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

 



'''현대중공업그룹'''
''' Hyundai Heavy Industries Group'''
[image]
'''창립일'''
1972년 3월 23일[1]
'''분리일'''
2002년 2월 28일
'''주소'''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진순환도로 1000 (전하동)
'''창업주'''
정주영
'''대주주'''
정몽준
'''회장'''
권오갑
'''유형'''
기업집단
'''지주회사'''
현대중공업지주
'''시가총액'''
13조 5,417억원 (2020년 8월 14일) #
'''자산총액'''
62조 9,000억원 (재계서열 9위)
'''산업 분야'''
조선·산업기계·에너지
현대중공업그룹 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3. 오너 일가 (범 현대가)
4. 경영진
4.1. 회장급
4.2. 부회장급
4.3. 사장급
4.4. 역대 임원
5. 채용
6. 계열사 및 재단
6.1. 지주
6.2. 조선·해양 부문
6.3. 산업기계 부문
6.4. 에너지 부문
6.5. 기타 서비스 부문
6.6. 사회공헌
7. 이전 계열사
7.1. 현대코퍼레이션 계열
7.2. 현대미래로 계열


1. 개요


[image]
범 현대계 중공업 특화 기업집단으로 2020년 1월 기준으로 재계서열 8위다. 지주회사는 현대중공업지주[2].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6남인 정몽준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나온 기업집단이지만, 정몽준이 아니라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중이다. 정몽준은 정치를 했기 때문. 정몽준은 일찍이 현대중공업 사장, 회장을 지냈으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한 후로는 현대중공업 고문이라는 직함을 쓰다 이후 고문 자리에서도 내려와 대주주로만 남아있다.
계열분리가 된 지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모체인 현대그룹 고유의 피라미드 로고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게 특징이다.(일부 계열사 제외) 비슷한 케이스로 모든 범 현대가의 모태 기업인 현대건설이 있는데, 피라미드 로고를 쓰지 않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지만 회사 자체가 워낙 상징성이 있어서 그런지 해당 그룹에서 유일하게 피라미드 로고를 사용 중이다.[3]

2. 역사


현대그룹이 중공업사업에 손을 댄 건 1970년에 현대건설 산하 조선사업부가 발족되면서부터다. 1973년 '현대조선중공업'으로 분리된 후 이듬해 울산조선소 1~2도크를 준공하며 본격적으로 조선업을 개시했으며, 1975년에 첫 자회사 현대미포조선소를 세운 후 1976년에 엔진사업부, 1977년 중전기사업부 등을 각각 발족했다가 1978년에 '현대중공업'으로 사명을 바꾸며 그 사업부 2개를 현대엔진공업과 현대중전기로 각각 분할했다. 1983년에 중기계사업본부를 발족해 중장비사업에도 진출하고 1988년에 현대로보트산업을 세운 후, 이듬해엔 건설장비사업부를 '현대중장비'로 분사했다.
1994년 현대중공업이 현대중전기와 현대중장비를 합병해 단일회사로 변모하여 2000년 왕자의 난 사건을 계기로 2002년에 현대그룹 품을 벗어나 독립했고, 삼호중공업도 정식 인수했다. 2010년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로부터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해 정유사업에도 진출했다. 2017년에 현대중공업 산하 3개 사업부를 현대건설기계 등 3개사로 분할시키고 2018년에 현대로보틱스를 지주사 현대중공업지주로 출범시켰다.

3. 오너 일가 (범 현대가)




4. 경영진



4.1. 회장급



4.2. 부회장급


없음.

4.3. 사장급


  •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 신현대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사장)
  •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4.4. 역대 임원


  • 그룹 회장


5. 채용




6. 계열사 및 재단


주요 계열사로 현대중공업, 현대오일뱅크,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을 두고 있다.[4]

6.1. 지주


  • 현대중공업지주: 현대중공업에서 인적 분할하여 2017년 설립된 회사로 그룹의 지주회사. 당초 명칭은 현대로보틱스였으나 변경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정몽준이다.

6.2. 조선·해양 부문


  • 한국조선해양: 2019년 6월 3일 공식 출범할 중간지주. 기존 현대중공업을 물적분할하여 남는 존속회사다.
    •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조선사업부로 시작하여 1973년 현대조선중공업으로 분리되었다. 1978년 2월 현대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었으나, 2019년 5월 31일 임시주주총회로 인하여 물적분할한후 한국조선해양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비상장 회사로 바뀌었다.
    • 현대미포조선: 수리 조선소로 시작한 계열사였으나 동남아 등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고, 수익성 개선을 위해 신조로 전환하였다. 대형선박보다 약간 작은 체격의 중형 선박을 건조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되어있다.
      • 현대베트남조선: 현대중공업이 베트남 국영조선공사와 합작으로 설립한 베트남 현지법인. 현대미포조선의 수리조선부문을 이관받았으나, 현재는 신조로 전환했다.
    • 현대삼호중공업: 원래 한라중공업의 삼호조선소로 세워진 회사다.[5] 현대미포조선과 달리 기본적으론 현대중공업과 똑같은 체격의 선박을 건조한다. 이처럼 사업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그룹사 간의 경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따로 수주영업은 하지 않고 현대중공업에서 수주한 선박의 일부를 기본설계까지 완료된 상태로 받아서 자체적으로 상세 및 의장 설계를 진행한 후 건조한다.[6]
  • 아비커스: 자율운항 등 스마트선박 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율운항 솔루션과 항해 보조시스템을 개발·판매하는 신규회사를 설립하였다.

6.3. 산업기계 부문


  • 현대로보틱스: 2017년 4월 현대중공업에서 분리되었다. 자동차 생산용 로봇, LCD 운송 로봇, 같은 그룹 내의 재단인 아산병원과 연계하여 개발한 의료용 로봇 등 다양한 분야의 로봇을 제조하고 있다.
  • 현대일렉트릭: 2017년 4월 현대중공업에서 분리되었다. 발전소에 들어가는 대형 변압기, 차단기, 회전기(모터, 발전기) 등 전기제품과 계측기, 제어시스템 등 전자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이에 관련된 설비를 설계 및 시공하기도 한다.
  • 현대건설기계: 2017년 4월 현대중공업에서 분리되었다. 지게차, 굴삭기, 휠로더 등을 생산한다.
  • 현대중공업파워시스템: 2018년 8월 설립한 보일러 전문 회사.
  • 현대코어모션

6.4. 에너지 부문


  • 현대오일뱅크: 본래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의 요절한 동생 정신영의 아들 정몽혁의 몫으로 일찍 현대정유그룹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그룹이 위험하자,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로부터 외자유치를 받았는데 IPIC가 최대주주로 오르자 정몽혁이 경영정보를 올바르게 제공하지 않았다며 경영에서 축출시킨다. 이후 매각시 우선인수권을 갖고있던 현대중공업에서 분쟁끝에 2009년 11월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로 이를 인수하여 다시 현대가로 돌아오게 되었다. 현대중공업에서 9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한 회사로 보는 경향도 있다. 경영보고서에서도 정유분야로 적어두기도 하고.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현대중공업에서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변경되었고 IPO를 추진하고 있다.
    • 현대코스모: 현대오일뱅크와 일본 코스모오일의 합작사.
    • 현대케미칼: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합작사.
    • 현대쉘베이스오일: 현대오일뱅크와 로열 더치 쉘의 합작사.
    • 현대오일터미널: 현대오일뱅크의 100% 자회사.
    • 현대OCI: 현대오일뱅크와 OCI의 합작사.
  • 현대에너지솔루션: 2017년 4월 현대중공업에서 분리되었다. 풍력, 태양광 발전 설비 모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대체에너지 시장이 미진하여 사업부 중 규모는 가장 작은 편이다. 2019년 5월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에서 현대에너지솔루션으로 사명을 바꿨다.

6.5. 기타 서비스 부문


  • 현대글로벌서비스: 2016년 12월 현대중공업에서 분사. 선박 유지보수와 기술 서비스, 선박 기자재 공급사업 등을 업으로 삼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준 대주주의 장남 정기선 부사장[7]의 주도로 분사가 이뤄졌다. 선박관련 환경규제가 강화 되고 있는 시기에 맞게 현대중공업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 되는 전도유망한 기업이다.
  • 현대E&T: 정확한 뜻은 Hyundai Engineering & Technology. 미포엔지니어링이 사명을 바꾼것으로, 본래 미포조선의 설계실이었다. 미포조선에서 자체적으로 필요성이 있어 설계실을 분리시켜 미포엔지니어링을 만들고 설계 일부를 외주식으로 넘겼는데, 이를 보다보니 큰 자산도 필요없고 사람만 있으면 되니 돈 만들기가 아주 쉬워보였던것 같다. 그래서 사세를 확장시켜 현대중공업ㆍ삼호중공업의 설계인원들까지 외주화하여 편입시켰으며, 중공업ㆍ미포조선ㆍ삼호중공업에서 자체적으로 해도 될 일을 외주 주더니[8] 회사 이름도 바꿨다고 알려져 있다.
  • 현대중공업MOS: 사내 중장비 및 크레인 등의 운용/정비인력을 분사시켜 만든 회사로 설립단계부터 노조의 강력한 견제를 받았지만 이직 조건에 각종 +@를 더해주며 나름 성공적으로 분사에 성공한 회사. 사내 지게차/크레인/트랜스포터의 운용 및 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분사 이후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골리앗 크레인과 블록 이동용 트랜스포터를 이용하여 가뜩이나 좁은 출퇴근버스 길을 막고 있어 임직원들 사이의 원성이 자자하다.
  • 현대중공업스포츠: 현대중공업그룹의 각 회사에서 지원하고 있는 프로와 실업 스포츠 팀으로 울산 현대(K리그1, 현대중공업), , [9]이 있는데 현대중공업스포츠(주)에서 운영하고 있다. 직원 수가 워낙 많은데다 지역 스포츠팀을 운영하다보니 사내 뉴스에 어느 부서의 누구 아들이 국가대표에 출전한다는 둥의 소식이 매년 나온다. 거기에 자체적으로 부서별 축구 대회인 현대스리가2016년까지 운영했다.

6.6. 사회공헌



7. 이전 계열사


  • 하이투자증권: CJ그룹의 CJ투자증권을 인수하여 출범하였다. 2008년 조선업이 호황일때 그룹내 넘쳐나는 현금성자산의 운용을 위해 현대미포조선이 인수했다.[10] 2016년 그룹의 구조조정과정에서 비주력사업을 정리함과 함께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증권계열 3사의 패키지매각을 추진중이었으나, 인수 이후 규모 성장이 그룹 내 재무활동로 인한 증가가 대부분이고, 증권업계 불황으로 매물이 많아 매각이 쉽게 되지 않았다.[11] 결국 인수가격 + 이후 증자를 포함해 1조원 이상이 투입되었는데 반도 못되는 4500억에 DGB금융지주인수하기로 하였다.
  • 하이자산운용: 하이투자증권의 자회사로서 CJ그룹의 CJ자산운용이었다. 하이투자증권과 마찬가지로 DGB금융지주가 인수했다.
  • 현대선물(현 하이투자선물): 현대중공업의 원자재관련 선물거래 전담부서를 바탕으로 1997년 정식 선물회사로 설립된, 이름 그대로 선물관련업무를 주로하는 회사다. 조선업 위기 이후 금융계열사 효율성 신장을 위해 하이투자증권의 자회사로 이관되었다. 하이투자증권과 마찬가지로 DGB금융지주가 인수하였다. 이후 이름도 하이투자선물로 변경.
  • 호텔현대(현 라한호텔): 해당 법인은 원래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이었다. 강릉 경포대[12]ㆍ울산[13]ㆍ경주[14]ㆍ블라디보스토크[15]ㆍ영암[16] 등에 위치하고 있다. 2017년 7월 비주력사업 정리의 목적으로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2000억원에 매각되었다. 울산·경주·영암은 법인과 같이 매각되었고, 강릉·블라디보스톡은 현대중공업 소유로 위탁경영을 한다고 했었는데, 블라디보스톡은 또 호텔롯데매각하기로 했다고 한다.
  • 현대중공업터보기계: 2016년 4월 현대중공업에서 분리되었다. 2019년 매각.
  • 현대힘스: 2019년 매각.
  • 바르질라현대엔진: 핀란드 바르질라와 2007년 합작으로 설립한 선박 엔진 회사. 현대중에서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2019년 해산.

7.1. 현대코퍼레이션 계열


현대종합상사는 왕자의 난을 거치며 은행 관리로 넘어간 것을 2009년에 인수하여 현대중공업그룹에 편입했다. 그리고 위 현대오일뱅크 항목에 기술된 바 있는 정몽혁이 2010년 현대종합상사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2014년 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26세 아들을 '''법무부 차장'''으로 입사시켰으며, 2015년 1월1일자로 현대씨엔에프 법부무 부장으로 발령내어 빈축을 샀다.
정몽혁이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할 자금이 부족하여 독립할 가능성이 낮다고 점쳐졌으나, 2015년 현대종합상사의 사업 중 알짜인 브랜드 관리사업과 정몽혁 일가 소유의 급식업체인 '''현대에쓰앤에쓰'''와[17]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수입육유통사업만 '''현대씨엔에프'''로 분리시키고, 정몽혁이 현대씨엔에프를 인수 → 현대씨엔에프가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하는 식으로 계열분리를 이루었다.
은행관리 시절 사업 다각화를 위해 이것저것 손을 대었는데, 특기할만한 것으로 '청도현대조선'이 있다. 2005년 조선 경기가 활황일때 중국 칭다오의 '링산조선소'를 인수한 것으로, 이후 조선해운경기가 침체되자 한해 200억의 손실을 내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후 2015년 매각에 성공했는데, 2500만 달러를 추가투입하여 채무상환에 사용하고, 보유지분 66.25%를 단돈 '1$'에 매각했다. 그렇게 해서야 이제 추가손실이 없을거라고 증권사에서 호재라 평가했다는 후문이 있다.

7.2. 현대미래로 계열


현대기업금융은 1996년 현대종합금융의 자회사인 현대파이낸스로 설립되었고, 현대종합상사 파산 이후 현대중공업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기업에 대한 대부업을 영위하다가 2015년 대부업 면허를 반납하고 신기술사업에 대한 투자를 담당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래의 현대기술투자와 사업영역이 겹치기때문에 합병가능성이 점쳐졌으나, 2016년 신기술사업투자면허를 반납하고, 다시 대부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현대기술투자는 1997년 설립된 벤처캐피탈 회사다. 현대기업금융이 최대주주다.
정주영의 8남 정몽일은 본래 금융 계열사인 현대울산종합금융을 물려받았으나 2001년 동양종합금융에 합병되어 정리되었다. 이후 형인 정몽준의 배려[18]로 금융계열사인 현대기업금융과 현대기술투자의 회장직을 겸했으며, 현대선물까지 3사의 경영을 총괄하며 생활해왔다. 그러나 조선업 위기가 심화되자 2015년 금융계열사 재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퇴임했다.
본래 비주력사업 정리 차원에서 하이투자증권·자산운용·현대선물을 매각하려 했으나 무산[19]되었다. 대신 정몽일이 기업금융 회장에 복귀하면서 범 현대가의 지원하에 현대미래로를 설립하고, 현대미래로가 현대기업금융을 인수하면서 그 산하인 기술투자까지 인수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16.7월말 현대중공업의 현대기업금융 지분 72.1% 중 62.2%를 매각하면서, 지주회사법상 경영권 행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분인 31%를 16.7.20 설립된 현대미래로가 인수하고, 나머지는 범 현대가에서 나눠서 인수하여 현대미래로를 최대 주주로 만들어주었다.
2016년 9월 경에 실시한 현대미래로의 유상증자에 현대종합상사, KCC, 현대산업개발, 현대에이앤아이(현대백화점그룹 계열) 등 범 현대가에서 지분 인수에 참여했다. 역시나 정몽일 지분은 30% 정도로 추정된다. 역시나 현대종합상사와 마찬가지로 친척 도와주기...


[1] 현대건설 시절 울산조선소 착공 기준.[2]현대로보틱스[3] 애초에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다른 기업들처럼 CI가 통일되지 않은 독자적인 형태며 현대그룹 계열분리 전에도 현대자동차는 독자적인 CI를 사용했다. 현대건설의 경우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이후 삼각형 로고는 계속 존재하지만 폰트가 현대자동차 폰트로 변경됐다.[4] 원래 조선업계는 호선번호의 중복 등을 방지하기 위해 본 명칭보다는 약자를 많이 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DSME, 삼성중공업의 경우 SHI, 한진중공업의 경우 HHIC를 사용하는 것처럼 자체적으로 약자를 정해 두고 있다.[5] 정주영의 첫째 동생인 정인영의 한라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그룹의 대표회사인 한라중공업은 우량자산을 RH중공업이라는 가교회사를 만들어 이관시키고, 한라중공업은 청산되었다. 이 RH중공업이 삼호중공업으로 바뀌고, 현대중공업에서 위탁경영하다가 완전히 인수한 후 사명을 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꾼 것.[6] 앞서 설명했듯이, 애초에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의 영업은 그룹 사업부인 선박영업본부가 담당한다.[7]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영업총괄부문장,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 겸직[8] 물론 이쪽이 직영 인건비보다 싸기 때문에 원가절감 효과가 있긴 하다. 윤리경영에 걸맞은 행위인지는 둘째 치고.[9] 1986년 현대중공업에서 창단되었으나 2005년 현대삼호중공업으로 운영주체가 이관되었고 2016년 9월 조선업 불황 여파로 팀은 해체되었으나, 선수단을 영암군청에서 인수하여 영암군청 민속씨름단으로 재창단되었다.[10] 이후 조선업, 증권업 불황이 닥치자 인수를 추진하였던 인물들이 모두 좌천되었다는 후문이 있다.[11] 간단히 생각해보면 매각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에서 하이투자증권을 계속 이용한다는 보장이 없고, 이용하지 않으면 현대중공업그룹 관련 업무에 종사하던 인원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2] 1971.7.23. 동해관광호텔을 인수하여 개관했으나 이후 노후화로 그 자리에 신축, '강릉 씨마크(SEAMARQ)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2015.7.26일 개관했으며 이 호텔은 강원도 지역 유일의 실질 6성급 호텔이다. 단 6성급이라는 표현은 공인된 등급이 아닌 홍보성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5성급(=특1급)이며, 씨마크의 경우 같은 5성급과 비교해도 별격 수준으로 고급이라 보는게 타당하다. 건축에 리처드 마이어(건축가)가 참여해서 건축학적인 가치도 높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해양 조망권 수영장이 독특하며, 당연히 각종 서비스료 음식의 질, 값은 6성호텔답게 비싸다. 일례로 커피값이 13200원.[13] 1983.1.1. 다이아몬드호텔을 인수하여 개관.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 있다.[14] 1992.7.4. 개관. 보문호수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15] 1997.8.25. 개관.[16] 2006.8.16. 개관. 영암군 삼호읍의 현대삼호중공업 정문 바로 옆 산 위에 있다. 하지만 공식 명칭은 '호텔 현대 목포'다.[17] 이 회사를 뜯어보면, 정몽혁의 부인과 자녀들이 직접지배하고 있고, 정몽혁이 현대종합상사로 옮기기 전까지 회장으로 있었고, 이후 정몽혁의 부인이 대표이사를 맡았던 연매출 200억원대의 군소 조명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와 정몽혁의 부인, 자녀들이 지분을 나눠 소유하고 있다. 2004년에 처음 설립된 회사가 첫해부터 현대중공업ㆍ현대백화점그룹의 조리원ㆍ환경미화ㆍ경비원공급계약을 따내고 이후에도 범 현대가 관련 인력공급계약으로 성장했다.[18] 2015년 기업금융회장직 퇴임 당시 기업금융의 지분은 중공업이 67.49% 정몽일 4.6%였으며, 기술투자는 기업금융이 68%로 최대주주이고, 정몽일은 1.6% 밖에 보유하지 않았다. 정몽일은 퇴직이후 소유지분을 전부 중공업에 매각했다.[19] 불경기로 인해서 증권업황이 악화되었고, 우리·대우·현대같은 대형사, 동양같은 중견사, LIG·이베스트같은 소형사까지 증권사 매물이 쏟아졌다. 대형증권사들은 인수전이 치열해 장부가의 몇배에 팔려나가는데 반해, 하이투자증권은 CJ투자증권을 인수할때 지불한 대금과 이후 유상증자에 투입된 자금을 합치면 1조원이 되는데 반값인 5천억에 매각하려했으나 이마저도 인수의향자가 없어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