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안
淮安
영어 Huai'an
중국 동부 장쑤성의 지급시. 인구는 5백만명이고 지명은 인근의 화이허가 홍수가 나지 않고 평온하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과거의 회남은 회음(淮阴, 발음 : 화이인)으로 불렸고, 유방의 대장군으로서 전한 건국의 공신인 '''한신'''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였다. 한신은 전국 통일 이후 회음후에 봉해졌다. 그 밖에 하나라의 건국자인 우왕이 회음에서 회수 (화이허)의 치수를 감독했다고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 화이안은 인근 난징에 비할 만큼 중요한 도시였고 수로가 얽힌 상업 도시로서 발전하였다.
초한지의 한신 이후로 회음 지방은 삼국지의 손권의 부인인 보연사의 고향이 되었다. 삼국시대 후반부와 남북조 시대에 회음은 합비와 함께 전장이 되었다. 명나라 시대에 회음은 주원장 가문의 선산이 위치하여 특별하게 여겨졌다. 16세기에는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의 고향으로 알려졌고 대운하가 지나는 내륙 항구로서 번영하였다. 1898년, 회음에서는 미래 중국을 이끌어 나가게 되는 주은래 (저우언라이)가 태어났다. 1983년에 회음, 화이인은 회안, 화이안으로 개칭되었다.
화이안 시가지는 화이허가 흘러드는 훙쩌 호[1] (洪澤湖, 홍택호)의 동안에 형성되어 있는데 명나라 대의 성벽과 관아, 사찰 등이 남아있다. 오승은의 묘도 있는데, 문화대혁명 시에 파괴된 후 복원된 것이다. 시내 북쪽에는 후이안 롄수이 공항이 위치해 있고 수운 교통도 여전히 활발하다. 인근 도시로는 옌청, 롄윈강, 양저우, 린이, 쑤첸 등이 있다. 과거에는 훙쩌호가 자주 범람하였는데 50년대에 서해와의 수로가 개설되어 현재는 홍수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영어 Huai'an
중국 동부 장쑤성의 지급시. 인구는 5백만명이고 지명은 인근의 화이허가 홍수가 나지 않고 평온하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과거의 회남은 회음(淮阴, 발음 : 화이인)으로 불렸고, 유방의 대장군으로서 전한 건국의 공신인 '''한신'''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였다. 한신은 전국 통일 이후 회음후에 봉해졌다. 그 밖에 하나라의 건국자인 우왕이 회음에서 회수 (화이허)의 치수를 감독했다고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 화이안은 인근 난징에 비할 만큼 중요한 도시였고 수로가 얽힌 상업 도시로서 발전하였다.
초한지의 한신 이후로 회음 지방은 삼국지의 손권의 부인인 보연사의 고향이 되었다. 삼국시대 후반부와 남북조 시대에 회음은 합비와 함께 전장이 되었다. 명나라 시대에 회음은 주원장 가문의 선산이 위치하여 특별하게 여겨졌다. 16세기에는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의 고향으로 알려졌고 대운하가 지나는 내륙 항구로서 번영하였다. 1898년, 회음에서는 미래 중국을 이끌어 나가게 되는 주은래 (저우언라이)가 태어났다. 1983년에 회음, 화이인은 회안, 화이안으로 개칭되었다.
화이안 시가지는 화이허가 흘러드는 훙쩌 호[1] (洪澤湖, 홍택호)의 동안에 형성되어 있는데 명나라 대의 성벽과 관아, 사찰 등이 남아있다. 오승은의 묘도 있는데, 문화대혁명 시에 파괴된 후 복원된 것이다. 시내 북쪽에는 후이안 롄수이 공항이 위치해 있고 수운 교통도 여전히 활발하다. 인근 도시로는 옌청, 롄윈강, 양저우, 린이, 쑤첸 등이 있다. 과거에는 훙쩌호가 자주 범람하였는데 50년대에 서해와의 수로가 개설되어 현재는 홍수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1] 황허가 회수의 하도로 갈아타며 회수가 남쪽 장강 쪽에 합류하면서 범람한 물이 고여 형성된 중국 4대 호수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