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

 

'''홍영철
洪英喆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1925년
평안남도 평양부 (現 평양직할시)
'''사망'''
불명
'''학력'''
경기중학교 (졸업)
연희전문학교 (중퇴)[1]
1. 개요
2. 일생
3.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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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조직폭력배.

2. 일생


소공동파의 두목으로 평양 출생이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괴롭힘을 많이 당하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여 이후 깡패가 되었다고 한다. 안경을 끼고 싸우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그의 발차기와 오른쪽 스트레이트였다고 한다. 연희전문학교 3학년 시절엔 헬싱키 올림픽 복싱 국가대표 주상점(1926-1981)을 쓰러뜨리기도 했다.
1944년에 경기중학교를 나와 대학은 연희전문학교 출신으로 대학을 다니던 중에 1945년, 이화룡의 서북청년회에 특공대장으로 활동하여 반공투쟁을 펼쳤다. 그후 6.25 전쟁이 일어나 대구에서 제3대 학도의용군 총본부장을 했으며, 부산의 국제구락부 사건, 정치파동 등에 관여했다고 한다. 전쟁 휴전후 서울로 돌아가 소공동에 조직을 세우며 두목이 되었다.
김두한이 건중친목회에 끌어들여서 건중친목회에서 일하다가 명동파와 손잡고 이정재를 견제했다. 이후 자신의 부하가 명동파와 충돌한 일을 계기로 이정재와 연계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실업협회의 수익의 일부를 자유당에 상납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지라 은밀히 반 자유당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기붕이 부정선거를 한다는 사실을 언론에 몰래 퍼뜨린 게 홍영철이라고 한다.
5.16 이후 반공청년단 감찰부장의 경력 때문에 수감된 적이 있었을 때, 영어 원서를 읽어 형무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실력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죄가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았는지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 받았다.
출소 후 사업을 하며 살았는데, 1987년에 경향신문에서 대한민청에 대한 연재기사를 냈을때 우미관 식구들과 함께 근황이 공개되었고, 몇 년 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홍영철에 대한 이 기록들은 유지광신상사의 증언과 책에서 발췌했다.
대한실업협회 회장직을 7년 동안 유지하기도 하는 등, '''주먹계의 조조'''라는 악평을 받았다. 실제로 굉장히 악질인 인간으로,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이 사람 이름을 치면 반공 청년회의 고대생 습격 사건이니, 입찰 과정에서 폭력을 써서 갈취니 하는 등등의 기사들이 나온다. 야인시대의 이미지와는 한참 다른 인간이다.[2]

3. 대중매체에서



3.1. 무풍지대


방영 당시에 생존한 상태여서 그런지 홍대호라는 가명으로 등장한다. 극의 시작시점에 극중 주먹들 중 젊은 축인 30세의 나이임에도 나이많은 배우가 담당하는 바람에 이정재보다도 더 나이많은 원로처럼 보인다.

3.2. 드라마 야인시대



[1] 4학년에 중퇴하였다.[2] 그리고 드라마 야인시대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미화된 것과 달리, 실제 조직폭력배들의 대다수는 의리나 믿음같은건 당연히 1도 없고, 이 홍영철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잔혹한 인간들 투성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