화배우를 꿈꾸는 신인들이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수상자의 학력이 그리 높진 않았다.[2] 고려대 정외과 학생들 사이에서 "한성주의 정외과는 우리 정치외교학과가 아니라 정치'''외면'''학과다."는 말이 돌았다고... 지금보다 대입 진학율이 낮고 경쟁률이 높던 90년대라서 뒷구멍으로 입학한 것에 대한 반감도 그만큼 컸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