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산체스

 




<colbgcolor=#009655>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No. 17'''
'''호아킨 산체스 로드리게스
(Joaquín Sánchez Rodríguez)
'''
'''생년월일'''
1981년 7월 21일(42세)
'''국적'''
[image] 스페인
'''출생지'''
엘푸에르토데산타마리아
'''신장'''
179cm
'''포지션'''
윙어
'''주발'''
오른발
'''클럽'''
베티스 B (1999~2000)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00~2006)'''
'''발렌시아 CF (2006~2011)'''
말라가 CF (2011~2013)
'''ACF 피오렌티나 (2013~2015)'''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15~)'''
'''국가대표
(2002~2007)
'''
51경기 / 4골
1. 소개
2. 클럽 활약상
2.5. 레알 베티스로 복귀하다
2.5.1. 2018-19 시즌
2.5.2. 2019-20 시즌
2.5.3. 2020-21 시즌
3. 국가대표
4. 플레이스타일
5. 기록
5.1. 대회 우승
5.2. 개인 수상
6. 여담
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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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image]
라리가 역대 최다 출전 순위 2위, 필드 플레이어 최다 출전 순위 1위에 빛나는 선수. 고령의 나이에도 항상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꾸준함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이다.
레알 베티스 소속의 스페인 축구 선수로 주 포지션은 오른쪽 윙어이다. 중위권 베티스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포지션 정점을 찍어본, 월드 클래스로 평가 받았던 선수였다. 아쉬운 점은 소속팀 복이 없었다는 것. 충분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빅 클럽으로 이적할 수 있었지만 베티스에 대한 애정, 애매했던 이적 시기로 인해 커리어 내내 전통적인 명문 클럽에선 활약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발렌시아,[1] 말라가, 피오렌티나 정도의 팀이었으니. 그래도 정상급 라이트 윙어하면 꼭 언급되던 선수 중 하나였다. 그 클래스가 어디 가진 않는지 38세인 지금도 현역으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한국 나이로 41세까지 재계약을 맺을 정도다.
클래식 윙어가 사라지는 경향 속에서도 적절히 적응하며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특히 17/18 시즌 베티스의 유로파 리그 진출을 견인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2002 월드컵 8강 한국전에서의 활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클럽 활약상



2.1.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1999년 레알 베티스 B 팀에서 프로 데뷔를 하였는데, 1999년 스페인 유스 대회에서 베티스를 우승시킨후 당시 FC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루이 판 할 감독이 극찬하였을 정도. 당시 강등되었던 베티스를 맹활약과 함께 프리메라 리가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한다. 특히 그 레알 마드리드 C.F.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를 농락하는''' 등의 뛰어난 활약을 하며 당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카마초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2002년 이후 베티스에서의 활약은 대단하였다. 중하위권 정도의 빅 클럽이 못되는 베티스의 중흥을 이끌지만 호아킨은 베티스에 대한 애정이 강했으며, 베티스 역시 자기팀의 프랜차이즈이자 '''에이스'''인 선수를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호아킨의 영입설에 가장 근접한 팀은 바로 지구방위대로 명성을 떨치던 레알 마드리드 C.F.였다. 호아킨 자신이 루이스 피구를 그렇게 존경하기에 레알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였지만 '''레알이 선택한건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었다.'''[2][3]
어쨌건 이적도 물건너 간후, 강한 기복과 함께 상당히 지지부진하며 유로 2004에서도 부진한 플레이와 함께 까이면서 묻히나...싶었지만 04/05시즌에 다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 무엇인지 호아킨은 보여 주었다. 시즌 '''도움왕'''에 등극함과 함께 '''베티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한다.''' 시즌 MVP를 줘도 아깝지 않는 엄청난 활약이었다. 이때는 아직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가 국내에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는데, 단 1시즌 뿐이었지만 호아킨은 이미 최정상을 한번 찍어본 선수다.
이러한 대활약과 함께 수많은 빅 클럽들이 러브콜을 보내었으며, 특히 부유한 첼시 FC에서 정말 강한 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높으신 분들이 직접 행차하셔서 이적을 추진하였을정도. 하지만 호아킨은 그런 러브콜을 다 거부하며 베티스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챔스에서도 호아킨의 현란한 플레이가 먹힐지 주목을 받았으나...
챔스도 나갔으면서 선수보강이 부족하여, 특히 호아킨의 공백을 매울수가 없었기에 호아킨은 매 경기 선발출전하면서 혹사를 당하면서 정말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게된다.
그렇다보니 베티스는 팀의 아이콘인 호아킨을 이적시키게되는 초강수를 두게되며, 호아킨은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정든 베티스를 떠나며 빅클럽 발렌시아 C.F.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확정 후 마지막 인터뷰에서 호아킨의 눈물을 흘리며 했던 "저는 떠나지만 영원한 베티코(베티스의 팬)입니다"라는 인터뷰가 워낙 인상깊어서 발렌시아 팬들 사이에서 강제로 빼내온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2.2. 발렌시아 CF


[image]
2006년 8월에 25m 유로로 발렌시아 C.F.로 이적하였다. 그렇게 첫 시즌에 리그 35경기 출장 5골 3도움, 총 48경기 5골 5도움을 기록했다. 마침 발렌시아의 왼쪽 윙에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비센테 로드리게스가 있었기 때문에 팬들은 게임에나 나올 전설의 윙어라인인 '''좌센테 우아킨'''을 기대했지만... 비센테는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호아킨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팀내 고참급 선수였던 앙굴로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으나 후반기로 갈수록 부활의 기미를 보였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8강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애쉴리 콜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하며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의 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4] 그렇게 호아킨은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로 하여금 호아킨이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보일 것이라 기대하게 하였다.
'''그러나...'''
07-08시즌 초반 성적부진으로 키케 플로레스 감독이 경질되고 로날드 쿠만이 감독으로 오면서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때 호아킨의 '''안습행보'''가 정말 두드러졌는데, 쿠만이 호아킨의 플레이를 두고 '''30유로 수준'''이라고 디스한 것부터 시작하여[5] 본 포지션이 오른쪽 윙어인 호아킨을 '''왼쪽 윙'''이나 '''원톱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는 등 정말 별 방법으로 다 굴려졌다.[6][7] 이 안습한 시즌의 성적은 리그 34경기 3골 4도움, 총 56경기 7골 6도움.
쿠만 감독이 경질되고 08-09시즌에 부임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지휘 아래 호아킨은 다시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다비드 실바의 부재 시에는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맡을 정도로 신임받았으나, 헤타페 CF 에서의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뒤 바이백 조항으로 팀에 복귀한 파블로 에르난데스가 급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호아킨은 다시 힘겨운 주전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즌 호아킨의 성적은 리그 31경기 4골 6도움, 총 40경기 6골 9도움.
09-10시즌에 들어서면서 에메리 감독은 후안 마타와 함께 다비드 비야를 측면에서 지원해줄 자원으로 호아킨에 비하면 측면에서의 파괴력이 떨어지나 더 유기적인 연계가 가능한 파블로를 더 선호했고, 호아킨은 그의 날카로운 크로스 능력을 더 잘 살릴수 있는 장신 공격수 니콜라 지기치와 기용되는 일이 잦았다. 이런 상황에 격분한 호아킨은 결국 훈련장에서 에메리 감독을 상대로 패드립(...)을 시전하는 등 관계가 악화되나 싶었지만 어찌어찌 해결되었다. 이 시즌 호아킨의 성적은 리그 28경기 2골 4도움, 총 45경기 7골 6도움.
2010-11시즌 팀내 3번째 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비야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등번호 7번을 부여받게 되었고 파블로가 부진한 사이 다시 주전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특히 11월에는 라 리가 돌파 성공률 순위 1위에 랭크되기도. 시즌 성적은 리그 30경기 4골 7도움, 총 38경기 5골 9도움. 그러나 시즌 막바지에 말라가 CF와의 링크가 지속적으로 뜨더니 결국 말라가 이적에 합의했다.

2.3. 말라가 CF


[image]
2010-11 시즌이 끝난 후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수를 영입하고 있는 말라가 CF가 영입하면서, 호아킨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발렌시아 CF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2011-12 시즌에는 리그에서 23경기에 출전해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이전만큼의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이 시즌에 팀은 프리메라리가 4위를 차지해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2012-13 시즌에는 AC 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1-0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크게 공헌하는 등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8강전에서는 1차전 홈에서 0:0 무승부로 마쳤지만, 2차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며 말라가의 4강행 신화를 써내려가나 싶었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마르코 로이스와 펠리페 산타나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팀은 2:3으로 분패했다. 그래도 이 시즌 호아킨은 리그에서 34경기에 출전해 4골 6도움, 총 45경기 8골 7도움을 기록하여 지난 시즌보다 좋은 활약을 보였다.

2.4. ACF 피오렌티나


2013-14 시즌을 앞두고 말라가의 재정 악화로 인해 2013년 6월 13일에 세리에 A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첫 시즌에는 리그에서 26경기에 출전해 2골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4-15 시즌에는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선보이며 피오렌티나의 중심 선수로 거듭났으며, 피오렌티나 또한 호아킨의 활약과 맞물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2014-15 시즌이 끝난 상황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낸 레알 베티스로 복귀를 고려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결국 레알 베티스로 간다는 오피셜이 떴다.#

2.5. 레알 베티스로 복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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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이적시장 막바지였던 8월 31일에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2006년 이후 9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계약 기간은 3년.
복귀 이후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며 루벤 카스트로와 함께 팀을 이끌고 있다. 베티스가 이기는 경기에서는 거의 항상 이 두 베테랑이 뭔가를 해주는 것이 공식과도 같은 상황. 16라운드 기준으로 공격포인트는 1골, 2도움을 기록 중이지만 실제 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스탯 그 이상이다. 팀 역시 5승 5무 6패로 승격 첫 해에 순항 중이다.
2016-17 시즌에는 찰리 무손다를 주전에서 밀어냈다.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무손다는 첼시로 돌아갔다.
17-18 시즌에도 여전한 활약으로 시즌 후에 AS 선정 라리가 베스트 XI에 뽑혔다.

2.5.1.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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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시즌 9월 3일 지역 라이벌 세비야를 상대로 벌인 안달루시아 더비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11월 12일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팀의 2번째 득점을 터트린 후, 세르히오 카날레스와 교체되었고, 팀은 4:3으로 승리하였다.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는 개인 통산 라리가 500번째 경기를 펼쳤다.
2월 7일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 발렌시아전에서는 코너킥 키커로 나서 일명 바나나킥을 선보이면서 득점을 기록했다. 이 날 호아킨은 드리블 돌파 3회(경기 2위), 키패스 2회(경기 최다), 드리블 성공률 100%, 태클 성공 1회, 가로채기 성공 4회(경기 최다) 등 공수 양면에서 빼어난 기록을 남겼다. 팀도 3-2 승리를 따냈다.
2월 10일 기준으로 이번 시즌 윙어, 공격수, 윙백 등 다양한 포지션을 오가며 16경기 선발, 8경기 교체 출장을 통해 3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24라운드 알라베스 전에서는 후반 23분 교체 투입되면서, 이날 경기 출전으로 라리가 개인 통산 505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그러면서 차비 에르난데스와 함께 라리가 최다 출전 부문 공동 7위로 올라섰다.
나이가 있어서 가끔 선발로 이곳저곳(세컨탑, 윙백) 나오지만, 나올때 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시즌 성적은 리그 30경기 6골, 총 43경기 7골 3도움.

2.5.2. 2019-20 시즌


라리가 6라운드 레반테와 경기에서 팀의 3골에 모두 기여하고 키패스를 7회나 성공시키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3:1 승리에 공헌했다.
라리가 16라운드, 라이벌 팀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홈 경기에서 전반 21분만에 해트 트릭을 기록하며 그.아.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기록은 38세 140일로 종전 기록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1964년 기록 37세 255일을 갱신'''하였다. 참고로 이 해트트릭은 호아킨의 커리어 '''첫 해트트릭'''이며 또한 '''라리가 최고령 해트트릭'''이다. 득점 장면들을 보면 한동안 호아킨을 못 본 팬들은 "이게 비야야 호아킨이야..." 할 정도로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발렌시아, 마요르카전에 이어 이날까지 3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 중이며, 같은 기간 동안 5골을 기록하고 있다.
2019년 12월 26일 재계약을 맺었다.
4월 29일 기준으로 시즌 28경기 10골 2도움을 기록 중이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베티스 복귀 후 시즌을 거듭할수록 활약상이 더욱 좋아지고 있다. 공격 포인트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복귀 첫 시즌이던 15-16 시즌에는 총 1골 5도움에 그쳤으나, 16-17 시즌과 17-18 시즌에 각각 3골 4도움과 4골 7도움을 기록하더니, 지난 시즌 7골 3도움에 이어 이번시즌에는 두 자릿 수 득점을 기록 중이다. 호아킨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시즌 두 자릿 수 득점을 기록한 시즌은 02-03 시즌과 이번 시즌이 유이하다. 곧 불혹을 바라보는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아리츠 아두리스가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하면서, 현재 라리가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라리가 37라운드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전에서 선발출전하여 72분을 소화했는데, 이 경기를 통해 개인 통산 라리가 551번째 경기를 치르면서 라울 곤살레스의 550경기를 넘어 라리가 역대 최다 출전 부문 2위로 올라섰다.

2.5.3. 2020-21 시즌


리그에 꾸준히 출장하고 있지만 20R까지 리그 1골 3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1월 26일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코파델레이 16강 경기에서 쐐기골을 어시스트하며 박문성 해설위원으로부터 '''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 ! ''' 를 이끌어냈다.

3. 국가대표


베티스에서의 활약으로 2002년 2월 13일 포르투갈과의 A매치에서 첫 데뷔하였고,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스페인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도 선발되었다.
한국의 2002 월드컵 8강전은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스페인과 맞붙었고, 호아킨은 선발 출전하여 120분 내내 대표팀을 괴롭혔다. 호아킨이 담당하던 오른쪽은 그에게 유린당하다시피 했으며, 이는 우승팀 브라질도 제대로 뚫은 적이 없던 영혼의 5백(정확하게는 7백에 가까운 구조)을 뚫어낸 유일한 경기였다. 하지만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로 나와 실축했는데, 이는 양 팀 통틀어 유일한 실축으로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으로 끌어올려 주신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제일 인상깊었던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가 한국의 4강진출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만 셈.
귀국한 후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그를 위로해 주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유로 2004에도 참가했으나 호세바 에체베리아에 밀려 주전으로 뛰지도 못했으며 스페인도 조별예선에서 광탈했다. 독일 월드컵에서는 3경기에 출장했으나 인상깊은 활약을 보이진 못했으며 발렌시아 이적 이후 부진에 빠지면서 국가대표팀에서의 입지도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고 유로 2008 지역예선 북아일랜드전 이후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유로 2008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8] 그리고 국가대표팀에서 실바와 이니에스타를 백업해줄 역할도 산티 카솔라헤수스 나바스에게 완전히 넘겨주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월드컵 직전에 비센테 델 보스케가 뽑겠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였으나 그 직후 부상. 그렇게 나바스가 대신 월드컵으로 가면서 대표팀과 멀어지게 된다.

4. 플레이스타일


호아킨은 기본적으로 클래식 윙어로 분류된다.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나 패스로 공을 중앙으로 전달하는 전통적인 윙어가 호아킨의 주된 플레이스타일이다. 프로 무대 데뷔때부터, 이미 오른쪽 측면에서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는 완성형 상태였다.
호아킨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어떠한 풀백을 만나더라도 기복없는 측면 돌파와 가볍게 상대를 따돌려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황소같은 피지컬, 빠른 주력과 완벽한 템포 조절로 상대의 허점이 생기면 과감히 밀고 들어가고, 만약 상대 수비가 돌파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내려 앉는다면 여지없이 크로스 각도를 만들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린다. 무엇보다 이러한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능력은 피지컬이 다소 떨어진 현재에도 측면에서 뛰는 것이 가능하게끔 한다.
그러나 측면을 고집하는 단조로운 플레이스타일은 격변하던 현대 축구 흐름 속에서 호아킨에게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 루이스 피구의 플레이메이킹이나 데이비드 베컴과 같은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에 비교하면, 경기에 관여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또한 인버티드 윙어의 서막을 연 로베르 피레스를 필두로 반대발 윙어의 시대가 열리며, 클래식 윙어의 역할을 풀백들이 대체해 나가면서 주가를 올리던 호아킨에게는 그러한 단점들이 더욱이나 크게 부각되었다.
하지만 말라가에서 마누엘 페예그리니 지도 하에 2선에서 위치를 가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플레이가 가능해졌으며, 이는 피오렌티나에서도 오른쪽 한정해서만 뛸 수 있다는 예전의 시각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베티스에서 노장을 보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거의 폭발적인 돌파와 스피드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아있는 킥력과 뛰어난 경기 흐름 리딩으로 2선의 좌우와 중앙에서 모두 플레이가 가능한 성공적인 말년을 보내고 있다.

5. 기록



5.1. 대회 우승



5.2. 개인 수상



6. 여담


호아킨을 두고 나오는 별명으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 축구계의 서브컬처[9]에서 2000년대 중반 '''앨런 스미스리즈시절'''과 '''세리에 7공주'''에 버금가게 많이 사용된 유행어로, 아이러브사커에서 호아킨vs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비교글이 올라오자 댓글이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로 뒤덮인 것이 발단이 되었다.[10] 사실 그뿐만 아니라 '장난? 호아킨 쩝니다'라는 댓글도 꽤 임팩트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줄여부르기 편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 쪽이 더 유행세를 탔다.
당시 호아킨은 베티스의 소년가장으로서 레알 이적이 가시권에 있었던 라리가 정상급 선수였고 호날두는 맨유에서 포텐이 덜 터져서 섹날두, 혼자우두 등으로 까이던 시절이라 그런 반응이 나왔던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아호 드립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던 바로 그 해(2007년)에 호날두가 제대로 터져서 발롱도르 2위를 먹으면서 그아호 드립은 완전히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후 괴물이 된 호날두와 호아킨은 물론 비교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말은 호아킨이 유로2008 이후로 '''퇴물'''(...) 취급받자 '''호아킨을 옹호하기 위한 팬들의 발언'''으로 자리잡았다. 꽤나 안습한 별명임에도 지금은 호아킨을 대표하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이젠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노장 중의 노장 반열에 들었음에도 아직도 맹활약하는 클래스를 보여주며 이 말이 다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호아킨이 위에 언급한 월드컵에서의 승부차기 실축의 여파(?)인지 폐인 양성기로 유명한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는 호아킨의 승부차기 능력치를 더 이상 호아킨의 PK능력을 짜게 주지 않는다. FM21 기준으로 PK 능력치가 무려 14에 달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플레이를 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긴 하다.
10월 25일 챔스 경기 후에 호아킨 사진과 함께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올라왔다.

7. 같이 보기



[1] 발렌시아가 명문팀이 아니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 라리가 우승횟수 6번에, 2위 횟수 5위, 3위 횟수 3위이다. 호아킨이 발렌시아에 있었을때 발렌시아 팬들의 금지어인 쿠만이 감독으로 있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원래 명성에 비해 부족해 보였던 것이다. 쿠만이 리그 최종성적 10위를 기록했을 때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았었을 정도이다. 다만 쿠만, 네빌 두 감독이 거하게 말아먹은 뒤인 현재도 원래의 발렌시아 명성에 비하면 암흑기인 셈이다.[2] 이 소식을 접한 호아킨은 정말 살빠지도록 울었다고 하는 후문이 있다.[3] 하지만 그래도 아직 04/05년도 시즌에 레알의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이 '''직접''' 언제 오냐고 하였을 정도.[4] 다만 발렌시아는 결국 탈락했다.[5] 호아킨은 이에 대항해 "당신이 여기와서 가장 고민한 건 '저녁식사 때 무슨 와인을 먹을까' 밖에 없잖수?"라고 받아쳤다.[6] 하지만 이 흑역사로 인해 포지션 다양화를 장착하게 되어 각종 전술 변화 속에서 윙에서 미드필더, 원톱까지 다양하게 굴려지지만 어떤 위치에서도 제 몫을 해내는 만능형 선수로 거듭나게 되었다.[7] 첨언하자면 호아킨이 원톱으로 기용된 경기는 하필이면 친정팀 베티스와의 국왕컵 경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아킨이 헤딩으로만 2골을 기록하며 발렌시아가 2:1로 승리했었다...[8] 문제의 북아일랜드전 3:2 충격패 후에 인터뷰에서 호아킨은 아라고네스를 비난하는 어조의 말을 남겨 논란을 빚었고 결국 이 경기가 호아킨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다.[9] 호날두가 떠오르던 시기의 피파온라인의 영향도 있다. 당시 오른쪽 윙포워드 내지 윙어 위치에 호날두냐 호아킨이냐는 올드 피온 유저라면 기억할 것이다.[10] DC 해축갤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해축갤은 알싸를 까는 용도로 이 말을 자주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