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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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독립유공자 송영근은 그의 조부이다.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이며, 동향 선배인 배우 박근형과는 30년이 넘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
그가 가수가 된 계기는 전북 전주 집에서 나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상경 중에 김상희의 남편인 류훈근씨의 소개를 받아 KBS 방송국에 들어갔고, 거기서 트로트 가수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때부터 가수로서 데뷔를 시작했다고 한다.
태진아와는 라이벌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며, 같이 잇몸약 광고에도 출연했다. 토크쇼에 출연하면 서로 까기 바쁘다. 예를 들어, 송대관 씨 曰 "태진아는 '''스타킹 신은 여자 후배'''한테 더 잘해준다" 이런 식. 하지만 이건 '''기믹'''일 뿐이고, 실제로는 둘이 상당히 친해서 서로 상대방에게 자가용을 빌리기도 하고, 송대관이 어느 쇼 프로그램에서는 최고급 양복을 입고 나와서는 "이 옷은 오늘 무대를 위해서 '''태진아가 빌려준 정장'''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송대관과 태진아처럼 겉으로는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실제로는 친한 사이인 사람들에게 'X진아-X대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한다.
데뷔하고도 한동안 무명 생활을 전전하다 1975년에 낸 신곡 '해뜰날'이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처음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온갖 상을 휩쓸면서 그해 가수왕까지 석권했다. 이에 대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고는 "그래 노래는 이렇게 신이 나야지!"하며 좋아했다는 카더라가 돌았다. 또 실제로 그 시절 수도권의 공군 모 헌병부대에서는 마치 군가마냥 하루 종일 '해뜰날'만 틀어댄 적도 있다고 한다.
그 후 돌연 미국으로 이민하여 한동안 브라운관에 나타나지 않다가 1989년 '혼자랍니다'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였다. 이후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큰 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의 많은 히트곡을 연이어 뻥뻥 터뜨리며 현철,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올라섰다. 재밌는 점은 네 사람이 각각 호남, 영남, 호서 지역을 대표하는 트로트 가수라는 점이다. 태진아는 충청도, 송대관은 전라도, 설운도와 현철은 경상도. 또 하나의 특이사항으로는 트로트 4대 천왕 중 유일하게 예명을 안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후 1998년 ''''네박자#s-1'''', 2003년 ''''유행가'''' 등도 히트시키며 최고의 트로트 가수임을 입증했다.
2. 논란
부인[4] 이 2009년, 마카오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2011년 기소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가 갚지 못한 금액만 10억이고, 그 외 여러 빚을 합해 현재 알려진 금액이 166억에 이른다고. 그 중엔 보령시에 체납한 지방세 1억 원도 포함된다.
송대관 본인 또한 캐나다 교포 A로부터 4억 원대 토지 분양권을 불법으로 가로챈 사기 혐의가 있어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사건 조사 결과 검찰은 송대관에게 1년 6개월, 송대관의 아내는 2년 6개월의 형을, 서울 서부지법은 10월 14일 송대관에게 징역 1년 2월 집행유예 2년을, 송대관 아내는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살고 있던 33억 원짜리 집과 6억 1천만 원짜리 화성시 토지까지 경매로 넘기고도 빚을 다 갚지 못하여 결국 법원에 회생 신청까지 했다는데, 라이벌인 태진아가 연예 사업으로 대박을 친 것과는 비교가 되면서 안습. 그리고 2014년 12월에 KBS와 MBC에서 출연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5년 1월 2일, 아내가 보석금으로 풀려났다. 송대관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항소했고, 끝내 2015년 8월 13일,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동년 11월 12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아 사기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후 출연정지 처분이 해제되어 동년 12월 26일 MBN의 동치미로 복귀했으며, 이어 KBS에서도 2016년 1월 25일, 가요무대에 출연하면서 풀린 것이 확정되었다. 결과가 무죄인지라 시청자들의 거부감은 거의 없는 편[5] .
그런데 2017년 봄, 후배 가수 김연자 및 김연자의 매니저 홍상기와의 관련된 사건 때문에[6] 다시금 까이고 있었다. 일단 누구 말이 맞는지부터는 더 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 일은 길게 가지 않고 조용히 묻혔다.[7]
2018년, 모 방송에 출연했는데 본인의 말에 따르면 약 160억의 빚 가운데 90% 정도를 갚고 은행 대출로 널찍한 새 집도 장만했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가리는 거 없이 닥치는 대로 공연을 다니면서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채우며, 착실히 빚을 갚았다고 한다. 링크. 다만 이조차도 개인 회생 절차로 인해 탕감을 받은 상태라 네티즌들의 여론은 썩 좋지 않다. 심지어 룰라 이상민과 비교받으며 조롱받고 있다.
3. 그 외
송대관과 관련해서 유명한 이야기들 중 하나로는 '해뜰날' 표절 사건이 있다. The J. Geils Band의 노래 중에 'Centerfold'라는 노래가 있는데[8] , 이게 '해뜰날'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돈 적이 있었다. 직접 들어보는 게 빠르다.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된 적 있었고[9] 송대관 측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했었지만 쿨하게 씹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의외로 개그맨 활동도 잠깐 했었다. 개그야에서 '뭔 말인지 알지' 코너에서 2개월 정도 오정태와 같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인연으로 오정태의 결혼식에는 실제 주례를 봐주기도 했다. 관련 기사.
1대 100 106회 전반전 방송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슈퍼스타K4가 방영됐을 때 장년층 시청자들이 이분과 홍대광을 헷갈려 했으며, 유도인 송대남과 이분(송대관) 역시도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한 적이 있었다.
2016년 2월, 모친상을 당했다.
이 동영상을 보면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떠나 새에덴교회에 등록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새에덴교회에는 같은 트로트 가수이자 선배인 남진도 장로로 있다.
3.1 운동 당시 정읍군 태인면에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른 송영근 선생의 손자임이 밝혀졌다.
이따금씩 태진아와 묶어서 까이기도 하는데, 이유는 한국의 정통 트로트를 뽕짝으로 도배해서 망쳐버린 원흉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대표곡 '차표 한 장'을 부를 때면 기차 차표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불렀다. 어느 날 무대를 오르려다 차표가 없어서 태진아가 손에 쥔 물건을 쥐고 무대에 올랐는데,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니 손에 들려있던 것이 차표가 아닌 약봉투였다. 그나마도 상표가 보이는 쪽을 보이면서 간접 광고를 이유로 방송에서 편집된 적이 있다고 한다(...).
4. 주요 곡
- 해뜰날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2008년에 신지가 리메이크한 곡이다.
- 네박자(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박자 속에~): 비와이가 쇼미더머니5에서 이 곡의 제목을 응용한 노래인 '쌈박자(XamBaqJa)'를 불렀다.
- 유행가(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 번 불러본다~): 이 노래는 오히려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더 끌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 차표 한 장(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 아내의 생일(어느날 무심코 달력을 보니~)
- 사랑해서 미안해(사랑해서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해~): 신지와 듀엣을 한 곡이다.
- 분위기 좋고(분위기 좋고~ 느낌이 와요~): 신지와 듀엣을 한 곡이다.
- 고향이 남쪽이랬지(그 사람 고향이 남쪽이랬지~)
- 큰소리 뻥뻥(오늘도 큰소리 뻥뻥 칠 거야~)
- 인생은 생방송(인생은 재방송 안 돼 녹화도 안 돼~)
- 그 사람이 그 사람(A라는 사람도 사랑하고 B라는 사람도 사랑했지만~)
- 딱 좋아(이 나이에 못 할 게 뭐가 있을까~)[10]
- 주님과의 약속(송대관 첫 찬양음반)
- 한번 더(한번 더 한번 더 뛰어보자~)
5. 연기 활동
6. 광고 출연
[1] 태진아와 선 것을 보면 그보다 작은 테가 많이 난다. 또한, 신지가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 같이 선 걸 감안하면, 하이힐 굽 높이만 뺀다 하더라도 차이가 살짝 있다.[2] 기사.[3] 참조.[4] 여담으로, 이분의 언니이자 송대관의 처형은 김주하의 시어머니로, 아들과 짜고 사기결혼을 시킨 인간 말종이다.[5] 그리고 영재나 김은오, 김우주 등은 형이 확정되었음에도 출연금지가 되지 않아 계속된 연패 행진 중이다.[6] 여기 참조.[7] 사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도 전에 서로간의 말다툼에 불과했고, 실제 폭력까진 이뤄지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묻힐 수밖에 없었다.[8]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6주간 차지했을 정도로 당대의 히트곡이다.[9] 이 밴드의 멤버 중 한 명이 주한미군 출신이어서 이 노래를 듣고 베꼈을 거라는 설을 제기한 내용이었는데, 이 이야기 자체는 거짓으로 나왔지만 사건 자체는 진짜다.[10] 홍진영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