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스콜스

 

'''폴 스콜스의 수상 이력 '''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2002-03 · 2006-07

'''폴 스콜스의 기타 정보'''
[ 펼치기 · 접기 ]


''' 잉글랜드의 축구감독 '''
'''이름'''
'''폴 스콜스'''
'''Paul Scholes'''
'''본명'''
폴 애런 스콜스
Paul Aaron Scholes
'''출생'''
1974년 11월 16일 (49세)
잉글랜드 맨체스터 살포드
'''국적'''
[image] 잉글랜드
''' 신체 조건'''
168cm / 70kg
''' 포지션'''
미드필더[1]
'''등번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8번, 22번
'''소속'''
'''선수'''
랭글리 퍼로우즈 (유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1~1994 / 유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4~20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2~2013)'''
'''지도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4 / 코치)
솔퍼드 시티 FC (2015 / 임시 감독)
올덤 애슬래틱 (2019)
솔퍼드 시티 FC (2020 / 임시 감독)
'''국가대표'''
66경기 14골 (잉글랜드 / 1997~2004)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논란 및 사건사고
6.1. 한국 비하 발언
6.2. 왓츠앱 사임 통보 사건
6.3. 아들 폭행 논란
6.4. 불법 도박 논란
7. 여담
8. 스콜스에 대한 말, 말, 말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
커리어 전부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낸 원 클럽 맨이며, '''맨유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EPL 출범 즈음부터 활약한 EPL의 레전드 미드필더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image]
데뷔한 이래 2013년까지 맨유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트레블을 이루는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맨유의 레전드. 라이언 긱스, 니키 버트, 데이비드 베컴, 게리 네빌, 필 네빌 등과 함께 '퍼거슨의 아이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image]
'''맨유 전설의 유스 출신 선수들인 Class of 92[2] 왼쪽부터 라이언 긱스, 니키 버트, 데이비드 베컴, 게리 네빌, 필립 네빌, 폴 스콜스, 테리 쿠크'''[3]
[image]
''' 2011년 게리 네빌의 은퇴 경기에 이들은 다시 모여 그때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찍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 출신으로, 1993년 7월에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1년 뒤인 1994년에 1군으로 콜업되어 9월 21일 리그컵 포트 베일 FC 전에서 프로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3일 뒤, 입스위치 타운 전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데뷔골도 넣었다. 이후 12월 10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3-2 승리를 이끌었고, 1월 3일 코벤트리 시티 전에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그렇게 94-95 시즌에는 로테이션 자원으로서 맨유에 자리잡아가는 시즌이 되었다.
1995-96 시즌을 앞두고 마크 휴즈첼시 FC로 이적하면서 자연스레 출전 기회를 많이 잡게 되었다. 그렇게 스콜스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주로 출전하여 준주전급 자원으로 성장, 시즌 31경기 14골[4]을 기록해 팀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게 이 시즌의 더블을 시작으로 맨유의 수많은 우승 행진의 뒤에는 바로 스콜스가 있었다.
1996-97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했다. 시즌 성적은 33경기 6골인데, 직전 시즌에 비해서는 퍼포먼스가 약간 떨어진 데다 팀내 입지 또한 직전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결국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이 시즌 맨유는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1997-98 시즌에는 초반에 로이 킨이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그리고 경기력에서 한 층 올라선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시즌 성적은 42경기 10골. 다만 이 시즌에 맨유는 무관에 머물렀다.
[image]
1998-99 시즌에는 로이 킨과 함께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우승을 차지, EPL과 FA컵마저 제패하며 '''트레블'''을 달성한다. 특히 뉴캐슬과의 FA컵 결승전에서 1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다만,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경고 누적으로 인해 출전이 불가했고, 같은 이유로 로이 킨과 함께 경기에 결장해 결승 무대를 밟지 못하고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 만족해야했다. 시즌 성적은 51경기 11골.
1999-00 시즌 스콜스는 4월 초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총 45경기 12골을 기록했다.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0-01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44경기 12골을 기록했고,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2001-02 시즌에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입단하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4-4-1-1 포메이션을 가동했고, 스콜스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때때로 중앙 미드필더로도 출전하며 2선과 3선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시즌 성적은 51경기 9골. 다만 팀은 무관에 그쳤다.
2002-03 시즌에 스콜스는 계속해서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뉴캐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해 6-2 대승을 이끌어내는 등, 리그에서 33경기 14골을 넣고 시즌 52경기 20골을 기록하며 공격 포인트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 활약으로 PFA 올해의 팀 선정은 물론, 2003년 발롱도르 후보 5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팀도 다시 리그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다.
2003-04 시즌에는 FA컵 준결승 아스날 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팀의 FA컵 우승에 이바지했다. 시즌 성적은 40경기 14골, 리그 한정 28경기 9골.
2004-05 시즌에는 시즌 49경기 12골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계속 확고히 지켰으나, FA컵 결승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옌스 레만에 의해 실축하며 우승 실패와 무관에 일조하고 말았다.
2005-06 시즌에는 후반기에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서 한동안 출전이 어려웠으며 은퇴 가능성까지 예상되었으나, 이를 이겨내고 시즌 마지막까지 소화하는 저력을 보였다. 시즌 27경기 3골.
2006-07 시즌에는 10월 22일에 리버풀 FC 전에서 맨유 소속으로는 역대 4번째로 500번째 경기를 치른 선수가 되었다. 리그 30경기 6골, 시즌 45경기 7골을 기록하는 등 직전 시즌 부상으로 인한 아쉬움을 딛고 다시 최정상 미드필더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간만에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02-03 시즌에 이어 P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image]
07-08 시즌에는 10월 23일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디나모 키예프 전에서 무릎 부상을 입으면서 거의 3달을 날렸고, 1월 27일 FA컵 32강 토트넘 핫스퍼 전에서 복귀를 가졌다. 복귀 후에는 다시 주전 자원으로서 활약했고, 특히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멋진 오른발 아웃사이드 킥으로 결승골을 득점하면서 맨유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그런데 스콜스 자신은 훗날 인터뷰에서, 그 경기 때에 메시에게 두려움을 느꼈다고 회고했다.[5]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전반전에 클로드 마케렐레에게 거친 파울을 범하다 오히려 스콜스 본인이 얼굴에 출혈이 심하게 났고, 결국 87분에 교체되었다. 그래도 맨유는 승부차기 끝에 극적으로 우승을 달성했으며, 더블을 달성했다. 리그 24경기 1골, 시즌 34경기 2골을 기록했다.
08-09 시즌에는 팀 내 입지가 낮아졌다. 주전이라하기에는 애매한 출전 시간을 기록했으며, 활약상 또한 그동안 보여준 것에 비해서는 애매한 모습. 그런 와중에 4월 22일 포츠머스 전에서 맨유 소속으로 600번째 경기를 치렀다. 또한 팀의 18번째 리그 우승에 일조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지난시즌에 이어 다시 결승까지 올라 2연패를 노렸지만, FC 바르셀로나에게 0-2로 완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6] 스콜스는 후반 30분 교체로 투입되었지만 별다른 활약은 없었고, 오히려 투입 5분 만에 불필요한 파울로 경고를 받기도 했다. 성적은 리그 21경기 2골, 시즌 35경기 3골.
09-10 시즌에는 직전 시즌의 아쉬움을 딛고, 나이가 무색하게 상당히 좋은 활약을 펼쳤다.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AC 밀란 원정에서는 득점을 기록하면서 맨유 역사상 AC 밀란 원정 첫 득점을 달성했으며,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산 시로에서 인터 밀란과 AC 밀란을 상대로 모두 득점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또한 3월 6일 울버햄튼 원더러스 전에서는 득점을 올리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100골을 기록한 역대 19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 막바지에 1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이 시즌 맨유는 리그컵 우승에 만족해야했다. 성적은 리그 28경기 3골, 시즌 38경기 7골.
10-11 시즌에는 시즌 출발이 좋았다. FA 커뮤니티 실드에서는 첼시 FC 상대로 MOM으로 선정되며 3-1 승리 및 우승에 기여했으며,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개막전 경기에서 어시스트 2개를 기록한 것이다. 또한 며칠 뒤 풀럼 FC 원정에서는 맨유 소속으로 150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EPL 8월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로는 눈에 띄는 활약상은 그다지 없었으며, 준주전급 자원으로 팀에 기여했다. 그러나 FA컵 준결승 맨체스터 시티 전에서는 파블로 사발레타를 막아내다 퇴장을 당하면서 1-0 패배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 시즌 맨유는 19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마침내 리버풀을 제치고 EPL 최다 우승 팀이 되었다.[7] 여기에 챔피언스리그에서는 2년 만에 결승에 올라 다시 한 번 바르셀로나와 맞붙어 설욕을 노렸으나... 페드로 로드리게스, 리오넬 메시, 다비드 비야에게 실점하며 1-3으로 완패한다. 스콜스는 이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투입되었으며, 이미 기운 경기 내용으로 인해 뭔가 해 볼 틈도 없었다. 또 상당히 재밌는 장면이 나왔는데, 스콜스는 후반전에 교체 투입 지시를 받고서도 공이 밖으로 안 나가서 터치라인에서 10분 가량 대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가 대단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바르셀로나의 압도적인 경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2011년 5월 3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현역 은퇴를 발표하였다. # 가볍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로써 맨유의 황금 유스 세대들도 모두 황혼을 맞이했다.
...는 안타깝게도(...) 맨유가 11-12 시즌 들어 최근 3골씩 먹고 2연패하자 중원 보강을 위해 2012년 1월에 다시 맨유에 합류했다. 일단 이번 시즌까지는 현역으로 뛸 예정이라고. 다만 은퇴 전까지 사용하던 등번호 18번은 현재 애슐리 영에게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존 오셰이의 이적 후 공석이었던 22번을 사용하고 있다.
FA컵 64강 맨체스터 더비에서 후반 15분에 교체 투입되었는데, 은퇴 후 복귀 선수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물론 실전 감각이 안 올라와서 몇몇 잔실수가 있었지만, 스콜스의 은퇴 후 맨유에서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가둬 놓고 패는 플레이를 바로 볼 수 있었다. 특유의 키핑 능력과 좌우로 뿌려 주는 패스로 상대를 진영에 가둬 두고 공격하는 형태를 가능하게 만들면서, 팬들에게 스콜스의 필요성을 다시 각인시켰던 플레이였다.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만치니가 오언 하그리브스를 교체 투입하는 것으로 대응하자 '''서로 예토전생 쓴다'''는 드립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 곧바로 다음 경기였던 리그 볼턴 원더러스 전에서 선발 복귀전을 가졌고, 시즌 마수걸이 득점을 기록하며 3-0 완승에 기여했다. 2012년 2월 26일, 라이언 긱스의 900번째 경기였던 노리치 시티 전에는 헤딩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긱스가 결승골을 넣으며 본의 아니게 맨유를 노인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출장 시간이 늘어나면서 폼이 올라오고 있어 톰 클레벌리 등이 부상으로 결장 중인 맨유의 중원을 책임지고 있다. 이 때,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을 수행할 수 있는 폴 포그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콜스를 복귀시키고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더로 쓰는 모습을 보고 포그바는 이적을 결심했다고 한다. 3월 20일 기준으로 맨유는 스콜스가 은퇴 번복 후 출전한 13경기 중 10승 1무 2패, 31득점 13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4월 8일 QPR 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고, 맨시티와의 승점차는 8점으로 벌렸다. 그러나 시즌 막바지에 맨유가 휘청거렸고,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 우승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래도 스콜스는 복귀 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17경기 4골, 시즌 21경기 4골을 기록했다.
그 후, 5월 30일에 1년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12-13 시즌도 현역으로 활약할 것이라고 한다.
2012년 9월 15일 위건 애슬레틱 전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700번째 경기를 치렀고, 선제골을 넣으며 4-0 승리를 통해 자축했다. 그리고 이날 득점으로 프리미어리그 19시즌 연속 득점을 달성했다.
이후 스콜스는 로테이션 자원으로 활약했고[8], 12-13 시즌 맨유가 클럽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을 하면서 통산 11번째 리그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현지시각으로 2013년 5월 11일, 마침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 다음날 스완지 시티 AFC 전에서 올드 트래포드 고별전을 치렀고, 후반전에 많은 관중들의 박수와 함께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날 프리미어리그 우승 시상식이 진행되면서, 현역 마지막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image]
2013년 5월 19일 웨스트 브롬위치 원정에서는 교체 출전을 통해 현역 마지막 경기를 펼쳤다.
선수 시절 기록은 통산 718경기 155골, 리그 499경기 109골. 우승 기록은 챔피언스 리그 2회, 프리미어 리그 11회, FA컵 3회, 풋볼 리그 컵 2회, 커뮤니티 실드 5회, 인터컨티넨탈컵 1회, 클럽 월드컵 1회.
[image]
스콜스의 맨유 일대기. 출처

2.2. 국가대표 경력


[image]
1997년 남아공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 명단에 선발되어 조별리그 튀니지전에서 득점을 기록하였으며, 이후 UEFA 유로 2000, 2002 한일 월드컵, UEFA 유로 2004에 참가하였다.
투박한 뻥축구를 주로 구사하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9]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맨유에서와는 달리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고, 유로 2004 이후 맨유에 집중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훗날 이 은퇴 선언을 너무 빠르게 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의 은퇴 이후 잉글랜드의 뻥축구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졌고, UEFA 유로 2008 당시 예선 탈락의 위기에 놓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스티브 맥클라렌이 그에게 국대 복귀를 요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잉글랜드는 유로 2008 예선에서 탈락하며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직전 파비오 카펠로 감독 또한 복귀 제의를 했지만 역시나 거절.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대표팀 복귀 요청을 거절한 것을 후회한 것 같다고 밝혔고, 코칭 스태프의 요청이었고 감독이 직접 요청했으면 복귀할 의사가 있었다고 했다.

3. 플레이 스타일



[image]
[442.masterclass] 폴 스콜스: 패스 마스터가 되고 싶다면?
주 포지션은 포맷 4-4-2의 중앙 미드필더로, 전성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뛴 적도 있다. 맨유가 트레블을 이룰 당시에는 로이 킨과 짝을 이루곤 하였는데, 로이 킨이 뒤쪽으로 깊게 빠지면 그 앞쪽에 포진하는 다이아몬드 대형을 이루기도 하였다.
패스, 그 중에서도 장거리 로빙 스루 패스가 최고였던 선수로 유명하다.[10] 빠르게 뻗어가는 장거리 패스는 EPL 역대 최고 수준이며, 또다른 그 분야의 마스터 샤비 알론소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 알론소가 정확하게 패스하는 편이라면 스콜스는 공격수의 침투 타이밍에 맞춰 빠르게 앞쪽으로 보내주는 편. 뒤쪽에서 공을 받아, 전진하는 윙어들이나 전방의 스트라이커들에게 정확하게 볼을 공급하는 선수였다.[11] 침투하는 윙어를 향해 시간 끌지 않고 바로바로 패스해서, 빠른 경기 진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볼을 잡고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플레이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화려한 개인기나 전진드리블은 없었지만 패스길을 막거나, 볼을 뺏기 위해 달려드는 상대방을 벗겨내는 컨트롤에도 능했다.
무엇보다 스콜스의 가장 큰 장점은 경기를 읽는 능력이었다. 동료를 매우 잘 이용했는데 간결한 볼터치로 볼을 안정적으로 컨트롤하고 주위 동료들에게 건네고 다시 받는 포지셔닝이 상당히 좋았다. 발도 느리고 피지컬도 평범한 스콜스가 90분 내내 안정적인 볼 점유를 가져갈 수 있던 비결은 영리한 움직임에 있었다. 그러다가 전방에 좋은 위치를 잡고있는 동료에게 언제든 날카로운 롱패스를 넣어주었다.
또한 그는 그물이 찢어질듯이 맹렬히 차는 강슛으로 유명했는데, 그러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전성기 시절에는 매 시즌마다 10골 이상을 기록했으며, 특히 02-03 시즌에는 20골을 기록하는 상당한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캐논 슈터들의 전유물인 아웃사이드 슛에도 굉장한 강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170도 안되는 키에서 전혀 생각해 낼 수 없지만, 통산 30골에 이르는 헤더 골을 기록하고 있다. 점프 타이밍과 헤더 정확도가 매우 뛰어났다. 공격수로 뛸 경우 침투 타이밍도 훌륭한 편이었다.
단점으로는 생긴 것과 다르게 욱하는 성질과 악질적인 파울, 그리고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한 반칙들이 있다. 평소 수비력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다. 특히 인터셉트 능력과 스탠딩 태클 능력은 프랭크 램파드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다. 그러나 태클의 강도가 문제였다. 태클로 공을 빼앗는 것이 불가능한 각도에서 태클을 시도하다가 상대의 다리를 걷어차 어처구니없이 퇴장당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았고 부상을 입히는 경우도 많아서 그의 태클은 거친 악질로 매우 유명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태클은 왜 그 따위인지 모르겠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오죽하면 다른 선수들이 거친 태클을 하면 의아하지만 스콜스가 거친 태클을 할 때는 '''쟨 원래 저러니까 뭐''' 하고 만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최다 옐로카드 보유자이기도 하다. 06-07 시즌 막바지 노스웨스트 더비에서는 사비 알론소를 주먹으로 가격하려 해 퇴장당한 적도 있다. 07-08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클로드 마켈렐레의 머리에 팔꿈치 가격을 해 놓고는 오히려 자신이 튕겨져 나가 잔디밭에 나뒹굴어 눈썹 위가 찢어지고, 응급처치 직후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고의성이 다분한 악질적인 핸드볼 파울로도 유명하다.

4. 지도자 경력


2014년 4월 23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코치진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스콜스는 맨유의 원클럽맨이자 레전드로 현재 1군 코치직을 맡고 있는 니키 버트, 필 네빌과 함께 1군 코치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경질 이후 라이언 긱스가 남은 기간 동안 감독 대행을 맡게 되어 그를 보좌하기 위해 시즌 종료 시점까지 코치직을 수행했다.
2019년 1월 20일 EFL 리그 2올덤 애슬레틱 AFC과 감독직 협상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결국 2019년 2월 중순 올덤 감독에 부임했으나, 첫 경기 승리 후 한 달간 3무 3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31일만에 사임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2002-03, 2006-07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3년 1월ㆍ12월, 2006년 10월, 2010년 8월
  • 프리미어 리그 10주년 베스트 XI (1992~2002)
  • 프리미어 리그 20주년 베스트 XI (1992~2012)
  • 지미 머피 올해의 영플레이어: 1992-93
  • FIFA 100: 2004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8
  • FWA 공로상: 2012

6. 논란 및 사건사고



6.1. 한국 비하 발언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2004년의 발언인데,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나중에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트에서 입단하여 활약하던 도중에 재발굴되어 이슈가 되었다. 국내 맨유 팬들을 위시한 국내 스콜스 팬들은, '''스콜스가 그랬을 리가 없다.''' '''잉글랜드는 일본에서 경기했으니 일본을 지칭한 말이다.'''라고 의문을 제기하였으나, 2004년 5월, The Guardian의 기사에 의하면,

''''Korea,' said Paul Scholes in January, is a stupid country where the World Cup should never have been played...''''

라고 '''한국 비하를 한 것이 확인되었다.'''
대충 번역하면 '''월드컵을 개최하지 말아야 했던 멍청한 나라'''이다.
해당 발언은 유로 2004를 앞두고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유로 2004의 우승 후보에 대해 묻는 질문에 프랑스에 대해 언급하며 2002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조기 탈락은 월드컵이 열려선 안 되는 '''stupid country''' 에서의 일시적 부진이라고 말한 것이다. 당시 최강으로 불리던 프랑스 대표팀의 뜻밖의 조별리그 탈락에 대한 놀라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당시 장마를 피하기 위해 더운 날씨 속에 진행된 일정에 대한 불만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렇다곤 해도 실드를 쳐 줄래야 쳐 줄 수 없는 발언이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간에 특정 국가에 대하여 stupid니 월드컵이 열려서는 안 되느니 한 것은, 그가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오히려 축구인으로서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에 특정 국가에게 자격이 있네 없네를 따지는 것은 명백한 실언이다. 인터넷이 지금만큼 빠르지 않고 아시아 축구의 영향력도 약한 당시니까 어물쩍 넘어간 것이지 요즘이었으면 인종 차별로 징계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나중에 '긱스와 나는 박지성이 있기에 안심하고 맨유를 떠날 수 있다'리고 말한걸로 봐선 한국인이 싫은건 아닌듯 싶다.
이후에도 비슷한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는데, 기사 2017년에도 스콜스는, '한일 월드컵 이후 당신은 그런 더운 나라들에서 월드컵이 열리는거에 대해 불평했었는데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 라는 질문에 자신은 거기(카타르)에 안 가서 다행이고, 한일 월드컵때도 한국과 일본은 너무 더웠고, 카타르는 45도가 넘는다는데 이런 기온에선 팬들도 선수들도 좋지 않다는 등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 역시 부정적으로 말한다.
월드컵의 취지는 세계인의 축제이고, 현재 세계 축구의 주요 대회 일정은 가장 큰 축구 시장인 유럽에게 맞춰져 있다. 따라서 특정 국가의 월드컵 개최 시기 날씨가 유럽 축구 일정에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그 국가 자체를 비하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들 위주의 사고방식이다. 카타르나 한국의 여름 날씨가 영국인에게 불쾌하다고 해서 그것이 월드컵을 개최해선 안 될 멍청한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다. 이 논리면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국가는 6~7월 날씨가 좋은 국가로 한정해야 한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거기다 따지고보면 유럽에도 카타르만큼은 아닐지언정 한국만큼 더운 국가들은 있다. 영국인들이 그 나라들에게도 월드컵을 개최해선 안 된다고 말하던가?

6.2. 왓츠앱 사임 통보 사건


올덤 에슬레틱 감독으로 부임한 지 31일 만에 사임했다. 7경기에서 1승밖에 못 거둔 성적과 구단주와 마찰이 있었다는데, 본인의 첫 프로 커리어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경질 과정에서 미성숙한 행동을 보여 비판을 받고 있다.
스카이 스포츠, 데일리 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콜스가 SNS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왓츠앱(WhatsApp)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왓츠앱은 대중적인 SNS 메신저로, 우리나라로 치면 카톡 한 통으로 사임을 통보했다는 뜻이다. 스콜스는 메시지를 보내고 구단 수뇌부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성적이 부진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구단 수뇌부와 사이가 틀어질 수는 있다지만 이런 식으로 사임 통보를 하는 건은 본인과 함께 한 코칭 스태프, 선수들, 거기다 팬들에게까지 보여야 할 예의가 아니다. 아르바이트도 이런 식으로 사임 통보를 하면 욕 먹는 마당에 한 클럽의 감독이란 인간이 이런 식으로 사퇴한 것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
어처구니 없게도 스콜스는 과거 은퇴하고 싶은 팀으로 올드햄을 뽑았다. 같은 지역 팀인 올드햄에 애정을 갖고 있으며, 2017년에도 감독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팀에 감독으로 부임한지 1달 만에 문자 통보로 사임한 것이다. 스콜스, 사랑하는 팀 올드햄에서 감독 데뷔

6.3. 아들 폭행 논란


본인보다는 아들에 대한 논란인데, 스콜스 또한 욕설을 하면서 이를 가중시켰다. 기사
스콜스의 아들이 2018년 6월 학교 친구에게 주먹질을 하고 영상을 찍으며 웃었고, 이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스콜스는 재판장에서 기자들에게 '''오늘은 어떤 XXX 같은 기사를 쓸 건가?'''[12]라고 욕설을 했다는 후문인데, 명백하게 아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건에서 사과는커녕 기자에게 화풀이를 한 점은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시기상으로 위의 왓츠앱 사임 통보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리면서 비판이 가중되었다.

6.4. 불법 도박 논란


2019년 4월 16일, 잉글랜드축구협회는 협회 규정에 반하여 축구 경기에 베팅을 한 폴 스콜스에 대한 징계를 하겠다고 밝혔다. 협회에 따르면 스콜스는 2015년 8월 17일부터 2019년 1월 12일 사이에 열린 축구 경기들에서 '''140차례'''나 협회 베팅 규정을 어겼다고 한다. 가디언

7. 여담


  • 경력과 팀 내 위상을 봐서는 주장을 맡아도 손색없지만, 스콜스 본인이 주장직이 싫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을 이끄는 역할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듯. 실제로 스콜스는 몇 안 되는 그의 인터뷰에서 그의 이상적인 하루가 아침에 훈련하고,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아이들이랑 함께 논 후, 차를 한 잔 하고 애들을 재운 뒤 TV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매우 조용한 성격이어서, 박지성도 자서전에서 신사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13] 워낙에 남들에게 주목받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무조건 경기, 훈련, 집밖에 모르고 구단 공식 행사 및 우승 셀레브레이션에도 거의 나서지를 않고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경우엔 대개 슬그머니 뒤로 빠져버린다.
  • 은퇴 복귀할 당시 U23세 코치로 있으면서도 매일 훈련을 계속해서 몸상태가 괜찮았다고 한다. 첫 복귀날 작은 헤프닝이 있었는데 라커룸에 스콜스의 유니폼은 있었지만 축구화가 없었다고 한다. 구단에서 스콜스가 축구화가 없을꺼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스콜스는 나이키에 요청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출전이 밖으로 새어나갈 수 있을꺼라 생각해서 동네 스포츠용품정(JJB)에 나가서 40파운드(한화 약 5만 8천원)짜리 축구화를 사서 신고 뛰었다고 한다. 당시 느낀 생각은 '축구화가 꽤 비싸네?'
  • 은퇴 후 BT 스포츠에서 전문가로 맨유 경기를 분석, 평가하기 위해 초대되는 경우가 많다. 맨유가 부진하자 온갖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반 할 감독이 성명을 내든 반박을 하든 전혀 개의치 않으며 "쟤 왜 저래?"라는 반응까지 추가로 내비치며 이기든 지든 간에 맨유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적 시장에서 내보낸 선수는 수준이 높은데 데려온 선수는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 최근 부진에 빠진 루니의 문제, 반 할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 경기가 지루하고 퍼거슨 시대의 색채가 전혀 없다는 점들을 주로 언급한다. 선수 시절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행보.[14] 게다가 맨유는 그의 말대로 노잼 축구만 주구장창 보여 주고 있고 반 할의 인성 문제까지 드러나며 까이고 있다. 근데 사실 스콜스는 오히려 반 할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낮은 편에 속한다. 한 번도 반 할이 경질되어야 한다는 소리는 한 적이 없고, 오히려 경질 자체는 반대한다. 그저 팀과 반 할의 변화를 원하는 편이다. 그러나 결국 반 할은 시즌 종료 후 경질된다.
  • 그러나 무리뉴 시절에도 열심히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 무리뉴 감독에게도 반발을 샀다. "비난만 하는 스콜스, 내 성과 25%만 해봐!" 결국 즐라탄도 퍼기의 아이들이 TV 나와서 불평만 늘어놓는다며 맨유에 직접 들어가서 도움되는 일은 안 하고 밖에서 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밖에서 말참견만 한다는 식으로 지적했다. 퍼기의 아이들이라고 통틀어 말했지만, 사실상 TV에서 맨유 비판에 앞장서는 스콜스와 네빌로 타겟이 좁혀진다. 그리고 결국 이 둘은 감독으로서 실패를 맛보며 TV에 나와서 입 터는 것과 현실은 다르다는 조롱이나 듣게 되었다.[15]
  • 운동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천식, 한쪽 눈 실명 위기 등을 이겨내고 맨유의 원클럽맨, 레전드 미드필더가 되었다. 특히 눈 실명 때에는 은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나,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 첼시 FC 팬으로 유명한 장지현은 스콜스, 램파드, 제라드 중에서 스콜스가 근소하게 제일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한준희 해설위원 역시 스콜스가 조금 더 낫다고 평가. 다만 둘 모두 3명의 차이는 아주 미세한 정도라고 덧붙였다.
  • 핸드볼 반칙을 자주 저지르는 편인데, 이게 자세가 안 좋다거나 운이 나쁜 문제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손을 쓰는 일이 많다. 100% 골 확정인 슛을 양팔을 쭉 뻗어 선방해내며 퇴장+PK헌납을 하거나 올라오는 크로스를 손으로 후려갈겨 상대 편 골망을 흔들고 퇴장당하는 개그장면을 연출하면서 배구선수냐고 욕먹은 바 있다.

7.1. 그말싫


일부 극성 맨유팬들이 스콜스를 '''지단과는 동급'''이고, '''차비보다 한 수 위'''라는 드립을 치며 찬양했는데...
전성기의 스콜스는 분명 자기 롤에 있어서 월드 클래스였지만 지단, 차비와 비교했을때 국가대표는 물론이고 클럽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에서 차이가 분명히 난다.
여기서 알싸의 유명한 드립 중 하나인 '''그말싫'''이 터져나왔다. #. 누군가가 '''스콜스는 역대급 중미다'''라고 주장하자 다른 이가 '''(스콜스의)발롱도르 순위는 몇 위가 최고였나요?'''라고 반문한 것. 그러자 글쓴이는 '''그건 말씀 드리기 싫습니다.''' 라고 답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스콜스가 발롱도르 후보 50인에 포함된 적은 있지만 한 표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16]
결론적으로 지단은 참가한 모든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과 MVP를 차지한 선수이고, 차비 역시 국가대표로 전무후무한 메이저 대회 3연패 달성하는 등 메시, 호날두만 아니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함께 발롱도르를 받고도 남았을 역대급 미드필더이다.
물론 선수 평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발롱도르,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등 다양한 전문가, 팬들의 평가를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지단과 차비가 스콜스보다 훨씬 앞서는 평가를 받았음은 자명하다.

7.2. 레전설


[image]
누군가가 아프리카 TV에서 경기를 보는 도중 스콜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라는 말을 하여 큰 웃음을 주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7.3. vs 제라드 or 램파드


대부분의 해축팬들이 축구를 보기 시작한 시점의 스콜스의 전성기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롤을 본격적으로 맡기 시작한 30대 초중반이기 때문에 나이 차가 꽤 남에도 불구하고 같은 잉글랜드인이자 동시대 월드클래스 미드필더였던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와의 비교가 매우 활발하다. 이는 세 선수 모두 은퇴한 지금도 간간이 언급되는 떡밥인데, 스콜스를 위로 치는 사람들은 팀 커리어를 내세우고 제라드와 램파드는 각종 수상 기록과 스탯을 내세우며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선수들의 비교 자체가 병림픽이기도 하고 스콜스는 제라드와 램파드보다는 몇 년 앞서서 보냈기에 전성기를 기준으로 할 때 정확한 비교가 어렵다.[17] 그리고 이 셋의 팀에서의 역할도 각각 다르기에 미드필더라도 퉁쳐서 비교하는 건 억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런 떡밥이 유효한 건 스콜스가 우선 눈에 보이는 스탯이 부족하고 제라드, 램파드가 각각 리버풀, 첼시를 대표했던 미드필더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 선수의 비교는 유난히 개인 수상을 언급할 때 불이 붙는데 그 이유는 '''스콜스가 제라드와 램파드에 비해 개인수상만큼은 정말 초라하기 때문이다.'''
가장 권위있는 개인상인 발롱도르로 비교하면 램파드는 2위, 제라드는 3위까지 해본 적이 있지만[18] 스콜스는 순위권은 커녕 커리어 내내 단 한 표도 못 받았다. 축구 해설가 한준희는 같은 팀에 유명한 선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석했다.원투펀치에서 다룬 스램제 실제로 동시기에 초기에는 에릭 칸토나, 한창 전성기에는 라이언 긱스와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걸출한 스타들이 있었고 후방으로 내려올때는 반 니스텔루이와 루니가 포커싱을 전부 가져갔다. 게다가 당시 맨유는 윙어천국이라고 불릴정도로 뛰어난 윙어들이 많았고 동시에 웨인 루니라는 잉글랜드의 스타이자 레전드와 반니스텔루이 등 걸출한 선수가 너무 많았다. 팀의 주장이자 중심이였던 램파드 제라드보다 포커싱을 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월드베스트와 발롱도르의 경우는 아무래도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서 결정나는 것이 아니고 투표로 결정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기투표의 성향이 꽤 강한 편이다. 월베를 받은 선수중에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선수도 있지만 이 선수가 대체 왜..? 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대표적으로 제라드의 경우 07 08 09년 월베를 수상할 당시에 단 하나의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했었고 최근에는 2018년에 맨유의 데헤아가 역시 무관으로 월베를 받아 약간의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월드베스트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대회는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인데 일례로 07-08시즌의 경우 맨유와 첼시가 결승에서 만난데다 프리미어리그 역시 맨유와 첼시가 1위와 2위를 했으므로 08년 월드베스트는 챔스 4강에서 탈락하고 리그역시 4위를 기록한 제라드보다는 우승팀인 맨유나 첼시의 미드필더가 수상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하겠지만 아무래도 리버풀의 심장이자 원클럽맨인 제라드의 경우 이것에서 굉장히 많은 어드벤티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08-09시즌 역시 챔스언스리그는 맨유와 바르셀로나가 결승에 진출하였으며 리버풀은 이미 8강에서 첼시에게 떨어졌다. 리그 역시 맨유가 1위이고 리버풀이 2위이며 특히 이 시기에는 리그 우승과 챔스 준우승을 이뤄낸 맨유에서 미드필더 한자리 월드베스트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펩의 바르셀로나가 워낙 극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시기였기에 월베를 받은 차비와 이니에스타를 제외하더라도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월드베스트의 남은 미드필더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도 미드필더의 남은 한 자리는 고작 리그 2위와 챔스 8강에 그친 제라드에게 돌아갔으며 이런 일련의 결과들이 쌓여 월드베스트가 인기투표의 성향이 강하다는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바 있다. 월드베스트와 발롱도르같은 투표로 이뤄지는 개인수상이 딱히 플레이스타일과 선수들의 평가로 세 선수를 비교하는 것에 비해 딱히 객관성이 높지 않다는 소리.
제라드는 리그 MVP라 할 수 있는 P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고, 램파드는 FW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 바가 있다. 또한 리그 베스트 11에 해당하는 PFA 올해의 팀에 각각 램파드가 3회, 제라드가 8회씩 뽑혔지만 스콜스는 2회 선정되었고, 이것이 스콜스의 유일한 개인 커리어다. [19]
FIFA FIFPro 월드 XI 역시 제라드와 램파드가 각각 3회, 1회 선정된 것에 반해 스콜스는 한 번도 뽑힌 적이 없다. 하지만 이 투표가 처음 실시된 2005년에는 스콜스가 이미 31세로 노장 축에 들어간데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역시 1년전에 은퇴했기 때문에 세 선수의 대결에서 월드베스트 선정이 큰 의미를 가진다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등 개인커리어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지라 제라드와 램파드. 두 선수에게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에서 발표한 프리미어 리그 10주년, 20주년 베스트 XI에서 스콜스는 긱스, 슈마이켈과 함께 모든 팀에 이름을 올렸지만 제라드는 팬 선정 팀에만 뽑혔고, 램파드는 어디에도 뽑히지 못했다. 또한 20주년 베스트 플레이어 10명의 후보에도 스콜스만 올랐다.[20] 하지만 최근 BBC에서 주관한 프리미어 리그 25주년 올-타임 XI 패널 선정 팀에는 스콜스가 빠지고 제라드와 램파드가 들어갔다. # # 세 선수의 개인 수상 기록 세 선수의 통산 스탯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스콜스의 경우 눈에 보이는 개인 기록 면에서 램제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팬들은 주로 축구인들의 리스펙트성 발언[21]이나 '''평가'''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22]

8. 스콜스에 대한 말, 말, 말


[image]

'''만약 그가 나와 함께 뛰었다면, 난 훨씬 더 많이 득점을 기록했을 것이다.'''

펠레

'''지난 15~20년 동안 내가 본 최고의 미드필더는 스콜스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갖춘 환상적인 선수입니다. 난 사비 알론소와 여러 차례 스콜스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스펙타클한 선수입니다. 만약 그가 스페인 사람이었다면 더 높은 평가를 얻었을 것입니다.'''

차비 에르난데스

'''제 커리어에서 스콜스와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가 없던 것이 후회됩니다.'''

지네딘 지단

'''그는 언제나 다른 선수들의 관심사였다.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을 때조차 선수들은 나에게 와서 '스콜스가 좋아하는 건 뭐야?'라고 물었다. 그들은 다른 위대한 축구 선수들을 존경하는 것처럼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데이비드 베컴

'''의심의 여지없이 스콜스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여야 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티에리 앙리

'''스콜스는 뛰어난 테크닉과 패싱력을 갖춘 것 이외에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립니다.'''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스콜스는 내가 본 최고의 미드필더다. 그는 오른발, 왼발, 머리 등 어느 부위로도 득점과 패스를 할 수 있다.'''

나니

'''그는 브라질에서 뛰기 충분하다. 난 붉은 머리와 유니폼을 하고 있는 소년의 패스를 보는 것, 스콜스의 플레이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소크라치스

'''나와 같은 모든 미드필더들은 스콜스만큼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두가 스콜스에게 배워야 한다.'''

에드가 다비즈

'''그는 풍부한 특성과 퀄리티를 가진 올라운드 미드필더이다.'''

마르셀로 리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스콜스는 그의 세대 중 최고의 선수다.'''

펩 과르디올라

'''나이는 상관없다. 스콜스를 봐라. 스페인의 차비, 이니에스타와 같은 플레이를 한다. 그는 결코 공을 빼앗기지 않는다.'''

해리 레드냅

'''피를로와 함께 뛰는 건 내게 기쁨을 준다. 그러나 최고의 패서를 꼽으라면 스콜스다.'''

카를로스 테베스

'''(스콜스, 램파드, 제라드 중 누가 최고냐는 팬의 질문에) 폴 스콜스.'''

토니 크로스

'''전문가들이 그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물론 그는 내 드림 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지만, 또한 개인적으로 경기 관점에서 그는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데쿠

'''그 세대에서 정말 뛰어난 미드필더. 그냥 경기를 뛰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설계했다. 모든 패스들이 그의 지능과 경기 이해도에서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드레아 피를로

'''패스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레이더처럼 정확하게 향했다. 스콜스 오른발은 경이로웠다. 피치 위 어디든 상관없다. 스콜스는 타깃을 정확히 맞출 것이다.[23]

'''

리오 퍼디난드

'''스콜스와 제라드와 경기하면 정말 곤란했다. 둘은 볼 처리가 뛰어나고, 태클도 강하게 들어온다. 정말 잘했다. 강한 상대였다.'''

마이클 에시엔

[1]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2] 긱스 왼쪽의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 선수들을 유스 시절부터 키워낸 에릭 해리슨 코치다. 현지 시각으로 2019년 2월 13일, 사망했다.[3] 당시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약 4년간의 임대생활을 거쳐 결국 맨체스터 시티로, 거기서도 임대생활만 전전하다가 MLS콜로라도 래피즈에서 겨우 정착해서 주전선수로 활약하고 2011년 은퇴했다.[4] 리그 26경기 10골.[5] 실제로 그 경기에서 메시에게 팬텀 드리블로 벗겨지는 짤은 메시의 엄청난 드리블 짤로 지금까지도 각 축구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고 있다.[6] 이 결승전에서 스콜스를 거르고 안데르손을 선발출장시킨 퍼거슨의 결정에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7] 스콜스는 통산 10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8] 맨유에서 주전으로 자리잡은 이후로는 처음 로테이션 자원으로 임한 시즌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9] 포포투에서는 브라질인처럼 축구하는 영국인이라고 표현했다.[10] 박문성 해설위원은 폴 스콜스의 경기를 보고 실제로 느낀점은 진짜 게임에서나 보던 패스를 실제로 보고 사람이 아닌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 스콜스가 패스를 한 번씩 할 때 마다 경기장 전체가 감탄을 했다고...[11] 정확한 장거리 패스에 대해 유머러스한 일화가 있는데, 알렉스 퍼거슨에 따르면 한 번 게리 네빌이 훈련 중 소변이 마려워서 한 50야드 떨어진 곳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스콜스가 주저 없이 공을 차서 소변을 보던 네빌의 엉덩이를 정확히 맞췄다고...[12] As he walked into the public gallery, Paul Scholes approached the press bench and said: '''What b******s are you going to write today then?'''[13] 또한 워낙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 탓에 팀 동료들 중에서는 스콜스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동료들도 제법 있었다고.[14] 자신의 은퇴식 때도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던 사람이 이렇게 총대를 매고 나설 정도라는 상황에서 스콜스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다.[15] 돈 받고 분석 프로에 초빙된 것이니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곤 하지만, 그 수위가 강하고 빈도가 너무 잦으니 과하다는 의견이다. 선수 시절도 겪어본 사람이 감독들에게 비난만 일삼다가 결국 본인들이 감독 했을 땐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이들의 비판은 탁상공론 수준의 현실과 무관한 것이었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무리뉴는 네빌에게도 "경기 중에 PAUSE 버튼은 없다"면서 현실성 없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는 식으로 둘러서 지적했다. 비판이나 쓴소리도 적당해야 듣는 사람도 수긍하는 법이다.[16] 참고로 이 항목은 그말싫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다(...).[17] 스콜스가 램파드보다 4살이나 많고 제라드가 램파드보다 2살 어리다. 순전히 나이로 비교하자면 실바, 크로스, 포그바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한데 생각해보면 포그바와 크로스라면 몰라도 포그바와 실바를 비교하는 경우는 적다. 요컨데 롤도 다르고 시기도 차이가 있다는 것. 이때문에 한국에서 스콜스의 전성인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직접 본 시청자의 수는 매우 적다.[18] 1, 2위 표는 제라드가 더 많이 득표했지만 3, 4위 표에서 램파드가 순위를 역전시켰다.[19] 팀 전술의 중심인 램파드와 제라드, 윙어 위주 전술의 연결고리 역할인 스콜스,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그만큼 팀의 중심이 된 경험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20] 긱스가 선정되었다.[21] 물론 엄밀히 따지면 '''정답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말이 바뀌는 경우 자체도 많고, 국적, 환경, 인간관계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 개인의 성향이나 높게 치는 플레이 스타일 등에 따라서도 선수에 대해 평가하는 바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직접 뛰어본 선수들과 가장 가까이서 봐온 프로들의 발언이기도 하기에 그저 허무맹랑하게 넘길 부분도 아니다.[22] 아무래도 스램제 논쟁 자체가 누가 더 낫냐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보니 축구 선수, 전문가, 해설위원 들의 평가를 꺼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평가 역시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축구인들은 그 셋을 나눠서 평가하는 것 자체를 피로해하며 차이가 나도 아주 극소한 차이라고 하는 경우가 다수다.[23] 돈이 걸린 내기라면 당연히 스콜스에게 걸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