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1. 소개
스페인 안달루시아 출신의 전 축구선수.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비야에서 활약했으며, UEFA 유로파 리그 통산 5회 우승으로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2003년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2006년까지 21경기 4골을 기록했다.
2. 선수 경력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영광의 순간들
2.1. 세비야
1999년 16살의 이른 나이에 1군 스쿼드에 들어가 라리가에 데뷔한 레예스는 2001년 18살에 이미 팀의 주전을 차지한다. 2001년에 8골을 성공시키면서 맹활약한 레예스는 아쉽게도 호아킨 산체스에게 밀려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는데 실패하지만 이후 레예스는 빅클럽들에게 관심을 받게 된다.
2003년 그는 줄리우 밥티스타와 훌륭한 호흡을 보이며 맹활약해 프리메라리가 전반기 세비야의 돌풍을 이끌었다.
2.2. 아스날
2004년 1월, 이러한 레예스를 차기 팀의 에이스로 키우고자 했던 아르센 벵거는 당시 그 답지 않은 클럽의 최다 이적료를 투자하여 아스날로 데려온다. 아스날에서는 윙어로도 뛰었지만, 투톱에서 티에리 앙리의 파트너로도 많이 뛰었다. 본래 주전 공격수인 데니스 베르캄프는 나이가 꽤 많았고[1] 또다른 경쟁자인 로빈 반 페르시는 부상이 많았기 때문에 레예스에게 어느 정도 기회가 오게 된 것이었다.
입단 초기에 레예스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적응 후에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팀의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에 공헌하고 다음 시즌에는 FA컵에도 우승한다. 2004년 8월에는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스페인 국적의 선수로서는 첫번째 수상이었다. 허나, 이후 다시금 적응을 하는데 실패를 하게 되는데 이는 게리 네빌과 폴 스콜스의 공헌이 지대하였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스콜스가 얼마나 더티한 태클러인지 알 수 있다. 어쨋든 이후에 레예스는 EPL 특유의 피지컬 싸움과 거친 플레이로 인해 점차 소극적으로 플레이하게 되었고, 이에 겹쳐서 영국 생활 적응에 실패하면서 초기에 보여줬던 엄청난 퍼포먼스를 못 보여주게 되었다.
그래도 2005/06 레예스는 리그에서는 무난했지만[2]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내내 맹활약을 펼치며 아스날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이끌어낸다.[3] 하지만 정작 결승에서 레예스는 단 5분만 출전하였고, 레만의 퇴장 악재 속에 팀은 바르셀로나에게 1-2로 역전패하며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2.3. 스페인으로의 복귀
레예스는 2006년 여름 향수병을 호소하며 스페인을 그리워하였고, 결국 밥티스타와 1:1 맞트레이드로 아스날을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임대 생활을 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는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리그 최종전 마요르카를 상대로 극적인 2골을 기록해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한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레예스는 레알 마드리드로 완전 이적하는 것이 아닌 라이벌 구단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그러나 아틀레티코에서 극악의 부진을 보여준 레예스는 2008/09 시즌 벤피카로 임대를 다녀온다. 하지만 2009/10 시즌 복귀하였어도 팬들은 여전히 레예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레예스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쳐 팀의 3:1 승리를 이끈 것을 기점으로 디에고 포를란, 세르히오 아게로 등과 함께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끌며 팬들의 야유를 환호로 바꾼다.
2010/11 시즌 그는 포를란의 부진과 시망의 이탈로 인해 공격력이 반감된 팀의 공격진을 아게로와 함께 이끈다.
2011/12 시즌 레예스는 만사노 감독과 불화로 인해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고향팀인 세비야로 이적하지만, 유로파리그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으로 출전했고, 해당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유로파리그를 우승했기 때문에 우승 멤버로 인정받게 된다.
친정팀인 세비야로 돌아온 레예스는 팀의 주장이 되었고, 우나이 에메리의 지휘 아래 2013/2014, 2014/2015 , 2015/2016 시즌 3연속 유로파리그 우승을 달성하여 유로파리그 통산 5회 우승을 기록한다.
2016/2017 시즌에는 에스파뇰로 이적하였다.
에스파뇰에서 한 시즌을 뛴 이후 세군다 리가에서 활동하였고, 잠시 중국 리그에도 진출했으나 이내 스페인으로 돌아와 세비야 지역의 세군다 팀에서 뛰게 되었다.
3. 사망
2019년 6월 1일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세비야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함께 차에 타고있던 조카도 세상을 떠났으며 레예스와 같은 소속팀이었다고 한다. 향년 35세. 레예스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자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비야는 일제히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그를 아스날로 데려온 아르센 벵거 감독 또한 애도했다. 마침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토트넘과 리버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경기를 앞두고 레예스를 추모하는 묵념을 갖기로 하였다[4] . 세비야 출신인 리버풀 수비수 알베르토 모레노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 레예스를 추모하는 티셔츠를 입고 우승 세리머니에 참여했다.
그러나 스페인 언론에서 보도한 경찰 보고서에 의하면 레예스는 '''시속 237km/h'''로 질주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에 산티아고 카니사레스는 "과속은 비난을 받아 마땅한 태도며 그 사고로 인해 본인 외에 동승하던 사촌도 사망하였다. 차가 전복했으니 망정이었지 다른 차와 충돌하였다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수도 있었던것. 사고가 발생한것은 유감이지만, 레예스는 영웅처럼 추모받을 자격이 없다"라며 레예스를 비판했다.관련 자료
이후, 스페인 경찰 측은 사고의 최종 원인이 과속만은 아닐 수 있다고 언급하며 레예스가 무엇 때문에 과속을 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인이 스스로 과속을 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쫓겨서 과속을 했는지, 차량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된 것인지, 아니면 급성 심근경색이나 부정맥으로 사고 당시 심정지 상태였을지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 과속이 아니었음이 판명났다. 오히려 차 바퀴가 빠져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교통사고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참고로 레예스의 아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즈가 앞으로 돌보고 키운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론 최소 시속 187km/h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세히 말하면 '''뒷바퀴가 갑작스레 터지면서 과속인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4. 플레이 스타일
스피드, 개인기, 창조성 3박자를 갖춘 스페인 정상급 테크니션이며, 공격적인 측면에서 매우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중앙과 측면을 넘나들며 재치 있는 개인기와 스루패스로써 양질의 공격 기회를 만들어낸다. 왼발로 볼을 다루는 섬세한 테크닉이 인상적이고, 드리블 돌파를 시도할 때 가속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지단이 그를 그라운드의 오토바이라고 불렀을 정도.
다만, 부상과 프리미어리그의 터프한 플레이로 인해서 그 성장이 멈춘것을 넘어서서 하락하게 되었다는게 아쉬울 따름...
5. 우승
- 세비야 FC (2000 ~ 2004 / 2012 ~ 2016)
- 세군다 디비시온(2부) : 2000-01
- UEFA 유로파리그 : 2013-14 , 2014-15 , 2015-16
- 아스날 FC (2004 ~ 2006)
- 프리미어리그 : 2003-04
- FA컵 : 2004-05
- 커뮤니티 실드 : 2004
- 레알 마드리드 CF
- 라리가 : 2006-07
- SL 벤피카(2008 ~ 2009)
- 타사 다 리가 : 2008-09
- AT 마드리드 (2007 ~ 2012)
- UEFA 인터토토컵 : 2007
- UEFA 유로파리그 : 2009-10 , 2011-12
- UEFA 슈퍼컵 : 2010
- 스페인 국가대표팀
- UEFA U-17 축구 선수권 대회 : 1999
-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 : 2001
[1] 1969년생으로 2005-06 시즌을 마치고 은퇴했다.[2] 26경기 5골을 넣었다. 겨울에 이적해 13경기 4골을 넣은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에 비해 부족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본 포지션이 스트라이커인 아데바요르와 달리 레예스는 스트라이커가 주 포지션이 아니며 굳이 뛰자면 섀도우 스트라이커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이 시즌, 레예스는 베르캄프를 제치고 1 시즌 동안 주전을 차지했는데 레예스의 부족한 골 결정력을 티에리 앙리가 완벽하게 채워주었다. 이 시즌 앙리는 '''32경기 27골'''이라는 상당한 기록으로 득점왕을 차지했다.[3] 당시 아스날은 리그와 챔스에서의 포메이션이 달랐고, 공격진의 구성도 조금씩 달랐다. 리그에서는 주로 아스날 특유의 4-4-2를, 챔스에서는 4-5-1을 구사했다. 겨울시장에서 이적한 아데바요르가 리그에서 투톱으로 뛰지만 컵타이로 챔스에 출전을 못했던 이유도 있고, 흘렙의 경우는 레예스처럼 리그에서는 적응이 더뎠지만 챔스에서는 그럭저럭 활약했다. 륭베리도 스피드 저하로 리그의 4-4-2에서는 제 역할을 못했지만 4-5-1의 공미 역할은 괜찮았다. 이에 따라 멀티포지션을 가장 잘 수행하는 레예스가 포지션을 옮겨다녔다.[4] 다만 경기 당일에는 묵념 대신 기립박수로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결승전 분위기 특성상 침묵을 진행할 정도로 통제하기는 힘들겠다고 판단한 듯.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