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뜰날
1. 노래
1975년에 발표되어 가수 송대관을 최고의 스타덤에 올린 전설적인 대중가요.
작곡은 데뷔초부터 송대관과 함께한 작곡가 신대성[2] 이 하였으나, 작사는 가수인 송대관 본인이 하였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해뜰날 첫 앨범에 "쨍하고 해뜰날" 하는 부분의 여성코러스 주인공이 최근 젊은이들에게 '아모르 파티'로 유명한 김연자라는 것이다. 사실 송대관과 신대성은 여성합창단의 녹음을 원했으나, 섭외비가 부족해서 한명만 하기로 했고 당시 비교적 몸값이 쌌던 신인가수 김연자 한명을 섭외하는 걸로 합창단 코러스를 대신했다고 한다.
1967년 데뷔했지만 오랜 무명시절을 거쳤던 송대관은 이 곡을 통해 최고의 대중가수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실제 1976년 1월 23일 경향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그 당시 송대관은 3, 4년 전에 흘러간 가수 취급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동아일보 1972.09.21 기사엔 TBC 가요대상 신인 부문 후보였다고 나온다.
무명으로 살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송대관은 어느 날 자신의 힘들던 청년기를 혼자 되돌아보다가 갑작스레 큰 감흥을 얻어, 아무 종이에 미친 듯이 가사를 써 버렸다고 한다.
다 쓰고 나서 다시 한번 본 뒤 느낌을 받은 송대관은 역시 자신처럼 가난한 무명 작곡가 신대성이 살던 종로 뒷골목 단칸방으로 뛰쳐가서 그 종이를 주고 "신선생, 나도 좀 떠야겄어! 도와주쇼!"라 외쳤고, 가사를 보고 갑자기 머리가 쨍하면서 이건 되겠다고 느낀 신대성이 느낌을 살려서 작곡을 했다고 한다.
대신 원래 송대관이 썼던 가사는 실제 가사보다 훨씬 거칠어서 심의 통과를 못해서 수정을 하였다고 한다.[3]
막상 앨범 녹음하면서는 엄청난 반향이 올 거라는 느낌까지는 못 받았으나, 막상 1975년 말 발매가 시작되자 당시 오일쇼크에 지쳐있던 시대 분위기로 인해 대중들이 크게 호응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몇 달 안 가 1976년초 가요프로그램 1위까지 했다. 당시 1위 곡을 부르려고 무대에 올라간 송대관은 요즘 가수들처럼 전주가 끝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줄줄 흘렸고, 다음날 신문들의 연예면은 "송대관의 해뜰날이 국민들을 울렸다"는 내용으로 도배되었다. 결국 송대관은 그해 말 가수왕이 되어 최고의 트로트스타가 되었다.
당시 대마초 파동으로 다른 가수들이 활동금지를 먹은 반사효과를 얻은 면도 있다고 위 기사에선 분석하고 있지만, 노래가 좋지 못했다면 그런 반사효과를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노랫말과 음정 모두 희망적이면서도 가슴 찡한, 경제부흥기 한국만의 감성을 잘 표현하여 시대를 초월하여 40년간 사랑받는 명곡.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거라 꿈꾸면서 경제 개발에 매진하던 당시 시대 분위기를 대표하는 음악이었기에 그 당시에 히트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기억되는 음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래 유튜브의 덧글을 봐도 노래에 감정이입돼 눈물이 났다느니 펑펑 울었다느니 하는 등의 덧글들을 볼 수가 있다.
미국의 그룹 J.Geils Band가 1981년 발표한 노래 Centerfold가 해뜰날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발표 당시부터 그런 의혹들이 나와서 미국에 확인 편지도 띄웠었다#고 한다.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불명. 한번 들어보자.[4] 2012년에는 배우 조민기가 나왔던 신라저축은행 CM송으로도 리메이크됐다.
노래를 기념하는 노래비가 안동의 세계물포럼기념공원, 송대관의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시의 내장산 문화광장 내에 있다. 또한 송대관의 모교인 전주시 전주영생고등학교에도 이 해뜰날 노래비가 있다.
1.1. 가사
2. KBS2 일일드라마
KBS 2TV의 일일드라마로, 기자 출신 소설가 조돈만(1941~2017)의 실화소설 <C반점의 데카메론>이 원작이며 1992년 3월 2일부터 9월 11일까지 평일 저녁 8시 55분에 방송되었다. 극본은 이관우, 연출은 엄기백 PD가 각각 맡았다.
시청률이 아주 높지도 않았고 종영 후 KBS 아카이브 자료실에서 잠들고 있는 처지이지만(...), 이병헌의 초창기 등장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커리어 역사상 유일한 일일드라마 출연작이다.[5] 그는 이 작품으로 동년 말 KBS 연기대상 남자신인상을 받았다. 중국집 배달부를 소재로 했으며, 이병헌과 임창정의 초기작으로 이후 두 사람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였다.
한편, 오프닝 장면을 작중 인물이나 배경을 레고 블럭과 미니피겨로 표현한 디오라마를 보여주는 식이라서 꽤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의외로 상당히 고퀄리티인게 특징.[6] 촬영은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서 주로 했다.
한국에서의 인지도와 다르게 일본에선 '뵨사마' 열풍에 편승하여 2007년 6월 8일에 DVD까지 나왔는데, 제작은 JVD, 판매는 KBS 미디어가 각각 맡았다. 2021년 1월에는 유튜브 KBS '같이삽시다' 채널을 통해 마지막화가 공개됐다.
2.1. 출연진
[1] 경상북도 안동시 세계물포럼기념공원에 설치된 노래비[2] 본명은 최시걸이다. 신대성은 예명. 당시에 그가 사귀던 사이였던 현재 부인 이름이 신영희라서, 부인에게 성을 따오고 앞으로 대성하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대성이라 지었다는 이야기도 송대관이 한 적 있으나 신대성에게 직접 검증되지는 않았다. 사실 송대관처럼 가수활동도 했던 작곡가 겸 가수(1949년생이라 송대관보다 3살 어리다)였으나, 가수로서 인기도 못 얻었기도 했고 작곡의 재능이 더 뛰어나서 가수를 포기하고 작곡가의 길만 걷기로 하면서 송대관과 쭉 함께했다고 한다. 송대관은 신대성이 동생이지만 항상 그를 최선생이나 신선생이라 불렀다고 한다. 2010년에 사망하였는데, 당시 송대관이 장례식장에서 오열하였다고 알려진다. 한편 크러쉬의 고모부이기도 하다.[3] 원래 가사는 '운명아 비켜라 내가 나간다, 떠도는 놈이라고 괄시를 말아라, 쨍하고 해뜰날 있을 거니까' 같은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수정해서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로 바꿨더니 심의위원측에서 '쨍하고 해뜰날 돌아왔단다로 해야지, 왜 돌아온단다로 해서 아직 해뜰날이 안 돌아온걸로 만드냐?'며 압박도 주었다고 한다.[4] 여담으로 LA 다저스 홈구장 다저 스타디움의 배경음으로 허구한 날 나오는 바람에 중계를 보던 한국인들이 '미국 야구장에 왠 해뜰날?'이라며 궁금해하기도 한다.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인 나경민의 응원가이기도 하다.[5] 1993년작 <들국화>에서도 출연한 바 있으나, 특별출연이었으며 오현경의 남자친구 역으로서 베트남전에 나갔다 폭격으로 전사하는 것에서 끝났다.[6] 사용된 레고 미니피겨들 중에 중국집 배달부처럼 꾸민 레고 피니피겨도 있다. 배달부 가방에 '청화반점'이라고 새긴 게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