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주
玄正柱
1899년 ~ 1970년 06월 11일
대한민국의 전 체육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연주이며, 독립운동가 현상건이 그의 아버지이다.
1899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졸업한 뒤 상하이시 후장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후장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육상 및 축구선수생활을 하였으며, 1925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7회 극동선수권대회에 중국 대표팀의 선수로 출전하였다. 1936 베를린 올림픽대회에도 중국대표단 임원으로 참가하였고, 1945년에는 상해축구협회 부회장직을 역임하였다.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귀국하였다. 1955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1960년부터 1962년까지는 대한자기공업협회(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제28순위)으로 출마하였으나 당선되지 못하였다. 이듬해인 1968년 최영희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어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승계하였다. 전국구 국회의원 재임 중이던 1970년 사망하였다.
1899년 ~ 1970년 06월 11일
대한민국의 전 체육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연주이며, 독립운동가 현상건이 그의 아버지이다.
1899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졸업한 뒤 상하이시 후장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후장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육상 및 축구선수생활을 하였으며, 1925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7회 극동선수권대회에 중국 대표팀의 선수로 출전하였다. 1936 베를린 올림픽대회에도 중국대표단 임원으로 참가하였고, 1945년에는 상해축구협회 부회장직을 역임하였다.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귀국하였다. 1955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1960년부터 1962년까지는 대한자기공업협회(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제28순위)으로 출마하였으나 당선되지 못하였다. 이듬해인 1968년 최영희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어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승계하였다. 전국구 국회의원 재임 중이던 1970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