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삼호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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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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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및 본공장으로, 2010년대에 2안벽 확장 및 돌핀안벽 추가, 육상 도크 및 플로팅 도크가 추가 되기 이전 사진으로 2016년 현재는 면적 및 시설이 더욱 확장된 상태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조선업체로,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본사 및 본공장이 소재하고 있고, 인근 대불공단에 사외공장 등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그룹 내에서는 줄여서 'HSHI'로 부르기도 한다. 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도 "www.hshi.co.kr"이기도 하고, 외국인 선주나 선주, 선급 감독관 등과 접할 일이 많은 조선업의 특성상 이 약칭도 통용된다. 반대로 삼호 쪽에서 현대중공업을 부를 때는 HHI나 현중, 현대 등으로 부른다.
'''대한민국의 대기업 중 호남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는 몇 안되는 대기업'''[2] 이기도 하다. 광주광역시의 기아자동차도 16차로 대로 양옆으로 들어서 있는 등 포스가 엄청나지만 당연하게도 본사 소재지는 아니다.[3] 하지만 현대삼호중공업의 경우는 호남지방에 본사까지 둔 케이스로 중소도시에 해당하는 목포시와 영암군에 1년에 임금으로만 7,000억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풀어놓고[4] 비어있던 대불공단을 협력사 및 관련 회사들로 가득채우고 영암군에서도 가장 변방 끄트머리였던 삼호면을 읍으로 승격시킨 일등공신이기도 하는 등 지역 내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시설이 동부권에 몰려있는 전남[5] 에서 서부권이 알거지가 되지 않게 해주는 버팀목.
현대중공업 및 현대미포중공업과 함께 현대중공업 그룹의 3대 조선회사중 하나이지만 유일하게 전라남도 목포권인 영암군 삼호읍에 위치하고 있고, 유일하게 상장사도 아니다. 또한 유일하게 태생이 현대그룹이 아니고 한라그룹 출신이다. 뭐 어찌되었건 한라그룹이나 현대중공업그룹이나 범 현대가이기는 하다.
2. 역사
본사는 1976년 현대양행 인천조선소를 기반으로 했으며, 1977년 인천조선이 설립됐다. 1980년에 인천공장을 확장하고 1987년부터 '한라' 브랜드[6] 로 지게차를 처음 생산해 중장비 사업에도 진출했다. 1990년 한라중공업으로 사명을 바꾼 뒤, 1992년에 본거지인 인천 대신에 땅값도 싸고 개발 가능성도 있던 전남 영암군 삼호면(이후 삼호읍으로 승격)의 88만평 부지에 새 조선소를 짓고 1996년 1호 선박을 건조했다. 반면 중장비부문은 1993년 충북 음성군에 소이공장[7] 이 세워지자 생산라인을 그리로 옮겼고, 1994년에 이베코 덤프트럭[8] 을 생산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삼호조선소 투자에 대한 연대채무 등으로 한라그룹이 부도처리되었고, 정부에서는 고용인원이 많은 조선소를 살리기 위해서 5년간 위탁경영후 회생되어 매각한다면 우선협상자로 지정해준다는 조건하에 현대중공업에 위탁경영을 맡겼다. 1998년 가교회사인 '''RH중공업'''[9] 을 만들어 기존 한라중공업의 연대보증 등을 제외한 삼호조선소 및 소이공장 자산만을 이전시키고[10] 기존 한라중공업 법인은 청산하였고, 1999년 사명을 소재지인 삼호읍에서 딴 '''삼호중공업'''으로 변경하여 2001년에 중장비 사업에서 철수했다. 2002년 위탁경영 종료 후 현대중공업이 정식 인수하였고, 동년 출범한 현대중공업그룹에 편입되었다. 2003년 현 사명으로 개칭했다.
2015년 현재 정몽준 -(10.15%)→ 현대중공업 -(94.92%)→ 현대삼호중공업 -(43.51%)→ 현대미포조선 -(7.98%)→ 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현대중공업그룹 순환출자 지배구조의 한 축이 되었다.
3. 지배구조
2019년 10월 기준
4. 역대 임원
4.1. 한라중공업
- 정인영 (1977~1979/1980~1989)
- 김종문 (1979~1980)
- 홍석의 (1983)
- 정몽국 (1988~1991)
- 최병권 (1991~1992)
- 황병주 (1992~1994)
- 유광현 (1994~1996)
- 강경호 (1995~1999)
- 최길선, 변정수 (1997~1999)
4.2. 현대삼호중공업 대표이사
- 이연재 (1999~2005)
- 강수현 (2005~2008)
- 황무수 (2008~2010)
- 오병욱 (2010~2013)
- 하경진 (2013~2015)
- 윤문균 (2015~2018)
- 이상균 (2018~2020)
- 김형관 (2020~ )
5. 그룹 내 위상
울산이 본거지인 현대중공업의 계열사임에도 본사의 소재지가 목포 쪽인데다가 현대중공업에 비해 짧은 역사 및 그룹 내에서 태생이 사생아인 점 때문에 현대중공업이나 현대미포조선 등에 비해서 인지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그룹 내 신입사원들조차도 신입사원 연수 때까지 현대삼호중공업이라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른다거나, 알더라도 어디에 있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거나, 현대중공업주식회사의 일부로 아는[11] 경우도 비일비재. 혹은 그쪽에도 현대중공업 계열사가 있던가요?? 등의 반응도 나온다.
심지어 임직원들의 주 생활권인 목포시민들 조차도 한라중공업이던 시절의 역사보다도 현대중공업 그룹으로서의 역사가 훨씬 김에도 불구하고 2014년 현재까지도 이 회사를 '한라중공업'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원아파트 쪽에 있는 오래된 가게들은 아직도 '한라XX'등의 상호도 보이고..
현대중공업 그룹내에서의 위치가 애매한 것이, 현대미포조선과 달리 기본적으론 현대중공업과 똑같은 체격의 선박을 건조한다.[12] 현대중공업에서는 다른 사업도 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삼호중공업 쪽의 입장에서는 현대중공업과 사업영역이 100% 겹친다. 이러한 이유로 그룹사 간의 경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따로 수주영업은 하지 않고 현대중공업에서 수주한 선박의 일부를 기본설계까지 완료된 상태로 받아서 자체적으로 상세 및 의장 설계를 진행한 후 건조한다. 따라서 현대중공업 영업 쪽이나 기본설계부 쪽에 근무한다면 현대삼호중공업 쪽과도 협조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또한 2015년 1월부로 현대중공업 그룹 내 조선 3사의 AS부가 통합되면서 현대삼호중공업 쪽의 AS업무도 현대중공업으로 이관되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면서 조선해양부문의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이 설립되었다. 계열사들의 출혈경쟁이나 중복 영업을 막기 위해 수주영업은 한국조선해양이 맡고, 한국조선해양이 따온 수주를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에 나눠주고 있다.
6. 회사생활
사내 근무 인원은 협력사 인원 포함 1만 5천명 가량이 근무중이며, 용당리에 본 공장 뿐만 아니라 대불공장에 사외공장을 운영중으로 일부 부서가 나가 있다. 현대중공업이 서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삼호중공업도 서울사무소가 있기는 하나 이 쪽은 재무 관련 일부 부서가 있는 수준이고 업무의 99%가 영암군 삼호읍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2016년 현재 관련 업무가 HHI로 이관됨에 따라 해당 부서원들이 HHI 소속이 됨에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사업장 전부가 삼호읍에 속하게 되었다.
직렬은 크게는 사무기술직과 생산기술직 (생산직)이 으로 분류되고 생산직의 경우에도 정규직이 있는가 하면, 일반적인 하청업체와는 생태가 다른 사내하청(이하 협력사)도 존재하는 점은 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 정규직 생산직(이하 직영)의 경우 고용 안정도 매우 높으며 보수 측면에서도 사무기술직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다만 이들도 노천의 도크나 안벽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비슷한 만큼 작업환경이 비교적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사무기술직 내에서도 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설계 부문과 현장으로 돌아다니는 생산관리 직렬 간의 근무환경 차이가 있기는 하나, 뭐 사무실 안에만 있는게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직렬별로 장단점이 있는건 사실. (사내)협력사의 경우, 아예 현대중공업 부지와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고 현대중공업 생산관리자들의 작업지시를 받는 특이한 형태를 보여준다. 물론 일단은 독립된 법인들이기 때문에 완벽한 상하 관계나 종속 관계에 있지는 않다. 물론 갑을 관계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비정규직 증가, 고용 유연화 추세 탓인지 비교적 협력사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13] 등은 현대중공업과 유사하다.
역시 현대중공업 처럼 교육기관인 기술교육원에서 매년 몇 회에 걸쳐 기술연수생을 뽑는데, 이를 이수할 경우 협력사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추후 직영으로 편입시킨다고 한다. 협력사라고 해도 단순노무에 비해 용접, 절단 등의 기술을 보유한 인력은 보수 등에 있어서 대우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사무기술직의 초봉은 모기업인 현대중공업보다 조금 높은 수준[14] 으로 현대삼호중공업의 존재를 모르던 현대중공업 신입사원들이 다시 한번 놀라는 부분이라 카더라. 하지만 2010년대 조선업의 침체로 현대중공업과 함께 회사사정이 어려워지며 2014년 12월 부로 과장급 이상 사무기술직에 대한 연봉제가 실시되었다.
또한 소재지가 지방인 관계로 수 천세대의 사원 임대 아파트 등 각종 복리후생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신입사원들에게 독신자 숙소를 제공하고,[15] 결혼을 하여서 부양가족이 생기면 가족사택도 제공되는데 둘 다 시설보증금 수준의 보증금만 받기 때문에 평생 거의 공짜 비슷하게 살 수 있다. 다만 애 낳고 학교 다닐 때 쯤 되고 돈도 어느정도 모으면 자녀 교육 및 생활 환경 등의 이유로 주로 목포시 일대나 남악신도시 등에 집을 구해서 나가는 편. 하지만 목포시의 인구 밀집 지역 등과의 거리도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하기도 힘든 관계[16] 로 목포시와 남악신도시 및 삼호읍 곳곳에 수십대의 출퇴근 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 6시 반 쯤 및 퇴근시간대가 되면 수십대의 관광버스 행렬 및 근무복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야드의 규모가 규모인지라 사내 여러 곳에 출퇴근 버스 정류장이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서 혹은 자신의 사무실이 각 출입문 인근에 있는 경우 자가용을 가지고 출퇴근하기도 하지만 부서장급 직책자 아래로는 야드 내에 자가용은 못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에 근무지에 따라서 각 출입문의 위병소(?)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자신이 근무하는 건물까지 들어가는 시간이 2~30분 걸릴 수도 있다. 2015년 3월 정문 인근에 신축 본관으로 입주한 부서원들의 경우 자가용 출근 비중이 늘어났다.
전술하였듯이 임원 및 부서장급의 직원만 자가용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업무상 사내 이동시에는 사내 셔틀버스 및 자전거를 주로 이용한다. 그나마 생산부서나 현장 업체들은 트럭 한대 씩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서 특성상 이런 곳과 안면이 있다면 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위치가 위치이다보니, 목포 쪽으로 드나들 때 택시를 타기도 애로사항이 발생하는데, 일단 회사 위치가 영암 땅이다 보니 목포에서 삼호로 들어갈 때 목포 택시를 타면 그 차는 빈 차로 목포로 돌아와야 되고, 삼호에서 목포로 나갈 때는 삼호읍에 면허를 둔 택시를 타야되는데 일단 삼호 택시는 대수 자체가 부족하고, 영업구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왕복요금을 지불하거나 미리 기사와 요금을 합의하고 가게 되는데, 2015년 기준으로 1만 5천원 ~ 2만원 가까운 요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직원들이라면 하나씩은 알고 있는 모종의 번호(?)로 콜 택시를 부르면 조금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버스의 경우 목포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2개 정도 있는데 둘 다 주말에는 정규 운행시간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17] 버스 시간표와 딱 맞는 게 아니면 보통 모종의 번호(...)를 통해 비교적 저렴한 요금으로 택시를 타고 다닌다[18]
회사의 달력은 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 달력에서 시간이 멈춰있는데, 그래서 김대중 정부 때 폐지된 신정 연휴인 양력 1월 2일, 노무현 정부 때 공휴일에서 제외된 식목일, 제헌절 등이 아직도 휴일로 지정되어 있고, 이명박 정부 때 다시 공휴일이 된 한글날은 아직 평일이다.[19] 특이하게 설, 추석 연휴가 4일 씩이고, 토요일을 제외한 공휴일, 일요일 등이 겹칠경우 그 날짜만큼 더 쉬는 대체휴일제가 운영중인데, 현대중공업이나 현대미포조선의 휴일과도 맞지 않고,[20] 사내 협력사 및 도급 업체 등과도 휴일이 불일치하여, 누구는 출근하고 누구는 출근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며, 또한 HSHI에서 일하지만 소속이 HHI인 몇몇 부서와도 휴일이 불일치 하여, 해마다 단체교섭 때 취업규칙 개정 논의 사항으로 올라오지만 2016년 현재까지도 매년 결정이 유보되고 있는 상태이다. 2018년 겨울 기준 교섭 성공으로 19년부터는 다른 두 그룹사와 휴일을 일치시킬 예정.
7. 시설
- 매일 밤 대불공단에 있는 사외공장 및 협력사 등에서 각종 자재 및 블럭들을 본 공장으로 실어나르기 때문에 영산호 삼거리에서 삼호중공업까지의 대불로는 밤마다 대형 화물차 행렬이 펼쳐지고 대형 화물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서 대불로에는 중앙분리대에 나무도 안 심어져 있고, 신호등도 회전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신호등 기둥에도 보조등이 달려 있어서 대형 블럭을 수송할 때는 신호등이 돌아가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전인 대통령 당선자 신분일 때 말 한마디로 전봇대를 뽑았다는 동네도 이 동네다.
- 1970년대에 조성하여 여기저기 확장한 현대중공업이나 현대미포조선과 달리 1990년대에 계획적으로 건설한 야드를 가지고 있어서 야드가 큼직큼직하고 레이아웃 하나는 잘 되어 있다고 한다. 확실히 사내 도로도 훨씬 넓고 레이아웃도 공정별로 잘 짜여져 있기는 하다. 그래서 현대중공업에서 두 세 개의 블럭으로 나눠서 조립하는 선박도 이 쪽에서는 한 번에 조립하기도 한다. 현대 조선업에서 70% 이상의 가까운 공정은 도크에 탑재하기 전엔 선행작업에서 이루어지고, 도크 내 작업을 최소화하여 공기를 단축하는 것이 수익성을 결정하는 큰 요소이기 때문에 더 큰 블록으로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이 같은 그룹사 내의 현대중공업보다도 훨씬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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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부족한 사무공간을 보충하기 위해 정문 인근에 신축본관을 지었고, 2015년 2월부터 이주가 시작되어 2015년 3월 이후에는 생산 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무기술직은 신축본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건물에 입주한 부서들이 위치했던 야드 내 곳곳의 사무실에는 생산부서 사무실들이 재 배치되어 만성적인 사무공간 부족 문제가 상당히 해소되었다. 조감도만 보면 황량한 벌판에 대형건물만 덜렁 서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저정도 까지는 아니고, 본관 앞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들이 조금 있다. 하지만 회사의 주변 환경에 비하면 상당히 큰 건물이긴 하다.
8. 노동조합
9. 이모저모
- 회사 정문 바로 옆 길을 통해 언덕으로 올라가면 설립 당시 전남권 유일의 특1급 호텔이었던 '호텔현대 목포'가 있다. 관광시설로서의 호텔의 역할을 생각하면 뜬금없는 위치이긴 한데, 주로 회사에서 선주 등 귀빈 접대, 교육 및 행사 등등의 이유로 쓴다. 일단 현대 호텔 자체가 현대중공업 계열사 이기도 하고... 그래도 울산 본진 앞 호텔이 하기휴가 기간 동안 회사 관련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가서 극성수기에 특가 할인을 하는 것에 비하면, 이 쪽은 관광객들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주변에 고급 호텔이 없기도 하고, 진도, 완도, 해남 등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때문이다. 또 삼호중공업 야드가 보이는 야경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애매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방값은 특1급 호텔답게 목포 시내 관광호텔들보다 훨씬 비싼 편.
-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이 K리그 소속 프로축구단인 울산 현대 호랑이를 운영중인데 비해 이 쪽은 현대 코끼리 씨름단을 운영중이다. 원래 현대중공업 산하에 있었지만 민속씨름이 와해되면서 실업팀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현대삼호중공업 관할로 바뀐 것. 씨름단도 결국 2016년 연말까지만 유지하고 선수단 전원이 새로 창단하는 영암군청 씨름단으로 이적하였다.
- 2018년에는 인양된 세월호 직립공사에 참여했고, 수익금 전액을 목포복지재단에 기부했다.
[1] 한라중공업 시절까지 포함하면 역사가 좀 더 길어지지만 일단 회사 공식홈페이지의 회사 소개에 현대중공업에서 위탁경영을 시작한 1999년부터로 소개하고 있다.[2] 그 외에는 금호타이어나 금호고속 등이 광주광역시에 명목상 본사를 두고 있으나, 실질적인 본사 업무는 서울에서 행하고 있다.[3]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전신인 아시아자동차 시절에는 광주에 본사가 있긴 했다.[4] 전술하였듯 소재지는 영암군이지만 사실상 목포시나 다름없다. 영암군의 전통적인 중심지인 영암읍이나 전남방직 공장 있는 신북면 등은 예로부터 광주권이지만 영산강하구둑 축조 이후 삼호, 독천 등 서영암 지역은 목포권으로 흡수되었다. 이게 그냥 광역적으로만 목포권이라는 게 아니라 정말 목포시 시계 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5] 사실 삼호중공업이 크게 성장한 현대에도 전남의 2,3차 산업 비중은 여전히 동부권에 집중되어 있다. [6] 과거 현대양행 시절에도 'HALLA' 브랜드로 건설중장비를 생산한 적이 있다.[7] 現 현대건설기계 음성공장, 스페코 음성공장, 삼익악기 음성공장, 현대중공업 음성공장[8] 이베코 유로트래커 모델[9] RH는 정리절차를 맡은 미국 로스차일드와 한라중공업의 머릿글자이다. 마찬가지로 한라시멘트 역시 RH시멘트 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10] 반면 플랜트사업부는 스페코로 팔렸다.[11] 현대중공업 그룹의 계열사가 아닌 현대중공업주식회사의 지점 정도로. 같은 호남권인 전북 군산시에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가 있고, 삼호의 사외공장이 있는 대불공단에는 현대미포조선의 블록공장도 있으니 착각할만 하다.[12] 현대미포조선은 현대중공업 선박수리소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조선소 자체의 규모가 작다. 게다가 미포만의 뻘을 매립하고 지은 탓에 지반이 약해서 조선소 특유의 골리앗 크레인도 없다. 이 때문에 현대미포조선은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중형선박을 담당한다. 반면 현대삼호중공업은 대형선박, 초대형선박을 건조하기 때문에 현대중공업과 완전히 업종이 겹친다.[13] 사실 정확히는 그냥 인력과 시간이 부족해서(...) 협력사에 맡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14] 다른건 다 같고 격오지수당이 월 10여만원 붙는다.[15] 2인 1실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채용규모가 예전같지 않고 독신의 젊은 직원 수가 줄어든 현재는 1인 1실이라고 한다.[16] 조선업의 이른 출근 시간, 목포시 시내버스가 6시는 넘어야 굴러다니기 시작한다는 점, 대중교통 노선은 사택 쪽으로 지나간다는 이유 등으로 사실상 대중교통으로 출근은 불가능하다.[17] 대충 시 수준의 버스 시간표 비슷하게 6시 ~ 22시로 찍혀 있는데, 수요가 워낙 없다 보니 주말에는 저녁 8시가 넘은 뒤로는 오지 않는다. [18] 대신 출발지 - 도착지를 실시간으로 관제(...)하면서 택시 여러 대를 운영하는 특성상 평일에 사택에서 나가거나 새벽에 택시를 이용하는 등 수요가 많지 않는 경우에는 이용하기가 좀 어렵다.[19] 그래서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한글날 쯤에 선배들이 쉬는 날 아니고 정상 출근이라고 꼭 말해주곤 한다.[20] 이 쪽은 대체휴일이 없는 대신에 하기 집중 휴가가 2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