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슈헤이

 



치바 롯데 마린즈 No.7
후쿠다 슈헤이 (福田秀平/Shuhei Fukuda)
'''생년월일'''
1989년 2월 10일
'''출신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아오바구
'''학력'''
타마대학부속 히지리가오카고교
'''포지션'''
외야수, 1루수[1]
'''투타'''
우투좌타[2]
'''프로입단'''
2006년 NPB 고교생 드래프트 1라운드
'''소속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2019)
치바 롯데 마린즈 (2020~)
'''등장곡'''
wacci - 歌にするから
'''응원가'''
Janne Da Arc - 霞ゆく空背にして[3]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4]
'''2011'''
'''2015'''
'''2017'''
'''2018'''
'''2019'''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기타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야구선수. 2020년 시즌을 앞두고 FA로 롯데에 이적했다. 롯데의 6년 만의 FA 외부영입. 여담으로 일본프로야구에는 후쿠다 슈헤이가 두 사람 있다. 혼동하지 말 것. 다른 후쿠다 슈헤이는 오릭스의 주장을 맡고 있는 1992년생인데, 한자가 福田周平이다. 성은 같지만 이름의 한자는 한 글자 다르며, 공교롭게도 두 후쿠다 슈헤이 모두 타자.[5]

2. 선수 경력


3살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지만 야구가 아니라 수영이었다. 10살 때는 주니어 올림픽 대표 후보까지 나갔다고 했다. 그러나 축구와 야구까지 같이 했기에 초등학교 때 야구, 축구, 수영을 두고 고민한 끝에 야구로 진로를 정했다.
고등학교는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출전도 없고, 야구부원도 20명 수준인 약체 히지리가오카 고교로 진학. 코시엔 대회는 예선 준결승까지 갔으나 본선에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1학년때부터 주전을 차지하고 중심타선을 맡아 프로에서 주목받았으며, 오미네 유타[6]의 추첨에서 밀린 소프트뱅크가 하즈레 1라운드로 후쿠다를 지명했다.[7] 여담으로 고등학교 최초의 프로 입단이며, 헤이세이 태생 프로야구선수 제 1호라고 한다. 사실은 헤이세이 태생의 선수가 몇 명 더 그 해의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었으나 이 선수들보다 계약이 빨리 되면서 헤이세이 1호가 되었다. 1989년생이지만 2004년 드래프트[8]때 한신 타이거스에 지명된 츠지모토 켄토도 있지만 츠지모토의 경우는 89년 1월생이라 쇼와 태생.[9]

2.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3년간은 2군에서만 나오면서 갈고 닦았으나 부상 때문에 풀 시즌을 뛰지는 못했다. 2군에서 3년차 때 61경기 13도루로 준족임을 보여주고 2010년 드디어 1군에 올라와 2010년 4월 30일 롯데전에서 '''이범호'''의 대주자로 나와 1군 데뷔를 완수했다.
2010년을 대주자 전문으로 뛰면서 보낸 후 2011년부터 9년 간 플래툰과 외야 백업을 오가면서 소프트뱅크에서는 절대 주전 못 먹는데 타팀가면 주전 먹을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생활을 반복했다. 부상이나 수술 등의 일이 있으면서 자리를 비워서 기회를 못 받은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자리가 없었다. 2014년에는 2군애서 도루 2위를 차지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는데도 1군에 자리가 없어서 못 올라가다가 8월 말에 어깨 수술을 받는 바람에(...) 시즌아웃당해서 1군을 밟지도 못했다.
그나마 많이 나온 시즌이 대타나 대주자, 대수비 위주지만 100경기 이상 나온 2017, 2018년, 그리고 22도루 2도루자를 기록하면서 도루면에서 커리어하이를 찍었던 2011년이었다.[10] 그리고 2018년부터 장타력도 나름대로 보여주면서 2018년에는 118타수 7홈런 6도루 OPS .790, 2019년에는 166타수 9홈런 9도루 OPS .772로 다른 팀에 가면 주전을 먹고 5툴 플레이어로 활약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사실 2019년 시즌 때 올 시즌을 끝으로 후쿠다가 FA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모든 팬들이 후쿠다는 타팀이적 확정이라고 설레발을 치는 수준까지 갔고, 본인도 나한테 주전보장을 시켜주는게 최고 우선순위라고 하면서 타팀에 가고 싶은 티를 대놓고 냈다.
팀 동료였던 모리후쿠 마사히코에게 마지막으로 홈런을 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리후쿠는 요미우리에서 방출되었다.

2.1.1. FA


그리고 2019년 시즌이 끝나고 FA를 얻게 되었다. 후쿠다는 C급이었기 때문에 보상선수가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커리어에 비해서 FA 시장이 과열되고 말았다(...)[11] 그러나 단순히 C등급이라 이렇게 시장이 과열된 건 아닌데 이 이전에도 같은 급의 FA가 시장에 나온적은 여러번 있지만 이정도로 많은 구단이 달려든 건 후쿠다가 처음이다. 그만큼 후쿠다의 잠재력을 각 구단이 높이 평가했다는 얘기며 단순히 보상의 필요가 없어서 경쟁이 심해진 건 아니었다. 특히 일본시리즈나 2019년 교류전 우승을 놓고 다툰 요미우리와의 3연전 등 이른바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각 구단 관계자들의 인상에 깊게 남은 듯 하다.
원 소속팀인 소프트뱅크도 꽤 큰 돈을 제시하며 잡으려고 했고, 세이부, 주니치, 야쿠르트, 롯데, 라쿠텐이 모두 FA 계약을 해 달라고 협상하러 오는 수준이었다.[12] 팬들 사이에선 풀타임 우익수로 나오던 키무라 후미카즈가 부진했음에도 외야 자원이 없어 꾸역꾸역 써야 했고 오프에는 부동의 중견수 아키야마 쇼고마저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유력 행선지로 여겨졌다.
소프트뱅크의 팬 감사제나 우승 퍼레이드 등 일정이 연이어 있으면서 스즈키 다이치미마 마나부 같은 타 FA 선수들이 새 소속팀을 발표하는 상황에서도 후쿠다의 새 소속팀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11월 26일, 치바 롯데 마린즈가 FA로 후쿠다를 획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당초 예상은 세이부가 유력했고 롯데는 카쿠나카 카츠야가 좌익수로 공수 모두 말아먹으면서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입단 가능성을 낮게 보았기에 의외라는 평가. 후쿠다는 인터뷰에서 소프트뱅크 입단 2년차 때 부친상을 당했는데, 이때 당치 소프트뱅크 코치였던 토리고에 유스케 코치가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격려해주고 도와줬던 일이 고마워서 이때의 은인인 토리고에 유스케가 수석코치로 있는 롯데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후쿠다가 롯데로 팀을 옮기면서 확실한 건 롯데에서는 어떤 활약을 보일지 몰라도 호크스로서는 팀에서의 비중에 비해 상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후쿠다 만큼 경험 풍부한하고 검증된 슈퍼백업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 후쿠다의 자리를 메울 선수들의 기량이 미지수인 가운데 특히 큰 경기일수록 힘을 발휘하는 후쿠다의 이탈은 호크스처럼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팀에게는 타격이 크다.
한편 FA 이적을 둘러싸고 잡음을 일으키는 선수들도 꽤 있는데 비해 떠나면서도 원소속팀 및 팬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남긴 드문 케이스이다. 소속팀은 물론 팬들, 지역 방송국들까지 좋은 대우를 받고 이적하는 후쿠다를 축하해주는 분위기인데, 이는 그동안 후쿠다가 팀에 공헌한 것을 인정하고 호크스에 남으면 계속 백업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후쿠다의 처지를 이해해 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본인도 원소속팀인 호크스는 물론 FA협상시 오퍼를 제시했던 타팀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를 남기는 등 기본적인 도의를 잊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2.1. 2020 시즌


2월 29일 시범경기에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서 홈런과 2루타, 견제사를 모두 보여줬다.
시범경기는 타율 .375에 2홈런 3도루(0도루자) OPS 1.173을 기록했다. 타율 2위, 출루율 1위, 장타율 2위, OPS 2위로 롯데에서 가장 훌륭한 타자였다. 단순 계산만 하면 30-30도 가능한 페이스. 정규시즌까지 이 페이스가 이어가진다면 좋을 듯.
6월 4일 연습경기에서는 홈런을 쳤다.
6월 19일 개막전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한다. 시범경기에서 맞은 사구 여파로 지명타자 출장도 고민했으나 문제없다고 판단해서 예정대로 중견수로 나온다는 듯. 그러나 삼진만 줄창 당하고 유일하게 출루한 타석에서도 도루자로 아웃당하면서 개막전에서는 좋지 못했다. 알고보니 그 사구 때문에 오른쪽 견갑골 골절상을 입었다는 정밀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결국 개막 이틀만에 1군에서 말소되었다.
7월 23일 거의 한달만에 복귀해서 1번타자 중견수로 나와 안타를 쳤다. 다만 7월 23-24일 이틀간 1안타밖에 치지 못하면서 팀이 2연패와 함께 순위가 4위까지 추락했고, 본인도 타율 .083이 되면서 먹튀 아니냐는 말을 듣고 있다.
8월 1일 주자가 없는 타석에서는 전 타석 삼진을, 주자가 나간 타석에서는 전 타석 병살을 치고 중간에 교체당했다. 먹튀 그 자체.
8월 4일 1번 중견수로 나와 시즌 1호 솔로홈런을 쳤다.
8월 5일 결국 9번타자로 강등당했고 4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이 무려 12점을 냈기 때문에 스탯타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후 9번타자로도 부진하며 오카 히로미에게 잠깐 9번 중견수 자리를 빼앗겼으나 오카가 더 못 치면서(...) 8월 11일 다시 9번 중견수로 복귀했다. 이날 전 타석 볼넷으로 출루.
그러나 다시 얻은 기회 속에서도 부진하며 타율 .133까지 떨어진 후 8월 16일부터는 와다 코시로가 중견수 선발로 나오면서 6억짜리 대주자나 하고 있다(...)
8월에는 그나마 OPS 8할대를 찍으며 성적을 회복하나 싶더니 결국 29일에 부상을 또 입어서 말소. 빼박 먹튀 확정. 비슷하게 먹튀 테크를 타던 미마 마나부는 10월 이후 ERA 2.25를 기록한 덕분에 규정이닝 3점대 ERA+10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먹튀탈출을 했으나 후쿠다는 시즌의 2/3을 이미 날려먹은 데다가 복귀한 후에도 2017년 성적(...)을 내면서 모리후쿠 마사히코 타자버전(...)취급을 받게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50미터 달리기는 6.0초로 빠른 편이지만 주력이 최고수준은 아니다. 롯데에 일단 50미터 5초대인 외야수만 3~4명 수준이니. 그러나 도루센스가 좋아 통산 79도루 15도루자를 기록하였다. 도루성공률 84%. 중견수를 포함한 외야 수비도 좋고 1루 수비도 괜찮다.
컨택의 경우는 풀 시즌을 뛴 적이 없어서 물음표. 일단 최근 2년은 100타수 넘게 나와 2할대 중후반 정도 쳐주기는 했는데 2017년에는 1할 타격을 선보였던 기억이 있다. 또한 고교 통산 38홈런을 기록했고 프로에서도 생각보다 자주 홈런을 쳐주는 갭파워히터. 주구장창 상위타선으로 개근시키면 20개는 무난히 칠 정도의 파워라고 한다. 단 샘플이 적기는 하지만 좌상바기질이 있고 특히 최근 두 시즌 사이에 더욱 심화된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실제로 2020년 시범경기, 연습경기에서는 홈런을 몰아치면서 터지는 듯 했으나 정규시즌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최악의 성적을 보여주면서 아무리 가능성이 있어보여도 30살이 되도록 백업으로만 나온 선수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

4. 기타


  • 한류가 붐일 때 카라의 루팡을 등장곡으로 한 적이 있다.
  • 사이토 유키와는 아마추어 때부터 친구였고 지금도 종종 만나서 밥먹는 사이라고 한다.
  • 아버지가 악성 종양으로 왼쪽 다리를 절단해서 프로 입단 시 계약금으로 의족을 장만해 드렸다고 한다. 이 아버지도 고교 시절에 야구를 했었으며 코시엔 때 현 대회 4강까지 진출했었다고 한다. 결국 프로 2년차 시즌 때 별세했는데 그 때 실의에 빠진 후쿠다를 격려하면서 일으켜 세운 사람이 당시 호크스의 수비코치였던 도리고에 유스케 현 롯데 헤드코치였다고 한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상처를 하면서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은 도리고에 코치가 비슷한 상황을 겪은 후쿠다를 붙잡고 거의 맨투맨으로 붙잡고 훈련을 시키면서 마음을 다잡게 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후쿠다가 FA 선언 후 수많은 팀들이 뿌리치기 힘든 조건을 제시하는 가운데 롯데로 행선지를 정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롯데와의 협상 후 행선지를 결정하기까지 도리고에 코치가 무려 5번이나 본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 올 거냐?"라고 재촉했다고{...)
  • 가장 동경하는 선수는 카와사키 무네노리.
[1] 외야수는 전부 볼 수 있고 1루수는 부포지션이긴 한데 거의 매년 꾸준히 1루수로 출장하는 경기가 있다. 아주 가끔 2루 수비를 맡는 걸 보아하니 2루수도 정말 급하면 투입해 볼 수는 있는 수준. 사실 데뷔 초에는 센터라인 내야수였다.[2] 데뷔 초 우투양타였으나 2010년부터 우타를 포기.[3] '''俺らの期待背に 闘志を燃やして進めよ 夢あふれる希望の道 オイ! オイ! 福田秀平! 煌めく未来へ駆けまわれ'''(우리들의 기대를 등에 지고 투지를 불태워서 꿈이 넘쳐나는 희망의 길을 나아가라 어이! 어이! 후쿠다 슈헤이! 빛나는미래로 뛰어가라)[4] 2014년 시즌은 부상으로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경기 출전 없음[5] 메이지대-NTT동일본 출신인 오릭스의 후쿠다 슈헤이는 전문 센터라인 내야수고, 이 후쿠다 슈헤이는 내야는 외야수가 주포지션에 1루수도 볼 줄 아는 선수.[6] 공교롭게도 이 오미네는 롯데가 뽑아갔으며, 2020년에도 롯데에 있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딱 1시즌 밥값하고 망한 전형적인 망한 1라운더. 아예 2019년 시즌 후에 육성선수로 계약하였다. 동생 오미네 쇼타도 같은 팀에 있었으나 2018년 사채 문제로 인해 계약을 해지하였다.[7] 이게 사실 웃긴게 드래프트 전에는 오미네는 소프트뱅크 1라운드 단독지명이, 후쿠다는 롯데의 1라운드 단독지명이 중론이었다(...) 롯데가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된 것. 참고로 오미네는 처음에 입단 거부를 하는 바람에 등번호 1번에다가 스프링캠프 장소를 오미네의 고향인 이시가키로 바꾸는 조건으로 겨우 입단시켰다. 롯데는 이후 2009 드래프트에서 4라운더로 지명 된 기요타 이쿠히로가 입단을 번복하려 할 때에도 등번호 1번(그 즈음 오미네는 11번으로 등번호 변경)과 1라운더급 연봉을 제시하며 겨우겨우 설득시켰다.[8] 한국 나이 16세.[9] 츠지모토가 저 나이에 프로에 지명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빠른년생이라 사실상 17세였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했는데 중퇴 시점이 일본 기준으로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수업을 들은 거로 인정해주는 시기였다. 그래서 드래프트에 참여 가능했던 것. 그러나 그 츠지모토는 5년 만에 1군 기록 없이 방출당하며 망했다. 방출 이후 마이너리그에 진출했으나 부상으로 한 경기도 못 뛰고 현재는 번역가로 종사.)[10] 97경기 218타수. 타석 면에서는 2011년이 제일 많이 나온 시즌.[11] 사실 보상선수가 없는 C급 FA라는 점이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가 되었다. 아무리 소프트뱅크만 아니면 주전먹는다는 평가를 받아도 커리어하이가 플래툰 수준인 선수에게 6팀이나 달라붙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장 2017년만 해도 꽤 많이 나와서 1할대 타율을 찍었으니.[12] 사실 소프트뱅크의 경우는 선수가 마음이 떠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게 후쿠다 슈헤이와 매우 비슷하게 준족에 수비 잘하는 외야수에 간간히 한방을 쳐줄 수 있는 갭파워를 가졌고(커리어하이 148타수 6홈런 11도루 OPS .754) 타팀가면 주전을 먹을 수 있었으나 소프트뱅크에서는 주전을 먹는 게 불가능했던 선수의 선례가 있었다. 이 선수는 야나기타 유키가 부상으로 빠진 시점에 땜빵으로 주전을 맡아서 교류전 MVP까지 탔었는데(교류전 때 타율 .415로 타격왕을 차지하고 교류전 36경기에서 홈런을 5개나 쳤다.), FA 때 결국 2년 8천만엔+옵션에 소프트뱅크 잔류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는 계약기간 2년이 끝나자마자 선수를 방출해버렸고, 경쟁력이 사라졌던 그 선수는 결국 현역 연장 의지를 잠깐 밝히다가 아무도 제의가 안 오자 쓸쓸히 은퇴하였다. 그 선수는 바로 키도코로 류마. 실제로 소프트뱅크 팬들이 후쿠다가 FA라는 소식을 듣고 많이 한 말 중 하나가 '여기선 어차피 못 써주니까 키도코로 꼴 나지 말고 살길찾아 떠나라.' 였다. 하지만 FA나가는 것도 위험부담이 있는데 끝까지 호크스맨으로 남은 기도코로는 은퇴 후에도 구단 홍보자리에 이어 코치자리를 마련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등 구단에서 뒤를 봐주고 있는 반면 출전기회를 찾겠다며 FA 선언 후 팀을 박차고 요미우리로 떠난 모리후쿠는 먹튀가 되면서 계약기간 끝나자 마자 바로 방출되었고 결국은 호크스에서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미아신세가 되었다. 어느쪽이 좋은 결정인지는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