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우 밥티스타
1. 개요
브라질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공격수. 1981년 10월 1일 생. 187cm, 87kg
2. 우승
- 상파울루 FC (2000 ~ 2003)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 2000
- 레알 마드리드 CF (2005 ~ 2006 / 2007 ~ 2008)
- 라 리가 : 2007-08
- 크루제이루 EC (2013 ~ 2016)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 2013 , 201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 2014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2001 ~)
- 코파 아메리카 : 2004 , 2007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2005 , 2009
3. 클럽
일단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세비야 FC 시절엔 두 시즌 동안 리그에서 62경기 39골을 기록했다.[3]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2450만 유로'''에 이적했으나 별 다른 활약 없이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와 맞임대로 아스날 FC 입성. 아스날 시절에는 칼링컵 리버풀 FC 원정에서 네골을 터뜨리며 6-3으로 이기는 명승부를 연출했다.[4]
레알 마드리드로 임대 복귀 후 2007/2008 시즌 엘 클라시코 원정 경기에서 FC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리는 선취 결승골을 넣었다.[5]
3.1. AS 로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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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절의 밥장군.
2008년 여름 AS 로마는 무려 '''900만 유로''' 이적료를 지불하고 밥티스타를 영입했다. 물론 당시엔 세비야 시절의 활약도 있고, 스텟사기꾼이라 기록은 나쁘지 않아 비싸지 않은 금액 취급받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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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르의 히카르두 콰레스마, 밀란의 알레산드로 만시니,[6][7] 클라스 얀 훈텔라르[8] 와 함께 '''콰밥만훈'''이라 불리며 '''세리에 A 4대 먹튀'''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빅클럽 시절부터 지적받았던 트래핑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고, 로마의 숏패스 위주 전술에서 혼자 개인 플레이를 하다가 흐름을 다 끊어먹는다든지, 세비야 시절에 보여주었던 결정력도 많이 사라지는 등 여러모로 먹튀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요한 때에 결정적인 한방'''[9] 이라는 적절한 능력[10] 덕분에 꾸준히 까방권을 쌓아와서 수많은 삽질과 상계해왔다.(...)
그러나 2008/09 시즌 아스날과 챔피언스리그 16강 홈경기에서 결정적인 삽질을 해서 팀의 패배에 일조, 로마의 팬들에게 까여서[11] 그동안 신용카드 포인트처럼 적립한 까방권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그런데도 바로 다음 삼프도리아와 경기에선 2골을 넣으면서 과연 까방권은 아무나 얻는 게 아님을 보여주었다.(...)
다음 시즌에는 벤치에서 교체 출장하는 정도로 얼마 안나왔는데, 벤치에 앉으니 전 시즌 6위였던 로마는 2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실력은 있지만 멘탈이 거지같은 다른 브라질리언과 달리 '''클럽에 대한 충성심이 무한'''한 데다 성실한 사생활, 착한 성격까지 가지고 있다. 이적 기사가 나면 즉시 부인하며 로마에 남겠다는 그 멘탈이야 나무랄 데가 없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레알 시절 호비뉴가 '''미친 개''' 토마스 그라베센과 맞짱을 뜨려했지만 밥티스타가 그 훌륭한 근육으로 적극적으로 말렸다고 한다. 이때 밥티스타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호비뉴는 맞아 죽었을 것이다.
국내팬들은 그를 밥튀스타, 먹튀스타로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밥티스타 장군, 줄여서 밥장군이라는 애칭도 얻은듯.[12]
로마팬들 입장에선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못하는 선수가 나가겠다고 어깃장을 놓으면 얼씨구나 꺼지라고 하겠지만, 저렇게 '''좋은 사람'''이 충성을 바치겠다는데 대놓고 나가라고 말하기도 참...애증의 감정으로 바라보는듯.
'''AS 로마의 카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카카와 관계가 좋은 편이라 결혼식에 카카도 참석하였다 한다. 제발 성격만 닮지 말고 실력도 닮아달라고 로마 팬들은 절규하고 있다.
그래서 국내 로마팬들은 흔히 밥티스타를 보고 이런 말을 한다. '동네 아는 형이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사람됨됨이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지만 결정적으로 '''축구 선수가 축구를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로마 팬들은 그를 볼 때마다 뒷목을 부여잡는다.
팬들과의 채팅에서 대한민국에 있는 한 팬이 좋아하는 색을 물어보자 하늘색이라고 했다.(...)(로마의 라이벌 팀인 라치오의 색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만 81분 출전했다. 네덜란드와의 8강전을 앞두고는 부상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보도가 나왔는데 실제로 못나왔고 브라질은 경기에 졌다.(...)
유망주 시절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국가대표가 되어 대한민국 땅을 밟은적이 있다.
요즘은 밥장군의 강한 충성심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라니에리 감독은 인테르의 부르디소를 사오기 위하여 밥티스타를 강하게 팔려고 '''노력''' 중이다. 저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 주제 무리뉴가 밥티스타를 당시 로마에 임대갔던 부르디소와 '''돈까지 얹어줘서''' 맞바꾸려고 하였으나 로마측에서 돈을 좀 더 달라고 뻐기다가 결국 무산되었다.[13]
만약 되었다면 3대 대괄호 먹튀[14] 가 한 팀에서 뛰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안 되었고 잔머리 굴리던 로마는 힘겹게 밥티스타를 팔려는 중이다.
하지만 그리스와 터키에서 밥티스타를 사갈려고 강력한 쟁탈전을 벌이는 터라 곧 팔려나갈 것 같다! 게다가 콰레스마는 일찌감치 나갔고 훈텔라르도 분데스리가의 샬케로 나간 터라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알레산드로 만시니'''만이 남은 상황. 3대 대괄호와 4대 먹튀의 시대는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싶지만...
그래도 멜루도 있고, 사라테도 있고, 아콰프레카스카와 아마우리도 있고, 결정적으로 밥티스타가 떠나지만 '''아드리아누'''[15] 가 로마에 왔다. 세리에의 먹튀의 역사는 쭈욱 계속될 것이다(...).
2010/11 시즌엔 역시나 후보로 전락하여 출장하지만 끝까지 이적을 안한지라 열받은 AS 로마는 이 문제를 피파에 제소해버렸다.(...) 그래도 라치오를 상대로 한 더비 매치에서 페널티킥도 얻어내는 등 과연 사나이다운(?)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넘어지는게 척 봐도 '''일부러''' 넘어지는 것 같아서(...) 시뮬레이션이 아니냐는 비난도 받는중.
세리에 A에선 결국 밥티스타 같은 선수들이 전력외로 판명 났음에도 이적을 거부하자, 선수가 거부하여도 방출이나 2군으로 내려놓게 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드는 중이다. 제목도 '''밥티스타 룰(...)''' 하지만 선수들이 이에 크게 반발하여 세리에 A의 선수들은 16라운드부터 파업에 들어간다 ...문제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결국 2010년 12월 29일 프리메라 리가의 말라가 C.F.로 이적이 확정되면서 AS 로마는 충신을 잃게 되었다.
3.2. 말라가 CF
라 리가 이적 후 FC 바르셀로나 전에 출전, 말라가 팬들은 위에서 기재한 바와 같이 엘 클라시코의 기적을 기대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못해보고 팀의 패배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경기인 발렌시아 C.F. 전에서는 1골 1도움으로 3:3 동점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그리고 10경기 9골 3어시스트라는 미친 활약을 하며 막장 수비 말라가가 강력한 화력으로 강등권을 탈출하는데 일등공신이 된다. 거의 매 경기 한 골과 한 개의 어시스트를 적립하는 중. 5월 11일까지의 기록으로 말라가는 강등권을 벗어나 10위까지 올라갔다. 결국 리그 강등권에서 중위권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말라가의 행보로 보아 2011/2012 시즌엔 반니-밥티스타 라인이 돌아갈 것 같다.
10월 1일에 벌어진 리그 6라운드 헤타페 C.F. 경기에서 90분 막판에 간지폭풍 버저비터 오버헤드킥을 넣으며 팀의 3:2 역전승에 기여했다. 말라가는 4승 1무 1패로 리그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장기부상을 입으며 11/12 시즌 기록은 4경기 1골(...) 로 끝났다.
12/13 시즌에도 초반에 부상을 입었으나 후반기 복귀해서 14경기 4골 1어시를 기록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도 전경기에 출전했지만, 8강 2차전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비극의 역전패를 당하며 밥티스타의 마지막 경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계약이 끝났고 브라질의 크루제이루로 자유계약 이적했다.
3.3. 크루제이루
2013 시즌에는 부상이 없었지만, 유망주들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가는 브라질 리그 특성상 많은 경기에 나오진 못했다. 시즌 기록은 22경기 6골. 다만 이 팀에선 선수로보다의 역할보다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가르쳐 주는 역할을 맡는 듯.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충성심을 반만 닮아도(...).
2014 시즌 현재 11경기 5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5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2경기 출전에 그쳤고, 친구 카카의 조언을 받아들여 미국행을 택한다.
3.4. 올랜도 시티 SC
친구 카카의 주선으로 올랜도 시티에 입단했다.
2017년 1월부로 은퇴한 줄 알았는데..
3.5. CFR 클루지
2018년 8월 19일 루마니아 리그의 CFR 클루지에 입단했다.
18-19 시즌 2경기를 뛰고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2019년 5월 23일 은퇴했다.
4. 국가 대표 경력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바그너 로베(...)가 원톱으로 출전한 결승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써 결승 선취골을 넣으면서 아르헨티나를 3-0으로 격파하고 우승하는데 기여했다.[16]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 랭킹 1위이자 후안 로만 리켈메, 에스테반 캄비아소,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하비에르 사네티, 파블로 아이마르, 카를로스 테베즈, 가브리엘 에인세, 디에고 밀리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월터 사무엘, 에르난 크레스포 등 00년대 후반부터 12년까지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정예 선수 중 몇몇 선수들이 제외되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두 나와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던 대회였다. 참고로 리오넬 메시 역시 이 대회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밥티스타는 세골을 넣으며 팀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밥티스타가 국대에서 뛴 48경기에서 기록한 다섯 골 가운데 세 골이 이 대회에서 터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대회가 밥티스타의 국대 전성기라고 봐야할 것이다. 참고로 최다득점자는 6골의 호비뉴였다.[17]
브라질 대표로 출전한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우승했다. 단순히 우승한 셀레상의 일원이 아니라 호비뉴와 함께 팀을 이끄는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는 아니고 실제로는 조별예선 2차전 1경기에 교체로 출전하여 약 20여분 남짓 출장하는데 그쳤다.
5. 플레이 스타일
훌륭한 신체 조건을 지니고 있으며, 얼핏 보기에는 타겟터인 것 같지만 사실 활동량이 많고 적극적으로 수비 가담도 할 줄 아는 하드 워커이며, 커리어 초창기에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로 주로 뛰었던 만큼이나 수비 가담 시 대인 방어 능력도 아주 나쁘지 않다. 스피드도 괜찮은 편. 위의 서술을 보면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테크닉이 떨어지는 선수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지만, 다른 남미 출신의 굇수들에 비교해서 그렇지 사실 테크닉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개인기로 수비수를 제치고 득점에 성공하는 장면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며, 유럽의 상위권 리그의 공격수 수준은 되었다. 다만 골 결정력에 기복이 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로마에서는 유독 못 했다.
먹튀 소리를 듣던 로마 시절이었지만 이적 후엔 다시 득점력이 불타올랐던 것으로 볼 때 아주 실력이 없던 선수는 아니었다는 이야기.
[1] 기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2] 이외에도 최전방 스트라이커와 처진 공격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었다.[3] 희한한게 원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입단했다. 그러다 공미,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바꾸니 골포텐이 터져버린것.[4] 아스날 시절 거의 대부분 경기에서 못했는데 EPL 클럽들이 신경을 덜쓰는 칼링컵에서만 유달리 활약했기 때문에 컵티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다.[5] 혹자는 이것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밥티스타의 유일한 업적이라고 비꼰다.[6] 원래는 인테르에서부터 먹튀였다. 2008/09 시즌과 2009/10 시즌 전반기 인테리스타들의 뒷목을 부여잡게 만드는 활약을 했으며(...), 그렇게 망한 만시니를 2009/10 겨울 이적 시장에서 밀란이 임대로 데려오자 구단주 베를루스코니가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만 결국 왔고, 밀란에서도 예상대로 못난 활약을 펼쳤다. 참고로 인테르 가기 전엔 로마에서 5시즌간 활약했는데 로마 시절에는 멀쩡히 잘하던 선수였다. 그런데 왜!![7] 즉 만시니는 2008/09 시즌~2009/10 시즌 전반기에는 인테르에서 [콰] 와 함께, 2009/10 시즌 후반기에는 밀란에서 [훈] 과 함께한 셈이다.[8] 그나마 클라스 얀 훈텔라르는 이후 샬케 04로 이적해 분데스리가 득점왕도 차지하는등 나름 부활하긴했다.[9] 예컨대 로마와 불구대천의 원수인 라치오 경기에서 결승골 등.[10] 끔찍한 트래핑과 달리 피지컬은 놀라울 정도로 좋다. 다만 프리메라 리가나 세리에 기준이고 피지컬로 먹고 들어가는 EPL에선 그냥 괜찮은 피지컬에 불과했다.[11] 이 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AS 로마의 홈구장인 올림피코에서 열렸기 때문에 팬들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때보다 컸다. 그런데 찬물을 끼얹은 것. 토티는 자신의 꿈이 올림피코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이라 밝힌 바 있었다.[12] 참고로 평북 사투리로 밥장군은 "밥벌레", "식충이"를 뜻한다고 한다(....)[13] 당시 로젤라의 막장 경영으로 재정이 엉망이던 로마는 인테르에서 출전을 못하던 부르디소를 노렸으나 돈이 없어서 임대 영입해 와 잘 쓰던 중, 밥티스타에게 제의가 오자 무슨 자신감으로 협상을 질질 끌었다. 결국 부르디소는 예상 금액보다 높은 값으로 영입하였고 밥티스타는 그대로 팀에 남았다.[14] 훈은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위의 도원결의도 콰밥만.[15] 그 인테르에서 술 먹고 깽판 치다가 나간 그 아드리아누 맞다.[16] 이 결승골의 활약은 한국 공영방송 KBS에서도 소식을 알렸다.[17] 호비뉴의 전성기였다 봐도 무방한 대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